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드시'
매일성경큐티 231030 월
찬양: 하나님의 약속 (유튜브 찬양링크)
성경: 열왕기상 22:29-40
29 이스라엘의 왕과 유다의 여호사밧 왕이 길르앗 라못으로 올라가니라
30 이스라엘의 왕이 여호사밧에게 이르되 나는 변장하고 전쟁터로 들어가려 하노니 당신은 왕복을 입으소서 하고 이스라엘의 왕이 변장하고 전쟁터로 들어가니라
31 아람 왕이 그의 병거의 지휘관 삼십이 명에게 명령하여 이르기를 너희는 작은 자나 큰 자와 더불어 싸우지 말고 오직 이스라엘 왕과 싸우라 한지라
32 병거의 지휘관들이 여호사밧을 보고 그들이 이르되 이가 틀림없이 이스라엘의 왕이라 하고 돌이켜 그와 싸우려 한즉 여호사밧이 소리를 지르는지라
33 병거의 지휘관들이 그가 이스라엘의 왕이 아님을 보고 쫓기를 그치고 돌이켰더라
34 한 사람이 무심코 활을 당겨 이스라엘 왕의 갑옷 솔기를 맞힌지라 왕이 그 병거 모는 자에게 이르되 내가 부상하였으니 네 손을 돌려 내가 전쟁터에서 나가게 하라 하였으나
35 이 날에 전쟁이 맹렬하였으므로 왕이 병거 가운데에 붙들려 서서 아람 사람을 막다가 저녁에 이르러 죽었는데 상처의 피가 흘러 병거 바닥에 고였더라
36 해가 질 녘에 진중에서 외치는 소리가 있어 이르되 각기 성읍으로 또는 각기 본향으로 가라 하더라
37 왕이 이미 죽으매 그의 시체를 메어 사마리아에 이르러 왕을 사마리아에 장사하니라
38 그 병거를 사마리아 못에서 씻으매 개들이 그의 피를 핥았으니 여호와께서 하신 말씀과 같이 되었더라 거기는 창기들이 목욕하는 곳이었더라
39 아합의 남은 행적과 그가 행한 모든 일과 그가 건축한 상아궁과 그가 건축한 모든 성읍은 이스라엘 왕 역대지략에 기록되지 아니하였느냐
40 아합이 그의 조상들과 함께 자매 그의 아들 아하시야가 대신하여 왕이 되니라
30 이스라엘의 왕이 여호사밧에게 이르되 나는 변장하고 전쟁터로 들어가려 하노니 당신은 왕복을 입으소서 하고 이스라엘의 왕이 변장하고 전쟁터로 들어가니라
성경은 '언약'과 '성취'라는 우리 삶의 표준을 보여준다.
하나님의 백성이 살아갈 '표준'.
그것은 '하나님의 약속'이 우리 삶에 '반드시 이뤄질 성취'로 믿고, 그 말씀을 따라 살아가는 것이다.
'선진들은 이로써 증거를 얻었느니라'
그리고 그 말씀을 따랐던 이들은 누구나 그 증거, 언약의 성취를 맛봤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증거를 얻었다는 것이 꼭 말씀을 따랐던 순결한 이들을 위한 말씀만은 아니다.
왜냐하면 오늘 그 말씀을 따르지 않았던 아합도 결국 그 약속의 성취, 증거를 우리에게 보였기 때문이다.
결국 하나님의 말씀은 언제나 성취된다.
우리는 그것을 절대 잊으면 안된다. 그리고 그 말씀의 엄중함 역시 잊어서는 안된다.
하나님의 말씀은 반드시 성취된다.
그럼에도 참 사람이 간사하고, 교묘한 것이 아합과 같을 때가 있다는 것이다.
피할 수 있을 것만 같다. 왜냐하면 이제껏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물론 일말의 거리낌은 있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하자면 일종의 꺼림직한 마음은 존재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아합은 자신이 분장까지 하고, 억지 대역까지 세우면서, 또 위기에 처하자 그곳을 빠져 나올 수 있다는 가능성까지 염두해 두었다.
모든 것은 완벽해보였다. 누구도 알아차릴 수 없으리라. 내가 어떻게 했는데...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의 노력을 기울여, 자신이 동원할 수 있는 최고의 권력을 가지고 그 꺼림직한 불편한 마음을 지우면 문제될 것이 없다고 생각됐다.
