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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큐티(Q.T)

(욥기 24:1~25)사방을 둘러볼 필요가 있다(매일성경큐티 욥 24장)

by 무지개소년 2023. 11. 30.

사방을 둘러볼 필요가 있다

매일성경큐티 231130 목
찬양: 이 땅의 황무함을 보소서 (유튜브 찬양링크)
성경: 욥기 24:1-25
1 어찌하여 전능자는 때를 정해 놓지 아니하셨는고 그를 아는 자들이 그의 날을 보지 못하는고
2 어떤 사람은 땅의 경계표를 옮기며 양 떼를 빼앗아 기르며
3 고아의 나귀를 몰아 가며 과부의 소를 볼모 잡으며
4 가난한 자를 길에서 몰아내나니 세상에서 학대 받는 자가 다 스스로 숨는구나
5 그들은 거친 광야의 들나귀 같아서 나가서 일하며 먹을 것을 부지런히 구하니 빈 들이 그들의 자식을 위하여 그에게 음식을 내는구나
6 밭에서 남의 꼴을 베며 악인이 남겨 둔 포도를 따며
7 의복이 없어 벗은 몸으로 밤을 지내며 추워도 덮을 것이 없으며
8 산중에서 만난 소나기에 젖으며 가릴 것이 없어 바위를 안고 있느니라
9 어떤 사람은 고아를 어머니의 품에서 빼앗으며 가난한 자의 옷을 볼모 잡으므로
10 그들이 옷이 없어 벌거벗고 다니며 곡식 이삭을 나르나 굶주리고
11 그 사람들의 담 사이에서 기름을 짜며 목말라 하면서 술 틀을 밟느니라
12 성 중에서 죽어가는 사람들이 신음하며 상한 자가 부르짖으나 하나님이 그들의 참상을 보지 아니하시느니라
13 또 광명을 배반하는 사람들은 이러하니 그들은 그 도리를 알지 못하며 그 길에 머물지 아니하는 자라
14 사람을 죽이는 자는 밝을 때에 일어나서 학대 받는 자나 가난한 자를 죽이고 밤에는 도둑 같이 되며
15 간음하는 자의 눈은 저물기를 바라며 아무 눈도 나를 보지 못하리라 하고 얼굴을 가리며
16 어둠을 틈타 집을 뚫는 자는 낮에는 잠그고 있으므로 광명을 알지 못하나니
17 그들은 아침을 죽음의 그늘 같이 여기니 죽음의 그늘의 두려움을 앎이니라
18 그들은 물 위에 빨리 흘러가고 그들의 소유는 세상에서 저주를 받나니 그들이 다시는 포도원 길로 다니지 못할 것이라
19 가뭄과 더위가 눈 녹은 물을 곧 빼앗나니 스올이 범죄자에게도 그와 같이 하느니라
20 모태가 그를 잊어버리고 구더기가 그를 달게 먹을 것이라 그는 다시 기억되지 않을 것이니 불의가 나무처럼 꺾이리라
21 그는 임신하지 못하는 여자를 박대하며 과부를 선대하지 아니하는도다
22 그러나 하나님이 그의 능력으로 강포한 자들을 끌어내시나니 일어나는 자는 있어도 살아남을 확신은 없으리라
23 하나님은 그에게 평안을 주시며 지탱해 주시나 그들의 길을 살피시도다
24 그들은 잠깐 동안 높아졌다가 천대를 받을 것이며 잘려 모아진 곡식 이삭처럼 되리라
25 가령 그렇지 않을지라도 능히 내 말을 거짓되다고 지적하거나 내 말을 헛되게 만들 자 누구랴

 

 

위로

 

 

1 어찌하여 전능자는 때를 정해 놓지 아니하셨는고 그를 아는 자들이 그의 날을 보지 못하는고

 

오늘 욥의 말은 꼭 자신만을 위한 말은 아닌 것 같다. 그는 이 땅에서 강한 자들에 의해 핍박당하고, 유린당하는 사회적 약자들과 힘없는 자들을 위해 대신하여 하나님께 토로하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12 성 중에서 죽어가는 사람들이 신음하며 상한 자가 부르짖으나 하나님이 그들의 참상을 보지 아니하시느니라

 

그렇기에 자신을 향한 하나님의 침묵도 마음이 어렵지만, 이들의 고통당함을 보고서도 방관하시는 것 같은 하나님의 즉각적인 조치 없음은 받아들이기 힘든 상황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사실 이전까지 욥의 성정과 믿음으로 봤을때, 여기서 말하는 하나님의 '침묵'과 '방관'은 단순히 세상에 보이는 상황과 환경을 언급할 뿐, 하나님을 향한 솔직한 원망은 아니라는 것을 알 것이다.

