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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큐티(Q.T)

(마태복음 21:12~22) 성전의 경계에 서서 (매일성경큐티, 마21)

by 무지개소년 2023. 3. 15.

성전의 경계에 서서 (매일성경큐티 230315)

 
찬양: 오늘 이곳에 계신 성령님 / 찬 366장(어두운 내 눈 밝히사)
성경: 마 21:12~22
 

쉬운성경 version.

12 예수님께서 성전에 들어가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성전에서 사고파는 사람들을 모두 내쫓으시며, 돈 바꾸어 주는 사람들의 책상과 비둘기 파는 사람들의 의자를 둘러엎으셨습니다.
13 그리고 사람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내 집은 기도하는 집이라 불릴 것이다'라고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데, 너희는 오히려 '강도들의 소굴'로 바꾸어 버렸다."
14 성전에서 보지 못하는 사람들과 다리를 저는 사람들이 예수님께 오자,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고쳐 주셨습니다.
15 대제사장들과 율법학자들이, 예수님께서 하신 여러 가지 놀라운 일들과 "다윗의 자손에게 호산나!"라고 외치는 아이들을 보았습니다. 그들은 매우 화가 났습니다.
16 그래서 예수님께 말했습니다. "이 어린이들이 말하는 것이 들립니까?" 예수님께서 대답하셨습니다. "그렇다. 너희는 성경에서 읽지 못하였느냐? '어린이와 젖먹이들의 입으로 찬양을 준비하셨다.'"
17 예수님께서 그 곳을 떠나 베다니라는 마을로 가셔서, 거기서 밤을 보내셨습니다.
18 아침이 되어,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으로 돌아오실 때, 몹시 시장하셨습니다.
19 마침 길 옆에 있는 무화과나무 한 그루를 보시고, 나무 곁으로 다가가셨습니다. 그러나 그 나무에는 잎사귀만 있을 뿐 열매는 보이지 않았습니다. 예수님께서 그 나무를 향해 말씀하셨습니다. "다시는 네가 열매를 맺지 못할 것이다!" 그러자 즉시 나무가 말라 버렸습니다.
20 이것을 본 제자들이 놀라서 물었습니다. "어떻게 무화과나무가 그렇게 빨리 말라 버렸습니까?"
21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대답하셨습니다. "내가 너희에게 진정으로 말한다. 너희가 만일 의심하지 않고 믿기만 한다면, 내가 이 나무에게 한 것을 너희도 할 수 있다. 그뿐 아니라 이 산더러 '산아, 들려서 바다에 떨어져라' 하고 말하면, 이것 역시 그대로 될 것이다.
22 너희가 믿고 기도로 구하는 것은 모두 받을 것이다."

 

성전정화

 

1. 성전의 경계에 선 사람들.

오늘 예수님이 성전에서 내쫓으신 이들은 누구인가? 그들은 잘못된 방법으로 폭리를 취하던 종교지도자들과 성도들이었다. 왜 예수님은 그들을 내쫓으셨는가? 성전에서 하지 말아야 할 짓으로 '강도의 소굴'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성전은 무엇을 하는 곳인가? '내 집은 기도하는 집'이라고 말씀하신다. 성전은 기도를 하는 곳이다.
 
그런데 이상하다. 성전에서 내쫓으신 이들은 기도가 필요하지 않은 사람들일까? 아니다. 그들도 기도가 필요한 사람들이었다. 그들에게도 문제가 있었고, 세상살이에 대한 두려움이 존재했다. 그래서 그들 또한 성전에서 기도를 해야 하기에 성전 안에 남아있었던 것이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신앙은 있었지만, 기도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들은 기도의 방법과 기도의 의무는 알았지만, 기도의 능력을 불신했다. 그래서 무화과나무 이야기를 예수님께서 하신 것이다.
 
그럴듯해 보이지만, 열매가 없는 것이다. 그런 무화나 나무는 결국 금세 말라 버려지게 되는 것이다.
 
오늘 교회에 있는 성도들을 향한 주님의 경고처럼 읽혔다. 우린 모두 주님이 절실하게 필요하다고 말한다. 주님이 없이는 단 하루도 살 수 없다고. 나의 모든 문제와 형편과 상황을 아시는 주님께서 인도해주시지 않으면 안 된다고. 그래서 교회 안에 있었다.
 
