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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큐티(Q.T)

(욥기 38:1-18)기다림의 자유(매일성경큐티 욥 38장)

by 무지개소년 2023. 12. 15.

기다림의 자유

매일성경큐티 231215 금
찬양: 오직 주만이, 보라 너희는 두려워 말고(유튜브 찬양링크)
성경: 욥 38:1~18
1 그때에 여호와께서 폭풍우 가운데에서 욥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2 무지한 말로 생각을 어둡게 하는 자가 누구냐
3 너는 대장부처럼 허리를 묶고 내가 네게 묻는 것을 대답할지니라
4 내가 땅의 기초를 놓을 때에 네가 어디 있었느냐 네가 깨달아 알았거든 말할지니라
5 누가 그것의 도량법을 정하였는지, 누가 그 줄을 그것의 위에 띄웠는지 네가 아느냐
6 그것의 주추는 무엇 위에 세웠으며 그 모퉁잇돌을 누가 놓았느냐
7 그때에 새벽 별들이 기뻐 노래하며 하나님의 아들들이 다 기뻐 소리를 질렀느니라
8 바다가 그 모태에서 터져 나올 때에 문으로 그것을 가둔 자가 누구냐
9 그 때에 내가 구름으로 그 옷을 만들고 흑암으로 그 강보를 만들고
10 한계를 정하여 문빗장을 지르고
11 이르기를 네가 여기까지 오고 더 넘어가지 못하리니 네 높은 파도가 여기서 그칠지니라 하였노라
12 네가 너의 날에 아침에게 명령하였느냐 새벽에게 그 자리를 일러 주었느냐
13 그것으로 땅 끝을 붙잡고 악한 자들을 그 땅에서 떨쳐 버린 일이 있었느냐
14 땅이 변하여 진흙에 인친 것 같이 되었고 그들은 옷 같이 나타나되
15 악인에게는 그 빛이 차단되고 그들의 높이 든 팔이 꺾이느니라
16 네가 바다의 샘에 들어갔었느냐 깊은 물 밑으로 걸어 다녀 보았느냐
17 사망의 문이 네게 나타났느냐 사망의 그늘진 문을 네가 보았느냐
18 땅의 너비를 네가 측량할 수 있느냐 네가 그 모든 것들을 다 알거든 말할지니라

 

 

기다림의자유

 

 

1 그 때에 여호와께서 폭풍우 가운데에서 욥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2 무지한 말로 생각을 어둡게 하는 자가 누구냐
3 너는 대장부처럼 허리를 묶고 내가 네게 묻는 것을 대답할지니라

 

욥이 그렇게도 고대하던 순간이 찾아왔다. 이제 욥과 하나님 사이에는 세 친구도, 엘리후도 없다. 오직 욥에게 응답하실 하나님만이 계시다. 

 

그런데 웬일인지 하나님은 욥이 그동안 던졌던 수많은 질문에 대답하지 않으시고, 도리어 욥에게 질문을 하신다.

 

첫 번째 질문이 무엇인가? 

 

"너는 누구기에 잘 알지도 못하면서 하나님의 다스리심, 통치하심을 판단하고, 의심하는 것이냐?"

 

사실 이것은 질문이 아니다. 일종의 꾸짖음이다. 그러면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신다.

 

4 내가 땅의 기초를 놓을 때에 네가 어디 있었느냐 네가 깨달아 알았거든 말할지니라
5 누가 그것의 도량법을 정하였는지, 누가 그 줄을 그것의 위에 띄웠는지 네가 아느냐
6 그것의 주추는 무엇 위에 세웠으며 그 모퉁잇돌을 누가 놓았느냐

 

눈치챘는가? 오늘 본문은 사실 욥을 향한 하나님의 질문처럼 보이지만, 이것은 질문이 아닌 훈계이자, 새로운 하나님의 교육인 것이다.

 

"네가 어디 있었느냐?"

당연히 그곳에 욥은 없었다. 

 

"네가 아느냐"

당연히 그것에 대해 욥은 전혀 알지 못했다.

 

이후에도 마찬가지다.

 

8~11절에서 하나님은 바다의 경계를 설정하시고, 파도의 경계를 정하시는 분이 누구신지, 그 바다의 모든 힘을 다스리시는 분이 누구신지 알라고 말씀하신다.

 

12~15절에서는 아침의 빛과 새벽의 시간에 관하여, 16~18절에서는 사람이 인식할 수 없는 경계의 끝에 대하여 아느냐고 말씀하신다.

 

욥이 이 모든 하나님의 질문에 대답할 수 있을까?

 

nothing!

 

오늘 하나님이 욥에게 말씀하시는 바는 간단하다. 왜 너만 옳고, 너만 정의롭다고 계속해서 주장하느냐. 즉 오늘 본문의 핵심은 무엇이 옳고 그른지 왜 욥 스스로 판단하는가이다.

 

결코 우리는 그 누구도 스스로 정의와 공의에 대하여, 이 세상의 선과 악의 문제에 관하여 판단하고 논할 수 있는 지혜가 없다. 오직 하나님만이 그 신비를 우리에게 보여주실 뿐이라는 것이다.


욥의 모습을 묵상하다가 예수님의 십자가를 묵상하게 됐다.

 

예수님은 욥보다 훨씬 억울하고, 분하고, 부당한 입장이셨다. 죄 없는 분이 고난을 당하시고, 십자가에 죽임 당해야 하는 일.

 

그 과정 중 무수히 많은 사람들에게 조롱과 비난, 심지어 채찍과 침 뱉음을 당하시고, 십자가에서조차 옆구리에 창이 찔리는 고통을 당하셨다.

 

그럼에도 예수님은 그 모든 것에서 자신의 부당함을, 자신의 옳음을 주장하기보다 겸손히 하나님의 뜻을 나타내시는 것에 자신의 모든 힘과 능력을 사용하셨다.

 

무조건적인 옳음은 없다. 무조건적인 부당함도 없다. 우리네 삶에는 하나님의 뜻만이 존재할 뿐이다.

 

그 뜻에 대하여 겸손한 순종을 하는 것이 어떤 면에서 보면 우리가 이룰 수 있는 최고의 선이자, 최고의 정의라는 것을 하나님은 욥에게 가르쳐주고 싶으셨던 것 같다. 

 

오늘 부당한 일을 당하고 있는가? 인생의 모습이 하나님께 헌신함에도 볼품없는가?

 

스스로 판단하기보다 하나님의 주권과 하나님의 뜻이 더 우선되는 삶을 도전해 보길 바란다.

 

그때에 재앙이 아닌 평안을 주시는 하나님의 숨결이, 우리 삶을 지키시고, 쉴만한 물가와 푸른 초장으로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 삶을 그 어떤 때보다 자유하게 하리라고 믿는다.

 

오늘 우리 삶에 이러한 은혜와 기다림의 자유가 있기를 기도한다!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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