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오늘 큐티(Q.T)

(민 28:16~29:11) 온전한 예배자(매일성경큐티, 민수기 28:16~29:11)

by 무지개소년 2023. 5. 15.

 

온전한 예배자(매일성경큐티 230515 월)

 

찬양: 아무도 예배하지 않는
성경: 민수기 28:16~29:11
 

16 첫째 달 열넷째 날은 여호와를 위하여 지킬 유월절이며
17 또 그 달 열다섯째 날부터는 명절이니 이레 동안 무교병을 먹을 것이며
18 그 첫날에는 성회로 모일 것이요 아무 일도 하지 말 것이며
19 수송아지 두 마리와 숫양 한 마리와 일 년 된 숫양 일곱 마리를 다 흠 없는 것으로 여호와께 화제를 드려 번제가 되게 할 것이며
20 그 소제로는 고운 가루에 기름을 섞어서 쓰되 수송아지 한 마리에는 십분의 삼이요 숫양 한 마리에는 십분의 이를 드리고
21 어린 양 일곱에는 어린 양 한 마리마다 십분의 일을 드릴 것이며
22 또 너희를 속죄하기 위하여 숫염소 한 마리로 속죄제를 드리되
23 아침의 번제 곧 상번제 외에 그것들을 드릴 것이니라
24 너희는 이 순서대로 이레 동안 매일 여호와께 향기로운 화제의 음식을 드리되 상번제와 그 전제 외에 드릴 것이며 
25 일곱째 날에는 성회로 모일 것이요 아무 일도 하지 말 것이니라
26 칠칠절 처음 익은 열매를 드리는 날에 너희가 여호와께 새 소제를 드릴 때에도 성회로 모일 것이요 아무 일도 하지 말 것이며
27 수송아지 두 마리와 숫양 한 마리와 일 년 된 숫양 일곱 마리로 여호와께 향기로운 번제를 드릴 것이며
28 그 소제로는 고운 가루에 기름을 섞어서 쓰되 수송아지 한 마리마다 십분의 삼이요 숫양 한 마리에는 십분의 이요
29 어린 양 일곱 마리에는 어린 양 한 마리마다 십분의 일을 드릴 것이며
30 또 너희를 속죄하기 위하여 숫염소 한 마리를 드리되
31 너희는 다 흠 없는 것으로 상번제와 그 소제와 전제 외에 그것들을 드릴 것이니라
29:1 일곱째 달에 이르러는 그 달 초하루에 성회로 모이고 아무 노동도 하지 말라 이는 너희가 나팔을 불 날이니라
2 너희는 수송아지 한 마리와 숫양 한 마리와 일 년 되고 흠 없는 숫양 일곱 마리를 여호와께 향기로운 번제로 드릴 것이며
3 그 소제로는 고운 가루에 기름을 섞어서 쓰되 수송아지에는 십분의 삼이요 숫양에는 십분의 이요
4 어린 양 일곱 마리에는 어린 양 한 마리마다 십분의 일을 드릴 것이며
5 또 너희를 속죄하기 위하여 숫염소 한 마리로 속죄제를 드리되
6 그 달의 번제와 그 소제와 상번제와 그 소제와 그 전제 외에 그 규례를 따라 향기로운 냄새로 화제를 여호와께 드릴 것이니라
7 일곱째 달 열흘 날에는 너희가 성회로 모일 것이요 너희의 심령을 괴롭게 하며 아무 일도 하지 말 것이니라
8 너희는 수송아지 한 마리와 숫양 한 마리와 일 년 된 숫양 일곱 마리를 다 흠 없는 것으로 여호와께 향기로운 번제를 드릴 것이며
9 그 소제로는 고운 가루에 기름을 섞어서 쓰되 수송아지 한 마리에는 십분의 삼이요 숫양 한 마리에는 십분의 이요
10 어린 양 일곱 마리에는 어린 양 한 마리마다 십분의 일을 드릴 것이며
11 속죄제와 상번제와 그 소제와 그 전제 외에 숫염소 한 마리를 속죄제로 드릴 것이니라

 

예배자

 

예배자로 살아가야 하는 이유

오늘 말씀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해마다 지켜야 할 절기와 그 절기를 지킬 때에 하나님께 드려야 할 제물에 관한 말씀이다.

 

사실 이 말씀은 목사, 신학자, 평신도, 어떤 누구에게나 어렵다. 왜 이 말씀이 어려울까?

 

오늘날 우리네 교회에서는 전혀 지켜지지 않는 절기와 제사 방법이기 때문이다. 만약 오늘 우리의 교회들에서도 이 절기와 제사법이 그대로 쓰이고 있었다면, 이 말씀처럼 쉬운 구절도 없으리라. 매년 우리가 하는 절기를 글로 표현한 구절이겠거니 했을 것이다.

 

그런데 결국 오늘날 이 절기들을 우리가 지켜 행하거나 혹은 제물을 성경에 적힌 그대로 드리고 있지 않기 때문에 굉장히 괴리감이 느껴진다. 그렇다면 오늘 말씀은 과거의 관습이나 이스라엘 백성들의 전통으로 묻어두고, 점프해야 할까?

 

그렇지 않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왜 이렇게 절기를 지키라고 말씀하셨는지, 왜 이렇게 제물을 드리라고 했는지 그 뜻과 의도를 이해하는 것에 있다.

 

무엇을 우리 신앙과 삶에 적용할 수 있을까?

