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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큐티(Q.T)

(마태복음 22:23~33) 결국 간절함이 믿음의 방법이다. (매일성경큐티, 마22)

by 무지개소년 2023. 3. 20.

결국 간절함이 믿음의 방법이다. (매일성경큐티 230320)

 
찬양: 우물가의 여인처럼
성경: 마 22:23~33
 

쉬운성경 version.

23 같은 날, 부활이 없다고 말하는 사두개파 사람 몇 명이 예수님께 나아와 질문했습니다.
24 "선생님, 모세는 '남자가 아들이 없이 죽으면, 그 동생이 형수와 결혼해서 형을 대신하여 아들을 낳아 주어야 한다'라고 했습니다.
25 우리 가운데 일곱 형제가 있었습니다. 첫째가 결혼했지만 아들을 낳지 못하고 죽어, 아내를 자기 동생에게 남겨 놓았습니다.
26 그런데 둘째도, 셋째도, 그리고 일곱째까지 첫째와 똑같이 되었습니다.
27 결국엔 그 여자도 죽었습니다.
28 일곱 형제 모두가 이 여자를 아내로 맞아들였으니, 부활 때에 이 여자는 이 일곱 형제 중에 누구의 아내가 되겠습니까?"
29 예수님께서 이들에게 대답하셨습니다. "너희는 성경도 알지 못하고, 하나님의 능력도 알지 못하므로, 잘못 생각하고 있다.
30 부활할 때에는 누구도 장가가거나, 시집 가지 않으며, 오직 사람들이 하늘에 있는 천사처럼 될 것이다.
31 죽은 자의 부활에 대해 말하자면,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 것을 읽어 보지 못했느냐?
32 '나는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다.' 하나님은 살아 있는 사람들의 하나님이시지, 죽은 사람들의 하나님이 아니시다."
33 사람들이 이 말씀을 듣고, 예수님의 가르침에 놀랐습니다.

우물가의여인처럼

 

1. 믿지 못하기 때문이다.

어제는 제주중앙교회에 가서 유기성 목사님의 설교를 듣고 왔습니다. 항상 듣는 설교지만, 역시 유튜브 보다 현장에서 듣는 것이 더 실감(?) 나고 은혜가 되는 것 같습니다.
 
어제 집회 가운데, 가장 기억나는 말씀은 왜 예수님께서 두려워하지 말라, 놀라지 말라고 하셨는데, 우리가 여전히 두려워하고, 또 남을 부러워하면서 사는가?
 
'믿지 못해서'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내 안에 계신 것을 믿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하시는 그 말씀이 내게 능력이 되지 못하고, 여전히 예수님이 계시지 않은 것처럼 산다는 것입니다.
 
맞습니다. 저희 아들 다니엘을 볼 때에 그 말이 백 퍼센트 이해가 됩니다. 다니엘은 결코 밥 먹을 걱정을 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오늘은 이 음식, 내일은 저 음식을 해달라고 당당히 요청합니다. 왜냐하면 제가 함께 있다는 것을 믿기 때문입니다.
 
믿음은 두려움을 이기는 능력이 됩니다. 예수님이 내 안에 계신다는 믿음을 갖고 있으면 그 어떤 것도 부러울 것도, 염려가 생겨 생각이 앞설 필요도 없게 됩니다.

왜냐하면 내 안에 계신 주님께서 나를 이끌어 주실 것과 내 필요를 때에 따라 채워주실 것이란 능력이 되기 때문입니다.
 
오늘 말씀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두개인들은 예수님께 부활이 없다고 말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들은 하나님을 제대로 믿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29절. 예수님께서 이들에게 대답하셨습니다. "너희는 성경도 알지 못하고, 하나님의 능력도 알지 못하므로, 잘못 생각하고 있다.
 
왜 우리는 예수님의 말씀이 정말 사실일까, 진짜일까 의심합니까?
 
결국 예수님을 믿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2. 왜 믿지 못하는가?.

그렇다면 왜 우리는 예수님을 제대로 믿지 못합니까?
 
오늘 사두개인들의 사고방식에서 그 해답을 찾을 수 있습니다.
 
28절. "일곱 형제 모두가 이 여자를 아내로 맞아들였으니, 부활 때에 이 여자는 이 일곱 형제 중에 누구의 아내가 되겠습니까?"
 
왜 우리가 믿지 못합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계속해서 내 기준으로 해석하기 때문입니다. 즉, 세상을 보는 눈으로 말씀을 이해하려고 애쓰기 때문입니다. 
 
이것에 대해서 제가 가장 쉽게 이해했던 성경본문이 있습니다. 요한복음 7장 8절의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내 때가 아직 이르지 않았다"
 
제자들과 예수님의 친형제들은 인기가 급격하게 떨어진 예수님을 보고 걱정합니다. 그래서 초막절에 예루살렘 성전으로 올라가서 이전과 같이 '기적'과 '이사'를 행할 것을 요청합니다. 그러면 다시 이 인기와 명성이 회복되리라. 이때야말로 기회입니다. 그들은 말합니다. 
 
그러나 그때, 예수님은 "내 때가 아직 이르지 않았다"고 말씀하십니다. 무슨 말입니까? 하나님의 시간표와 세상의 시간표는 다르다는 것입니다. 일이 이루어지는 시간의 개념이 전혀 다르다는 것입니다.
 
30절. "부활할 때에는 누구도 장가가거나, 시집 가지 않으며, 오직 사람들이 하늘에 있는 천사처럼 될 것이다."
 
