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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큐티(Q.T)

(욥기 16:18~17:16)참된 위로와 회복(매일성경큐티 욥16 17장)

by 무지개소년 2023. 11. 22.

참된 위로와 회복

매일성경큐티 231122 수
찬양: 힘들고 지쳐 (유튜브 찬양링크)
성경: 욥기 16:18-17:16
18 땅아 내 피를 가리지 말라 나의 부르짖음이 쉴 자리를 잡지 못하게 하라
19 지금 나의 증인이 하늘에 계시고 나의 중보자가 높은 데 계시니라
20 나의 친구는 나를 조롱하고 내 눈은 하나님을 향하여 눈물을 흘리니
21 사람과 하나님 사이에와 인자와 그 이웃 사이에 중재하시기를 원하노니
22 수년이 지나면 나는 돌아오지 못할 길로 갈 것임이니라

욥기 17장
1 나의 기운이 쇠하였으며 나의 날이 다하였고 무덤이 나를 위하여 준비되었구나
2 나를 조롱하는 자들이 나와 함께 있으므로 내 눈이 그들의 충동함을 항상 보는구나
3 청하건대 나에게 담보물을 주소서 나의 손을 잡아 줄 자가 누구리이까
4 주께서 그들의 마음을 가리어 깨닫지 못하게 하셨사오니 그들을 높이지 마소서
5 보상을 얻으려고 친구를 비난하는 자는 그의 자손들의 눈이 멀게 되리라
6 하나님이 나를 백성의 속담거리가 되게 하시니 그들이 내 얼굴에 침을 뱉는구나
7 내 눈은 근심 때문에 어두워지고 나의 온 지체는 그림자 같구나
8 정직한 자는 이로 말미암아 놀라고 죄 없는 자는 경건하지 못한 자 때문에 분을 내나니
9 그러므로 의인은 그 길을 꾸준히 가고 손이 깨끗한 자는 점점 힘을 얻느니라
10 너희는 모두 다시 올지니라 내가 너희 중에서 지혜자를 찾을 수 없느니라
11 나의 날이 지나갔고 내 계획, 내 마음의 소원이 다 끊어졌구나
12 그들은 밤으로 낮을 삼고 빛 앞에서 어둠이 가깝다 하는구나
13 내가 스올이 내 집이 되기를 희망하여 내 침상을 흑암에 펴놓으매
14 무덤에게 너는 내 아버지라, 구더기에게 너는 내 어머니, 내 자매라 할지라도
15 나의 희망이 어디 있으며 나의 희망을 누가 보겠느냐
16 우리가 흙 속에서 쉴 때에는 희망이 스올의 문으로 내려갈 뿐이니라

 

 

위로와회복
일러스트_남레아

 

스가랴 4:7 큰 산아 네가 무엇이냐 네가 스룹바벨 앞에서 평지가 되리라

 

11월 1~21일, 2023년 다니엘 기도회는 큰 은혜의 시간이었다. 시간시간마다 주어지는 하나님의 말씀과 간증을 통하여 지치고 상한 마음에 위로를 받았고, 또 갈바를 알지 못했던 심령에 새로운 도전을 허락해 주셨다.

 

2023년 우리의 일상은 그야말로 '혼란'이고, '혼돈'이다. 정치, 사회, 문화, 경제, 외교, 안보 등 그 어디를 둘러봐도 답을 찾을 수 없다. 어느 한 구석 안정되고 평안하지 못하다. 이러한 때에 우리는 무엇을 믿고, 누구를 따라야 할까?

 

마태복음 11:28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우리 주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 은혜가 아니고서 우리가 의지할 것은 없다. 오늘도 불안하고, 지친 모든 심령들이 주께 돌아오는 은혜를 우리 삶 가운데 함께 누리기를 소망한다. 갓블유~!


 

16:18 땅아 내 피를 가리지 말라 나의 부르짖음이 쉴 자리를 잡지 못하게 하라
17:1 나의 기운이 쇠하였으며 나의 날이 다하였고 무덤이 나를 위하여 준비되었구나

 

힘들 때가 있다. 아니 힘이 날 때보다 지칠 때가 더 많고, 문제없을 때보다 문제 있을 때가 더 많은 것이 우리 인생이다. 그렇기에 우리 인생에는 '위로'가 필요하다.

 

16:20 나의 친구는 나를 조롱하고 
17:2 나를 조롱하는 자들이 나와 함께 있으므로 내 눈이 그들의 충동함을 항상 보는구나

 

겪어본 사람만이 안다. 이 고통, 이 아픔!

 

진정한 위로가 무엇일까?

 

어떤 말도 하지 않고, 가만히 손 내밀어 주는 것, 그리고 손 잡아 주는 것. 끝까지 이야기에 경청해 주는 것. 그리고 끝까지 힘내라고 토닥여주는 것. 그것이 바로 위로다.

 

사실 위로에는 어떤 말도 필요치 않다. 어떤 말이 들리겠는가!

 

욥의 세 친구도 처음에는 그런 순수한 마음의 위로를 하고 싶었다. 하지만 이내 그들이 갖고 있던 '고난은 죄의 결과'라는 부동의 교리를 내세워 오히려 욥을 조롱하고 핍박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그들은 그것을 '위로'라고 여겼다는 것이 더 소름 끼치게 무서운 것이다.

 

욥이 그러한 그들을 향해 뭐라고 표현하는가?

 

16:2 이런 말은 내가 많이 들었나니 너희는 다 재난을 주는 위로자들이로구나

 

얼마나 가슴 아픈 말인가? '재난을 주는 위로자'라는 것이다.

 

오늘 우리는 내 주변의 고통받는 이들에게 '재난을 주는 위로자'인가? 아니면 '따뜻한 하나님의 위로자'인가?

 

이것을 분별해내지 못한다면, 우리는 이 땅에서 아무리 전도를 부르짖고, 선교를 부르짖는다 할지라도 어떤 열매도 누릴 수 없을 것이다.

 

17:3 청하건대 나에게 담보물을 주소서 나의 손을 잡아 줄 자가 누구리이까

 

결국 우리의 위로자는, 아니 우리의 회복자는 사람이 아니다. 하나님이시고, 예수그리스도 밖에 없다.

 

이것을 논리적으로 설명할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이것을 논리로 설명될 수 없는 이유는 우리의 회복은 천지창조나 구원 같은 진리의 개념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이 진리는 오직 기도해 본 자만이 누릴 수 있는 유일한 기쁨이다.

 

오늘 위로받을 일이 있는가? 그러면 사람에게 호소하지 말고, 하나님께 기도해 보자.

 

주가 우리의 상한 심령을 위로하시사 회복시키시고, 나를 조롱하고, 핍박하는 이들로부터 지키실 것이다.

 

오늘도 이 하나님을 만나는 은혜가 우리 모두에게 있기를 소망한다.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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