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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큐티(Q.T)

(마태복음 27:11~26) 의로운 십자가의 길 (매일성경큐티, 마27)

by 무지개소년 2023. 4. 4.

의로운 십자가의 길 (매일성경큐티 230405)


찬양: 마음이 상한 자를
성경: 마 27:11~26
 

11 예수께서 총독 앞에 섰으매 총독이 물어 이르되 네가 유대인의 왕이냐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네 말이 옳도다 하시고
12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에게 고발을 당하되 아무 대답도 아니하시는지라
13 이에 빌라도가 이르되 그들이 너를 쳐서 얼마나 많은 것으로 증언하는지 듣지 못하느냐 하되
14 한 마디도 대답하지 아니하시니 총독이 크게 놀라워하더라
15 명절이 되면 총독이 무리의 청원대로 죄수 한 사람을 놓아 주는 전례가 있더니
16 그 때에 바라바라 하는 유명한 죄수가 있는데
17 그들이 모였을 때에 빌라도가 물어 이르되 너희는 내가 누구를 너희에게 놓아 주기를 원하느냐 바라바냐 그리스도라 하는 예수냐 하니
18 이는 그가 그들의 시기로 예수를 넘겨 준 줄 앎이더라
19 총독이 재판석에 앉았을 때에 그의 아내가 사람을 보내어 이르되 저 옳은 사람에게 아무 상관도 하지 마옵소서 오늘 꿈에 내가 그 사람으로 인하여 애를 많이 태웠나이다 하더라
20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이 무리를 권하여 바라바를 달라 하게 하고 예수를 죽이자 하게 하였더니
21 총독이 대답하여 이르되 둘 중의 누구를 너희에게 놓아 주기를 원하느냐 이르되 바라바로소이다
22 빌라도가 이르되 그러면 그리스도라 하는 예수를 내가 어떻게 하랴 그들이 다 이르되 십자가에 못 박혀야 하겠나이다
23 빌라도가 이르되 어찜이냐 무슨 악한 일을 하였느냐 그들이 더욱 소리 질러 이르되 십자가에 못 박혀야 하겠나이다 하는지라
24 빌라도가 아무 성과도 없이 도리어 민란이 나려는 것을 보고 물을 가져다가 무리 앞에서 손을 씻으며 이르되 이 사람의 피에 대하여 나는 무죄하니 너희가 당하라
25 백성이 다 대답하여 이르되 그 피를 우리와 우리 자손에게 돌릴지어다 하거늘
26 이에 바라바는 그들에게 놓아 주고 예수는 채찍질하고 십자가에 못 박히게 넘겨 주니라

 

예수님

 

1. 침묵이 필요한 순간.

12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에게 고발을 당하되 아무 대답도 아니하시는지라

14 한 마디도 대답하지 아니하시니 총독이 크게 놀라워하더

 

오늘 본문을 보면, 예수님께서는 마치 '침묵'을 작정하고 나오신 듯하다. 그리고 그것은 그들이 어떤 말을 하든지, 어떤 불법을 행하든지 일관된 침묵처럼 묘사되어 있다.

 

그러나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은 무조건적인 또는 일관된 '침묵'만을 고집하신 것이 아니다. 

 

헬라어 원문에 보면 '프로스(προς)'라는 단어가 나오는데, 이 단어는 '~를 향해'라는 뜻이 있다. 즉, 오늘 예수님은 무조건적인 침묵이 아니라 뜻있는 침묵을 하신 것이다.

 

무엇에 대한 침묵이셨던가?  고소, 고발, 비난, 억지, 불법에 대한 침묵이셨던 것이었다.

 

충분히 따질 수 있었으리라. 충분히 항변하고, 투쟁할 수 있었으리라. 그러나 주님은 십자가의 길이라는 대업을 향하여 참고 견디셨다는 것이다.

 

오늘 우리는 십자가의 길에서 무엇을 참으며, 무엇을 견디고 있는가? 

 

전도와 선교를 위해서 나는 나의 이웃들에게서 무엇을 견디고 있는가? 상식 밖의 운전을 하는 그를 향하여 나는 어떤 마음을 품고 있었던가? 나의 자녀를 향하여 소리치고, 폭언하고, 욕하는 저들을 향하여 나는 무엇을 참았던가? 

