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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큐티(Q.T)

(렘 8:18~9:6)확실함과 막연함의 차이(매일성경큐티, 예레미야 8:18-9:6)

by 무지개소년 2023. 7. 24.

 

확실함과 막연함의 차이

매일성경큐티 230724 월
찬양: 주님 마음 내게 주소서
성경: 예레미야 8:18~9:6
18 슬프다 나의 근심이여 어떻게 위로를 받을 수 있을까 내 마음이 병들었도다
19 딸 내 백성의 심히 먼 땅에서 부르짖는 소리로다 여호와께서 시온에 계시지 아니한가, 그의 왕이 그 가운데 계시지 아니한가 그들이 어찌하여 그 조각한 신상과 이방의 헛된 것들로 나를 격노하게 하였는고 하시니
20 추수할 때가 지나고 여름이 다하였으나 우리는 구원을 얻지 못한다 하는도다
21 딸 내 백성이 상하였으므로 나도 상하여 슬퍼하며 놀라움에 잡혔도다
22 길르앗에는 유향이 있지 아니한가 그곳에는 의사가 있지 아니한가 딸 내 백성이 치료를 받지 못함은 어찌 됨인고
9:1 어찌하면 내 머리는 물이 되고 내 눈은 눈물 근원이 될꼬 죽임을 당한 딸 내 백성을 위하여 주야로 울리로다
2 내가 광야에서 나그네가 머무를 곳을 얻는다면 내 백성을 떠나 가리니 그들은 다 간음하는 자요 반역한 자의 무리가 됨이로다
3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그들이 활을 당김 같이 그들의 혀를 놀려 거짓을 말하며 그들이 이 땅에서 강성하나 진실하지 아니하고 악에서 악으로 진행하며 또 나를 알지 못하느니라
4 너희는 각기 이웃을 조심하며 어떤 형제든지 믿지 말라 형제마다 완전히 속이며 이웃마다 다니며 비방함이라
5 그들은 각기 이웃을 속이며 진실을 말하지 아니하며 그들의 혀로 거짓말하기를 가르치며 악을 행하기에 지치거늘
6 네가 사는 곳이 속이는 일 가운데 있도다 그들은 속이는 일로 말미암아 나를 알기를 싫어하느니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간절함
일러스트_김성은작가

 

여전히 '부족함!'

 

오늘 본문을 다 읽고 나서 들었던 첫 번째 생각이다.

 

'어떻게 예레미야는 저렇게 진심으로 아파할 수 있을까?'

 

내 자신이 너무 부족하고, 부끄러웠다. 

 

사실 이번 연도 큐티를 하면서, 계속 내 안에 드는 의문 중 하나이다.

 

아무리 해도 진심으로 아파함이 느껴지지 않는다.

 

혹자는 문제가 있는 것 아니냐고 말할 수 있다.

 

그런데 그게 진실이다. 그 증거는 분명하다.

 

내 안에 불신자에 대한 끝없는 안타까움과 슬픔이 있다면 여전히 이 모습일 수는 없다.

 

아닌가? 맞다.

 

정말 예레미야처럼, 사도바울처럼, 하나님처럼 저들을 향한 애끓는 안타까움이 있다면, 불신자들을 향한 영혼의 아픔이 있다면, 어찌도 이렇게 태평하게 살 수 있는가?

 

지금 당장 눈물을 흘려야 한다. 기도로 무릎을 꿇어야 한다. 시간이 날 때마다 나가야 한다.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전해야 한다.

 

어떻게 하면 저 영혼을 주님께로 인도할 것인가에 대한 처절한 연구와 실천이 있어야만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실상은 전혀 그렇지 않다. 그저 막연한 안타까움이다. 막연한 아픔이다.

 

잠시 딴생각이나 딴 일을 하다 보면 금세 잊혀지는 정말 막연한 '안타까움과 아픔'이다.

 

나는 이것을 '성경 지식에 의한 안타까움'이라고 생각한다.

 

즉 지금 내가 갖고 있는 영혼에 대한 아픔이나 안타까움은, 그래야 된다고 성경을 통해 배운 지식과 다를 바 없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정말 슬프지 않은 것이다. 

 

더 쉽게 표현해 보자면, 내 자발적 진심(? 결국 주님이 주신 마음일 수밖에 없지만, 나의 짧은 언어적 사고로는 달리 표현할 길이...)으로는 그들의 불신앙을 보며 슬프거나 안타깝지 않은 것이다.

 

난 그렇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이 문제를 놓고 이곳 제주에서 계속 기도와 묵상 중이다.

 

"하나님! 어떻게 하면 저 영혼을 정말 사랑할 수 있나요? 어떻게 하면 저 영혼을 보고 진심으로 불쌍해하고, 안타깝고, 슬퍼할 수 있을까요?"

 

나만 그런 것인지 이 큐티를 함께 나누는 목회자와 성도님들에게도 정말 질문해보고 싶다.

 

"당신은 주변에 있는 불신자들을 보면서, 거리에 지나다니는 사람들을 보면서 진심으로 아파하고 있습니까? 그래서 그 영혼에게 하나님의 이야기를 전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간절함이 있습니까?"

 

이 이야기를 보고, 여러 조언을 해주고 싶은 분도 계실 것이다.

 

하지만 내가 성경을 통해 확인한 하나님의 마음을 아는 사람, 예수님과 동행하는 사람은 분명 그런 믿음과 마음을 갖았고, 그렇게 행동했고, 그렇게 살다 죽었다.

 

22 길르앗에는 유향이 있지 아니한가 그곳에는 의사가 있지 아니한가 딸 내 백성이 치료를 받지 못함은 어찌 됨인고

 

알고 있다. 어떤 것이 그들에게 '명약'이고, '명의'인지!

 

그렇다면 그 '명약'과 '명의'를 소개해줘야 한다.

 

아니 당장 죽을 그 영혼을 끌고 가서라도 고치도록 도와줘야 한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정말 그가 죽음으로 달음박질하는 영혼인지? 그가 죽는 것이 내게 왜 슬픈 일인지? 정말 간절함이 없다는 것이 큰 문제라는 것이다.

 

오늘 본문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한 예레미야의 한 없는 안타까움으로 가득 차 있다. 

 

예레미야와 나의 차이가 분명하다.

 

본문의 예레미야를 보면서 당신은 어떠한가?

 

확실함과 막연함의 차이다. 간절함과 망각의 차이다.

 

나는 오늘 우리가 먼저 이 마음을 확실히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 다음 이 본문을 깊이 있게 묵상하고, 안타까워해도 충분하지 않겠는가?

 

오늘 하루 예레미야를 보면서 나 자신을 점검하고, 돌이킬 수 있는 하루가 되기를 소망한다. 샬롬!

 

* 오늘(7월 24일)부터 1~2주 정도 육지에 일을 보러 나갑니다. 큐티를 지속적으로 올릴 상황과 여건이 안되어 당분간 개인묵상으로 전환합니다. 양해부탁드립니다.

 

늦어도 8월 7일 월요일부터는 다시 큐티를 올리고, 페북과 인스타에 게시하도록 하겠습니다. 육지에 오가는 일정 위에도 함께 기도부탁드립니다. 갓블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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