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오늘 큐티(Q.T)

(렘 2:29~37)말씀의 거울(매일성경큐티, 예레미야 2:29-37)

by 무지개소년 2023. 7. 10.

말씀의 거울

매일성경큐티 230710 월
찬양: 말씀 앞에서
성경: 예레미야 2:29~37
29 너희가 나에게 대항함은 어찌 됨이냐 너희가 다 내게 잘못하였느니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30 내가 너희 자녀들을 때린 것이 무익함은 그들이 징계를 받아들이지 아니함이라 너희 칼이 사나운 사자 같이 너희 선지자들을 삼켰느니라
31 너희 이 세대여 여호와의 말을 들어 보라 내가 이스라엘에게 광야가 되었었느냐 캄캄한 땅이 되었었느냐 무슨 이유로 내 백성이 말하기를 우리는 놓였으니 다시 주께로 가지 아니하겠다 하느냐
32 처녀가 어찌 그의 패물을 잊겠느냐 신부가 어찌 그의 예복을 잊겠느냐 오직 내 백성은 나를 잊었나니 그 날 수는 셀 수 없거늘
33 네가 어찌 사랑을 얻으려고 네 행위를 아름답게 꾸미느냐 그러므로 네 행위를 악한 여자들에게까지 가르쳤으며
34 또 네 옷단에는 죄 없는 가난한 자를 죽인 피가 묻었나니 그들이 담 구멍을 뚫었기 때문이 아니라 오직 이 모든 일 때문이니라
35 그러나 너는 말하기를 나는 무죄하니 그의 진노가 참으로 내게서 떠났다 하거니와 보라 네 말이 나는 죄를 범하지 아니하였다 하였으므로 내가 너를 심판하리라
36 네가 어찌하여 네 길을 바꾸어 부지런히 돌아다니느냐 네가 앗수르로 말미암아 수치를 당함 같이 또한 애굽으로 말미암아 수치를 당할 것이라
37 네가 두 손으로 네 머리를 싸고 거기서도 나가리니 이는 네가 의지하는 자들을 나 여호와가 버렸으므로 네가 그들로 말미암아 형통하지 못할 것임이라

 

말씀의거울

 

우리가 왜 매일 말씀을 묵상해야 하고, 큐티해야 할까?

 

단순히 주야로 말씀을 묵상하라고 성경은 권면하고 있기 때문일까?

 

그렇지 않다.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 삶의 '거울'이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거울'이 되어야 한다는 것은 어떤 말일까?

 

우리 삶을 '하나님의 말씀'이란 거울에 매일 비춰봄으로 인하여 우리의 잘못된 죄악, 말과 행동, 마음의 태도 등을 수정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변화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주의 말씀은 내 발에 이요 내 길에 이니이다'(시편 119:105)로 사는 참 뜻이다.

 

또한 말씀의 거울에 우리의 모습을 비춰볼 때에 우리가 택할 수 있는 삶의 방식은 '나는 날마다 죽노라'(고린도전서 15:31)가 될 수밖에 없는 이유이다.

 

결국 매일 말씀을 읽고, 듣는 것은 단순히 어떤 예배를 드리기 위한 행위에 그치는 것이 아닌 구원에 이르는 '믿음으로 말미암는 삶'의 기초가 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예레미야 시대의 사람들은 '말씀'을 듣지 않았을까? 그렇지 않다.

 

그들은 누구보다 예배하는 백성들이었다. 그것도 매일마다 그들은 율법에 따라 제사하고, 예배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이 그들은 예배를 행위로 드렸는지는 몰라도, 말씀을 행위로 보고 들었는지는 몰라도, 정말 자신의 삶을 돌아보고 변화될 수 있는 '하나님의 말씀'으로는 대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29 너희가 나에게 대항함은 어찌 됨이냐 너희가 다 내게 잘못하였느니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35 그러나 너는 말하기를 나는 무죄하니 그의 진노가 참으로 내게서 떠났다 하거니와

36 네가 어찌하여 네 길을 바꾸어 부지런히 돌아다니느냐

 

결국 '하나님의 말씀'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보지 않고, 듣지 않았다는 것의 참 의미는 무엇일까?

 

바로 '하나님'을 믿지 못했다는 것이다. '하나님'을 참신으로 믿지 않고, 자신들에게 유익을 주는 수많은 세상의 신 가운데 하나의 '신'으로 바라봤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 이스라엘 백성들의 말과 행동이 이해가 가는 것이다. 

 

왜 하나님에게 대항하는가? '하나님'의 존재를 그들이 그렇게 여기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자신들이 필요할 때 도움과 유익(복)을 줘야 하는 존재인데, 지금 그 '하나님'이 '심판'과 '멸망'을 말하니 안 보면 그만이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얼마든지 다른 신들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신들에게 잘해줄 수 있을 것 같은 신들을 찾아 헤맨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애굽이었고, 그것이 앗수르였다. 

 

32 처녀가 어찌 그의 패물을 잊겠느냐 신부가 어찌 그의 예복을 잊겠느냐 오직 내 백성은 나를 잊었나니 그 날 수는 셀 수 없거늘

 

결국 그들은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넌 것이다. 하나님의 은혜는 잊은 지 오래고, 그 은혜 또한 오랜 선조들에게만 주어졌던 고전에 불과했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배신감과 분노는 극에 달하셨다. 그렇게 헤아릴 수 없는 사랑과 은혜를 베풀어 주셨는데, 그들은 끝까지 하나님의 존재를 부정했다.

 

30 내가 너희 자녀들을 때린 것이 무익함

 

얼마나 화가 나셨으면 그들을 향한 징계가 '무익함'이라고까지 표현하신다.

 

오늘 우리는 어떠한가? 아니 나는 어떨까?

 

어제도 주일이라 예배를 드리고 왔다. '빌립보서' 4장의 말씀을 듣고 왔다. 차를 타고 가는데 아들 다니엘(6학년)이 찡찡대며, 불만을 이야기한다.

 

그러자 동생 에스더(2학년)가 말한다. "오늘 하나님 말씀에 주 안에 있는 자는 기뻐한다고 했어", "주 안에 있으면 불평불만을 하지 않는다고 들었잖아? 오빠 말씀 들은 대로 해."

 

그렇다. 말씀은 그저 내 귀에 좋은 말씀을 듣고 마음을 교양하는 것이 아니다. 그 말씀을 오늘 내 삶에 수없이 비춰감으로 '나는 죽고 예수로 사는 삶'을 선택해야만 한다는 것이다.

 

오늘 큐티 말씀이 가볍지 않다. 결국 오늘 본문에 나오는 이스라엘 백성의 모습이 나의 모습이고, 오늘날 믿는 사람이라고 말하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모습임을 깨닫는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 삶의 거울이 되어야 한다. 그래야 바로 살 수 있고, 그래야 믿음 있는 자로 살 수 있다.

 

오늘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 모두에게 그런 거울이 되는 은혜가 있기를, 그래서 다시 한번 우리 삶에도, 한국교회에도, 세계열방에도 변화의 새 물결이 불어오길 소망하고, 기도한다. 샬롬!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