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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큐티(Q.T)

(욥기 22:1~30)그의 하나님 되어!(매일성경큐티 욥 22장)

by 무지개소년 2023. 11. 28.

그의 하나님 되어!

매일성경큐티 231128 화
찬양: 낮은 곳으로 (유튜브 찬양링크)
성경: 욥기 22:1-30
1 데만 사람 엘리바스가 대답하여 이르되
2 사람이 어찌 하나님께 유익하게 하겠느냐 지혜로운 자도 자기에게 유익할 따름이니라
3 네가 의로운들 전능자에게 무슨 기쁨이 있겠으며 네 행위가 온전한들 그에게 무슨 이익이 되겠느냐
4 하나님이 너를 책망하시며 너를 심문하심이 너의 경건함 때문이냐
5 네 악이 크지 아니하냐 네 죄악이 끝이 없느니라
6 까닭 없이 형제를 볼모로 잡으며 헐벗은 자의 의복을 벗기며
7 목마른 자에게 물을 마시게 하지 아니하며 주린 자에게 음식을 주지 아니하였구나
8 권세 있는 자는 토지를 얻고 존귀한 자는 거기에서 사는구나
9 너는 과부를 빈손으로 돌려보내며 고아의 팔을 꺾는구나
10 그러므로 올무들이 너를 둘러 있고 두려움이 갑자기 너를 엄습하며
11 어둠이 너로 하여금 보지 못하게 하고 홍수가 너를 덮느니라
12 하나님은 높은 하늘에 계시지 아니하냐 보라 우두머리 별이 얼마나 높은가
13 그러나 네 말은 하나님이 무엇을 아시며 흑암 중에서 어찌 심판하실 수 있으랴
14 빽빽한 구름이 그를 가린즉 그가 보지 못하시고 둥근 하늘을 거니실 뿐이라 하는구나
15 네가 악인이 밟던 옛적 길을 지키려느냐
16 그들은 때가 이르기 전에 끊겨 버렸고 그들의 터는 강물로 말미암아 함몰되었느니라
17 그들이 하나님께 말하기를 우리를 떠나소서 하며 또 말하기를 전능자가 우리를 위하여 무엇을 하실 수 있으랴 하였으나
18 하나님이 좋은 것으로 그들의 집에 채우셨느니라 악인의 계획은 나에게서 머니라
19 의인은 보고 기뻐하고 죄 없는 자는 그들을 비웃기를
20 우리의 원수가 망하였고 그들의 남은 것을 불이 삼켰느니라 하리라
21 너는 하나님과 화목하고 평안하라 그리하면 복이 네게 임하리라
22 청하건대 너는 하나님의 입에서 교훈을 받고 하나님의 말씀을 네 마음에 두라
23 네가 만일 전능자에게로 돌아가면 네가 지음을 받을 것이며 또 네 장막에서 불의를 멀리 하리라
24 네 보화를 티끌로 여기고 오빌의 금을 계곡의 돌로 여기라
25 그리하면 전능자가 네 보화가 되시며 네게 고귀한 은이 되시리니
26 이에 네가 전능자를 기뻐하여 하나님께로 얼굴을 들 것이라
27 너는 그에게 기도하겠고 그는 들으실 것이며 너의 서원을 네가 갚으리라
28 네가 무엇을 결정하면 이루어질 것이요 네 길에 빛이 비치리라
29 사람들이 너를 낮추거든 너는 교만했노라고 말하라 하나님은 겸손한 자를 구원하시리라
30 죄 없는 자가 아니라도 건지시리니 네 손이 깨끗함으로 말미암아 건지심을 받으리라

 

 

교만

 

1 데만 사람 엘리바스가 대답하여 이르되
2 사람이 어찌 하나님께 유익하게 하겠느냐 지혜로운 자도 자기에게 유익할 따름이니라

 

사실 오늘 말씀은 엘리바스의 첫 말부터 이미 어긋나기 시작했다.

 

무엇이 하나님 앞에서 교만일까?

 

하나님의 마음을 사람의 생각으로 재단하는 것이 곧 '교만'인 것이다.

 

그리고 오늘 본문에서 엘리바스의 교만은 계속 목격된다.

 

5 네 악이 크지 아니하냐 네 죄악이 끝이 없느니라
6 까닭 없이 형제를 볼모로 잡으며 헐벗은 자의 의복을 벗기며
7 목마른 자에게 물을 마시게 하지 아니하며 주린 자에게 음식을 주지 아니하였구나
8 권세 있는 자는 토지를 얻고 존귀한 자는 거기에서 사는구나
9 너는 과부를 빈손으로 돌려보내며 고아의 팔을 꺾는구나

 

도대체 엘리바스의 이 교만함은 어디에서 비롯된 것일까?

 

마치 그가 욥의 전 생애를 다 꿰고 있다는 듯, 그는 추측이 아닌 확신에 찬 말들을 내뱉는다.

 

그가 하는 이야기가 무엇인가?

 

쉽게 말해 욥은 사회적인 약자들을 이유없이 괴롭혔다. 그들의 것을 빼앗았고, 자신의 권세를 이용하여 그들의 위에 군림하는 생활을 유지했다. 과부와 고아들을 까닭 없이 핍박할 뿐 아니라, 그들의 삶을 유린했다.

 

그렇기 때문에 그 죄로 인하여 지금 그는 하나님께 심한 고난과 고통의 형벌을 받고 있다는 것이다.

 

어떻게 그는 욥의 삶을 이렇게까지 단정지을 수 있었던 것일까? 

 

그의 눈에 지금 보이는 것은 무엇이기 때문에? 오로지 '자신' 밖에 없기 때문이다.