 

일종의 투정? 이 땅에 하나님의 주권과 심판의 모습이 고통당하는 자에게는 항상 그렇게 보이기 때문에, 욥은 그들의 심정을 자신의 고통과 맞물려 위로 아닌 위로를 깊게 해주고 싶었던 것 같다.

 

그 증거가 어디에 있는가?

 

23 하나님은 그에게 평안을 주시며 지탱해 주시나 그들의 길을 살피시도다
24 그들은 잠깐 동안 높아졌다가 천대를 받을 것이며 잘려 모아진 곡식 이삭처럼 되리라

 

결국 그들을 폭정으로 다스리던 자들을 하나님의 때에 비로소 심판하시고, 자신과 같은 하나님의 고난의 시간을 통과한 이들을 주님께서 살펴주실 것이라고 말한다. 고통당하는 자들에게는 정말 큰 위로의 말이 아니겠는가?


(중간 넋두리: 오늘 본문은 사실 잠깐 봐서는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 꽤 많다. 보통 큐티를 위해 아침에 일어나 본문을 보고, 10~15분 정도 묵상을 한 후 이 글을 작성을 하는데, 오늘 본문은 연구가 조금 더 필요했음이 느껴진다.)


참 대단하다는 생각이 먼저 든다. 오늘 본문이 세 친구를 향한 욥의 단순한 항변 차원의 말이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는 고통받는 자신을 향한 말이 아니라, 이 땅에 고통받고 있는 자들을 위한 말을 하고 있다고 생각이 되었다.

 

나라면 그럴 수 있을까?

 

쫄딱 망했다. 옆에는 자신을 이해하지 못하는 진지충들이 자신의 친구라고 찾아와서는 3번 연달아 쨉과 어퍼컷, 강펀치를 날리고 있다.

 

정말 자신의 신세가 한탄스럽고, 처량하고, 말그대로 죽고 싶기만 할 것 같다.

 

보통 그런 생각하지 않겠나! 차라리 살아있는 것보다 주님께서 나를 빨리 데려가시는 것이 더 복 같은 그런 마음과 심정.

 

그러나 그 와중에 그것이 자신의 항변이든, 아니면 토로든지 간에 세상의 약자들을 향한 그의 날선 비판과 깊은 위로는 오늘날 오로지 자신의 것만 붙들고 살아가는, 그것이 신앙이든, 삶이든 그 조차도 하나님 앞에서 어찌할 바 모르고 살아가는 목회자와 성도들에게 크게 경종을 울릴만한 말이라는 생각이 든다.

 

너무 돌아보지 못했다. 사실 이것은 다른 이들을 탓하기 이전에 나부터 반성해야 할 일이다. 기도 중에 가정과 나를 위해서는 수시로 기도하면서도, 이 땅의 다른 약자들과 아픔당하는 이들을 위해서는 눈에 뚜렷한 보임이 있을 때에만 기도하고, 마음 아파했었다.

 

그들의 아픔을 정말 하나님의 나라의 아픔으로 대하고, 기도한 적이 있을까? 어쩌면 당면한 그리스도인의 책임과 의무로 여겼던 적이 훨씬 더 많은 것 같다.

 

사람은 고난 당할 때가 돼서야 나도 남도 제대로 볼 수 있다고 한다. 욥은 그러한 사람인 것이다. 오늘도 욥을 통해 참 많이 배우는 아침이다.

 

나의 고통을 심각하게 여기고 생각하고, 아파하는 만큼, 내 주변 사람들의 아픔도 둘러보는 하루가 되길, 그리고 나보다는 그들의 아픔을 위해 하나님께 더 먼저 기도할 수 있는 우리가 되길 소망하고, 기도한다.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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