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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큐티(Q.T)

(신명기 1:34-46)오늘도 그 자리에 있습니다(매일성경큐티 신 1장)

by 무지개소년 2024. 1. 3.

오늘도 그 자리에 있습니다

매일성경큐티 240103 수
찬양: 주께 가까이 (
유튜브 찬양 링크)
성경: 신명기 1장 34~46절
34 여호와께서 너희의 말소리를 들으시고 노하사 맹세하여 이르시되
35 이 악한 세대 사람들 중에는 내가 그들의 조상에게 주기로 맹세한 좋은 땅을 볼 자가 하나도 없으리라
36 오직 여분네의 아들 갈렙은 온전히 여호와께 순종하였은즉 그는 그것을 볼 것이요 그가 밟은 땅을 내가 그와 그의 자손에게 주리라 하시고
37 여호와께서 너희 때문에 내게도 진노하사 이르시되 너도 그리로 들어가지 못하리라
38 네 앞에 서 있는 눈의 아들 여호수아는 그리로 들어갈 것이니 너는 그를 담대하게 하라 그가 이스라엘에게 그 땅을 기업으로 차지하게 하리라
39 또 너희가 사로잡히리라 하던 너희의 아이들과 당시에 선악을 분별하지 못하던 너희의 자녀들도 그리로 들어갈 것이라 내가 그 땅을 그들에게 주어 산업이 되게 하리라
40 너희는 방향을 돌려 홍해 길을 따라 광야로 들어갈지니라 하시매
41 너희가 대답하여 내게 이르기를 우리가 여호와께 범죄하였사오니 우리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명령하신 대로 우리가 올라가서 싸우리이다 하고 너희가 각각 무기를 가지고 경솔히 산지로 올라가려 할 때에
42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너는 그들에게 이르기를 너희는 올라가지 말라 싸우지도 말라 내가 너희 중에 있지 아니하니 너희가 대적에게 패할까 하노라 하시기로
43 내가 너희에게 말하였으나 너희가 듣지 아니하고 여호와의 명령을 거역하고 거리낌 없이 산지로 올라가매
44 그 산지에 거주하는 아모리 족속이 너희에게 마주 나와 벌 떼 같이 너희를 쫓아 세일 산에서 쳐서 호르마까지 이른지라
45 너희가 돌아와 여호와 앞에서 통곡하나 여호와께서 너희의 소리를 듣지 아니하시며 너희에게 귀를 기울이지 아니하셨으므로
46 너희가 가데스에 여러 날 동안 머물렀나니 곧 너희가 그 곳에 머물던 날 수대로니라

 

순종

 

36 오직 여분네의 아들 갈렙은 온전히 여호와께 순종하였은즉 그는 그것을 볼 것이요 그가 밟은 땅을 내가 그와 그의 자손에게 주리라 하시고
38 네 앞에 서 있는 눈의 아들 여호수아는 그리로 들어갈 것이니 너는 그를 담대하게 하라 그가 이스라엘에게 그 땅을 기업으로 차지하게 하리라

 

여호수아와 갈렙이 가나안에 들어간 이유가 무엇일까?

 

그들의 믿음의 대단함 때문일까? 전혀 그렇지 않다.

 

그들은 여전히 하나님 편에 있었던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얼마 전 우리는 욥기를 봤다. 욥이 정말 우리가 성경적 기준으로 봤을 때, 의인인가? 나보다 의인이라 하여, 그가 성경적 의인이라 말할 근거는 없다. 엄밀히 놓고 볼 때에, 그는 의인이 아닌듯하다.

 

그는 하나님 앞에서 불평과 불만을 늘어놓았다. 가끔은 따지기도 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에게 의인이라 말해주신다. 왜 그럴까?

 

불평도, 불만도, 따지는 것도 여전히 주님 앞에서 했기 때문이다. 즉 기도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세 친구는 옳은 말을 하는 듯했다. 하지만 그들은 하나님 앞에서 옳은 말을 한 것이 아니었다. 그들은 욥 앞에서 욥에게 들으라고 말을 했다.

 

아브라함은 또 어떻던가? 그가 정말 의인이고, 믿음의 조상일까? 엄밀히 말해, 성경적으로 보면 그는 의인도, 믿음의 조상도 아니다. 왜 이스마엘이 나왔던가? 왜 엘리에셀의 이름이 거론되었던가? 왜 그들은 웃었던가? 왜 애굽으로 내려갔고, 왜 누이라고 속였던가?

 

아브라함이 의인이었기 때문에, 하나님이 그를 의인이라 칭한 것이 아니다. 그는 끝끝내 갈대아우르로, 하란으로 돌아가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나님 안에서 웃었고, 하나님 앞에서 안된다고 했고, 하나님 앞에서 엘리에셀의 이름을 말했기 때문이다. 여전히 하나님과 함께 그 자리에 살았기 때문에 그는 의인으로 칭함을 얻은 것이다.

 

무엇 때문에 의인이 되고, 무엇 때문에 구원에 이르는가?

 

좋으나, 싫으나, 괴로우나, 즐거우나 여전히 하나님 앞에서 그대로 살아낼 때에 하나님은 그를 의인이라 칭하시는 것이다.

 

오늘 본문으로 돌아와서 여호수아, 갈렙, 그들도 본 게 있다. 들은 게 있다. 그러나 그들은 여전히 하나님 편에 섰다. 여전히 하나님의 명령을 신뢰했다. 그 땅은 본래 들어가기로 약속된 땅이고, 정탐을 굳이 안 가도 들어갈 것이라고 말씀하신 땅이었다. 

 

그들은 그 말씀을 그대로 따르려고 애썼기 때문에 그 땅에 들어갈 수 있게 된 것이다.

 

42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너는 그들에게 이르기를 너희는 올라가지 말라 싸우지도 말라 내가 너희 중에 있지 아니하니 너희가 대적에게 패할까 하노라 하시기로
43 내가 너희에게 말하였으나 너희가 듣지 아니하고 여호와의 명령을 거역하고 거리낌 없이 산지로 올라가매

 

계속 같은 이야기이지 않은가?

 

올라가지 말라면 올라가지 말아야 한다. 불만이 있을 수 있다. 좋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하나님을 믿는다면 적어도 그 자리에 가만히 있을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이 기본이다.

 

그것이 결국 순종이다.


오늘날 많은 신앙인들이 착각하고 있다. 주님 앞에서 많은 헌신과 봉사를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물론 그래야 한다. 그런데 동기와 의도가 다르다.

 

주님은 내가 무엇을 많이 하나 안 하나 여전히 존귀하고 보배로운 자녀로 보신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내가 무엇을 하지 않으면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시지 않는 것처럼 강단에서 선포되기 시작됐다. 하나님은 절대 기브 앤 테이크하시는 분이 아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보실 때, 딱 한 가지만 보신다. 여전히 그 자리에서 주님과 함께하는가? 불평을 해도 기도로, 불만을 해도 기도로, 기쁨도 기도로, 슬픔도 기도로 하는지만 보시는 하나님이시다.

 

그렇다면 봉사와 헌신은 무엇인가? 정말 내가 주를 사랑하고, 주님을 신뢰한다면, 그 주님을 위해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고민의 끝에 나온 결과물이 바로 헌신과 봉사이다.

 

보험신앙, 대가신앙 이제 청산하고, 주님 앞에 바로 설 수 있는 온전한 믿음, 순종의 신앙을 살아내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그리고 부족하지만, 주 앞에서 무엇을 나타내기보다는 여전히 그 자리에서 오늘 하루를 믿음으로 살아낼 수 있는 우리가 되기를 간절히 기도한다.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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