 

오로지 그의 마음에는 자신의 '생각', 자신의 '뜻', 내가 믿는 '말씀', 내가 말하는 '주장'만이 '성경'이고, 곧 '하나님'인 것이다.

 

그렇기에 욥은 그가 어떻게 살아왔건간에 지금 고난을 받고 있으니까 '죄인'이어야 하고, 왜 '죄인'인가 보았더니 그가 과거 부자였는데 지금 쫄딱 망하게 된 것은, 그가 부자일 때 약한 자들을 괴롭히고, 학대했기 때문인 것이 분명하다는 것이다.

 

완벽한 억측이고, 거짓 논리이다.

 

13 그러나 네 말은 하나님이 무엇을 아시며 흑암 중에서 어찌 심판하실 수 있으랴
14 빽빽한 구름이 그를 가린즉 그가 보지 못하시고 둥근 하늘을 거니실 뿐이라 하는구나

 

 

진짜 엘리바스 따봉이다!

이제 하다 하다 욥이 그렇게 할 수 있었던 근거까지 자신이 안다고 한다.

 

욥이 이렇게 부자로써 약한 자들을 아무렇지도 않게 괴롭힐 수 있었던 이유는 욥은 얼마든지 하나님쯤이야 뒷방 노인네처럼 만들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란다.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릴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에 쉽게 죄를 지었다는 것이다.


사실 제 3자인 나도 그의 교만함에 분노가 치밀어 오르는데, 앞에서 이 말을 듣는 욥은 어떠했겠는가!

 

몸은 온 사방이 아프고, 가렵고, 마음은 이미 부서질 대로 부서졌는데, 친한 친구란 작자들이 내게 하는 이 말들은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정말 침통했을 것 같다. 그리고 처음에는 화가 나기도 했지만, 욥이라면 점점 엘리바스의 인생이 불쌍하다고 여기지 않았을까?


그런 욥의 생각을 알리없는 엘리바스는 이제 교만의 쐐기를 박는다.

 

21 너는 하나님과 화목하고 평안하라 그리하면 복이 네게 임하리라
22 청하건대 너는 하나님의 입에서 교훈을 받고 하나님의 말씀을 네 마음에 두라
23 네가 만일 전능자에게로 돌아가면 네가 지음을 받을 것이며 또 네 장막에서 불의를 멀리 하리라
24 네 보화를 티끌로 여기고 오빌의 금을 계곡의 돌로 여기라
25 그리하면 전능자가 네 보화가 되시며 네게 고귀한 은이 되시리니
26 이에 네가 전능자를 기뻐하여 하나님께로 얼굴을 들 것이라

 

이건 또 무슨 교만의 말들이란 말인가? 하나님이 들으시면 엄청 좋아하실 것 같은 말만 골라하는 엘리바스다.

 

그의 말을 요약해보면, 욥에게 이제 그만 세상을 버리고 하나님께 돌아오라는 말이다. 하나님께 겸손히 복종하고, 죄를 뉘우치고, 순종하는 삶을 살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30 죄 없는 자가 아니라도 건지시리니 네 손이 깨끗함으로 말미암아 건지심을 받으리라

 

와 끝까지.... 대단하다. 진짜 하나님이 납셨다. 

 

이제 하다하다 하나님도 사탄에게 '의인'이라 자랑한 욥을 천하에 몹쓸 죄인으로 만들어 놓더니.......... 더 이상 할 말이 없다.


그런데 결코 그의 말을 지켜보며, 마냥 화만 내서는 안된다는 것을 알고 있는가?

 

엘리바스는 아무리 '욥 = 현재 고난 = 그러므로 죄인'이라는 공식을 믿고 있다고 해도, 어떻게 그가 '죄인'된 근거를 '부자'라고 말하는 것일까?

 

그리고 그것을 본 적도 없는데, 누구보다 오랜 세월 지켜본 것처럼 말하는 것일까?

 

우리도 곱씹어보면 그런 적이 꽤 많지 않은가?

 

보이는 것만 보고, 사람을 성급하게 평가하고, 판단하고 있지 않은가? 그가 어떻게 살아왔는지도 모르면서 현재 그가 하는 행동과 말만 보고, 그를 심판하고 있지 않은가?

 

오늘도 그럴지도 모른다. 지나가는 어떤 사람을 보며, TV에 나오는 정치인이나 연예인을 보며, 같이 일하는 남들이 욕하는 동료를 보며, 우리는 오늘도 그의 하나님이 되어 그의 살아온 내력을 추측이 아닌 확신을 가지고 말하며, 그가 그런 사람이라고 규정짓는 것도 서슴지 않을 것이다.

 

교회라고 다를까? 아니다. 어쩌면 교회가 세상보다 더 한 심판자들의 집합소가 되는 경우를 여러번 경험했고, 또 내가 그러한 심판자가 된 적도 많다.

 

깊이 반성해야 한다. 엘리바스를 보면서 우리가 깨달을 것은 한 가지다.

 

'엘리바스'의 '교만'이 오늘 우리의 '교만'이 되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오늘도 하나님 되어 보이는 것으로 사람을 정죄하는 우를 범하지 말고, 또 그런 집단에 가담하지 말고, 오히려 그를 위해 기도해 주고, 그의 진면목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는 한 영혼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예수님의 사람으로 살아가길 소망한다.

 

그리고 가능하다면 제발 자존심 버리고, 잘못된 정죄와 심판의 악행을 선으로 갚을 수 있는, 그에게 찾아가 진실되이 고백하고, 용서를 구할 수 있는 은혜도 주어지길 간절히 기도하고, 소망한다.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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