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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큐티(Q.T)

(렘 2:1~19)변화를 위한 쓴소리(매일성경큐티, 예레미야 2:1-19)

by 무지개소년 2023. 7. 8.

변화를 위한 쓴소리

매일성경큐티 230708 토
찬양: 내가 주인삼은
성경: 예레미야 2:1~19
1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니라 이르시되
2 가서 예루살렘의 귀에 외칠지니라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기를 내가 너를 위하여 네 청년 때의 인애와 네 신혼 때의 사랑을 기억하노니 곧 씨 뿌리지 못하는 땅, 그 광야에서 나를 따랐음이니라
3 이스라엘은 여호와를 위한 성물 곧 그의 소산 중 첫 열매이니 그를 삼키는 자면 모두 벌을 받아 재앙이 그들에게 닥치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4 야곱의 집과 이스라엘의 집 모든 족속들아 여호와의 말씀을 들으라
5 나 여호와가 이와 같이 말하노라 너희 조상들이 내게서 무슨 불의함을 보았기에 나를 멀리 하고 가서 헛된 것을 따라 헛되이 행하였느냐
6 그들이 우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시고 광야 곧 사막과 구덩이 땅, 건조하고 사망의 그늘진 땅, 사람이 그 곳으로 다니지 아니하고 그 곳에 사람이 거주하지 아니하는 땅을 우리가 통과하게 하시던 여호와께서 어디 계시냐 하고 말하지 아니하였도다
7 내가 너희를 기름진 땅에 인도하여 그것의 열매와 그것의 아름다운 것을 먹게 하였거늘 너희가 이리로 들어와서는 내 땅을 더럽히고 내 기업을 역겨운 것으로 만들었으며
8 제사장들은 여호와께서 어디 계시냐 말하지 아니하였으며 율법을 다루는 자들은 나를 알지 못하며 관리들도 나에게 반역하며 선지자들은 바알의 이름으로 예언하고 무익한 것들을 따랐느니라
9 그러므로 내가 다시 싸우고 너희 자손들과도 싸우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10 너희는 깃딤 섬들에 건너가 보며 게달에도 사람을 보내 이같은 일이 있었는지를 자세히 살펴보라
11 어느 나라가 그들의 신들을 신 아닌 것과 바꾼 일이 있느냐 그러나 나의 백성은 그의 영광을 무익한 것과 바꾸었도다
12 너 하늘아 이 일로 말미암아 놀랄지어다 심히 떨지어다 두려워할지어다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13 내 백성이 두 가지 악을 행하였나니 곧 그들이 생수의 근원되는 나를 버린 것과 스스로 웅덩이를 판 것인데 그것은 그 물을 가두지 못할 터진 웅덩이들이니라
14 이스라엘이 종이냐 씨종이냐 어찌하여 포로가 되었느냐
15 어린 사자들이 그를 향하여 부르짖으며 소리를 질러 그의 땅을 황폐하게 하였으며 그의 성읍들은 불타서 주민이 없게 되었으며
16 놉과 다바네스의 자손도 네 정수리를 상하였으니
17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너를 길로 인도할 때에 네가 그를 떠남으로 이를 자취함이 아니냐
18 네가 시홀의 물을 마시려고 애굽으로 가는 길에 있음은 어찌 됨이며 또 네가 그 강물을 마시려고 앗수르로 가는 길에 있음은 어찌 됨이냐
19 네 악이 너를 징계하겠고 네 반역이 너를 책망할 것이라 그런즉 네 하나님 여호와를 버림과 네 속에 나를 경외함이 없는 것이 악이요 고통인 줄 알라 주 만군의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예레미야

 

2 가서 예루살렘의 귀에 외칠지니라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기를 내가 너를 위하여 네 청년 때의 인애와 네 신혼 때의 사랑을 기억하노니 곧 씨 뿌리지 못하는 땅, 그 광야에서 나를 따랐음이니라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향하여 '청년 때의 인애' '신혼 때의 사랑'과 같던 때가 있었다고 말씀하신다. 

