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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큐티(Q.T)

(욥기 30:16~31)부활의 영광에 참예하라!(매일성경큐티 욥 30장)

by 무지개소년 2023. 12. 6.

부활의 영광에 참예하라!

매일성경큐티 231206 수
찬양: 인내 (유튜브 찬양링크)
성경: 욥 30:16-31
16 이제는 내 생명이 내 속에서 녹으니 환난 날이 나를 사로잡음이라
17 밤이 되면 내 뼈가 쑤시니 나의 아픔이 쉬지 아니하는구나
18 그가 큰 능력으로 나의 옷을 떨쳐 버리시며 나의 옷깃처럼 나를 휘어잡으시는구나
19 하나님이 나를 진흙 가운데 던지셨고 나를 티끌과 재 같게 하셨구나
20 내가 주께 부르짖으나 주께서 대답하지 아니하시오며 내가 섰사오나 주께서 나를 돌아보지 아니하시나이다
21 주께서 돌이켜 내게 잔혹하게 하시고 힘 있는 손으로 나를 대적하시나이다
22 나를 바람 위에 들어 불려가게 하시며 무서운 힘으로 나를 던져 버리시나이다
23 내가 아나이다 주께서 나를 죽게 하사 모든 생물을 위하여 정한 집으로 돌려보내시리이다
24 그러나 사람이 넘어질 때에 어찌 손을 펴지 아니하며 재앙을 당할 때에 어찌 도움을 부르짖지 아니하리이까
25 고생의 날을 보내는 자를 위하여 내가 울지 아니하였는가 빈궁한 자를 위하여 내 마음에 근심하지 아니하였는가
26 내가 복을 바랐더니 화가 왔고 광명을 기다렸더니 흑암이 왔구나
27 내 마음이 들끓어 고요함이 없구나 환난 날이 내게 임하였구나
28 나는 햇볕에 쬐지 않고도 검어진 피부를 가지고 걸으며 회중 가운데 서서 도움을 부르짖고 있느니라
29 나는 이리의 형제요 타조의 벗이로구나
30 나를 덮고 있는 피부는 검어졌고 내 뼈는 열기로 말미암아 탔구나
31 내 수금은 통곡이 되었고 내 피리는 애곡이 되었구나

 

인내인내인내
일러스트_헤세드로잉

 

19 하나님이 나를 진흙 가운데 던지셨고 나를 티끌과 재 같게 하셨구나

 

욥은 한번도 하나님에게서 멀어지지 않았다. 그는 자신에게 고통이 찾아온 이래 늘 하나님 안에 거했고, 또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려고 부단히도 애썼다.

 

하지만 그의 아프고 상한 인생은 전혀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점점 더 엉망인채로, 더 괴로운 날들이 이어져만 갔다.

 

20 내가 주께 부르짖으나 주께서 대답하지 아니하시오며 내가 섰사오나 주께서 나를 돌아보지 아니하시나이다

 

우리도 마찬가지다. 고통 중에 하나님을 부르짖으라는 말씀에 따라 고통과 신음 중에 주님을 더욱 찾았다. 잘못된 길로 갈 수 있는 상황 중에도 그리스도인의 양심에 따라 주님이 기뻐하시는 길만 가고자 애를 썼다.

 

더 기도의 자리로 나아가려고 애썼고, 더 예배의 자리를 사모하려고 애썼다.

 

그런데 nothing! 그 무엇도 변화가 없었다. 그래서 한편으로는 주님께 다시 한번 원망 아닌 원망을 하기도 한다.

 

25 고생의 날을 보내는 자를 위하여 내가 울지 아니하였는가 빈궁한 자를 위하여 내 마음에 근심하지 아니하였는가

 

"주님, 저는 이렇게 살았는데, 어려움 중에도 주를 섬기며 헌신하며 살아왔는데, 나는 약자를 돌보고, 그들을 위하여 기도하며 살았는데, 왜 주님께서는 약자이자, 아픔 당한 저를 이리도 매정하게 만져주시지 않습니까?"

 

30장에서 이리 저리, 왔다 갔다, 어찌할 줄 모르는 욥의 복잡한 심경이 너무나 절절하게 와닿는다.

