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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큐티(Q.T)

(민 21:21~35) 내가 지금 걷고 있는 이 길이(매일성경큐티, 민수기 21:21~35)

by 무지개소년 2023. 5. 4.

내가 지금 걷고 있는 이 길이(매일성경큐티 230504)

 

찬양: 오 신실하신 주(하나님 한 번도 나를) 
성경: 민수기 21:21~35

 

21 발람이 아침에 일어나서 자기 나귀에 안장을 지우고 모압 고관들과 함께 가니
22 그가 감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진노하시므로 여호와의 사자가 그를 막으려고 길에 서니라 발람은 자기 나귀를 탔고 그의 두 종은 그와 함께 있더니
23 나귀가 여호와의 사자가 칼을 빼어 손에 들고 길에 선 것을 보고 길에서 벗어나 밭으로 들어간지라 발람이 나귀를 길로 돌이키려고 채찍질하니
24 여호와의 사자는 포도원 사이 좁은 길에 섰고 좌우에는 담이 있더라
25 나귀가 여호와의 사자를 보고 몸을 담에 대고 발람의 발을 그 담에 짓누르매 발람이 다시 채찍질하니
26 여호와의 사자가 더 나아가서 좌우로 피할 데 없는 좁은 곳에 선지라
27 나귀가 여호와의 사자를 보고 발람 밑에 엎드리니 발람이 노하여 자기 지팡이로 나귀를 때리는지라
28 여호와께서 나귀 입을 여시니 발람에게 이르되 내가 당신에게 무엇을 하였기에 나를 이같이 세 번을 때리느냐
29 발람이 나귀에게 말하되 네가 나를 거역하기 때문이니 내 손에 칼이 있었더면 곧 너를 죽였으리라
30 나귀가 발람에게 이르되 나는 당신이 오늘까지 당신의 일생 동안 탄 나귀가 아니냐 내가 언제 당신에게 이같이 하는 버릇이 있었더냐 그가 말하되 없었느니라
31 그 때에 여호와께서 발람의 눈을 밝히시매 여호와의 사자가 손에 칼을 빼들고 길에 선 것을 그가 보고 머리를 숙이고 엎드리니
32 여호와의 사자가 그에게 이르되 너는 어찌하여 네 나귀를 이같이 세 번 때렸느냐 보라 내 앞에서 네 길이 사악하므로 내가 너를 막으려고 나왔더니
33 나귀가 나를 보고 이같이 세 번을 돌이켜 내 앞에서 피하였느니라 나귀가 만일 돌이켜 나를 피하지 아니하였더면 내가 벌써 너를 죽이고 나귀는 살렸으리라
34 발람이 여호와의 사자에게 말하되 내가 범죄하였나이다 당신이 나를 막으려고 길에 서신 줄을 내가 알지 못하였나이다 당신이 이를 기뻐하지 아니하시면 나는 돌아가겠나이다
35 여호와의 사자가 발람에게 이르되 그 사람들과 함께 가라 내가 네게 이르는 말만 말할지니라 발람이 발락의 고관들과 함께 가니라

 

발람과나귀

 

1. 내가 걷고 있는 이 길이 탐욕의 길이라면

발람은 아침 일찍 길을 나섰다. 그런데 그 길이 어떤 길이었을까?

 

22 그가 감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진노하시므로

 

그 길은 하나님이 진노하시는 길이었다.

 

그가 지금 아침부터 열심을 내어 가고 있는 그 길은 하나님이 진노하시는 길이라고 성경은 말한다. 왜 그러한가?

 

32 보라 내 앞에서 네 길이 사악하므로

 

그렇다 그의 길이 하나님이 진노하시는 길이 된 까닭은 그가 지금 가고 있는 그 길이 '사악'하기 때문이다.

 

오늘 우리도 마찬가지다. 누구나 길을 간다. 그런데 우리가 걷고 있는, 우리가 누구보다 열심히 준비해서 가는 그 길이 어떤 길인지 우리는 반드시 점검해봐야 한다.