 

세 가지를 생각해보았다.

 

첫째, 기억하라는 것이다. 무엇을 기억해야 할까? 구원의 감격과 기쁨을 항상 기억하라는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출애굽은 대변혁적 사건이다. 그들은 이전에 애굽의 노예로 400년간 종살이를 하던 자들이었다. 하지만, 그들의 부르짖음을 들으시고 하나님은 그들을 자유케 해 주셨다. 

 

오늘 우리가 반드시 기억해야 할 것이 있다. 바로 십자가와 부활이다. 예수님의 고귀한 희생이다. 십자가와 부활이 없었다면, 예수님의 그 보배로운 보혈의 피가 없었다면 우리 가운데 죄의 문제에서 자유할 수 있는 자는 아무도 없다. 언제나 사단에게 종노릇 하며, 세상에 끌려 하루하루 고통 중에, 절망 중에 살아갈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 주 예수그리스도의 피로 우리는 구원을 얻었다. 이것을 항상 잊어서는 안 된다. 항상 기념하고, 기억해야 한다. 하지만 우리는 우매하여서 어떤 기념일이나 의식을 치르지 않고는 계속 잊어버린다는 것이다.

 

그것이 오늘 성경에서도 제물과 절기를 복잡하면서도 어렵게 지키게 한 하나님의 의도이다.

 

오늘날 우리에게도 기념하고 기억해야 하는 절기와 예식들이 있다. 성만찬을 행할 때마다, 월삭의 예배를 드릴 때마다, 사순절을 보낼 때마다, 성탄절을 보낼 때마다 우리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유월절과 무교절을 엄숙하고도 정결하게 지키고 행했던 것처럼 예수님으로 인한 그 구원의 기쁨과 감격을 오늘날 기억하고, 기념해야 할 것이다. 의례적인 예식과 절기가 아닌 기억과 기념의 시간이 되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두 번째로,무엇이 내 삶에서 가장 중요한지 그 우선순위를 점검하라는 것이다.

 

오늘 말씀에 보면, '아무 일도' 또는 '아무 노동도 하지 말라'는 구절이 총 5번 등장한다. 즉 절기 때에는 그 절기를 드리는 것에 온전히 전념하라는 것이다.

 

온전히 절기에 전념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모든 것을 포기해야 한다. 절기를 지키면서 세상 일을 돌볼 수는 없다. 절기를 지키면서 가정을 돌보거나, 어떤 다른 일을 계획할 수 없다.

 

온전히 절기를 지키면서 무엇을 깨달아야 할까?

 

우리가 매주 지키는 주일, 안식일에서 그 의미를 찾을 수 있다. 안식일은 주를 예배하는 날의 의미만 있는 것은 아니다. 주 안에서 그날 충분히 안식하고, 주님이 주시는 힘과 능력을 공급받아야만 남은 일주일의 삶이 평안하고, 복되다는 것이다.

 

즉 주님 안에서 안식하는 것이 그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을 온전히 주의 날을 지킬 때에 깨달으라는 것이다.

 

사람이 무엇으로 살 수 있을까? 주님이 주시는 힘과 능력에 힘입지 않고는 살 수 없다. 그러므로 주를 예배하는 날을 위해 우리는 그 어떤 희생과 손해도 감수할 수 있는 의지와 결단이 필요하다. 왜냐하면 주를 의지하는 것이, 주 안에서 쉼을 얻는 것이 우리 삶에 가장 중요한 우선순위이기 때문이다. 

 

세 번째로, 제물을 드리는 것, 소유를 분명히 하라는 것이다.

 

한눈에 봐도 제물을 드리는 양이나 내용이 복잡하고, 부담스럽다. 그럼에도 주님께서 그러한 제물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드리라고 하신 이유가 무엇일까? 

 

대가를 원하신 것일까? 아니다. 그것은 대가가 아니라, 모든 소유가 누구의 것인지 분명히 하라는 것이다. 

 

간혹 내게 주어진 것을 가지고, 내 것처럼 살아갈 때가 참 많다. 그래서 더 갖으려고 발버둥 치고, 어떤 때에는 그것에 정신이 팔려 주님을 생각조차 하지 않을 때도 있다.

 

돈 버는 것만큼 즐거운 일도 없는 것처럼 여겨질 때가 있다는 것이다.

 

그러다 주일날 주님께 예물을 드릴 때, 정신이 바짝 차려진다. "그래, 모든 것이 다 주님의 것이지, 내게 잠깐 맡겨주신 것일 뿐이지, 나에게 주어진 모든 것, 주님을 위해 사용되게 하소서" 기도한다.

 

이스라엘 백성들도 그러하지 않았을까? 나에게 있는 가장 귀한 것을 주님께 드리면서, 우리의 모든 것을 공급하시고, 인도하시는 분이 누구신지 다시 한번 깨닫는 은혜가 그들 중에도 있었을 것이다.

 

모든 것을 주시는 그분께, 아낌없이 가장 귀한 것을 드릴 수 있는 은혜, 나의 소유가 누구의 것인지 분명히 할 수 있는 은혜가 우리가 드리는 예배와 예물 가운데 있기를 소망한다.

 

오늘 말씀의 결론은 간단하다. 오늘 우리의 예배를 주 앞에서 온전히 드리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 예배가 우리를 이 땅에서 가장 복되게 하는 이유이자 전부이기 때문이다. 오늘도 예배자로 승리하는 은혜가 있기를 소망한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