 

정말 그런 때가 있었나? 아무리 생각해도 그런 적은 없었던 것 같다. 언제 하나님과 이스라엘이 그렇게 알콩달콩 사랑을 나눴던가?

 

하나님이 그때가 언제인지 알려주신다.

 

'그 광야에서 나를 따랐음이니라'

 

광야에서 하나님과 이스라엘은 신혼 같았다고 말씀하신다. 이제 사회에 첫발을 내디딘 어린 청년을 바라보는 어질고 자비스러운 사랑이 있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가 알고 있는 광야 시절은 그렇지 않다. 이스라엘이 광야에서 어떠했던가? 그들은 광야에서 불평과 불만, 심지어 원망과 배신을 밥먹듯이 하지 않았던가?

 

그런 광야 때가 신혼이라고 말씀하시니 정말 이해가 가지 않는다.

 

자고로 신혼이란 어떤 때인가? 누가 뭐래도 둘이 좋아죽는 시절이다. 누가보든 말든 손잡고, 챙겨주고, 안아주고....

 

그런데 또 생각해 보니 신혼 때 결코 끊임없이 사랑만 하지 않는다. 신혼 초에 생각보다 삐지기도 많이 하고, 토라지기도 많이 한다. 가끔은 정말 크게 싸우기도 한다. 

 

왜 그럴까? 서로 다른 두 사람이 처음으로 하나가 되어 살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싸우기도 많이 싸우지만 서로가 서로의 빈자리를 누구보다 그리워하면서 채워주고 그 어떤 때보다 친밀해지는, 서로에게 없어서는 안 될 시기가 신혼 때라는 것이다.

 

그러고 보니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광야가 그러했다. 그들은 공식적으로 400년 이상을 따로 지냈다.

 

서로 불꽃 튀는 사랑으로 애굽을 탈출하고, 홍해를 건넜지만 신혼을 보내던 광야는 너무 척박했다. 그래서 이스라엘은 끊임없이 하나님께 왜 날 챙겨주지 않느냐고, 뭐라도 벌어와야 내가 먹지 않겠느냐고 투정 부리고, 질투심을 유발했다. 

 

그러면 신랑 되신 하나님이 어떻게 하셨던가? 그들의 부르짖음을 들으시고 반석에서 물을 내어주시고, 만나와 메추라기로 그들을 먹이셨다. 

 

하나님은 언제나 그들과 함께하셨고, 그들도 어렵고 힘들 때마다 하나님을 찾았다. 서로의 빈자리가 너무 그리워 항상 서로를 찾는 신혼의 단꿈을 그들은 광야시절 보냈다. 

 

그랬던 이스라엘이 지금은 어떠한가? 

 

5 나 여호와가 이와 같이 말하노라 너희 조상들이 내게서 무슨 불의함을 보았기에 나를 멀리 하고 가서 헛된 것을 따라 헛되이 행하였느냐

6 그들이 우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시고 광야 곧 사막과 구덩이 땅, 건조하고 사망의 그늘진 땅, 사람이 그곳으로 다니지 아니하고 그곳에 사람이 거주하지 아니하는 땅을 우리가 통과하게 하시던 여호와께서 어디 계시냐 하고 말하지 아니하였도다

7 내가 너희를 기름진 땅에 인도하여 그것의 열매와 그것의 아름다운 것을 먹게 하였거늘 너희가 이리로 들어와서는 내 땅을 더럽히고 내 기업을 역겨운 것으로 만들었으며
8 제사장들은 여호와께서 어디 계시냐 말하지 아니하였으며 율법을 다루는 자들은 나를 알지 못하며 관리들도 나에게 반역하며 선지자들은 바알의 이름으로 예언하고 무익한 것들을 따랐느니라

 

그들은 지금 너무나 하나님을 속상하게 만드는, 아니 너무나 분노하시게 만든 '반역자'이자 '원수'가 되었다.

