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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큐티(Q.T)

(렘 3:1~18)이제라도 돌아오라(매일성경큐티, 예레미야 3:1-18)

by 무지개소년 2023. 7. 11.

이제라도 돌아오라

매일성경큐티 230711 화
찬양: 지금 이 시간(연약하고 허물 많은 나를)
성경: 예레미야 3:1~18
1 그들이 말하기를 가령 사람이 그의 아내를 버리므로 그가 그에게서 떠나 타인의 아내가 된다 하자 남편이 그를 다시 받겠느냐 그리하면 그 땅이 크게 더러워지지 아니하겠느냐 하느니라 네가 많은 무리와 행음하고서도 내게로 돌아오려느냐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2 네 눈을 들어 헐벗은 산을 보라 네가 행음하지 아니한 곳이 어디 있느냐 네가 길 가에 앉아 사람들을 기다린 것이 광야에 있는 아라바 사람 같아서 음란과 행악으로 이 땅을 더럽혔도다
3 그러므로 단비가 그쳤고 늦은 비가 없어졌느니라 그럴지라도 네가 창녀의 낯을 가졌으므로 수치를 알지 못하느니라
4 네가 이제부터는 내게 부르짖기를 나의 아버지여 아버지는 나의 청년 시절의 보호자이시오니
5 노여움을 한없이 계속하시겠으며 끝까지 품으시겠나이까 하지 아니하겠느냐 보라 네가 이같이 말하여도 악을 행하여 네 욕심을 이루었느니라 하시니라
6 요시야 왕 때에 여호와께서 또 내게 이르시되 너는 배역한 이스라엘이 행한 바를 보았느냐 그가 모든 높은 산에 오르며 모든 푸른 나무 아래로 가서 거기서 행음하였도다
7 그가 이 모든 일들을 행한 후에 내가 말하기를 그가 내게로 돌아오리라 하였으나 아직도 내게로 돌아오지 아니하였고 그의 반역한 자매 유다는 그것을 보았느니라
8 내게 배역한 이스라엘이 간음을 행하였으므로 내가 그를 내쫓고 그에게 이혼서까지 주었으되 그의 반역한 자매 유다가 두려워하지 아니하고 자기도 가서 행음함을 내가 보았노라
9 그가 돌과 나무와 더불어 행음함을 가볍게 여기고 행음하여 이 땅을 더럽혔거늘
10 이 모든 일이 있어도 그의 반역한 자매 유다가 진심으로 내게 돌아오지 아니하고 거짓으로 할 뿐이니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11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배역한 이스라엘은 반역한 유다보다 자신이 더 의로움이 나타났나니
12 너는 가서 북을 향하여 이 말을 선포하여 이르라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배역한 이스라엘아 돌아오라 나의 노한 얼굴을 너희에게로 향하지 아니하리라 나는 긍휼이 있는 자라 노를 한없이 품지 아니하느니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13 너는 오직 네 죄를 자복하라 이는 네 하나님 여호와를 배반하고 네 길로 달려 이방인들에게로 나아가 모든 푸른 나무 아래로 가서 내 목소리를 듣지 아니하였음이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14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배역한 자식들아 돌아오라 나는 너희 남편임이라 내가 너희를 성읍에서 하나와 족속 중에서 둘을 택하여 너희를 시온으로 데려오겠고
15 내가 또 내 마음에 합한 목자들을 너희에게 주리니 그들이 지식과 명철로 너희를 양육하리라
16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너희가 이 땅에서 번성하여 많아질 때에는 사람들이 여호와의 언약궤를 다시는 말하지 아니할 것이요 생각하지 아니할 것이요 기억하지 아니할 것이요 찾지 아니할 것이요 다시는 만들지 아니할 것이며
17 그 때에 예루살렘이 그들에게 여호와의 보좌라 일컬음이 되며 모든 백성이 그리로 모이리니 곧 여호와의 이름으로 말미암아 예루살렘에 모이고 다시는 그들의 악한 마음의 완악한 대로 그들이 행하지 아니할 것이며
18 그 때에 유다 족속이 이스라엘 족속과 동행하여 북에서부터 나와서 내가 너희 조상들에게 기업으로 준 땅에 그들이 함께 이르리라

 

진실한예배
일러스트_김성은작가

 

얼마 전 청년사역연구소에 올라온 글(산본교회 이상갑 목사)의 일부를 소개한다.

