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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큐티(Q.T)

(렘 1:1~10)다시 한번 순종(매일성경큐티, 예레미야 1:1-10)

by 무지개소년 2023. 7. 6.

다시 한번 순종

매일성경큐티 230706 목
찬양: 말씀 앞에서
성경: 예레미야 1:1~10
1 베냐민 땅 아나돗의 제사장들 중 힐기야의 아들 예레미야의 말이라
2 아몬의 아들 유다 왕 요시야가 다스린 지 십삼 년에 여호와의 말씀이 예레미야에게 임하였고
3 요시야의 아들 유다의 왕 여호야김 시대부터 요시야의 아들 유다의 왕 시드기야의 십일년 말까지 곧 오월에 예루살렘이 사로잡혀 가기까지 임하니라
4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니라 이르시되
5 내가 너를 모태에 짓기 전에 너를 알았고 네가 배에서 나오기 전에 너를 성별하였고 너를 여러 나라의 선지자로 세웠노라 하시기로
6 내가 이르되 슬프도소이다 주 여호와여 보소서 나는 아이라 말할 줄을 알지 못하나이다 하니
7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너는 아이라 말하지 말고 내가 너를 누구에게 보내든지 너는 가며 내가 네게 무엇을 명령하든지 너는 말할지니라
8 너는 그들 때문에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하여 너를 구원하리라 나 여호와의 말이니라 하시고
9 여호와께서 그의 손을 내밀어 내 입에 대시며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보라 내가 내 말을 네 입에 두었노라
10 보라 내가 오늘 너를 여러 나라와 여러 왕국 위에 세워 네가 그것들을 뽑고 파괴하며 파멸하고 넘어뜨리며 건설하고 심게 하였느니라 하시니라

 

다시한번
일러스트_은혜의그림묵상

 

4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니라 이르시되

 

예레미야가 고백을 한다. 하나님의 말씀이 나에게 임했다.

 

사실 지금으로 따지면 엄청난 일이다. 그러면 그 당시에는 엄청난 일이 아니었을까? 혹자에게는 어떤지 몰라도 예레미야 본인에게는 굉장히 두렵고, 놀랍고, 엄청난 일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그는 생각했을 것이다. '왜 내게 하나님의 말씀이 임했단 말인가?'

 

6 내가 이르되 슬프도소이다 주 여호와여 보소서 나는 아이라 말할 줄을 알지 못하나이다 하니

 

그 당시 시대 중심에 있던 인물은 '예레미야'가 아니었다. 뭐니 뭐니 해도 왕이 최강자가 아니던가? 그 당시 남유다의 왕은 차후에 개혁을 일으켰던 선왕, '요시야왕'이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말씀이 '예레미야'에게 임할 것이 아니라 그 시대의 중심이었던 '요시야왕'에게 임하는 게 훨씬 더 유익하고 무슨 일이든 빠르게 진행되지 않았을까?

 

10절에 나오는 하나님의 말씀이 예레미야에게 임한 이유를 보니 더 그러하다.

 

10 보라 내가 오늘 너를 여러 나라와 여러 왕국 위에 세워 네가 그것들을 뽑고 파괴하며 파멸하고 넘어뜨리며 건설하고 심게 하였느니라 하시니라

 

예레미야를 통해 하시고자 하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매우 크고 원대한 꿈과 계획이었다.

 

하나님은 예레미야를 단순히 요나처럼(단순비교니 이해) 니느웨성에 들어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게 하시는 선지자 정도로 사용하신다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은 예레미야를 통해 그 당시 우상과 죄악으로 물든 남유다의 개혁뿐만이 아니라, 여러 나라와 여러 왕국을 멸하는 일에, 그리고 그곳에 하나님의 나라를 다시 세우시는 크고 위대한 일에 사용하시겠다고 말한다.

 

누가 봐도 힘없는 '예레미야'보다는 '요시야'왕이 훨씬 나을듯하다. 그런데 하나님은 이런 원대한 계획을 가지고 그 당시 중심이던 '요시야'왕이 아닌 아직 세상물정조차 잘 모를 것 같았던 20살의 청년 '예레미야'에게 임하신다.

