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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큐티(Q.T)

(마태복음 26:17~35) 세상을 이기는 믿음 (매일성경큐티, 마26)

by 무지개소년 2023. 4. 1.

세상을 이기는 믿음 (매일성경큐티 230401)


찬양: 그 사랑 얼마나/ 십자가 그 사랑
성경: 마 26:17~35
 

17 무교절의 첫날에 제자들이 예수께 나아와서 이르되 유월절 음식 잡수실 것을 우리가 어디서 준비하기를 원하시나이까
18 이르시되 성안 아무에게 가서 이르되 선생님 말씀이 내 때가 가까이 왔으니 내 제자들과 함께 유월절을 네 집에서 지키겠다 하시더라 하라 하시니
19 제자들이 예수께서 시키신 대로 하여 유월절을 준비하였더라
20 저물 때에 예수께서 열두 제자와 함께 앉으셨더니
21 그들이 먹을 때에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중의 한 사람이 나를 팔리라 하시니
22 그들이 몹시 근심하여 각각 여짜오되 주여 나는 아니지요
23 대답하여 이르시되 나와 함께 그릇에 손을 넣는 그가 나를 팔리라
24 인자는 자기에 대하여 기록된 대로 가거니와 인자를 파는 그 사람에게는 화가 있으리로다 그 사람은 차라리 태어나지 아니하였더라면 제게 좋을 뻔하였느니라
25 예수를 파는 유다가 대답하여 이르되 랍비여 나는 아니지요 대답하시되 네가 말하였도다 하시니라
26 그들이 먹을 때에 예수께서 떡을 가지사 축복하시고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며 이르시되 받아서 먹으라 이것은 내 몸이니라 하시고
27 또 잔을 가지사 감사 기도 하시고 그들에게 주시며 이르시되 너희가 다 이것을 마시라
28 이것은 죄 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
29 그러나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가 포도나무에서 난 것을 이제부터 내 아버지의 나라에서 새것으로 너희와 함께 마시는 날까지 마시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30 이에 그들이 찬미하고 감람 산으로 나아가니라
31 그 때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오늘 밤에 너희가 다 나를 버리리라 기록된 바 내가 목자를 치리니 양의 떼가 흩어지리라 하였느니라
32 그러나 내가 살아난 후에 너희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리라
33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모두 주를 버릴지라도 나는 결코 버리지 않겠나이다
34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밤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
35 베드로가 이르되 내가 주와 함께 죽을지언정 주를 부인하지 않겠나이다 하고 모든 제자도 그와 같이 말하니라

 

유다

 

1. 눈이 가려진 사람.

그간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기적' 그 자체였다. 얼마나 놀라운 일들이 많았던가? 오늘 말씀의 시작도 마찬가지다. 

 

예루살렘 입성할 때의 '나귀'와 같이 주님은 마지막 만찬의 장소를 놀랍게도 '성안 아무개'에게서 해결하신다. 2천 년이 지난 우리가 보기에도 놀라운데, 제자들은 전혀 놀라워하지 않는 눈치이다.

 

왜 그랬을까? 그만큼 제자들에게 예수님의 '기적과 이사'는 별로 놀라운 일이 아니었다. 보고, 또 보고 엄청 많이 봤으니까. 이미 그분은 차원이 다른 분이셨으니....

 

그렇다면 오늘의 이야기가 더 말이 되지 않는다. 이미 예수님은 바로 직전의 말씀에서 가룟 유다의 배신을 암시하셨다. 그리고 오늘 또다시 그 말씀을 꺼내신다. 그런데 가룟유다의 대답이 가관이다.

 

"예수를 파는 유다가 대답하여 이르되 랍비여 나는 아니지요 대답하시되 네가 말하였도다 하시니라"

 

어떻게 그렇게 말할 수 있을까? 가룟유다가 예수님을 기만하기 위함이었을까?

 

아니다. 그 누구보다 예수님을 잘 아는 가룟유다다. 그렇다면 왜 그렇게 말했을까? 아무리 못해도 움찔은 했어야 하지 않았을까? 얼굴이 빨개져야 하지 않았을까?

 

이미 그의 눈이 가려졌기 때문이었다. 누구에게?

 

요한복음 13:2 "마귀가 벌써 시몬의 아들 가룟 유다의 마음에 예수를 팔려는 생각을 넣었더라"

 

그렇다. 이것은 유다가 스스로 품고 계획한 것이 아니었다. 사단에게 그는 영혼을 잠식당했다. 사단이 그를 종노릇 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그래서 그는 정작 예수님 곁에 누구보다 오래 있었지만, 이제는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지 전혀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그의 최후가 어떻던가? 아무리 깨달았어도 이미 늦은 것이다. 그는 결국 누구보다 비참한 최후를 맞는다.

 

이것이 사단에게 눈이 가려진 자의 최후다. 자신이 어디로 가는지, 무엇을 하는지 전혀 알지 못한채 멸망으로 달음질하게 되는 자. 그것이 사단에게 눈이 가려진 사람이다.