 

현실적으로 많은 사람들이 구원을 받았다고 했는데 교회를 떠나거나, 하나님을 부인하거나, 이단이나 사이비에 빠지는 것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특히 장로나 권사 직분을 받았던 분이 이단에 빠지거나 심지어 목사라는 직분을 가진 분도 이단에 빠지는 것을 보았는데 어떻게 해석해야 하나요?

간단합니다. 진짜 구원을 받지 못하고 흉내만 내었기 때문입니다. 진품신앙이 아니라 짝퉁 신앙인 까닭입니다.

겉모습은 기독교인과 같았고, 열심히 있어서 직분도 받았고, 헌금과 봉사도 열심히 해서 인정도 받았지만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반응은 아니었던 것입니다. 자기 열심이었던 것입니다. 그것은 목사라는 직분을 가졌어도 마찬가지입니다.

 

오늘 본문 4~5절은 이스라엘의 거짓 경건에 관하여 다음과 같이 고발한다.


4~5 네가 이제부터는 내게 부르짖기를 나의 아버지여 아버지는 나의 청년 시절의 보호자이시오니 노여움을 한없이 계속하시겠으며 끝까지 품으시겠나이까 하지 아니하겠느냐 보라 네가 이같이 말하여도 악을 행하여 네 욕심을 이루었느니라 하시니라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을 '나의 아버지'라고 부르며, '어렸을 때는 저를 잘 돌봐주시더니 왜 지금은 계속 쉬지 않고 화만 내십니까?'라고 말한다는 것이다.

 

어떻게 보면 너무나 정상적인 신앙고백(?), 기도처럼 보인다. 하나님을 믿다가 고난을 만나거나 환난을 만날 때, 충분히 그렇게 기도할 수 있지 않겠는가?

 

'하나님, 저 너무 힘들어요. 저 좀 봐주시면 안 돼요? 항상 제가 부르짖을 때에 함께하셨잖아요. 이 고난을 좀 떠나가게 해 주세요.' 우리가 이렇게 기도하는 것과 진배없어 보인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고백을 향하여 뭐라고 말씀하시는가?

 

5 '네가 이같이 말하여도 악을 행하여 네 욕심을 이루었느니라'

 

10 이 모든 일이 있어도 그의 반역한 자매 유다가 진심으로 내게 돌아오지 아니하고 거짓으로 할 뿐이니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이 고백이 거짓이라는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겉으로는 언제나 하나님과 함께하는 것처럼 포장해 놓고, 다른 한편으로는 계속 죄악을 반복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자신들의 욕심을 채우기 위해 거짓으로 믿고, 거짓으로 고백하는 것에 익숙했다는 것이다.

 

결국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나의 아버지'라고 부르면서 예배드리고, 기도한다고 해서 정말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것은, 정말 진실되이 하나님을 믿는 것은 아니라고 고발하는 것이다.

 

주일 저녁이 되면, SNS에 그날 예배 현장사진을 올리는 교회들이 많다. 참 은혜스러워 보인다. 온갖 악기를 동원하여 화려한 조명아래에서 일어서서 손을 들고 찬양하는 모습이 그려져 있다. 얼굴에는 주를 향한 사모함이 보인다(사실 제주에서는 부러운 장면 중 하나이다. 일부 교회 제외).

 

수없이 많은 크리스천들이 주일날 교회 앞 도로를 가득 메운다. 예배 시간 전후로 도시의 교통이 마비되는 곳도 있다.

