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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큐티(Q.T)

(렘 23:23~40)오직 '복음'만(매일성경큐티, 예레미야 23:23-40)

by 무지개소년 2023. 8. 21.

 

오직 '복음'만

매일성경큐티 230822 화
찬양: 주 말씀 향하여
성경: 예레미야 23:23~40
23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나는 가까운 데에 있는 하나님이요 먼 데에 있는 하나님은 아니냐
24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사람이 내게 보이지 아니하려고 누가 자신을 은밀한 곳에 숨길 수 있겠느냐 여호와가 말하노라 나는 천지에 충만하지 아니하냐
25 내 이름으로 거짓을 예언하는 선지자들의 말에 내가 꿈을 꾸었다 꿈을 꾸었다고 말하는 것을 내가 들었노라
26 거짓을 예언하는 선지자들이 언제까지 이 마음을 품겠느냐 그들은 그 마음의 간교한 것을 예언하느니라
27 그들이 서로 꿈꾼 것을 말하니 그 생각인즉 그들의 조상들이 바알로 말미암아 내 이름을 잊어버린 것 같이 내 백성으로 내 이름을 잊게 하려 함이로다
28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꿈을 꾼 선지자는 꿈을 말할 것이요 내 말을 받은 자는 성실함으로 내 말을 말할 것이라 겨가 어찌 알곡과 같겠느냐
29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내 말이 불 같지 아니하냐 바위를 쳐서 부스러뜨리는 방망이 같지 아니하냐
30 여호와의 말씀이라 그러므로 보라 서로 내 말을 도둑질하는 선지자들을 내가 치리라
31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보라 그들이 혀를 놀려 여호와가 말씀하셨다 하는 선지자들을 내가 치리라
32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보라 거짓 꿈을 예언하여 이르며 거짓과 헛된 자만으로 내 백성을 미혹하게 하는 자를 내가 치리라 내가 그들을 보내지 아니하였으며 명령하지 아니하였나니 그들은 이 백성에게 아무 유익이 없느니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33 이 백성이나 선지자나 제사장이 네게 물어 이르기를 여호와의 엄중한 말씀이 무엇인가 묻거든 너는 그들에게 대답하기를 엄중한 말씀이 무엇이냐 묻느냐 여호와의 말씀에 내가 너희를 버리리라 하셨고
34 또 여호와의 엄중한 말씀이라 하는 선지자에게나 제사장에게나 백성에게는 내가 그 사람과 그 집안을 벌하리라 하셨다 하고
35 너희는 서로 이웃과 형제에게 묻기를 여호와께서 무엇이라 응답하셨으며 여호와께서 무엇이라 말씀하셨느냐 하고
36 다시는 여호와의 엄중한 말씀이라 말하지 말라 각 사람의 말이 자기에게 중벌이 되리니 이는 너희가 살아 계신 하나님, 만군의 여호와 우리 하나님의 말씀을 망령되이 사용함이니라 하고
37 너는 또 선지자에게 말하기를 여호와께서 네게 무엇이라 대답하셨으며 여호와께서 무엇이라 말씀하셨느냐
38 너희는 여호와의 엄중한 말씀이라 말하도다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내가 너희에게 사람을 보내어 너희는 여호와의 엄중한 말씀이라 하지 말라 하였으나 너희가 여호와의 엄중한 말씀이라는 이 말을 하였은즉
39 내가 너희를 온전히 잊어버리며 내가 너희와 너희 조상들에게 준 이 성읍을 내 앞에서 내버려
40 너희는 영원한 치욕과 잊지 못할 영구한 수치를 당하게 하리라 하셨느니라

 

복음
이미지출처_https://unsplash.com/

 

23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나는 가까운 데에 있는 하나님이요 먼 데에 있는 하나님은 아니냐
24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사람이 내게 보이지 아니하려고 누가 자신을 은밀한 곳에 숨길 수 있겠느냐 여호와가 말하노라 나는 천지에 충만하지 아니하냐

 

하나님은 어디에 계실까?

 

하나님께서는 가까운 곳에도 계시고, 먼 곳에도 계신 분이시다. 즉 언제, 어디서나 우리와 함께하시는 하나님이시다.

 

하나님께서 왜 갑자기 공간의 문제를 이야기하실까?

 

25 내 이름으로 거짓을 예언하는 선지자들의 말에 내가 꿈을 꾸었다 꿈을 꾸었다고 말하는 것을 내가 들었노라
26 거짓을 예언하는 선지자들이 언제까지 이 마음을 품겠느냐 그들은 그 마음의 간교한 것을 예언하느니라

 

거짓 선지자들은 하나님의 꿈을 꿨다고 말하면서, 자신들의 생각을 마치 하나님의 말씀인 것처럼 속였다. 

 

왜 그렇게 했을까? 하나님의 시선을 얼마든지 속일 수 있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즉 그들이 생각하기를 거짓을 말하여도 하나님은 멀리 계시기 때문에 모르실 것이라고 여겼다는 것이다. 

 

이 얼마나 어리석고, 우매한 자들인가!

 

이렇게 하나님의 '하'자도 제대로 모르는 자들이 꼴에 하나님의 선지자라고 폼을 잡고 있었으니 그 시대가 얼마나 무지하고, 악했는지 모른다.

 

30 여호와의 말씀이라 그러므로 보라 서로 내 말을 도둑질하는 선지자들을 내가 치리라
31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보라 그들이 혀를 놀려 여호와가 말씀하셨다 하는 선지자들을 내가 치리라
32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보라 거짓 꿈을 예언하여 이르며 거짓과 헛된 자만으로 내 백성을 미혹하게 하는 자를 내가 치리라

 

그러므로 너무나 당연한 결과다. 결국 하나님을 팔아 장사하는 자들의 최후는 '파멸'과 '죽음'뿐이다.