 

왜 하나님은 힘 있는 '요시야'왕이 아닌 굳이 힘없는 '예레미야'에게 임하신 것일까?

 

8 너는 그들 때문에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하여 너를 구원하리라 나 여호와의 말이니라 하시고
9 여호와께서 그의 손을 내밀어 내 입에 대시며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보라 내가 내 말을 네 입에 두었노라

 

결국 이 세상 모든 일의 통치자는, 유일한 해결자요, 구원자는 오직 하나님 한 분이시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단지 그 일을 함께 도모할 '손'(그릇)이 필요하신 것이지, 아니 영광스러운 일에 함께 참여할 기회를 주실 뿐이지, 모든 일은 전적으로 그분이 다 하실 것이기 때문이다.

 

고린도전서 1:27

그러나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며/ 하나님께서 세상의 천한 것들과 멸시받는 것들과 없는 것들을 택하사 있는 것들을 폐하려 하시나니/ 이는 아무 육체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

 

그렇다. 모든 일은 하나님이 하시기 때문에 중요한 것은 누가 그 일의 적임자 인가의 문제가 아니다. 그러므로 뛰어난 이, 훌륭한 이, 누가 봐도 당장 써먹을 사람이 필요한 것이 아니다.

 

7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너는 아이라 말하지 말고 내가 너를 누구에게 보내든지 너는 가며 내가 네게 무엇을 명령하든지 너는 말할지니라

 

디모데후서 2:21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런 것에서 자기를 깨끗하게 하면 귀히 쓰는 그릇이 되어 거룩하고 주인의 쓰심에 합당하며 모든 선한 일에 준비함이 되리라

 

하나님께 필요한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할 한 사람이 필요하셨던 것이다.

 

너무나 그 말씀을 들었을 때, 두렵고, 놀랍고, 떨리지만, 또한 감당할 수 없을 것 같지만 그럼에도 하나님을 사랑함으로,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도전할 수 있는 용기가 있는 사람이 필요하셨다는 것이다.

 

낙망하고 넘어질 때도 많지만, 그럼에도 다시 주님을 사랑함으로 다시 한번 주님을 의지하여서 그 일을 감당할 한 사람이 필요하셨다는 것이다.

 

오늘 우리를 부르신 하나님의 뜻이 그와 같다.

 

수없이 많은 생각이 들었다. 그동안 여러 이유로 하나님의 사명을 거부했던 일들, 이왕이면 힘 있고 부유한 사람들을 부르시는 것이 더 나을 것 같다는 생각들, 하나님의 일이 부담스럽지만 하나님의 진노가 두려워하는 시늉을 했던 일들.

 

그 스토리를 자세히 썼다 지웠다(어차리 사람마다 다 다를 테니)를 반복하다 내린 결론은 하나다.

 

하나님이 결국 오늘 나와 우리를 부르셨다. 이 일을 우리가 거부할 수 없다.

 

하나님의 나라를 세워가신단다.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전파하라고 하신다. 너무나 막연해 보이고, 어떻게 그 일을 감당해야 할까 두렵다. 과연 오늘을 살기도 바쁜데, 내가 그 일을 언제 어떻게 감당할 수나 있을까 두렵고, 부담스럽기도 하다. 

 

그런데 주님은 말씀하신다. "그 일을 내가 다 할 것이다. 너는 그저 나를 따라오기만 하면 된다. 너는 그저 귀를 잘 열고 있다가 그때그때 내가 시키는 일만 잘하면 된다."

 

결국 우리가 할 일은 하나다. 그 하나님을 믿고 나아간다면 오늘 약한 '나'를 볼 것이 아니라, 그 모든 일을 행하실 강한 '하나님'을 의지하면 된다는 것이다.

 

주님께서 하실 것이다. 그러므로 부족하고 연약하지만 나를 불러주신 하나님께 감사함으로 묵묵히 내가 선 자리에서 하나님의 말씀에 다시 한번 순종하는 나와 우리가 되기를 소망하고, 기도한다. 

 

그러면 그 삶을 이끄시고 채워주실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가 우리 삶에 그 어떤 때보다 풍성하게 임하는 역사를 우리가 보게 되리라 믿는다.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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