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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큐티(Q.T)

(롬 3:1~20)오직 주의 말씀 아래(매일성경큐티, 로마서 3:1~20)

by 무지개소년 2023. 5. 30.

오직 주의 말씀 아래

매일성경큐티 230531 수
찬양: 내 눈 주의 영광을 보네
성경: 로마서 3:1~20
1 그런즉 유대인의 나음이 무엇이며 할례의 유익이 무엇이냐
2 범사에 많으니 우선은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맡았음이니라
3 어떤 자들이 믿지 아니하였으면 어찌하리요 그 믿지 아니함이 하나님의 미쁘심을 폐하겠느냐
4 그럴 수 없느니라 사람은 다 거짓되되 오직 하나님은 참되시다 할지어다 기록된 바 주께서 주의 말씀에 의롭다 함을 얻으시고 판단 받으실 때에 이기려 하심이라 함과 같으니라
5 그러나 우리 불의가 하나님의 의를 드러나게 하면 무슨 말 하리요 내가 사람의 말하는 대로 말하노니 진노를 내리시는 하나님이 불의하시냐
6 결코 그렇지 아니하니라 만일 그러하면 하나님께서 어찌 세상을 심판하시리요
7 그러나 나의 거짓말로 하나님의 참되심이 더 풍성하여 그의 영광이 되었다면 어찌 내가 죄인처럼 심판을 받으리요
8 또는 그러면 선을 이루기 위하여 악을 행하자 하지 않겠느냐 어떤 이들이 이렇게 비방하여 우리가 이런 말을 한다고 하니 그들은 정죄 받는 것이 마땅하니라
9 그러면 어떠하냐 우리는 나으냐 결코 아니라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다 죄 아래에 있다고 우리가 이미 선언하였느니라
10 기록된 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11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12 다 치우쳐 함께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
13 그들의 목구멍은 열린 무덤이요 그 혀로는 속임을 일삼으며 그 입술에는 독사의 독이 있고
14 그 입에는 저주와 악독이 가득하고
15 그 발은 피 흘리는 데 빠른지라
16 파멸과 고생이 그 길에 있어
17 평강의 길을 알지 못하였고
18 그들의 눈 앞에 하나님을 두려워함이 없느니라 함과 같으니라
19 우리가 알거니와 무릇 율법이 말하는 바는 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에게 말하는 것이니 이는 모든 입을 막고 온 세상으로 하나님의 심판 아래에 있게 하려 함이라
20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

 

 

주의말씀아래

 

 

9~10 그러면 어떠하냐 우리는 나으냐 결코 아니라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다 죄 아래에 있다고 우리가 이미 선언하였느니라 기록된 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그렇다. 누구나 다 죄 아래에 있다. 우리는 모두 죄인이다.

 

내가 모태신앙인지, 내가 목회자의 자녀인지, 내가 중직자의 자녀인지, 내가 불신자의 가정에서 자랐던지, 그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즉 우리가 어디서, 어떻게 태어나 자라왔는가에 따라 우리의 본래적 신분이 바뀌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누구인가?

 

우리는 태어날 때부터 모두 똑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였고, 죄 아래 있는 자, 로마서 1~2장에서 계속 지적한 바 본래 불의한 자라는 것이다. 그래서 바울은 계속해서 유대인이든, 헬라인이든 같다고 말하는 것이다.

 

오늘 나도 그랬다. 일어나자마자 향긋한 커피가 그립다. 그런데 이왕이면 우중충한 집이 아닌, 바닷가가 내려다보이는 좋은 카페에서 우아하게 커피 한잔을 하고 싶다. 결국 자족함을 넘어, 돈이 많았으면 하는 마음에까지 사로잡힌다.

 

내가 목사인 것이, 내가 표면적 유대인인 것이 중요치 않다. 그저 욕망에 사로잡힌 똑같은 한 인간일 뿐임을 나조차도 이미 너무 잘 안다.

 

그래서 오늘 본문에서 바울은 우리의 세상에서의 모습을 이렇게 적나라하게 표현한다.

 

11~18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다 치우쳐 함께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 그들의 목구멍은 열린 무덤이요 그 혀로는 속임을 일삼으며 그 입술에는 독사의 독이 있고/ 그 입에는 저주와 악독이 가득하고/ 그 발은 피 흘리는 데 빠른지라/ 파멸과 고생이 그 길에 있어/ 평강의 길을 알지 못하였고/ 그들의 눈앞에 하나님을 두려워함이 없느니라 함과 같으니라

 

이게 우리의 모습이다. Real!!! ㅎㅎ. 너무 훌륭하지(?) 아니한가?

 

우리 가정의 모습을 고백해보고자 한다. 우리 가정은 매일 저녁마다 가정예배를 드린다. 거룩하게 들리는가? 표면적인 모습은 그렇다. 그런데 그 이면에는 어떠한 고민과 갈등이 있는지 아무도 모를 것이다.

