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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큐티(Q.T)

(롬 3:21~31)'fidúcĭa'피두치아(매일성경큐티, 로마서 3:21~31)

by 무지개소년 2023. 5. 31.

'fidúcĭa' 피두치아

매일성경큐티 230601 목
찬양: 모든 상황 속에서
성경: 로마서 3:21~31
21 이제는 율법 외에 하나님의 한 의가 나타났으니 율법과 선지자들에게 증거를 받은 것이라
22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믿는 자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의니 차별이 없느니라
23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24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 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25 이 예수를 하나님이 그의 피로써 믿음으로 말미암는 화목제물로 세우셨으니 이는 하나님께서 길이 참으시는 중에 전에 지은 죄를 간과하심으로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려 하심이니
26 곧 이 때에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사 자기도 의로우시며 또한 예수 믿는 자를 의롭다 하려 하심이라
27 그런즉 자랑할 데가 어디냐 있을 수가 없느니라 무슨 법으로냐 행위로냐 아니라 오직 믿음의 법으로니라
28 그러므로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얻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 있지 않고 믿음으로 되는 줄 우리가 인정하노라
29 하나님은 다만 유대인의 하나님이시냐 또한 이방인의 하나님은 아니시냐 진실로 이방인의 하나님도 되시느니라
30 할례자도 믿음으로 말미암아 또한 무할례자도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하실 하나님은 한 분이시니라
31 그런즉 우리가 믿음으로 말미암아 율법을 파기하느냐 그럴 수 없느니라 도리어 율법을 굳게 세우느니라

 

 

믿음

 

 

오늘 21절 말씀을 영어성경으로 보면 이렇게 시작한다.

 

'But now a righteousness from God~'. 해석해 보자면 '그러나 이제는~'.

 

무엇인가 이전과는 다른 상황이 펼쳐졌다는 것이다. 이전과 무엇이 달라졌을까?

 

롬 3:9~10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다 죄 아래에 있다고 우리가 이미 선언하였느니라/ 기록된 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23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그렇다. 어제 말씀을 보니 우리 모두는 본래 죄아래 있는 자, 즉 불의한 자로 태어났다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이 세상을 끊임없이 탐하고, 욕망과 욕구를 채우기 위해 애쓰며 살아간다는 것이다. 결국 죄의 삯은 사망이다.

 

'But now~', '그러나 이제는~'

 

21 이제는 율법 외에 하나님의 한 의가 나타났으니

 

24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 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그러나 이제는'. 전에는 우리의 불의함으로 인하여 죽을 수밖에 없는 존재였는데, 그러나 이제는 우리에게 복음(유앙겔리온, εὐαγγέλιον)이 주어졌다는 것이다. 

 

복음이 무엇인가? εὐ 좋은 + αγγέλιον 소식.

 

그렇다. 복음은 '좋은 소식'이다. 누구에게? 그 소식을 듣는 모든 이들에게 좋은 소식이다.

 

우리에게 어떤 좋은 소식이 선포되었는가? 

 

죄의 삯으로 죽을 수 밖에 없었던 우리가 '예수그리스도의 속량'으로 말미암아 값없이 의롭다 하심(칭의)을 얻게 되었다. 새 생명을 얻게 되었다. 할렐루야! 이 보다 더 기쁜 소식(복음,  εὐαγγέλιον)이 어디 있겠는가?

 

그런데 중요한 것은 이 기쁜 소식이 우리에게 정말 '값없이'(24절) 주어졌다는 것이다. 

 

27 그런즉 자랑할 데가 어디냐······

 

그래서 누구도 의롭다 함을 자랑할 자가 없고, 공적을 내세울 자가 없는 것이다. 이것은 오로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값없는 선물'(에베소서 2:8) 일뿐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무엇으로 의롭다 하심과 구원을 얻을 수 있는가? 율법의 행위인가? 규범을 지키려는 노력인가?

 

27 ······ 무슨 법으로냐 행위로냐 아니라 오직 믿음의 법으로니라

 

28 그러므로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얻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 있지 않고 믿음으로 되는 줄 우리가 인정하노라

 

오직 믿음으로. 우리가 의롭다 칭함을 얻게 되는 것은, 구원을 얻어 새 생명 얻음은 오직 예수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말미암는다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까지만 보면 오늘 말씀은 너무나 간단하고 좋을 텐데... 갑툭튀!