 

2. 두려움에 사로 잡힌 사람.

두 번째 눈에 들어온 것은 역시 베드로의 배신 예고였다. 베드로가 누구던가? 수제자이다. 이것은 그 누구도 의심치 않던 사실이고, 본인조차도 강력하게 믿고 있던 사실이었다.

 

사실이란 것이 참 중요하다.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모두 주를 버릴지라도 나는 결코 버리지 않겠나이다"

 

이 말은 정말 사실이었다. 그간 그가 보여준 말과 행적을 볼 때, 그는 결코 어떤 경우에도 예수님을 배신하고 싶지 않았으리라. 본인 스스로도 그렇게 믿지 않았을까?

 

그런데 결과적으로 어떠했던가? 그는 이 사실을 지키지 못하고, 거짓을 택한다. 아니 거짓을 택해야만 했다.

 

왜 그러했을까? 마음에 찾아 온 '두려움'을 이겨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두려움'을 주었던 것은 바로 '사탄'이었다.

 

그렇다. 사단에게 사로잡혀 마음에 두려움과 염려를 잠식당하게 되면, 사실을 말하고 싶어도, 거짓을 행하게 된다. 정의를 외치고 싶어도, 불법을 행하게 된다. 

 

그래서 후일에 베드로가 이 때의 일을 교훈 삼아 이렇게 말하지 않던가?

 

베드로전서 5:7~9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기라 이는 그가 너희를 돌보심이라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너희는 믿음을 굳건하게 하여 그를 대적하라 이는 세상에 있는 너희 형제들도 동일한 고난을 당하는 줄을 앎이라"

 

베드로는 어떻게 했을까? 그는 결국 십자가 앞에서 도망쳤다. 실패자가 되었다. 

 

이것이 '두려움'에 사로잡힌 자의 최후이다. 자신은 '정의'를 외치고, 스스로는 '사실'을 행하고 싶으나, 그럴 수 없다. 그는 두려움 앞에 무너져 그의 마음과 다른 '죄'를 행하고, '거짓'을 말한다는 것이다.

 

 

3. 어떻게 해야할까?

결국 우리가 이 땅을 온전히 살아가려면, 요한일서의 말씀처럼 죄에게 종노릇 하지 않고, 오직 예수그리스에게 종노릇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답은 간단하다. 눈이 가려지면 안 된다. 두려움에 사로잡히면 안 된다. 즉 사단을 이기는 믿음이 있어야 한다.

 

사단을 이기는 믿음이 무엇일까? 오직 그 사랑, 십자가의 사랑 밖에 없다.

 

사 41:10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 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

 

먼저 두려움을 이기려면 주님이 우리와 함께하심을 깨달아야 한다. 그 주님이 우리와 함께하심을 드러난 사건이 무엇인가? 그것이 바로 십자가다.

 

요한 1서 4장 말씀.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속하기 위하여 화목제물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라 사랑 안에 두려움이 없고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쫓나니 두려움에는 형벌이 있음이라 두려워하는 자는 사랑 안에서 온전히 이루지 못하였느니라"

 

오늘 나는 과연 십자가의 사랑, 예수님의 그 사랑을 진정 깨닫고 있을까? 

 

두렵다. 무섭다. 세상살이가 염려가 되고, 사람과의 관계가 두렵고, 하루하루 사는 것이 견뎌내는 것처럼 무거울 때가 있다. 돈이 무섭고, 먹는 것이 짐이 된다. 

 

누가 주는 마음일까? 사탄이 우리를 죄에게 종노릇 하기 위해 눈을 가리는 것이다. 두려움을 우리 속에 불어넣고 있는 것이다.

 

사순절, 십자가를 깊이 묵상하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바로 주님이 우리와 함께하신다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달아보기 위함이다. 그 십자가에서 죽임 당하신 그분의 진정한 사랑을 깨달아보라는 것이다. 그 사랑이 얼마나 위대하고, 뜻깊은 배려인지 마음 깊이 간직하라는 것이다.

 

그래서 세상에서 이기는 사람이 되라는 것이다.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음 있는 자로 살아가라는 것이다. 담대하라는 것이다. 소망을 잃지 말라는 것이다. 세상의 빛과 소금으로 빛을 비추이고, 맛을 내는 삶을 살라는 것이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그 '하나님의 형상'으로 세상을 정복하고, 다스리는 삶을 살라는 것이다.

 

무엇보다 십자가 그 사랑을 깨달았다면, 다시금 세상에 나가서 주님이 이기신 그 믿음, 그 사랑으로 세상을 이기는 승리를 이루며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며 살라는 것이다.

 

요한복음 16:33. "이것을 너희에게 이르는 것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오늘도 그 사랑으로 담대히 세상을 이기는 예수그리스도에게 종노릇 하는 빛의 자녀들이 되기를 소망한다. 여호와 닛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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