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오늘 큐티(Q.T)

(렘 20:7~18)하나님의 약속(매일성경큐티, 예레미야 20:7-18)

by 무지개소년 2023. 8. 14.

 

하나님의 약속

매일성경큐티 230815 화
찬양: 물가운데 지날 때에도
성경: 예레미야 20:7~18
7 여호와여 주께서 나를 권유하시므로 내가 그 권유를 받았사오며 주께서 나보다 강하사 이기셨으므로 내가 조롱거리가 되니 사람마다 종일토록 나를 조롱하나이다
8 내가 말할 때마다 외치며 파멸과 멸망을 선포하므로 여호와의 말씀으로 말미암아 내가 종일토록 치욕과 모욕거리가 됨이니이다
9 내가 다시는 여호와를 선포하지 아니하며 그의 이름으로 말하지 아니하리라 하면 나의 마음이 불붙는 것 같아서 골수에 사무치니 답답하여 견딜 수 없나이다
10 나는 무리의 비방과 사방이 두려워함을 들었나이다 그들이 이르기를 고소하라 우리도 고소하리라 하오며 내 친한 벗도 다 내가 실족하기를 기다리며 그가 혹시 유혹을 받게 되면 우리가 그를 이기어 우리 원수를 갚자 하나이다
11 그러하오나 여호와는 두려운 용사 같으시며 나와 함께 하시므로 나를 박해하는 자들이 넘어지고 이기지 못할 것이오며 그들은 지혜롭게 행하지 못하므로 큰 치욕을 당하오리니 그 치욕은 길이 잊지 못할 것이니이다
12 의인을 시험하사 그 폐부와 심장을 보시는 만군의 여호와여 나의 사정을 주께 아뢰었사온즉 주께서 그들에게 보복하심을 나에게 보게 하옵소서
13 여호와께 노래하라 너희는 여호와를 찬양하라 가난한 자의 생명을 행악자의 손에서 구원하셨음이니라
14 내 생일이 저주를 받았더면, 나의 어머니가 나를 낳던 날이 복이 없었더면,
15 나의 아버지에게 소식을 전하여 이르기를 당신이 득남하였다 하여 아버지를 즐겁게 하던 자가 저주를 받았더면,
16 그 사람은 여호와께서 무너뜨리시고 후회하지 아니하신 성읍 같이 되었더면, 그가 아침에는 부르짖는 소리, 낮에는 떠드는 소리를 듣게 하였더면, 좋을 뻔하였나니
17 이는 그가 나를 태에서 죽이지 아니하셨으며 나의 어머니를 내 무덤이 되지 않게 하셨으며 그의 배가 부른 채로 항상 있지 않게 하신 까닭이로다
18 어찌하여 내가 태에서 나와서 고생과 슬픔을 보며 나의 날을 부끄러움으로 보내는고 하니라

 

물가운데불가운데
일러스트_김선호

 

7 여호와여 주께서 나를 권유하시므로 내가 그 권유를 받았사오며 주께서 나보다 강하사 이기셨으므로 내가 조롱거리가 되니 사람마다 종일토록 나를 조롱하나이다
8 내가 말할 때마다 외치며 파멸과 멸망을 선포하므로 여호와의 말씀으로 말미암아 내가 종일토록 치욕과 모욕거리가 됨이니이다

 

'눈물의 선지자' 예레미야!

 

예레미야는 이스라엘의 '멸망'을 선포했다. 그것도 잘하면 되돌아갈 수 있는 것이 아닌 무조건적인 '멸망'. 

 

즉 적국인 '바벨론'의 승리를 외친 셈이다. 그런 그를 대중들이 가만히 둘 이유는 없었다.

 

'매국노', '민족의 반역자', '바벨론의 앞잡이'.

 

대중들은 예레미야에게 아마 이런 수식어를 붙였을 것이다. 

 

그러니 그 눈에서 눈물이 마른날이 있었을까? 

 

그렇기의 그의 고백이 너무나 공감이 된다. 그리고 이 대목에서 욥이 내뱉던 탄식 소리가 떠올랐다.

 

18 어찌하여 내가 태에서 나와서 고생과 슬픔을 보며 나의 날을 부끄러움으로 보내는고 하니라
욥기 3:10~11 이는 내 모태의 문을 닫지 아니하여 내 눈으로 환난을 보게 하였음이로구나 어찌하여 내가 태에서 죽어 나오지 아니하였던가 어찌하여 내 어머니가 해산할 때에 내가 숨지지 아니하였던가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좋다'라는 말이 있지 않던가!