 

발람처럼 열심을 내어 걷지만, 그 길이 하나님이 진노하시는 길인지, 아니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길인지 우리는 분별할 수 있어야 한다.

 

그렇다면 어떻게 그 길을 분별할 수 있을까?

 

첫째는 '탐욕'을 통해서 알 수 있다. 

 

베드로후서 2:15

그들이 바른 길을 떠나 미혹되어 브올의 아들 발람의 길을 따르는도다 그는 불의의 삯을 사랑하다가

 

오늘 말씀을 인용한 구절이다. 발람의 길은 '바른길'이 아니었다. 왜냐하면 그가 걷는 길의 동기가 불의의 삯을 사랑한 '탐욕'의 길, 오늘 본문에서는 '사악'한 길이었기 때문이다.

 

'탐욕'이 무엇인가? '불의의 삯'을 사랑하는 것이다. 만약 내가 걷는 길의 목표나 목적이 그러하다면 빨리 그 걸음을 멈추어야 한다는 것이다. 

 

야고보서 1:15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

 

왜냐하면 그 길은 하나님이 진노하시는 길이고, 그 길의 끝에는 결국 하나님이 막고 다스리시는 '심판'과 '징계'만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과연 나약한 우리가 잘 가고 있던 '탐욕'의 길에서 뒤돌아설 수 있을까? 이제껏 지켜온 바 거의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

 

28 여호와께서 나귀 입을 여시니 발람에게 이르되 내가 당신에게 무엇을 하였기에 나를 이같이 세 번을 때리느냐

 

이 구절은 정말 너무 웃기지 않은가? 오죽 발람이 못 알아먹으면, 나귀의 입을 여셨겠는가? 사람의 '탐심'과 '탐욕'은 쉽사리 제어될 수 있는 것들이 아니다.

 

내 눈 앞에 있는 그 길을 조금만 더 가면 그 '돈', 그 '자리', 그 '무엇'을 차지할 수 있을 것 같다는 그 유혹이 사람의 눈을 멀게 하기 때문이다.

 

야고보서 1:14

오직 각 사람이 시험을 받는 것은 자기 욕심에 끌려 미혹됨이니

 

하지만 멈추는 사람도 종종 봤다. 무엇으로 멈출 수 있었을까?

 

하나님의 말씀이 그의 삶에 주어질 때, 그가 멈추지 못할 것 같은 욕심에서 멈추고, 다시 삶의 목표를 재설정하는 것을 보기도 한다(단, 아주 가끔 일어나는 일이다).

 

오늘 이 말씀이 나와 여러분의 삶에도 주어졌다. 내가 지금 걷고 있는 나의 길을 분별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 것이다.

 

만약 오늘 이 말씀을 묵상하는 가운데, 내가 지금 열심히 달려가고 있던 그 길이 나의 '탐심'과 '탐욕'을 위한 '사악'의 길이라고 생각된다면, 즉시 그 길을 멈추고, 다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길로 재설정할 수 있는 은혜가 있기를 소망한다.

 

정말로....

 

 

2. 내가 걷고 있는 이 길이 멈춰진 길이라면

 

우리 삶에 말씀이 주어졌을 때, 나의 '탐심과 탐욕'을 즉시로 깨닫게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것보다 좋은 방법은 없다.

 

그런데 앞에 단서(단, 아주 가끔 일어나는 일이다)를 단 것처럼 그런 경우는 정말... 왜 그런지 우리가 더 잘 알지 않던가?

 

야고보서 1:14절의 말씀이 정말 진리다. 미혹되어서 눈이 가려지면 말씀이 전혀 들리지 않는다. 말씀은 말씀일 뿐이고, 내 삶에는 오로지 목표의 달콤함만 보일 뿐이다.

 

그렇다면 그럴 때는 어떻게 길을 다시 분별할 수 있을까?  

 

'멈춤'을 묵상할 수 있어야 한다. 내가 가고 있는 길이 하나님이 '진노'하시는 길인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길인지 분별할 수 있는 두 번째 방법은 '멈춤'을 묵상하는 것이다.