 

그런데 그들이 얼마나 어리석고 우매했는지 이어지는 본문을 통해서도 깨닫게 된다.

 

그들이 예레미야 선지자에게 질문한다는 것이다. 무엇을 질문할까?

 

33 이 백성이나 선지자나 제사장이 네게 물어 이르기를 여호와의 엄중한 말씀이 무엇인가 묻거든 너는 그들에게 대답하기를 엄중한 말씀이 무엇이냐 묻느냐 여호와의 말씀에 내가 너희를 버리리라 하셨고

 

하나님의 '엄중한 말씀'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는 것이다. 

 

여기서 '엄중한 말씀'은 7번이나 반복되어 사용될 만큼 해석이 중요한 구절이다.

 

'엄중한'이란 단어는 히브리어로 '맛사'다. 그리고 이 '맛사'는 '짐', '부담'이라는 뜻이다. 그런데 어떤 '짐'인가?

 

성경에서 '맛사'라는 단어는 종종 하나님의 '경고'나 '저주'를 말할 때에 사용되었다.

 

즉 오늘 성경에서 말하는 하나님의 '엄중한 말씀'이란 무엇인가?

 

굉장히 무겁고, 두렵고, 떨리는 '짐'인 것이다. 결코 가볍지 않고, 무서운 '짐'을 의미하는 것이다.

 

거짓 선지자와 제사장들에게 있어 예레미야가 전한 '심판'의 말씀은 당연히 '엄중한 말씀', 무섭고, 두렵고, 떨리는 말씀이 되어야 했다. 그들에게 당면한 '심판', '파멸', '멸망'의 말씀이었다.

 

그런데 그들은 이 '엄중한 말씀'을 어떻게 여겼는가?

 

말로는 '엄중한'이라고 표현했지만, 결코 '엄중하지 않은', 전해지는 하나님의 말씀을 그저 불편한 '짐', 언제든지 벗어던질 수 있는 가벼운 '짐'정도로 여겼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뭐라고 말씀하시는가?

 

36 다시는 여호와의 엄중한 말씀이라 말하지 말라 각 사람의 말이 자기에게 중벌이 되리니 이는 너희가 살아 계신 하나님, 만군의 여호와 우리 하나님의 말씀을 망령되이 사용함이니라 하고

 

'엄중한 말씀'이라는 말조차 사용하지 말라는 것이다.

39 내가 너희를 온전히 잊어버리며 내가 너희와 너희 조상들에게 준 이 성읍을 내 앞에서 내버려
40 너희는 영원한 치욕과 잊지 못할 영구한 수치를 당하게 하리라 하셨느니라

 

결국 '자신의 생각'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거짓으로 둔갑시키는 자들, '하나님의 말씀'을 제대로 듣지도 보지도 알지도 못하는 자들이 당할 일은 무엇인가?

 

영원한 치욕과 영구한 수치를 당하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오늘 본문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무엇일까?

 

오늘 말씀을 보면 '엄중한 말씀'만큼이나 반복되고 있는 구절이 하나 더 있다.

 

맞다. '여호와의 말씀이니라'라는 구절이 무려 9번이나 나온다. 

 

무슨 뜻일까?

 

거짓선지자들은 하나같이 '자신의 생각'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둔갑시키는 것에, 온 힘과 에너지, 열정을 다한 반면, 예레미야는 온 힘과 에너지를 오직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데 사용했다는 것이다.

 

그것도 자신이 어떤 핍박을 받든, 어떤 조롱과 비난을 당하던, 어떤 위협을 받는 것과 상관없이 그는 언제나 '하나님의 말씀'을 있는 그대로 전하는 것에만 온 힘과 목숨까지 기울였다는 것이다.

 

마태복음 28:20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사도행전 1:8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이 시대 '말씀 홍수 시대'라고 말한다. 그런데 정말 '말씀'이 홍수를 이루는 것일까?

 

말씀에 굉장히 많은 자랑과 간증이 있다. 그래서 말씀을 듣는 시간이 잘 가는 것 같고, 은혜도 많이 받은 것 같은 착각이 든다.

 

그런데 정작 이후에 보면 '복음'은 기억에 남지 않고, 사람의 '이야기'만 남은 것을 보게 된다.

 

우리는 경계해야 한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내 증인'이 되라고 하셨지, 우리의 '이야기'를 맛깔나게 전하라고 하시지 않았다.

 

물론 '복음' 증거를 위해서 '간증'할 수 있고, 그 과정 중에 '꿈'이야기도 할 수 있고, '환상'얘기도, 신비한 '체험'의 이야기도 할 수 있다. 하지만 결론은 '복음'이어야 한다.

 

오직 전해지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 한 분이어야 한다. 우리의 입으로 전해지는 것은 오로지 '복음'이어야 한다.

 

때로는 잘못된 열정으로, 혹은 과도한 꾸밈으로 '복음'을 전하는 자들도 있다. 결코 그럴 필요가 없다. 

 

'복음'이면 충분하다. 우리는 그저 예레미야처럼 예수님이 말씀하신 '복음'만 전하면 된다.

 

그러면 그것이 듣는 자들에게 '엄중한 말씀'이 되어 그들의 삶을 변화시키리라 믿는다.

 

오늘도 삶의 자리에서 부족하지만 '복음'을 전하느라 애쓰는 당신의 수고를 하나님은 잘 아신다.

 

그 수고가 헛된 '수고'가 아니라, 의미 있고 거룩한 '수고'가 될 수 있도록, 오늘도 '내 이야기'가 아닌 '복음'을 올바르게 전할 수 있는 우리가 되기를 소망한다.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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