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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큐티(Q.T)

(마태복음 25:31~46) 보이면 즉시로! (매일성경큐티, 마25)

by 무지개소년 2023. 3. 30.

보이면 즉시로! (매일성경큐티 230330)


찬양: 기대(주 안에 우린 하나)
성경: 마 25:31~46
 

31 인자가 자기 영광으로 모든 천사와 함께 올 때에 자기 영광의 보좌에 앉으리니
32 모든 민족을 그 앞에 모으고 각각 구분하기를 목자가 양과 염소를 구분하는 것 같이 하여
33 양은 그 오른편에 염소는 왼편에 두리라
34 그 때에 임금이 그 오른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내 아버지께 복 받을 자들이여 나아와 창세로부터 너희를 위하여 예비된 나라를 상속받으라
35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였고
36 헐벗었을 때에 옷을 입혔고 병들었을 때에 돌보았고 옥에 갇혔을 때에 와서 보았느니라
37 이에 의인들이 대답하여 이르되 주여 우리가 어느 때에 주께서 주리신 것을 보고 음식을 대접하였으며 목마르신 것을 보고 마시게 하였나이까
38 어느 때에 나그네 되신 것을 보고 영접하였으며 헐벗으신 것을 보고 옷 입혔나이까
39 어느 때에 병드신 것이나 옥에 갇히신 것을 보고 가서 뵈었나이까 하리니
40 임금이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하시고
41 또 왼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저주를 받은 자들아 나를 떠나 마귀와 그 사자들을 위하여 예비된 영원한 불에 들어가라
42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지 아니하였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지 아니하였고
43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지 아니하였고 헐벗었을 때에 옷 입히지 아니하였고 병들었을 때와 옥에 갇혔을 때에 돌보지 아니하였느니라 하시니
44 그들도 대답하여 이르되 주여 우리가 어느 때에 주께서 주리신 것이나 목마르신 것이나 나그네 되신 것이나 헐벗으신 것이나 병드신 것이나 옥에 갇히신 것을 보고 공양하지 아니하더이까
45 이에 임금이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하지 아니한 것이 곧 내게 하지 아니한 것이니라 하시리니
46 그들은 영벌에, 의인들은 영생에 들어가리라 하시니라

 

우분투

 

하나님 나라의 상속자.

예수님은 심판에 대해 말씀하신다. 왼편과 오른편으로 나뉘는 구조. 왼편은 염소, 오른편은 양.

 

왜 하필 염소와 양일까? 쓸데없는 것이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속설이 있다. 염소는 사납고, 양은 온순하다? 염소는 말을 듣지 않고, 양은 말을 잘 듣는다?

 

속설이 무엇이던가? '카더라'와 동급이다. 결국 인간이 지어낸 그럴듯한 말이었다.

 

왜 예수님은 하필 양과 염소로 의인과 악인을 구분하셨을까?

 

정답은 '배려'에 있다고 한다. 목자는 먹이를 줄 때, 염소를 가장 마지막에 준다고 한다. 왜 그럴까? 배려가 없기 때문이다. 

 

양은 먹이를 주면, 가장 먼저 병들어 약한 양이나 어린양들을 먹게 한다고 한다(이거 보지를 못했으니 학자들의 견해를 따를 수밖에 없음을 양해 바란다).

 

그런데 염소는 그렇지 않단다. 염소는 다른 양이나 염소가 병들었는지, 어린 염소가 꼴을 잘 챙겨 먹는지 상관하지 않는다. 오로지 자기 배만 실컷 불린다고 한다.

 

오늘 말씀에서 가장 중요한 포인트는 이것이다. 결국 왼편과 오른편을 나누는 가장 결정적 기준은 바로 '배려'이다.

 

배려가 무엇인가? 연약하고 부족한 사람을 이해하고, 기다려주고, 도와주는 마음이 배려다. 그리고 오늘 예수님은 그들을 가리켜 '지극히 작은 자'라고 말씀하신다.