 

그들은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를 저버렸다. 척박한 광야에서 이끌어내셔서 기름진 땅으로 인도하신 하나님의 사랑을 잊어버렸다. 그래서 그 누구도 더 이상 하나님을 찾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하나님은 찾지 않으면서도 하나님이 가장 싫어하고, 경멸하는 우상 '바알'을 찾고 부르짖었다.

 

13 내 백성이 두 가지 악을 행하였나니 곧 그들이 생수의 근원 되는 나를 버린 것스스로 웅덩이를 판 것인데 그것은 그 물을 가두지 못할 터진 웅덩이들이니라

18 네가 시홀의 물을 마시려고 애굽으로 가는 길에 있음은 어찌 됨이며 또 네가 그 강물을 마시려고 앗수르로 가는 길에 있음은 어찌 됨이냐

 

결국 그들은 '헛된 것'(5절)과 '무익한 것'(8절) 들을 따르기 위해 하나님을 버리고(13절), 그들의 전 삶을 바쳤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뿐만이 아니었다. 가나안 초기 그들은 단순히 농사를 짓기 위해 바알을 섬겼지만, 그래도 여전히 하나님이 채워주시는 삶을 부정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지금은 하나님이 채워주시는 삶조차도 부정하기에 이르렀다. 그들은 스스로 살기 위해 웅덩이를 파기 시작했다.

 

그들은 하나님 없이도 얼마든지 살아갈 수 있다고 자신하면서 눈에 보이는 최강국 애굽과 앗수르를 자신들의 하나님으로 섬기고 따랐다는 것이다.

 

이제 그런 그들을 향해 하나님은 심판의 말씀을 선포하신다.

 

9 그러므로 내가 다시 싸우고 너희 자손들과도 싸우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12 너 하늘아 이 일로 말미암아 놀랄지어다 심히 떨지어다 두려워할지어다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19 네 악이 너를 징계하겠고 네 반역이 너를 책망할 것이라 그런즉 네 하나님 여호와를 버림과 네 속에 나를 경외함이 없는 것이 악이요 고통인 줄 알라 주 만군의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하나님을 버린 이가 당할 것은 오로지 심판과 징계요, 책망과 고통이다.

 

오늘 이스라엘을 향한 죄악의 고발을 보면서, 지난날 하나님을 누구보다 뜨겁게 사랑했던 때가 떠올랐다. 

 

하나님 없이는 단 하루도 살 수 없다고 고백했던 시간들, 기도하는 그 시간이 너무 행복하고 즐거워 무릎을 꿇고 기도하다가 다른 사람의 시선 따위는 잊고 일어나 기뻐 뛰며 춤추며 기도하던 시간들, 말씀을 보면서 가슴에 벅찬 눈물을 흘리며 주님만으로 만족했던 시간들. 찬양과 경배의 시간이 너무 사모가 되어 끝나는 시간이 아쉬웠던 시간들.

 

그 시간들은 분명 우리와 하나님의 청년의 인애와 같았던 때이고, 신혼 때의 사랑과 같던 때였을 것이다.

 

그런 우리가 지금은 어떠한 때를 보내고 있을까? 아마 각자가 다 알 것이다.

 

혹시 나를 지난날 은혜로 이끌었던 하나님을 배반하고, 세상의 '돈'과 '물질', '권력'과 '명예'에 빠져 더 이상 하나님을 찾지 않는, 세상의 헛된 것과 무익한 것에 빠져 더 이상 하나님 없이도 살아갈 수 있다고 스스로 믿는 사람들이 되지는 않았을까?

 

오늘 예레미야의 본문이 우리에게 '변화를 위한 쓴소리'가 되기를 바란다.

 

그래서 주님 앞에 겸손히 다시 엎드려 울며 회개하는, "나는 주님 없이는 단 하루도 살 수 없습니다", "나에겐 오직 주님 밖에 없습니다"  다시 한번 주님 앞에 순종하며 나아갈 수 있는 주님의 귀한 자녀들이 되기를 소망한다.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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