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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큐티(Q.T)

(욥기 18:1~21)참된 뉘우침과 용서(매일성경큐티 욥18장)

by 무지개소년 2023. 11. 23.

참된 뉘우침과 용서

매일성경큐티 231123 목
찬양: 주 안에 우린 하나 (유튜브 찬양링크)
성경: 욥기 18:1~21
1 수아 사람 빌닷이 대답하여 이르되
2 너희가 어느 때에 가서 말의 끝을 맺겠느냐 깨달으라 그 후에야 우리가 말하리라
3 어찌하여 우리를 짐승으로 여기며 부정하게 보느냐
4 울분을 터뜨리며 자기 자신을 찢는 사람아 너 때문에 땅이 버림을 받겠느냐 바위가 그 자리에서 옮겨지겠느냐
5 악인의 빛은 꺼지고 그의 불꽃은 빛나지 않을 것이요
6 그의 장막 안의 빛은 어두워지고 그 위의 등불은 꺼질 것이요
7 그의 활기찬 걸음이 피곤하여지고 그가 마련한 꾀에 스스로 빠질 것이니
8 이는 그의 발이 그물에 빠지고 올가미에 걸려들며
9 그의 발 뒤꿈치는 덫에 치이고 그의 몸은 올무에 얽힐 것이며
10 그를 잡을 덫이 땅에 숨겨져 있고 그를 빠뜨릴 함정이 길목에 있으며
11 무서운 것이 사방에서 그를 놀라게 하고 그 뒤를 쫓아갈 것이며
12 그의 힘은 기근으로 말미암아 쇠하고 그 곁에는 재앙이 기다릴 것이며
13 질병이 그의 피부를 삼키리니 곧 사망의 장자가 그의 지체를 먹을 것이며
14 그가 의지하던 것들이 장막에서 뽑히며 그는 공포의 왕에게로 잡혀가고
15 그에게 속하지 않은 자가 그의 장막에 거하리니 유황이 그의 처소에 뿌려질 것이며
16 밑으로 그의 뿌리가 마르고 위로는 그의 가지가 시들 것이며
17 그를 기념함이 땅에서 사라지고 거리에서는 그의 이름이 전해지지 않을 것이며
18 그는 광명으로부터 흑암으로 쫓겨 들어가며 세상에서 쫓겨날 것이며
19 그는 그의 백성 가운데 후손도 없고 후예도 없을 것이며 그가 거하던 곳에는 남은 자가 한 사람도 없을 것이라
20 그의 운명에 서쪽에서 오는 자와 동쪽에서 오는 자가 깜짝 놀라리라
21 참으로 불의한 자의 집이 이러하고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자의 처소도 이러하니라

 

참된뉘우침과용서
출처_그라폴리오

 

 

새 번역 18:2 너는 언제 입을 다물 테냐? 제발 좀 이제라도 눈치를 채고서 말을 그치면, 우리가 말을 할 수 있겠다.

 

욥의 세 친구는 끊임없이 욥을 죄인으로 몰고 갔다. 그럼에도 욥은 요지부동이었다.

 

그는 세 친구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자신의 무죄만을 하나님 앞에서 주장할 뿐이었다.

 

그런 욥을 향하여 빌닷은 더 이상 참을 수 없다는 듯 소리친다. "그 입 좀 다물어라"

 

왜 이렇게 빌닷은 화가 난 것일까?

 

빌닷의 논리는 이전 8장과 같았다. 공의로우신 하나님께서 통치하시는 세상은 도덕적으로, 윤리적으로 완벽한 세상이라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현재 욥이 받는 고난은, 그가 고통당하고 있다는 것은 무엇보다 욥이 악인이라는 명확한 증거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빌닷이 볼 때에 그는 지금 빌어도 모자란 악인일 뿐이다. 그런데 그는 그렇지 못했다. 끊임없이 자신의 결백만을 주장할 뿐, 어떤 뉘우침도, 어떤 용서도 구하고 있지 았았다.

 

그러자 빌닷은 이제 친구 욥이 아닌, 악인 욥에게 스스로 심판자가 되어 매우 과격하고, 원색적인 저주를 쏟아붓기 시작한다.

 

그가 어떻게 욥을 저주하는가?

 

5 악인의 빛은 꺼지고 그의 불꽃은 빛나지 않을 것이요
6 그의 장막 안의 빛은 어두워지고 그 위의 등불은 꺼질 것이요

 

빛과 등불은 무엇인가? 하나님 앞에서 의인이 누리는 번영과 축복의 상징이 바로 빛과 등불이다. 그런데 그 빛과 등불이 빛나지 않고, 꺼진다고 한다. 즉 악인의 결과는 번영과 축복이 사라진 저주와 멸망뿐이라는 것이다.

 

7 그의 활기찬 걸음이 피곤하여지고 그가 마련한 꾀에 스스로 빠질 것이니
8 이는 그의 발이 그물에 빠지고 올가미에 걸려들며
9 그의 발 뒤꿈치는 덫에 치이고 그의 몸은 올무에 얽힐 것이며
10 그를 잡을 덫이 땅에 숨겨져 있고 그를 빠뜨릴 함정이 길목에 있으며

 

사냥꾼이 함정과 그물을 설치하는 것은 짐승을 잡기 위함이다. 그런데 그 함정과 올무에 도리어 사냥꾼 자신이 잡힌다. 이 얼마나 어리석고, 우둔한 자인가? 자신의 결백을 주장하는 욥의 모습이 그런 악인과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11 무서운 것이 사방에서 그를 놀라게 하고 그 뒤를 쫓아갈 것이며
12 그의 힘은 기근으로 말미암아 쇠하고 그 곁에는 재앙이 기다릴 것이며
13 질병이 그의 피부를 삼키리니 곧 사망의 장자가 그의 지체를 먹을 것이며
14 그가 의지하던 것들이 장막에서 뽑히며 그는 공포의 왕에게로 잡혀가고

 

또 빌닷은 욥을 향하여 어떤 저주를 하는가?