그런데 교회에 와서 우리가 기도를 할까? 한다. 아주 짧고 굵게 한다. 그런데 그 모든 기도의 중심을 우리는 곰곰이 되짚어 봐야 한다. 대부분의 기도가 어떠한가? 나와 우리 가족만을 위한 폭리를 취하려고 한다. 내가 원하는 때에 내가 원하는 방법의 기묘한 기도.
 
기도를 조금 한 뒤도 마찬가지다. 대부분의 종교활동은 기도가 아니다. 즐거운 파티를 연다. 부흥성회, 성경공부, 제자훈련, 셀이나 목장 혹은 구역이나 속모임. 대부분 친교와 환영, 웃음과 교제가 있는 시간이다. 잘못된 것은 아니리라.
 
교회의 모양이 그럴듯해 보인다. 신앙적인 것 같기도 하다. 그러나 어느새 교회에는 정작 하나님 나라의 완성을 위한 기도와 간구가 점점 씨가 말라가고 있다.
 
곧 예수님께서 기도와 폭리, 기도와 즐거움의 경계선에 있는 자들을 도적같이 심판하실 날이 멀지 않았음을 우리는 무화과나무의 비유에서 크게 깨달아야 한다.
 

2. 성전에 들어오지 못하는 자들.

성전 안에서는 여전히 예수님의 심판을 받지 않은 경계선에 선 사람들이 즐겁게 성전 문화 유희를 즐기고 있다. 그들에게 저 성전 바깥세상은 그저 자신들이 잘 살아갈 곳, 그 이상의 개념이 있을까?
 
성전 바깥의 풍경을 예수님은 기어이 꼬집어 내신다. 맹인과 다리 저는 자들, 그 밖의 장애를 지닌 자들은 성전에 들어올 수 없었다. 왜냐하면 죄가 많다는 이유, 부정하다는 이유에서였다. 말도 안 되는 이야기이다.
 
누가 누구를 죄 많다고 하는가? 예수님은 기꺼이 그들을 고쳐주시고, 성전으로 초대하신다. 그들을 왜 고쳐주시고, 초대하시는가? 동정심 많으신 분이셨기 때문인가? 아니다.
 
그들은 이전부터 예수님에 대한 소문을 들었다. 그들이 그 소문을 듣고, 라합처럼 마음이 녹았으리라. 그리고 예수님이시라면 그들을 고쳐주시리라 믿었다. 그런 절실한 믿음을 갖고 있는 그들 앞에 예수님이 나타나셨다.
 
그들은 성전 근처에 얼쩡거릴 수 조차 없음을 알면서도 너무 큰 절실함으로 용기를 내어 성전을 찾아왔다. 그것마저도 너무 큰 결심이었으리라.
 
14절 말씀, "성전에서 보지 못하는 사람들과 다리를 저는 사람들이 예수님께 오자,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고쳐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을 반갑게 맞이해 주시고, 치료해 주시고 성전으로 인도하셨다.
 
오늘 교회와 성도는 이런 마음이 있을까? 세상의 저 죄 많은 이들이 교회 안으로 들어올 틈이 있을까? 그럴듯하게 차려입고, 정상적인 곳에 살아야 반기지 않을까? 허름한 행색과 어눌한 말투가 과연 통할 수 있을까?
 
우리들도 죄가 많으면서, 예수를 알지 못하는 이들의 죄를 보고, 연신 날 선 비판과 경멸을 쏟아낸다. 그러나 그들에게 누구도 찾아가 안아주고, 교회로 초대할 이는 거의 없다. 전무하다는 것이 안타깝게도 사실이다.
 
그들도 안다. 그래서 찾아오지 않는 것이다. 교회에 가더라도 경계선에 선 사람들이 즐기는 교회 문화에 나는 적응할 수 없고, 적응할 이유도 찾지 못함이 가장 큰 이유다. 그리고 그들(성도들)을 봐도 그저 성전의 경계선에 선 자들이기 때문에 구원받은 자로 믿고 싶지도 않으리라.
 
이전에 전도했던 분의 말이 떠오른다. "예수님이 내 삶에 필요한 이유도 알고, 그래서 예수님을 정말 믿고 기도해보고 싶은 마음은 드는데, 교회에 가면 너무 복잡해요. 같이 어울려야 하는 것도 있고, 해야 할 공부도 많은 것 같고, 때가 되면 조용히 기도나 해볼게요. 기도해 주세요"
 

 3. 교회 밖으로 나오다.

