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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큐티(Q.T)

(민 23:13~26) 내 생각과 다르다 할지라도(매일성경큐티, 민수기 23:13~26)

by 무지개소년 2023. 5. 6.

내 생각과 다르다 할지라도(매일성경큐티 230506)

 

찬양: 여호와 나의 목자
성경: 민수기 23:13~26

 

13 발락이 말하되 나와 함께 그들을 달리 볼 곳으로 가자 거기서는 그들을 다 보지 못하고 그들의 끝만 보리니 거기서 나를 위하여 그들을 저주하라 하고
14 소빔 들로 인도하여 비스가 꼭대기에 이르러 일곱 제단을 쌓고 각 제단에 수송아지와 숫양을 드리니
15 발람이 발락에게 이르되 내가 저기서 여호와를 만나뵐 동안에 여기 당신의 번제물 곁에 서소서 하니라
16 여호와께서 발람에게 임하사 그의 입에 말씀을 주시며 이르시되 발락에게로 돌아가서 이렇게 말할지니라
17 발람이 가서 본즉 발락이 번제물 곁에 섰고 모압 고관들이 함께 있더라 발락이 발람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무슨 말씀을 하시더냐
18 발람이 예언하여 이르기를 발락이여 일어나 들을지어다 십볼의 아들이여 내게 자세히 들으라
19 하나님은 사람이 아니시니 거짓말을 하지 않으시고 인생이 아니시니 후회가 없으시도다 어찌 그 말씀하신 바를 행하지 않으시며 하신 말씀을 실행하지 않으시랴
20 내가 축복할 것을 받았으니 그가 주신 복을 내가 돌이키지 않으리라
21 야곱의 허물을 보지 아니하시며 이스라엘의 반역을 보지 아니하시는도다 여호와 그들의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계시니 왕을 부르는 소리가 그 중에 있도다
22 하나님이 그들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셨으니 그의 힘이 들소와 같도다
23 야곱을 해할 점술이 없고 이스라엘을 해할 복술이 없도다 이 때에 야곱과 이스라엘에 대하여 논할진대 하나님께서 행하신 일이 어찌 그리 크냐 하리로다
24 이 백성이 암사자 같이 일어나고 수사자 같이 일어나서 움킨 것을 먹으며 죽인 피를 마시기 전에는 눕지 아니하리로다 하매
25 발락이 발람에게 이르되 그들을 저주하지도 말고 축복하지도 말라
26 발람이 발락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내가 당신에게 말하여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것은 내가 그대로 하지 않을 수 없다고 하지 아니하더이까

 

선하심

 

하나님의 뜻

 

13 발락이 말하되 나와 함께 그들을 달리 볼 곳으로 가자 거기서는 그들을 다 보지 못하고 그들의 끝만 보리니 거기서 나를 위하여 그들을 저주하라 하고

 

뜻대로 되지가 않았다. 지금 제일 답답한 사람이 누구일까? 발락이다.

 

발락은 정말 나라의 국운을 위해서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했다. 발람이 얼마나 소문난 점술가던가? 그가 축복하는 자는 축복을 받고, 그가 저주하는 자는 저주를 받는 그런 유명한 점술가였다.

 

삼고초려는 아니었지만, 발락은 그를 자신에게 데려오기위해 자신의 심복들을 동원했으며, 거기에 터무니없는 연봉까지 제시하고서야 발람을 데려오는 것에 성공했다. 그만큼 이스라엘 백성을 저주하는 일은 발락에게 사활을 건 결정이었다.

 

발람이 하자는대로만 하였다. 제단을 쌓자고 하면 제단을 쌓고, 수송아지와 숫양을 바치라고 하면 그러했다. 왜 제단을 일곱 개나 쌓아야 하냐고 물은 적도 없다. 오로지 시키는 대로 했다.

 

그런데 자신이 원하는 결과가 이뤄지지 않았다. 이제 내가 또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나름 원인을 분석했다.

 

아무래도 발람이 예언하는 자리가 문제인듯했다. 그래서 발람에게 자리를 옮기자고 제안한다. 결국 그의 뜻대로 장소까지 옮겼다. 그러면 결과가 달라질 줄 알았다.

 

22~24 하나님이 그들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셨으니 그의 힘이 들소와 같도다/ 야곱을 해할 점술이 없고 이스라엘을 해할 복술이 없도다 이 때에 야곱과 이스라엘에 대하여 논할진대 하나님께서 행하신 일이 어찌 그리 크냐 하리로다/ 이 백성이 암사자 같이 일어나고 수사자 같이 일어나서 움킨 것을 먹으며 죽인 피를 마시기 전에는 눕지 아니하리로다 하매

 

그런데 결과는 더욱 극명하게 '축복'이었다. 그것도 엄청난 축복. 그는 '저주'를 원했으나, 하나님은 '축복'을 원하셨다.