그런데 정말 그렇던가? 결코 아니었다.
그 누구도 하나님 말씀의 약속과 성취에서 벗어날 수는 없다는 것을 오히려 우리에게 그 증거로 보여주게 된다.
그 수없이 많은 경우의 수를 뚫고 하나님은 어떤 식으로든, 아니 처음부터 그 '약속의 성취'를 결정하신 순간부터 더 이상 어떤 인간의 경우의 수는 더 이상 하나님께 어떤 방해도 되지 않았다.
38 그 병거를 사마리아 못에서 씻으매 개들이 그의 피를 핥았으니 여호와께서 하신 말씀과 같이 되었더라 거기는 창기들이 목욕하는 곳이었더라
다른 말이 필요없다.
오늘 우리에게 해주신 하나님의 약속들이 참 친절하게도 성경에 기록되어 있다. 그리고 그 성경에 약속된 말씀은 반드시 우리의 삶에서 성취된다. 반드시 우리가 존재하는 이 땅에서. 하나님의 시간에.
제주에 오고나서 가정예배를 드리던 중, 교회학교를 그리워하는 아이들을 위해 읍내에 있는 교회를 찾았었다. 그리고 아이들만 보내기 송구하여, 주일 2부 예배를 몇달간 함께 참석했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우리가 목사 내외인 것을 교회 담임목사님께서 아시고, 어제 저녁 식사에 초대해주셨다.
목회와 우리 신앙, 사명에 관한 여러 이야기를 나눴다.
그 가운데 목사님의 한 말씀이 내 가슴을 쳤다.
"하나님 앞에서는 바보가 되려고 한다.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으려고 한다"
그렇다. 그것이 사실 정답이다. 우리 하나님 앞에서 우리는 그렇게 사는 것이 정답이다.
어떤 상황이 와도, 어떤 좌절이 와도, 어떤 시대가 와도, 우리가 할 일은 하나 뿐이다.
신실하신 하나님 약속 붙잡고, 때를 얻든지 못얻든지 하나님이 말씀하신 내 자리를 지키는 것.
누가 뭐라고해도, 시대가 어떤 예배와 어떤 신앙을 강요하는지 몰라도. 난 내 자리를 정말 미련하게 지켜야 한다는 것이다.
왜? 하나님의 약속은 반드시 성취될 '증거'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보다 자꾸 세상의 풍속을 따르는 것이 더 현명해보인다.
왜냐하면 세상의 결과는 항상 하나님의 열매보다 더 확실하게 우리에게 보여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말 그럴까?
세상의 결과? 처음엔 그럴듯해 보이지만, 이내 그 결과가 더 큰 독이 되어 돌아옴을 한국교회와 성도들은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그 가운데 하나가 '주일 성수'의 무너짐이다.
말은 그럴듯했다. 논리도 그럴싸했다. 그리고 처음에 모두가 얼마나 좋았던가!
그런데 그 수많은 논리와 주장이 정말 하나님의 편에서 맞는 것이었을까? 아니면 사람의 편에서 옳았던 것일까?
이 부분에 대해서 말씀이 무엇이라고 하는지 묵상할 수 있는 하루가 되었으면 좋겠다.
안식일을 기념하고, 기억하고, 지키라는 의미가 과연 어떤 의미일까?
복있는 사람은 어떤 사람인지?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이라는 말이 어떤 말인지?
깊이 묵상하는 가운데, 오늘 우리는 그 말씀을 어떻게 하는 것이 더 분명한 일인지 깨닫는 하루가 되기를 소망한다.
분명한 것은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약속'은 반드시 '성취'된다는 것이다. 샬롬!
* 처음에는 그저 개인 묵상을 위해 올렸던 큐티인데, 지금은 그래도 꽤 많은 분들(많을 때는 300여분)이 함께 큐티를 나누고 있기 때문에 부득불 개인 일정을 공지를 통해 올리고 있습니다.
저희 가족은 11월 1~21일까지 다니엘 기도회를 영상으로 참여합니다. 이 기간동안에는 큐티를 함께 나누지 않고, 개인 묵상으로 진행됩니다.
내일 10월 31일까지 큐티는 그대로 진행하고, 11월 22일 수요일에 다시 큐티 시작합니다. 착오없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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