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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큐티(Q.T)

(민 24:10~25) 변화된 자로 살아가야 한다(매일성경큐티, 민수기 24:10~25)

by 무지개소년 2023. 5. 8.

변화된 자로 살아가야 한다 (매일성경큐티 230508)

 

찬양: 유월절 어린양의 피로
성경: 민수기 24:10~25
 

10 발락이 발람에게 노하여 손뼉을 치며 말하되 내가 그대를 부른 것은 내 원수를 저주하라는 것이어늘 그대가 이같이 세 번 그들을 축복하였도다
11 그러므로 그대는 이제 그대의 곳으로 달아나라 내가 그대를 높여 심히 존귀하게 하기로 뜻하였더니 여호와께서 그대를 막아 존귀하지 못하게 하셨도다
12 발람이 발락에게 이르되 당신이 내게 보낸 사신들에게 내가 말하여 이르지 아니하였나이까
13 가령 발락이 그 집에 가득한 은금을 내게 줄지라도 나는 여호와의 말씀을 어기고 선악간에 내 마음대로 행하지 못하고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대로 말하리라 하지 아니하였나이까
14 이제 나는 내 백성에게로 돌아가거니와 들으소서 내가 이 백성이 후일에 당신의 백성에게 어떻게 할지를 당신에게 말하리이다 하고
15 예언하여 이르기를 브올의 아들 발람이 말하며 눈을 감았던 자가 말하며
16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자가 말하며 지극히 높으신 자의 지식을 아는 자, 전능자의 환상을 보는 자, 엎드려서 눈을 뜬 자가 말하기를
17 내가 그를 보아도 이 때의 일이 아니며 내가 그를 바라보아도 가까운 일이 아니로다 한 별이 야곱에게서 나오며 한 규가 이스라엘에게서 일어나서 모압을 이쪽에서 저쪽까지 쳐서 무찌르고 또 셋의 자식들을 다 멸하리로다
18 그의 원수 에돔은 그들의 유산이 되며 그의 원수 세일도 그들의 유산이 되고 그와 동시에 이스라엘은 용감히 행동하리로다
19 주권자가 야곱에게서 나서 남은 자들을 그 성읍에서 멸절하리로다 하고
20 또 아말렉을 바라보며 예언하여 이르기를 아말렉은 민족들의 으뜸이나 그의 종말은 멸망에 이르리로다 하고
21 또 겐 족속을 바라보며 예언하여 이르기를 네 거처가 견고하고 네 보금자리는 바위에 있도다
22 그러나 가인이 쇠약하리니 나중에는 앗수르의 포로가 되리로다 하고
23 또 예언하여 이르기를 슬프다 하나님이 이 일을 행하시리니 그 때에 살 자가 누구이랴
24 깃딤 해변에서 배들이 와서 앗수르를 학대하며 에벨을 괴롭힐 것이나 그도 멸망하리로다 하고
25 발람이 일어나 자기 곳으로 돌아가고 발락도 자기 길로 갔더라

 

변화
출처:게티이미지뱅크

 

'변화'

 
15 예언하여 이르기를 브올의 아들 발람이 말하며 눈을 감았던 자가 말하며
16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자가 말하며 지극히 높으신 자의 지식을 아는 자, 전능자의 환상을 보는 자, 엎드려서 눈을 뜬 자가 말하기를

 
오늘 말씀을 읽고나서 가장 눈에 들어온 구절이다. 
 
'눈을 감았던 자',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자', '지극히 높으신 자의 지식을 아는 자', '전능자의 환상을 보는 자', '엎드려서 눈을 뜬 자'
 
얼마나 황홀한 표현들인가?
 
발람은 정말 변한 것 같다. 아니 변해야만 나올 수 있는 표현이다. 그는 하나님의 선하심을 맛볼 때에 그의 인생에 있어서 가장 중요했던 '점술'을 버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전하는 자가 된 것처럼 보인다.
 
그리고 오늘 말씀도 처음부터, '오 이거 잘하면 살아서 못 갈 수도 있겠는데...' 이 감성이었다. 그러니까 하나님 안에서 변화된 발람이 담대해졌다고, 죽음도 불사한다고 생각되었다.
 
그렇다면 정말 발람은 하나님 안에서 '변화'된 것일까?
 
사실 애매하긴 하지만, 난 말씀을 묵상하는 가운데 지금 당장은 '변화'가 맞다고 생각했다. 먼저 왜 애매했는지에 대해서 말해본다면, 25절 때문이다.
 