 

25 발락이 발람에게 이르되 그들을 저주하지도 말고 축복하지도 말라

 

발락은 결국 폭발하고야 말았다. 이러려고 발람을 부른 것도 아니고, 이런 결과를 보자고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지극정성으로 갖다 바친 것도 아니었다. 

 

왠지 여기까지 묵상을 마치자, 구슬퍼졌다. 발락과 우리가 무엇이 다르던가?

 

사실 하나님을 향한 우리의 '뜻', 내가 원하는 '응답'은 정해져있었다. 입으로는 어떤 뜻이든지 하나님의 뜻을 구한다고 했지만, 우리는 너무나 간절히 나의 뜻만을 강요하는 기도를 하고 있지 않았던가?

 

그것이 우리에게 중요한 일이라면 더욱더 우리는 모든 것을 다해서라도 하나님을 감동시켜 그 일에 대한 우리가 정한 '응답'을 받으려고 몸부림친다.

 

안나가던 새벽기도를 나간다. 안 드리던 작정헌금을 드린다. 거기에 더해 '금식기도'까지 불사하지 않았던가?

 

나의 힘으로는 부족할 것 같아, 자녀들까지 이끌고 새벽기도를 나가봤다. 어려운 줄 알면서도 '교사'를 하고, '찬양대'에 몸소 지원했다. 집에서도 하지 않았던 '교회 화장실 청소'까지 하지 않았던가.

 

결과가 나왔다. 오랜 시간 공을 드리고,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했는데, 그분의 뜻은 나의 뜻과는 너무도 달랐다.

 

어떻게 해야할까? '은혜'로 여기면 좋겠지만, 많은 사람들이 그것을 '실패'라고 여긴다는 것이다.

 

그래서 하던 헌신을 정말 '헌신짝'처럼 내버리고 포기한다. 물론 교회에는 나름 납득할만한 이유를 제시했다. 분명 이런 이유가 있는 것이 맞지 않던가. 나를 향한 합리화도 끝냈다.

 

덕분에 자녀들을 더 이상 새벽기도 데리고 나갈 명분도 잃었다. 우리의 간구에 응답하시지 않는 하나님만 알려준 꼴이 아니던가?

 

더 이상 더 많은 헌금을 할 필요도, 더 이상 작정해서 금식을 할 필요도 느끼지 못한다. 그 모든 것은 결국 '하나님'을 위한 것이 아니라 '나'의 것을 얻기 위한 나의 철저한 '몸부림'에 지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라고 다를까? 결국 '나'도 다르지 않을 때가 많다.

 

사실 하나님을 믿는 모든 사람들의 마음속에 이 정도 소원은 있고, 그 소원을 기도하는 행위는 잘못된 것이 아니다. 

 

문제는 나의 뜻과 하나님의 뜻이 다르다고 할 때, 그것을 은혜로 여길 수 있는 마음을 우리는 겸허히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아, 나는 이렇게 되기를 원했지만, 하나님은 나에게 이런 계획과 뜻을 가지고 계셨구나."

 

아니 여기서 한 발짝 더, 믿는 우리는 더 나아갈 수 있어야 한다고 성경은 말하고 있지 않던가?

 

시편 34:8

너희는 여호와의 선하심을 맛보아 알지어다 그에게 피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예레미야 29:11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을 내가 아나니 평안이요 재앙이 아니니라 너희에게 미래와 희망을 주는 것이니라

 

기도하고 실망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리고 이 일을 통해서 하나님을 더 의지했으면 좋겠다. 주를 향한 나의 헌신을 '기브 앤 테이크' 방식에서 벗어나 '하나님의 뜻에 따라 사는 삶'으로 전환할 수 있는 은혜가 있었으면 좋겠다.

 

하나님은 선하신 분이시다. 그분은 언제나 우리에게 가장 선하신 길로 인도하시는 분이시다. 이것을 철저하게 신뢰하는 그리스도인이 되기를 소망한다.

 

그것이 누가보기에도 '재앙'이라 할지라도 말이다. 지나가보면 안다. 그 '재앙' 역시도, 내게는 '재앙'이 아닌 '하나님의 선하신 인도함'이었다는 것을. 샬롬! 오늘도 승리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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