예수님은 사두개인들에게 말씀하는 것입니다. 그런 세상적인 관점으로는 너희들이 갖고 있는 기준으로 말씀을 보면, 결코 하나님을 믿을 수도, 말씀을 믿을 수도 없다는 것입니다.
 

3. 결국 간절함이다.

그렇다면 왜 우리는 계속 하나님의 말씀을 세상적인 기준, 내 기준으로 납득하려고 그렇게도 애씁니까?
 
말씀대로 살면 우리의 것을 포기하거나 손해봐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말씀대로 살면, 내가 좋아하는 이것도 할 수 없고, 내 시간도 맘대로 즐길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오히려 그 시간을 포기하고, 교회로 나가 세상으로 나가 헌신과 봉사를 하다가 내 인생이 종칠 수도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말씀을 들었지만, 그 말씀이 정말 그러한가 살아내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상고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오늘 사두개파 사람들이 그러했습니다. 결국 그들이 말씀을 말씀 그대로 보지 못하고, 믿지 못하고, 자신들의 기준, 세상적인 상황적 판단으로 해석한 이유는 간단합니다.
 
그들이 갖고 있던 기득권과 그들이 지금 누리는 모든 것을 놓치지 않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말씀을 오로지 그들의 가치관과 세계관으로만 이해하려고 애씁니다.  그러니 하나님의 말씀이 있는 그대로 믿어지지 못합니다.
 
그런데 여러분, 어떠합니까? 말씀이 우리에게 정말 그런 것입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말씀은 우리를 구속하는 도구가 아니라 능력입니다. 말씀은 우리를 옭아매는 헌신교과서가 아니라 권세입니다.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의 그 자체, 그분의 실존입니다. 
 
말씀은 결코 우리를 손해보거나 구속하는 사슬이 되지 않습니다. 그것은 사단의 궤계이고, 술수일 뿐입니다.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하신 말씀의 의미를 상고해 보시기 바랍니다. 
 
주의 말씀은 우리를 언제나 옳은 길로 인도하고, 선하게 이끌어 줍니다. 그러니 말씀을 더 이상 우리의 사고방식, 우리의 가치관에서 해석하는 일을 그만둬야 합니다. 그때에 말씀이 말씀 그대로 우리에게 보이게 됩니다.
 
33절 말씀. "사람들이 이 말씀을 듣고, 예수님의 가르침에 놀랐습니다."
 
말씀이 그들에게 제대로 보여지고, 있는 그대로 느껴지게 되자 그들은 그 말씀에 놀라게 되었다고 말합니다. 이것이 바로 말씀을 믿을 때에, 우리에게 나타나는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해야 말씀을 제대로 보고, 믿을 수 있게 됩니까?
 
베뢰아에 있는 사람들은 데살로니가에 있는 사람들보다 더 너그러워서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고 이것이 그러한가 하여 날마다 성경을 상고하므로 그 중에 믿는 사람이 많고

 

사도행전 17장 11절의 말씀입니다.
 
'이것이 그러한가 하여', 말씀이 정말 사실인지 그들은 연구해 보았다는 말입니다. 즉, 날마다 성경을 상고했다는 것은 단순히 말씀을 100번, 1000번 읽었다는 것뿐만이 아니라, 삶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살아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살아냈다는 것은 세상의 기준으로 그 말씀이 이해되지 않는다고 하여 그 말씀을 의심하고 행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그 말씀이 하나님이 하신 약속이기 때문에 내 삶에 이뤄질 것을 그대로 믿고 순종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제 가장 중요한 부분입니다.
 
여기서 그들이 그 말씀을 그대로 믿고 순종할 수 있었던 근거가 무엇입니까? 더 너그러워서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고.
 
결국 간절함이 말씀을 받게 합니다.
 
오늘 내 상황이 어렵다면, 나의 손해, 나의 피해, 내가 당할 구속을 생각하면서 하나님께 기도하겠습니까? 우리가 뭐라고 기도합니까?
 
주님, 이 번 한번만 이 병을 고쳐주시면, 제가 평생 주님의 말씀에 헌신하며 살겠습니다. 나의 손해, 나의 피해, 내 시간, 결코 따지지 않습니다. 
 
결국 무엇을 꿈꾸는가? 나는 무엇을 바라보는가? 에 따라 믿음은 결정되는 것입니다.
 
내가 하나님의 나라를 살고자 하는 간절함이 있다면, 그 말씀을 그대로 살아볼 수 있는 근거가 되는 것입니다. 그 말씀이 진짜인가 의심할 필요 없이 살아낼 수 있는 이유가 된다는 것입니다.
 
그때에 그 말씀을 살아보니, 그 말씀이 무엇이 됩니까? 내게 능력이 됩니다. 그 말씀대로 살아보니, 놀라운 하나님의 역사가 내게 나타납니다. 그러니 그 말씀이 내게 완전한 믿음이 됩니다.
 
즉, 내게 하나님의 나라를 살고자 하는 간절함, 우리 가족이 하나님의 나라를 오늘 이 땅에서 살고자 하는 절실한 마음이 있는지가 주님을 믿는, 그래서 주님의 능력을 드러내는 근본이었다는 것입니다.
 
오늘 여러분은 어떤 마음으로 말씀을 대하십니까? 정말 간절함이 있습니까?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고자 하는 간절함이 있습니까?
 
간절함이 있다면, 절실함이 있다면 주님의 말씀은 우리의 믿음이 되어, 우리 안에 나타나는 하나님의 능력이 될 것입니다.
 
오늘도 깊이 이 말씀을 묵상하는 가운데,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기 원하는 주님의 믿음의 백성들이 함께 일어서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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