 

매일 저녁 예배시간이 찾아오면, 우리는 누구랄 것 없이 눈치를 본다. 왜냐하면 하나님을 찾는 것보다 TV의 장면들이 훨씬 더 재미나 보이기 때문이다. 예배를 드리는 것보다 하루의 피로를 쉬는 것으로 대신하고 싶기 때문이다. 

 

또한 정말 신기하게도 저녁 예배를 전후로 가족들의 말은 열린 무덤에서 쏟아져 나오는 저주와 악독으로 가득 찬다. 아내와 아들, 나와 아내 사이에 살짝의 조롱 섞인 말이 오가기도 하고, 큰 소리로 떠드는 소리가 들리기도 한다.

 

그럴 때면 속으로 이런 마음이 든다. 이렇게 하나님을 두려워하지도 않는 모습으로, 예수님과 동행하지 못하는 모습으로 예배를 드린다고? 그냥 오늘은 예배드리지 말고, 편안히 쉬다 잘까?

 

이런 모습(한껏 양심에 찔리는)으로 예배를 드리면 뭐 하나 생각이 든다.

 

다음 구절을 읽는데, 이 모습이 다른 불신자의 모습이 아님이 깨달아진다. 바로 우리 집, 또 나의 모습이다.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다 치우쳐 함께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

 

"거 장난이 너무 심한 거 아니오!", 이정재의 명대사가 떠오르는 구절이다. 너무 한 것 같다. 하나님을 찾지도 않았다니????

 

그런데 이 말씀이 과도한 꾸밈이 아니라 정말 우리 자아의 실제적 모습임을 깨닫는 은혜가 있기를 소망한다.

 

참 신기하다. 살벌한 그 분위기 속에서도, 피곤하고 지친 예민한 그 감정 속에서도, 귀찮고 더 재미난 것을 하고 싶은 환경과 상황 속에서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가족은 어제 저녁도 결국 예배를 드렸다.

 

그것도 언제 그랬냐는 듯 신령과 진정으로, 온 마음을 다해 주님을 찾는다. 어떻게? 왜 그렇게 할 수 있을까?

 

19~20 우리가 알거니와 무릇 율법이 말하는 바는 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에게 말하는 것이니 이는 모든 입을 막고 온 세상으로 하나님의 심판 아래에 있게 하려 함이라/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

 

결국 어렵고 힘들지만, 그럼에도 매일 저녁마다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고 나누면, 그 말씀이 우리의 죄된 입을 막게 하고, 우리의 죄된 자아를 너무나 분명히 깨닫게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더 나아가 그 말씀을 들을 때에 우리를 죽이는 세상의 심판이 아닌 우리를 살리는 복음,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남을 우리 모두가 예배 중에 고백하고, 깨닫게 되기 때문이다.

 

정말 그렇다. 아이들의 고백을 들을 때면 언제나 나는 예배 중에 남몰래 눈물을 훔친다. 아이들은 정말 순수하게 주님의 이름을 찬양한다. 얼마나 오늘도 삶 속에서 하나님께서 우리 가족을 돌보시고 인도해 주셨는지 그들은 정말 해맑게 말한다.

 

죄 아래 있으나, 그럼에도 말씀 아래에 서고자 할 때에 우리 가족이 누리는 은혜이다. 오늘 우리 모두에게도 이러한 은혜가 함께하길 소망한다.

 

때로는 하나님의 말씀이 세상의 베스트셀러를 읽는 것보다 재미없고, 무익하게 느껴질 때도 있다.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것이 그 무엇보다 귀찮고, 짜증 나게 느껴질 때도 있다.

 

하나님께 찬양과 경배하는 내 모습이 오히려 더 가식적으로 보여서 아예 주님을 찾지 않는 것이 더 은혜스럽다고 합리화하기도 한다.

 

정말 그럴까? 그렇지 않다.

 

그게 사실은 우리의 본모습이다. 그렇기 때문에 결코 숨길 필요가 없다. 우리는 모두 죄아래에 있기 때문에, 그 모습이 우리의 진짜이다. 다만 그것을 진심으로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이 중요한 것이다.

 

그리고 더 나아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말씀 아래에 서고자하는, 더 예배드리고, 더 찬양하고자 하는 열정이 우리 가운데 있어야 한다. 그러면 이길 수 있다. 그러면 죄의 본성, 그 그늘에서 벗어날 수 있다.

 

"주님, 나는 죄인입니다. 언제나 세상의 욕망과 거짓을 쫓는 불의한 자입니다. 그러나 주님,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를 찬양합니다. 주를 예배합니다. 나의 예배와 찬양을 받아주시옵소서. 오늘도 말씀으로 우리를 새롭게 하여 주시옵소서"

 

나의 모습과 상관없이, 내게 주어진 상황과 환경과 상관없이, 오늘도 하나님께 예배하고, 주의 말씀을 읽고 묵상하는데 더 열심을 낼 수 있는 우리가 되기를 소망한다. 

 

우리는 불의하나, 복음을 듣고 외칠 때에, 그에게 하나님의 의(롬 1:17)가 나타남을 기억하자!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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