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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큐티(Q.T)

(욥기 29:1~25)그리스도인의 사회윤리(매일성경큐티 욥 29장)

by 무지개소년 2023. 12. 4.

그리스도인의 사회윤리

매일성경큐티 231204 월
찬양: 내 눈 주의 영광을 보네 (유튜브 찬양링크)
성경: 욥 29:1-25
1 욥이 풍자하여 이르되
2 나는 지난 세월과 하나님이 나를 보호하시던 때가 다시 오기를 원하노라
3 그 때에는 그의 등불이 내 머리에 비치었고 내가 그의 빛을 힘입어 암흑에서도 걸어다녔느니라
4 내가 원기 왕성하던 날과 같이 지내기를 원하노라 그 때에는 하나님이 내 장막에 기름을 발라 주셨도다
5 그 때에는 전능자가 아직도 나와 함께 계셨으며 나의 젊은이들이 나를 둘러 있었으며
6 젖으로 내 발자취를 씻으며 바위가 나를 위하여 기름 시내를 쏟아냈으며
7 그 때에는 내가 나가서 성문에 이르기도 하며 내 자리를 거리에 마련하기도 하였느니라
8 나를 보고 젊은이들은 숨으며 노인들은 일어나서 서며
9 유지들은 말을 삼가고 손으로 입을 가리며
10 지도자들은 말소리를 낮추었으니 그들의 혀가 입천장에 붙었느니라
11 귀가 들은즉 나를 축복하고 눈이 본즉 나를 증언하였나니
12 이는 부르짖는 빈민과 도와 줄 자 없는 고아를 내가 건졌음이라
13 망하게 된 자도 나를 위하여 복을 빌었으며 과부의 마음이 나로 말미암아 기뻐 노래하였느니라
14 내가 의를 옷으로 삼아 입었으며 나의 정의는 겉옷과 모자 같았느니라
15 나는 맹인의 눈도 되고 다리 저는 사람의 발도 되고
16 빈궁한 자의 아버지도 되며 내가 모르는 사람의 송사를 돌보아 주었으며
17 불의한 자의 턱뼈를 부수고 노획한 물건을 그 잇새에서 빼내었느니라
18 내가 스스로 말하기를 나는 내 보금자리에서 숨을 거두며 나의 날은 모래알 같이 많으리라 하였느니라
19 내 뿌리는 물로 뻗어나가고 이슬이 내 가지에서 밤을 지내고 갈 것이며
20 내 영광은 내게 새로워지고 내 손에서 내 화살이 끊이지 않았노라
21 무리는 내 말을 듣고 희망을 걸었으며 내가 가르칠 때에 잠잠하였노라
22 내가 말한 후에는 그들이 말을 거듭하지 못하였나니 나의 말이 그들에게 스며들었음이라
23 그들은 비를 기다리듯 나를 기다렸으며 봄비를 맞이하듯 입을 벌렸느니라
24 그들이 의지 없을 때에 내가 미소하면 그들이 나의 얼굴 빛을 무색하게 아니하였느니라
25 내가 그들의 길을 택하여 주고 으뜸되는 자리에 앉았나니 왕이 군대 중에 있는 것과도 같았고 애곡하는 자를 위로하는 사람과도 같았느니라

 

 

빛과소금
일러스트_김땡스작가(로아스토어)

 

 

22:5 네 악이 크지 아니하냐 네 죄악이 끝이 없느니라

6 까닭 없이 형제를 볼모로 잡으며 헐벗은 자의 의복을 벗기며

7목마른 자에게 물을 마시게 하지 아니하며 주린 자에게 음식을 주지 아니하였구나

 

어쩌면 오늘 29장은 엘리바스의 마지막 공격(욥 22:5~11)에 대한 욥의 대답일지도 모른다. 아니 솔직히 전혀 관계없다고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욥은 엘리바스의 이 주장에 정면반박한다.

 

그런데 정말 그뿐일까? 욥은 단순히 엘리바스를 향한 항변만을 하고 싶었던 것일까?

 

그렇지 않다. 오늘 본문은 이 시대를 '그리스도인'의 이름으로 살고 있는 우리에게 새로운 도전을 제시하고 있다. 그것이 무엇일까? 

 

'그리스도인의 사회윤리'이다.

 

욥은 오늘 자신의 과거를 회상하면서 크게 두 가지의 모습을 그려낸다.

 

첫째는 2~6절의 장면으로 하나님께서 자신과 함께하셔서 누리게 했던 행복과 평안의 시대를 말하고 있다. 

 

2 나는 지난 세월과 하나님이 나를 보호하시던 때가 다시 오기를 원하노라
3 그때에는 그의 등불이 내 머리에 비치었고 내가 그의 빛을 힘입어 암흑에서도 걸어 다녔느니라
4 내가 원기 왕성하던 날과 같이 지내기를 원하노라 그때에는 하나님이 내 장막에 기름을 발라 주셨도다
5 그 때에는 전능자가 아직도 나와 함께 계셨으며 나의 젊은이들이 나를 둘러 있었으며
6 젖으로 내 발자취를 씻으며 바위가 나를 위하여 기름 시내를 쏟아냈으며

 

그런데 그는 단순히 과거의 자신이 하나님이 주신 개인적인 차원의 복에서 그친 것이 아니라, 그가 그 복을 어떻게 이 땅 가운데서 사용하고, 누렸는지에 대해서 함께 말한다.