 

26 내가 복을 바랐더니 화가 왔고 광명을 기다렸더니 흑암이 왔구나
27 내 마음이 들끓어 고요함이 없구나 환난 날이 내게 임하였구나
28 나는 햇볕에 쬐지 않고도 검어진 피부를 가지고 걸으며 회중 가운데 서서 도움을 부르짖고 있느니라

 

하나님을 의지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그 하나님의 무심함에 불만도 드는, 하지만 하나님만이 자신의 형편과 처지를 아시는 분이시란 것을 알기에, 다시 그 하나님을 붙잡을 수밖에 없는 욥의 복잡하고 당황스러운 심경이 느껴진다.

 

이것이 욥만의 감정이고, 심정일까?

 

그렇지 않다. 의외로 우리 또한 세상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의 백성, 신앙인, 그리스도인이기에 이런 복잡한 심경 속에 살아갈때가 너무 많다. 정말 많아도 너무 많다.

 

어떻게 해야 할까?


욥이 그 답을 주고 있다. 더 고통스런 상황 중에도 결국 하나님을 다시 바라보는 인내의 여정을 시작한다.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었는지는 잘 모른다. 하지만 그것이 믿음이고, 그것이 신앙이라는 생각이 든다.

 

한 번은 하나님의 역사에 대해 고민한 적이 있다.

 

모든 기도에, 모든 헌신에, 모든 섬김에 하나님의 역사가 나타난다면 그것이 정말 '하나님의 역사', '하나님의 은혜'로 여겨질 수 있을까?

 

그렇지 않다. 모든 순간, 모든 상황 중에 그러한 일이 일어난다면 그것은 더 이상 '하나님의 역사'는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그 역사의 기쁨을 맛보게 하기 위해서 우리에게 더 인내의 시간을 일부러 안배하시는 분이실까?

 

그런 것이 아님은 이미 성경을 통해 충분히 알고 있다.

 

그렇다면 현재의 고난 가운데, 끝없는 부르짖음에도 하나님이 응답하시지 않는 현실을 우리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예수님의 십자가 고난을 바라본다. 어떤 고통도 없이, 어떤 아픔도 없이 십자가를 지실 수는 없으셨을까? 그분이라면 충분히 그렇게 하실 수 있으셨을 텐데, 왜 그분도, 그리고 그 예수님을 바라보시는 하나님도 그 시간을 인내하시고, 또 기다리셨을까?

 

인내를 우리는 오해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나 혼자 인내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은 우리와 함께 우리가 당하는 고통을 당하고 계신 것이다. 오늘도 우리가 져야 할 죄의 십자가를 함께 져주시고 계신 것이다.

 

그리고 마침내, 그 죄의 십자가가 끝나고, 부활의 시간이 찾아온다. '하나님의 역사'의 시간은 그렇게 찾아오는 것이다.

 

고통 중에, 말할 수 없는 아픔 중에, 변화되지 않는 현실 속에서 다시 한번 주님과 함께 인내의 시간을 잘 견뎌냈으면 좋겠다.

 

주님이 나와 함께 고통당하시듯이, 우리도 나의 것을 더 내려놓는 아픔의 시간을 보내면, 더 기도로, 더 말씀으로, 더 예배로 나아가는 인내의 시간을 견디면, 분명 예수님이 그러하셨듯이, 성경의 수없이 많은 인물들이 그러했듯이 우리 또한 부활의 영광의 순간을 맞이하게 될 것이라 믿는다.

 

욥도 그러했다. 우린 이미 욥의 결과를 알고 있지 않은가! 그가 그 고난의 현장에서, 그 재난의 현장에서 수없이 많은 복잡한 심경 중에도 결국 주님을 붙잡고, 하나님의 역사를 끊임없이 기다렸을 때, 그에게 마침내 영광의 그날은 찾아왔다.

 

힘들다는 것을 어찌 말과 글로 표현할 수 있을까? 그러나 신앙의 힘으로, 믿음으로 잘 견뎌내서, 하나님의 역사, 그 부활의 영광을 누릴 수 있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소망한다.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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