 

종류를 헤아릴 수 없는 헌금을 하고, 심지어 온라인으로 헌금을 하기도 한다. 수많은 봉사와 헌신을 하며, 성경공부와 제자훈련을 한다. 정말 주를 향한 열심이 대단하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무엇 때문에 그렇게 열심히 믿는 것일까? 그들이 드린 예배와 찬양, 기도와 헌금, 헌신과 봉사를 정말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은 맞을까? 

 

오늘 본문은 우리에게 질문하고 있다. 그 모든 고백과 행위가 정말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에서 하는 것일까? 아니면 오늘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그저 자신들의 욕망을 채우기 위한 한 방편으로 이용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아니 언제나 그렇듯 익숙함으로, 습관적으로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심판방지용은 아닌가?

 

중요한 것은 사람은 속일 수 있지만, 하나님은 속일 수 없다. 하나님은 너무나 정확히 아신다.

 

사무엘상 16:7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

 

그런데 이스라엘은 어찌 된 영문인지 하나님을 행위와 고백만으로도 속일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당황스럽다.

 

3 그러므로 단비가 그쳤고 늦은 비가 없어졌느니라 그럴지라도 네가 창녀의 낯을 가졌으므로 수치를 알지 못하느니라

 

그런데 우리라고 다를까? 어쩌면 우리가 더 그렇지 않을까 생각도 든다. 교회마다, 성도마다 돌아봐야 한다. 정확하게 진단해야 한다.

 

생각보다 SNS는 진실을 많이 알려준다. 정말 할많하않이다.

 

그러나 배은망덕한 이스라엘, 거짓된 이스라엘을 향하여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신다.

 

12 너는 가서 북을 향하여 이 말을 선포하여 이르라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배역한 이스라엘아 돌아오라 나의 노한 얼굴을 너희에게로 향하지 아니하리라 나는 긍휼이 있는 자라 노를 한없이 품지 아니하느니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14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배역한 자식들아 돌아오라 나는 너희 남편임이라 내가 너희를 성읍에서 하나와 족속 중에서 둘을 택하여 너희를 시온으로 데려오겠고

 

'돌아오라'. 

 

사실 1절 말씀만 보면, '너 이렇게 하고도 내게 돌아온다고?' 마치 돌아와도 받아주시지 않을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정말 그럴까? 그렇지 않다.

 

이것에 대해서 나는 믿음의 확신이 있다. 하나님은 결코 그러하시지 않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우리의 아버지이시기 때문이다.

 

그리고 십자가가 그 분명한 증거다. 그러므로...

 

13 너는 오직 네 죄를 자복하라

 

하나님은 언제나 우리를 기다리시는 분이시다. 언제든 우리가 그 죄를 뉘우치고, 자복하기만을 원하시는 분이시다.

 

그리고 마침내 방황하던 탕자가 아버지의 집으로 돌아왔을 때, 누구보다 환영하고 반기며 안아주셨듯이, 우리가 돌아오기만 한다면 주님은 누구보다 우리를 안아주시리라 믿는다.

 

물론 예레미야서를 끝까지 읽어보면 다른 관점에서 말할 수 있겠지만, 오늘날 우리에게 예레미야 3장이 주는 메시지는 하나뿐이다.

 

'이제라도 깨달았다면 돌아와라'

 

오늘 예레미야서의 말씀이 우리의 죄를 드러내는 '칼날'이 아니라, 우리의 죄를 용서하고 다시 예배의 진실성을 회복하게 하는 '아버지의 품'이 되기를 소망한다.

 

나의 예배생활을 돌아보고, 나의 삶 가운데 하나님을 향한 마음을 정말 솔직함으로, 겸손하게 돌아볼 수 있는 오늘 하루가 되기를 소망한다. 

 

그래서 더 이상 우리의 예배와 기도가 모양만 그럴싸한 것이 아니라, 진정한 거룩과 경건이 묻어나는 예배와 기도가 되기를, 우리의 삶이 그러한 삶이 되기를 간절히 기도해 본다.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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