 

그만큼 사람이란 존재는 '삶'에 대한 '애착'과 '집착'이 남다른 동물이다. 어떻게 해서라도 더 살기 위해 노력하며, 죽을 때에도 손을 더 콱 움켜쥐고 죽는다 하지 않았던가!

 

그런데 얼마나 힘들었으면, 차라리 어머니의 모태에서 죽었으면 좋았겠다고 말할까? 그만큼 예레미야에게 견딜 수 없는 아픔과 슬픔, 괴로움이 있었으리라.

 

그래서 그는 이 모든 것에서 놓임을 얻고 싶었다.

 

9 내가 다시는 여호와를 선포하지 아니하며 그의 이름으로 말하지 아니하리라 하면 나의 마음이 불붙는 것 같아서 골수에 사무치니 답답하여 견딜 수 없나이다

 

그런데 이런 괴로움, 눈물, 아픔 중에도 그는 말만 이렇게 할 뿐, 결코 '사명'을 포기하지 않는다.

 

왜 그런 것일까?

 

하나님께서 '승리'를 약속하셨기 때문이다.

 

11 그러하오나 여호와는 두려운 용사 같으시며 나와 함께 하시므로 나를 박해하는 자들이 넘어지고 이기지 못할 것이오며 그들은 지혜롭게 행하지 못하므로 큰 치욕을 당하오리니 그 치욕은 길이 잊지 못할 것이니이다
12 의인을 시험하사 그 폐부와 심장을 보시는 만군의 여호와여 나의 사정을 주께 아뢰었사온즉 주께서 그들에게 보복하심을 나에게 보게 하옵소서
13 여호와께 노래하라 너희는 여호와를 찬양하라 가난한 자의 생명을 행악자의 손에서 구원하셨음이니라

 

길게 말할 필요 없다. 

 

오늘 우리도 '복음' 전하는 사명을 포기하고, 내려놓고 싶을 때가 많다.

 

아니 어쩌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포기하고 싶을 때가 하루에도 수없이 많다는 것이다.

 

왜 그럴까?

 

'믿음'의 길에서 포기하고, 손해 보고, 때로는 고통과 멸시와 조롱을 당하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 가운데 내가 당하는 '고통'과 '아픔'까지는 괜찮은데, 그것이 우리 '가족', 그것도 내 '자녀'에게 대물림이 되는 것 같을 때면 '복음'이고 '심판'이고, 다 때리치고 싶을 때가 많다는 것이다.

 

누구 얘길까? 비단 나의 이야기만은 아닐 것이다. 아마 신앙의 길을 걸어가는 우리 모두의 이야기일 것이다.

 

그럼에도 우리가 끝끝내 그런 어려움과 고통, 손해와 조롱을 당하면서도 '복음'과 '하나님 나라'를 포기하지 않아야만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주님께서 분명하게 약속하셨기 때문이다.

 

고린도후서 4:16~18 그러므로 우리가 낙심하지 아니하노니 우리의 겉사람은 낡아지나 우리의 속사람은 날로 새로워지도다/ 우리가 잠시 받는 환난의 경한 것이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함이니/ 우리가 주목하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이니 보이는 것은 잠깐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라

 

영원한 면류관, 영원한 생명, 영원한 하나님 나라, 영원한 영광

 

주님께서 우리에게 약속하신 것이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이미 예수 그리스도가 오심으로 인해서 그 '영원함'은 시작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당장 오늘 주어지는 '눈물'에 슬퍼하지 말자, 당장 우리 가족에게 주어지는 '가난과 어려움'에 괴로워하지 말자. 당장 오늘 주어지는 사람들의 모욕적인 '편견'과 굴욕적인 '조롱'에 아파하지 말자.

 

주님께서 반드시 승리하게 하신다. 주님께서 반드시 이 땅에서 역전시켜 주실 것이다. 

 

그러므로 오늘도 보이는 것(주어진 것에, 나타난 것)에 주목하지 말고, 보이지 않는 것(하나님의 약속)을 굳게 붙들고, 예레미야처럼 겸손히 사명의 자리를 끝까지 지킬 수 있는 우리 모두가 되길 간절히 소망한다. 샬롬!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