 

바울은 갑자기 '율법' 이야기를 꺼낸다. 사실 오늘 말씀을 28절까지만 읽어보면, 율법은 우리의 믿음에 있어서 크게 상관있는 존재가 아니다. 오히려 어쩌면 없어도 되는 무쓸모의 존재처럼 여겨지기까지 한다.

 

그런데 바울은 너무나 갑자기 그 누구보다 우리 가운데 율법이 굳게 세워져야 한다고, 이해할 수 없는 말을 한다.

 

31 그런즉 우리가 믿음으로 말미암아 율법을 파기하느냐 그럴 수 없느니라 도리어 율법을 굳게 세우느니라

 

갑자기 바울이 율법이야기를 하는 내막은 무엇일까? 이 것에 대해 우리는 예수님의 말씀에서 그 힌트를 찾을 수 있다. 

 

마태복음 5:17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를 폐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하게 하려 함이라

 

사실 예수님은 율법의 결정체셨다.

 

구약의 제사를 보면 가장 중요한 것은 '속죄 제물'이었다. 그리고 그 속죄 제물의 조건은 '흠이 없는 동물'이었다(레위기 4, 16장).

 

마찬가지다. 예수님은 불의한 우리를 대신할 흠 없는 '속죄 제물'로 이 땅에 오셨다. 그래서 오늘 24절과 같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게 된 것이다.

 

즉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속량함을 믿는 전제조건이 되는 것이 바로 '율법'이다. '율법'이 없이는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도, 우리의 '믿음'도 전혀 의미가 없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바울은 28절까지 '아 율법은 필요 없고, 오직 믿음만 있으면 되는구나!' 오해할 로마교회를 위해 율법의 중요함 또한 가르쳐주고 싶었던 것이다.

 

오늘 말씀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이 무엇일까?

 

우리를 구원에 이르게 하는 것은 '오직 믿음'이다. 분명히 맞다. 그런데 우리가 믿는 이 믿음은 과연 무엇일까?

 

종교개혁 당시, 중세교부들은 'Sola fide'(오직 믿음으로)를 주장했다. 그런데 그들이 'fide'라는 단어보다 더 좋아하고 사랑했던 단어가 있다. 그것은 바로 'fidúcĭa'(피두치아)라는 단어였다. 이 단어의 뜻은 'fide'와 같은 '믿음, 신뢰'라는 뜻도 있었지만, 그것보다 더 강한 의미인 '신탁'이라는 뜻도 있었다.

 

쉽게 말해, 그들이 생각했던 믿음(피두치아, 신탁)이란 단순히 나의 삶을 하나님께 맡기는 정도가 아니라, 내 삶 전 존재를 하나님께 던졌다는 뜻이었다.

 

즉 내가 하나님께 이미 내 삶을 전부 다 던져버렸기 때문에, 나의 삶 가운데 어떤 상황과 여건, 환경이 주어진 다하더라도 내가 주를 신뢰함에는, 내가 주를 믿는 믿음의 행동에는 변함이 없었다는 것이다.

 

결국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 믿음이란 무엇인가?

 

하나님의 뜻이라면 어떤 순간, 어떤 상황이라도 그 뜻에 순종하겠다는 것이다.

 

나는 이것이 오늘 사도바울이 말한 믿음과 율법의 관계와 뜻이라고 생각한다. 믿음이 있는데, 율법의 행위를 경시 여기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예수님 조차도 그 율법의 완성을 위해 자신을 버리고 희생하셨음을 우리는 꼭 기억해야 한다. 

 

오늘 예수님을 믿는다는 고백을 하면서도, 삶의 모습(말과 행동, 마음)이 변하지 않는 이들이 있다. 물론 나조차도. 그렇다면 오늘 바울이 말한 오직 '믿음'의 의미를 다시 한번 되새겨보는 하루가 되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믿음이란? 예수님께 나의 삶의 전 존재를 던지는 것이다.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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