내가 기성 교회를 벗어나 세상에 서야겠다고 결심했던 이유는 간단하다. 이미 구원받았음을 확신하는 이들과 더 이상 교회 안에서 북 치고 장구치고 옥신각신하며, 때로는 파티로, 때로는 얼굴 붉히는 싸움을 할 필요는 없지 않겠는가?
 
어차피 이미 예수님에 대해 이들은 너무나 잘 알고, 어떻게 해야 자신들의 삶에 예수님을 초대해야 할 지도 충분히 알고 있다. 그런데 그것이 결정적인 이유는 아니었다.
 
더 이상 이 경계선 상에 서 있는 사람들이 경계선 밖에 있는 이들을 초대하려는 마음이 없다는 것을 느낀 것이 가장 큰 이유였다. 수요예배, 금요예배, 새벽예배, 누구를 위한 예배일까? 그나마 남았던 열린 창구, 주일예배도 점점 더 그들만의 리그가 되어버린 지 오래다.
 
경계선에 있는 자들이 어떻게든 더 잘 살아보려고 하는 몸부림일까? 저 차창 밖 길거리의 사람들이 눈에 들어왔다. 차라리 이 시간에 저들을 위한 도전을 시작하는 게 나아 보였다. 최소한 양심은 쓰리지 않으리라.
 
쉽지 않다. 녹록지 않다. 월급을 받으며, 사무실에서 커피 한잔, 경건한 음악을 들으며, 또 뻔한 이들과 또 뻔한 설교를 나누던 때가 그립기도 하다. 세련되어 보이는 디자인을 만지작 거리면서 특새 포스터와 책자를 이렇게 만들어 볼까? 아이들에게 이것을 선물해 보면 더 좋을 것 같은데, 고민하던 순간이 귀했던 것 같기도 하다.
 
그러나 나와보니, 예수님의 숨결이 이제야 제대로 느껴진다. 우물 안도 그런 우물 안이 없으리라. 너무도 다른 세상. 너무도 다른 절실함을 갖고 사람들은 오늘도 살아간다. 
 
하나님의 나라는 어떤 사람들이 가게 될까? 예수님은 정확하게 그 나라에 들어갈 사람들을 말씀하신다. 
 
"내가 너희에게 진정으로 말한다. 너희가 만일 의심하지 않고 믿기만 한다면, 내가 이 나무에게 한 것을 너희도 할 수 있다. 그뿐 아니라 이 산더러 '산아, 들려서 바다에 떨어져라' 하고 말하면, 이것 역시 그대로 될 것이다. 너희가 믿고 기도로 구하는 것은 모두 받을 것이다."
 
오늘 믿고 있는가? 경계선에 서있든, 경계선 밖에 서있든, 아니면 확실하게 경계선 안에서 안전하게 세이프되어 살아가든, 중요한 것은 예수님에 대한 굳건한 믿음이다. 그리고 그날이 오면 보일 것은 우리의 믿음뿐이리라.
 
한 영혼이라도 그분의 말씀을 믿어, 그분을 영접하고, 그분에게 자신의 삶을 맡길 수 있게 오늘도 부족한 나와 우리 가족을 채찍질하고 싶다. 그러나 쉽지 않다. 삶이 쉽지 않고, 신학과 신앙이 쉽지 않고, 믿음으로 도전하는 것도 쉽지 않다. 
 
그러나 가장 어려운 것은 주님의 뜻에 귀 기울여, 주님이 말씀하시는 것에 민감히 반응해야 할 때를 잘 모르는 것이 가장 두렵고, 무서운 일이다.
 
주님, 우리 가족의 귀를 열어주소서. 우리 가족의 눈을 열어주소서. 우리 가족이 주님께 더 기도할 수 있는 가족, 어서 속히 주님께 쓰임 받을 수 있는 준비가 되는 가족이 되게 해 주세요.  
 
 
오늘도 교회와 성도, 삶의 틈바구니, 그 불확실한 믿음의 경계선을 살아가는 성도들에게 함께 큐티를 나눈다. "내 집은 기도하는 집이라 일컬음을 받으리라", 아니 더 정확히는 "내 집은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니라"
 
함께 기도합시다. 주님의 교회에 모든 이들이 초대되어, 믿음 없는 나도, 믿음 없는 너도, 우리 모두가 함께 주님께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기도할 수 있는 온전한 교회가 회복되기를 함께 기도합시다. 여호와이레! 준비된 영혼이 오늘도 여러분을 기다리고 있을 것입니다. 갓블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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