 

35~36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였고 헐벗었을 때에 옷을 입혔고 들었을 때에 돌보았고 옥에 갇혔을 때에 와서 보았느니라

 

약하고, 천하고, 버림받고, 부족한 자가 필요를 느낄 때에 그들에게 다가가 그 필요를 채워주고, 그 필요를 채워줄 뿐만 아니라, 그들과 함께 있었던 자들이 바로 양과 같은 자, 하나님 나라의 상속자가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반대의 경우 42~43절과 같이 그들은 돕지 않았고, 나누지 않았고, 함께 하지 않았다. 

 

42~43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지 아니하였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지 아니하였고 43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지 아니하였고 헐벗었을 때에 옷 입히지 아니하였고 들었을 때와 옥에 갇혔을 때에 돌보지 아니하였느니라 하시니

 

그런데 매우 중요한 단어가 하나 등장한다. 42~43절을 보면, '아니하였다'라는 단어가 5번 반복하면서, 왼편에 선 염소, 악인들은 못한 것이 아니라, 안 한 것임을 강조한다. 무슨 말인가?

 

결국 어제 우리가 나눈 '달란트 비유'가 괜히 나온 이야기가 아니란 것이다. 누구나 주님께서 도울 수 있는 것을 주셨다. 나눌 수 있는 것을 주셨다. 그 양이 많고 적은 것에 불과한 것이지, 그 은사가 다양하고, 소수인 것뿐이지 하나님은 누구에게나 달란트를 주셨다는 것이다.

 

그런데 누구에게나 달란트를 주었지만, 누구나 '착하고 충성된 종'이 되는 것은 아니다.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은 우리에게 주신 달란트를 이 땅에서 어떻게 활용해야하는지 정확히 말씀해 주신다. '나'의 배를 불리기 위해 사용하지 말고, '나'와 '너'가 함께 하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사용하라는 것이다. 즉, 이 땅에 이미 도래한 '하나님의 나라'를 세워가라는 말씀이다.

 

'어느 때에' 라는 말이 반복되다 보니 또 문맥과 상관없이 마음에 울림이 생긴다.

 

예수님을 깊이 묵상하자고 만든 것이 '사순절'이 아니던가? 그런데 곧 '부활절'이 오면 '이제 해방이다'라고 말하는 크리스천들이 꽤 많다고 한다. 내 얘기던가?

 

사순절은 하지 말고, 부활절은 해도 된다는 논리가 있기 때문에, 오늘 본문의 '어느 때에'라는 개념이 많이 등장한다는 생각도 들었다. 

 

'어느 때'인지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예수님은 '어느 때'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지극히 작은 자'가 굶주리고, 헐벗고, 아프고, 상처 입고, 도움이 필요한 그 순간, 그때, 도왔냐? 안 도왔냐? 말씀하시는 것이다.

 

사순절이기 때문에, 주님을 더 묵상해야 하기에, 이 기간에 더 어려운 이들을 돌아보는 것이 아니라, 부활절이기 때문에 그들을 이제 관심밖으로 두는 것이 아니라...

 

그게 잘 안되니까 이 기간만이라도 하자고 하는 의미, 나도 누구보다 잘 아는데, 내가 아닌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이 '어느 때'를 따지지 말고, '지극히 작은 자'와 함께하는 것이 주님과 함께하는 삶이라고 말씀하셨다는 것이다.

 

예수님은 말씀하신다.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오늘 나는 어떨까? 여러가지 생각이 든다. 갈등이 생긴다. 없는 형편에 살 것은 왜 이리도 많고, 들어가는 돈은 왜 이리 많은지? 돈은 없는데, 할 것은 많다. 그런데 이런 형편과 상황 중에도 도와야 할까?

 

오늘 말씀에서 주님은 말씀하신다. 고민하지 말고, 갈등하지 말고, 보이면 하면 된다라고 말씀하신다.

 

오늘 부족하고, 연약하지만 내가 갖고 있는, 아니 내가 받은 달란트가 비록 적지만, 땅에 묻지 않겠다.

 

나의 작은 달란트라도 잘 활용하면 이자가 될 수 있다고 하니, '지극히 작은 자'가 보이면 바로 돕자, 품어주자. 안아주자. 손잡아주자. 그것이 이 땅에서 하나님의 나라를 사는 유일한 비결이다.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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