25 발람이 일어나 자기 곳으로 돌아가고 발락도 자기 길로 갔더라

 
발람은 '자기 곳', 발락도 '자기 길'. 그냥 이제 모든 일이 다 끝났으니 집에 갔다는 표현이 아닐 것이다.
 
성경은 '그냥' 말하는 법이 없다. '자기 곳', '자기 길'이라 표현한 이유가 무엇일까? 굳이 발락도. '도'라는 표현을 써서 발람도 발락도 같은 길을 갔다고 표현한 이유가 무엇일까 분명 생각하라는 것이다.
 

유다서 1:11
발람의 어그러진 길로 몰려 갔으며
 
민수기 31:8
8그 죽인 자 외에 미디안의 다섯 왕을 죽였으니 미디안의 왕들은 에위와 레겜과 수르와 후르와 레바이며 또 브올의 아들 발람을 칼로 죽였더라

  
이 일 이후 성경에 기록된 발람의 기록은 모두 12번이다. 그 12번이 공통적으로 시사하는 바는 모두 유다서 1:11절에서 의미하는 바와 같이 '어그러진 길', '잘못된 길'이었다.
 
그리고 민수기 31:8절에 발람의 최후가 그려지는데, 그는 이스라엘이 미디안을 치는 과정 중에 죽임을 당한다. 
 
만약 발람이 정말 '변화된 자'가 맞다면, 성경이 이렇게 증언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결국 성경이 증언하는 바, 그는 '변화'되지 못한 채로, 즉 자기의 본래의 삶으로 되돌아간 전형적인 '그때뿐인 간증'을 한 사람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오늘 성경은 '자기 곳'으로 돌아갔다. 돌아갔다고 표현한 것이다.
 
그럼에도 나는 발람이 발락에게 불려 와 하나님을 만나고, 체험하고, 고백하는 15~16절, 그리고 그 이전의 잠깐잠깐의 순간들이 참 귀하다고 생각한다. 그는 분명 하나님 안에서 '변화'됐었다.
 
그러나 그는 이 일 이후에 '변화'된 자의 삶을 살아내지 못했다. 결국 '변화'된 것도 중요하지만, '변화'된 자로 살아가는 삶이 더 중요한 것이다.
 
여기까지 말씀을 묵상하자, '나는 어떠한가?'를 생각해 본다. 누구보다 욥기 42:5절의 고백을 귀중히 여기고, 프란시스 쉐퍼의 묵상을 사랑하여, '나의 하나님', '내가 만난 예수님'을 찾고자 노력하며 살아왔다.
 
그리고 내가 찾기 때문이 아니라, 주님이 나에게 계시해 주셨기에 내가 알고 '변화'되고, 또 수많은 사람 앞에서 '간증'하였지만, 나는 지금 그렇게 살고 있는가?
 
나는 아직은 '자기 곳'으로 돌아가지 않았다고 여겨져 안심이 되면서도, 며칠 전 들었던 두 목회자의 이야기로 마음이 심란하다.
 
한 때, 난 두 분을 너무 좋아했고, 존경하기까지 했다. 그런데 한 분은 얼마 전, 교회 내 일어난 '폭력'보다 '교인들의 생태와 잘잘못'을 더 중요시하여, 결국 한 명의 피해자를 보호해 주는 것이 아니라 2차 가해를 가하며 교회 밖으로 내몰았다.
 
또 한 분은 자신보다 교회를 더 사랑하고, 자신의 것을 내려놓을 줄 아는 분이셨는데, 마지막 말년에 대한 두려움이 너무 크셨나 보다. 자신의 미래를 하나님께 맡기기보다 자신이 직접 준비하시기 시작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내가 '변화'된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내가 지금 '변화'된 자로 살아가는가가 중요하다. 또 나의 마지막 순간에 '변화'된 자로 죽는 것이 중요하다.
 
누구도 장담할 수 없다. 오늘 발람을 보면서 다시 마음을 굳게 잡아보지만, 내가 잡는 것에서 그쳐서는 안 된다. 주님께 맡겨야 한다. 다윗처럼, 사도바울처럼. 
 
오늘도 주님께 나의 삶, 나의 물질, 나의 가족, 나의 모든 것을 맡길 줄 아는, 언제나 오직 그분의 인도함 따라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기도해 본다. 여호와 닛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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