 

13절을 보면, 이것은 정말 큰 저주다. 욥은 지금 온몸에 악성 피부병으로 고통받고 있는 중이었다. 그런 그에게 악인은 공포의 왕에게 잡혀갈 것인데, 그전에 어떻게 되어서?

 

질병이 그의 피부를 삼켜진 다음에. 그러니까 욥의 지금 모습은 이미 더 이상 씻을 수 없는 죄로 인해 지옥으로 떨어지기 일보직전의 모습과 같다는 것이다.

 

15 그에게 속하지 않은 자가 그의 장막에 거하리니 유황이 그의 처소에 뿌려질 것이며
16 밑으로 그의 뿌리가 마르고 위로는 그의 가지가 시들 것이며
17 그를 기념함이 땅에서 사라지고 거리에서는 그의 이름이 전해지지 않을 것이며
18 그는 광명으로부터 흑암으로 쫓겨 들어가며 세상에서 쫓겨날 것이며
19 그는 그의 백성 가운데 후손도 없고 후예도 없을 것이며 그가 거하던 곳에는 남은 자가 한 사람도 없을 것이라

 

어떻게 그래도 친구라는 이가 자신의 종교관, 윤리관과 다르다 하여 이토록 심한 저주와 욕설을 내뱉을 수 있을까? 이제는 정말 과거에 '친한 사이'는 맞았는지 의심이 된다.

 

17절의 모습이 얼마나 슬프고, 처량한가? 욥의 모습이 아무도 기억하지 못하는 자, 어떤 이름도 남지 않은 사람의 모습이란다. 그리고 19절 남겨진 후손도, 후예도 없다.

 

그야말로 집안이 쫄딱 망하게 된다. 멸족당한다는 것이다.

 

사람의 저주에 끝이 있다면 이 저주야 말로 끝이다. 이건 아무리 하나님의 공의가 옳다 하여도 해서는 안 되는 말이 아닐까.

 

빌닷은 이제 마지막으로 욥의 최후를 이렇게 말한다.

 

21 참으로 불의한 자의 집이 이러하고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자의 처소도 이러하니라

 

빌닷이 말하는 욥의 최후가 너무 불행한 자이지 않는가?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자라... 

 

오늘 빌닷의 주장이 왜 그릇되었는가?

 

하나님이 정말 그런 분이실까? 그렇지 않다. 하나님은 결코 그러한 분이 아니시다.

 

오히려 그분은 씻지 못할 죄를 지은 죄인을, 아니 그 무엇으로도 용서하지 못할 죄인들을 구원하시기 위해 자신의 아들, 독생자 예수그리스도를 보내신 사랑의 하나님이시라는 것이다.

 

그 하나님 앞에서 인간이 갖고 있는 종교적 윤리관이 정의를 부르짖을 수 있을까? 사람이 만든 법과 질서가 죄를 재단할 수 있을까? 

 

이 사회의 법과 규범, 그리고 질서조차도 다른 이에게 피해를 준 경우, 공동체의 질서에 큰 해악을 끼친 경우에 한해서만 심판하게 되어있다.

 

그런데 욥이 친구들에게 무슨 피해를 끼쳤던가? 욥으로 인하여 세상에 평화가 깨지고, 악이 창궐했는가? 

 

전혀 그렇지 않다. 지금 욥은 오로지 자신의 결백을 주장할 뿐이었다. 그리고 그가 한 유일한 잘못을 찾으라고 한다면, 고통 중에 하나님께 부르짖음이 과했다는 것과 친구들의 말을 들어주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것이 그를 정말 악인으로 규정지어서, 저 스올의 구렁텅이로 내몰 정도일까?

 

하나님조차 죄인을 그렇게 대하지 않으셨는데, 어찌 사람이 사람을 그렇게 대할 수 있다는 말인가?

 

이것이야말로 그들이 말하는 이치에 맞지 않은 말이다.

 

그런데 우리는 다를까? 우리도 간혹 빌닷같은 때가 있다. 아니 생각보다 더 많다.

 

내가 갖고 있는 지식과 내가 살아왔던 경험으로, 우리가 과거로부터 지녔던 신앙의 전통과 법도를 가지고, 다른 사람의 신앙과 행위를 판단하고, 심판한다. 그리고 대중 앞에서 공개처형까지 단행하기도 한다.

 

하나님조차 하지 않으신 일을 하면서도 스스로 이 일은 하나님의 정의를 세우는 일이라고 착각하고, 어떤 때에는 이것이야말로 옳은 일이라고 부르짖는다.

 

정말 그럴까? 그렇지 않다.

 

혹시 그런 일을 행하였는가? 가서 잘못을 고하고, 진정 용서를 구할 수 있는 진정한 하나님의 사람들이 됐으면 좋겠다. 

 

하나님 앞에서 지나간 죄를 고백하고, 용서를 구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여전히 자신으로 인하여 고통받았던 이들에게는 참된 사과와 용서를 구하지 못한다.

 

자존심을 내려놓지 못하는 죄의 고백은 진정한 뉘우침이 아니다. 오늘 이 본문을 큐티하는 이에게 담대한 하나님의 용기가 주어지길 소망한다.

 

그래서 하나님 앞에서 그러한 자신의 죄를 뉘우치고, 자신으로 인해서 심적으로 큰 고통을 겪었을 형제와 자매를 찾아가 진정으로 용서를 구하며 서로 화평한 자로 살아가기를, 예수님의 사랑으로 기뻐하기를 진심으로 기도한다.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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