 

30 나귀가 발람에게 이르되 나는 당신이 오늘까지 당신의 일생 동안 탄 나귀가 아니냐 내가 언제 당신에게 이같이 하는 버릇이 있었더냐 그가 말하되 없었느니라

 

'내가 언제 당신에게 이 같이 하는 버릇이 있었더냐'

 

그런 경우가 없었다는 것이다.

 

가끔 뜻하지 않게 내가 가는 길이 막히는 경우들이 있다. 아무리 애를 써도 안풀리는 경우가 있다. 그럴 때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

 

분별해야 한다. 말씀이 주어졌을 때는 너무 미혹되어 깨닫지 못했지만, 계속해서 내가 가는 길이 멈춰진다면 그때는 이상함을 감지해서라도 정신 차려야 한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즉시 멈춰서서 하나님의 뜻을 물어야 한다.

 

이 멈춤이 잠시 길의 진행이 더디어서 멈춘 것인지, 아니면 하나님이 보시기에 이 길이 내가 가서는 안 되는 길이기 때문에 멈추신 것인지 분별할 수 있는 시간을 우리는 가져야 한다.

 

그런데 보통 우리는 어떠한가? 잘 가던 길이 멈춰질 때에, 우리는 짜증을 낸다. 그리고 열심히 우회로를 찾는다. 어떻게 하면 다시 나의 저 탐욕스러운 목표를 위해 내가 달려갈 수 있을지 너무나 애를 쓴다.

 

오늘 발람과 같지 않던가? 그 길이 세번이나 멈춰졌는대도 깨닫지 못한다. 계속해서 세 번이나 나귀를 채찍질하면서 우회로를 찾는다. 너무 열심히 찾는다. 그 길이 열리겠는가?

 

ㅎㅎ... 정말 찾아지는 경우가 있다. 한번 채찍하니 나귀가 어쩔 수 없이 간다. 그러다 막힌다. 다시 채찍을 들어 우회로를 연다. 두 번째 우회로가 찾아진다.

 

하지만 그 길은 언젠가 최종적으로 막히는 날이 온다. 왜냐하면 그 길은 하나님 앞에서 '사악'하기 때문이다.

 

33 나귀가 나를 보고 이같이 세 번을 돌이켜 내 앞에서 피하였느니라 나귀가 만일 돌이켜 나를 피하지 아니하였더면 내가 벌써 너를 죽이고 나귀는 살렸으리라

 

잘 가던 길에서 낙망할 때가 있다. 주변 사람들의 시기와 모함으로 나의 꿈이 좌초될 수 있다. 열심히 공부하고, 기도했음에도 합격이 안되고, 취업이 안되고, 결혼이 안될 수도 있다. 승진이 안되고, 될 일도 허탈하게 안 되는 경우가 있다.

 

그때 어떻게 하겠는가? 물론 우리는 연약한 사람이기에 잠깐은 주저 앉아 울 수 있다. 슬퍼하고, 괴로워할 수 있다. 이유를 찾지 못해 어리둥절할 수도 있다.

 

그러나 오늘 말씀을 교훈삼는다면, 그 길에서 더 이상 주저앉아 슬피 울며 불평하고, 원망하고 낙심, 절망하지 않기를 바란다.

 

그리고 잘잘못을 찾고, 우회로를 찾기에 전전긍긍할 것이 아니라, 그 자리에서 무릎 꿇고 주님께 기도 할 수 있는 지혜가 우리에게 있기를 소망한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다. 우리의 최고의 무기는 '기도'임을 잊지 말자.

 

참 비가 많이 오는 아침이다. 이 비로 인해 멈춤을 일의 진행이 멈춘 분도 있으리라.

 

오늘 말씀을 함께 묵상하는 가운데 내가 지금 걷고 있는 길을 다시 한번 더 깊이 묵상할 수 있는 은혜가 있기를 소망한다.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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