 

7 그 때에는 내가 나가서 성문에 이르기도 하며 내 자리를 거리에 마련하기도 하였느니라
8 나를 보고 젊은이들은 숨으며 노인들은 일어나서 서며
9 유지들은 말을 삼가고 손으로 입을 가리며
10 지도자들은 말소리를 낮추었으니 그들의 혀가 입천장에 붙었느니라
11 귀가 들은즉 나를 축복하고 눈이 본즉 나를 증언하였나니

 

결국 그는 어떤 사람이었는가? 그 당시 주변에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신망과 존경을 한 몸에 받는 덕망 있는 사람이었다는 것이다.

 

어떻게 그럴 수 있었을까?

 

오늘 12~17절 말씀을 보게 되면, 그가 그 당시 사회적 약자라 대변됐던 고아와 과부에게 어떠한 사랑과 은혜를 베풀었는지....

 

그것뿐 아니라 그가 그 당시 사람들은 전혀 관심조차 주지 않았던, 아니 어쩌면 그 당시 죄로 인해 장애인이 됐다고 지탄받던, 그 당시 장애인들의 인권을 위해서조차 얼마나 애를 썼는지 모른다는 것이다.

 

15 나는 맹인의 눈도 되고 다리 저는 사람의 발도 되고
16 빈궁한 자의 아버지도 되며 내가 모르는 사람의 송사를 돌보아 주었으며
17 불의한 자의 턱뼈를 부수고 노획한 물건을 그 잇새에서 빼내었느니라

 

즉 엘리바스의 주장은 이미 설득력이 없는 주장이 된 것이다. 마치 욥의 과거를 자신이 cctv 보듯 말했던 엘리바스로서는 욥의 이 말들이 정말 낯 뜨거운 화살이 되어 되돌아오지 않았을까 생각이 된다.

 

그런데 앞서 말했듯이 그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오늘 본문의 핵심은 엘리바스를 향한 욥의 항변이 아니다.

 

중요한 것은 그리스도인의 사회윤리이다.

 

사회윤리가 무엇일까? 믿는 자들은 이 사회를 향해서 어떤 윤리적 의식을 갖고 살아가야 할까?

 

예수님은 이 땅의 그리스도인을 향해 '빛과 소금'이 돼라 하셨다. 더 이상 무슨 말이 필요할까?

 

예수님께서는 말에서 그치지 않고, 그분의 삶을 통해 어떻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빛과 소금'된 삶인지 보여주셨다. 

 

그 당시 인기 설교자이자, 치유자셨던 예수님은 티베리아의 부호들의 초청을 많이 받던 유명인이었다. 하지만 예수님이 택하신 길은 무엇이었나?

 

사회적 약자들의 도시, 사람들은 스스로 선택하지 않았던 가버나움으로 가신다. 그리고 그곳에서 병자들과 사회적 약자들의 아버지가 되어 그들을 품어주시고, 그들을 고쳐주시고, 그들을 가르치셨다.

 

감리교 창시자였던 존 웨슬리 목사님도 그러하지 않으셨던가? 그는 말씀을 전하러 삐까번쩍한 교회로만 가지 않았다. 탄광촌으로 창녀촌으로, 동네 약자들이 있는 곳이라면 그는 주변의 시선을 아랑곳하지 않고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전하러, 나누러 갔다는 것이다.

 

오늘 본문에서 욥은 단순히 세 친구를 향해서, 그리고 하나님을 향해서 자신의 결백을 자신의 개인적인 윤리에 국한하고 있지 않다. 그가 얼마나 주님이 주신 은혜를 나누었는지에 대해, 사회적 윤리에 있어서의 도덕성까지 주장한다.

 

오늘 나는 주 앞에서 그렇게 말할 수 있을까? 또 나는 정말 이 땅에서 구원받은 자로 살아가고 있는가? 하나님의 자녀로 당당히 살고 있는 것일까?

 

물론 죄의 문제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인간이 누가 있겠는가? 그래서 우리는 개인의 삶에서 죄를 짓지 않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고, 애쓴다. 회개하고, 기도한다.

 

하지만 그것에서 깨끗하고, 그것에서 흠이 없는 자가 되면 그만일까?

 

전혀 그렇지 않다. 그리스도인은 개인적인 차원을 넘어 사회적인 차원에서 주님의 은혜를 나눌 수 있는 자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시대, 한국교회가 어쩌다 이렇게 됐는지 모르겠다.

 

'예수님과의 동행' 중요하다. 그러나 '예수님과의 동행'이 나 혼자만 구원하고, 나 혼자만 세상에서 죄를 짓지 않고, 잘 사는 것에 그쳐서는 곤란하다. 나 혼자만 죄의 지배 아래에서 탈출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어디까지나 '예수님과의 동행'의 최종 목적은 결국 '하나님 나라의 복음'이 아니겠는가?

 

진짜 나의 삶의 지경을 스스로 점검해야 할 때라고 생각한다. 교회는 교회 나름대로 주께서 허락하신 지경이 어디인지? 개인은 개인 나름대로 주께서 허락하신 지경이 어디인지 분명히 해야 한다.

 

그럴 때, 주와 함께하는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 온전히 세워지리라 믿는다.

 

욥과 같이 자신의 은혜를 이 땅에서 어떠한 상황과 환경 중에도 함께 나눌 수 있는 '빛과 소금'된 그리스도인으로 오늘도 살기를 간절히 소망하고, 기도한다.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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