 

정말 그들이 하나님이 내게 보내주신 나의 공동체, 나의 이웃, 나에게 맡겨진 사랑의 대상이라면 기꺼이 나는 오늘도 그들을 향해 친절하고, 양보하고, 배려해야 하지 않을까?

 

그런데 쉽지 않다. 그들의 눈빛에서 이미 배척하는 마음이 느껴진다. 복음을 경계하기 이전에 사람을 경계한다.

 

이미 예견했던 일이었다. 하지만 고립된 섬의 특성이라 여겼건만, 아주 뿌리 깊은 우상문화와 외지인 배척의 문화는 나의 상상을 훨씬 더 초월한다. 그리고 거기에 더해 그들은 한결같이 부유하고, 나는 가진 것이 아무것도 없다.

 

전할 수 있을까? 사랑하고 품을 수 있을까? 무엇을 나눠줄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그들의 고소와 비난, 비웃음을 견뎌낼 수 있을까?

 

다행히 우리 예수님의 그 십자가 길이 오늘 나에게 묵상보다 큰 위로가 된다. 다시 한번 결단이 된다. 그래, 주님이 그러하셨듯 다시 한번 견뎌내 보자. 그들의 고소와 고발, 폭언과 배척을 다 품어보자. 떨리는 눈빛이 아닌 그리스도인의 당당한 눈빛으로 다시 한번 나아간다.

 

2. 의로운 십자가.

18 이는 그가 그들의 시기로 예수를 넘겨준 줄 앎이더라

 

빌라도는 이미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 그러나 앎에도 불구하고, 아내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그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민란'이었다.

 

그는 왜 '정의'보다 '민란'을 두려워했을까? 그것이 그의 권력을 계속 유지하게 하는 '힘의 근원'이었기 때문이다.

 

20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이 무리를 권하여 바라바 달라 하게 하고 예수를 죽이자 하게 하였더니

 

대제사장들과 장로들도 이것이 정의가 아님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무리들은 가만히 있으면 '바라바'가 아닌 '예수님'을 사면청원할 것을... 그래서 그들은 무리를 일부러 선동한다.

 

그들은 왜 '정의'를 조작하고, '여론'을 선동했을까? 양심에 가책이 되진 않았을까?

 

뒤돌아 볼 겨를이 없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그들이 갖고 있던 '기득권', 아니 모든 것을 잃어버리리라. 지금은 당장은 눈엣가시를 없애는데 집중해야 했다. 악마에게 영혼을 팔아서라도. 

 

26 이에 바라바는 그들에게 놓아주고 예수는 채찍질하고 십자가에 못 박히게 넘겨 주니라

 

저 마다 다른 이유였지만, 결국 그들의 모든 이해가 상충되어 예수님은 십자가형이 결정된다. 그리고 그들은 저마다의 의미 없는 '책임'(?)을 진다.

 

이제 그들에게는 무엇이 남았을까? 정말 이긴 것일까? 정말 그들은 그들의 책임을 다할 수 있을까? 

 

베드로후서 2:9 주께서 경건한 자는 시험에서 건지실 줄 아시고 불의한 자는 형벌 아래에 두어 심판 날까지 지키시며

 

결코 그들은 이길 수 없다. 결코 그들은 얻을 수 없다. 결코 그들은 그들의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마태복음 5:6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부를 것임이요

마태복음 5:10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라

 

예수님은 끝까지 '의로운 십자가'의 길을 가시고, 부활하시고 승천하신다. 그리고 진정한 승리자가 되셔서, 모든 사람을 구원에 이르게 하는 길을 여셨다. 사망권세를 끊어내셨다. 

 

마태복음 6:33~34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그러므로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이 염려할 것이요 한 날의 괴로움은 그날로 족하니라

 

고린도후서 4:17~18 우리가 잠시 받는 환난의 경한 것이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함이니 우리가 주목하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이니 보이는 것은 잠깐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라

 

GD가 말했다. "영원한 건 절대 없어". 결국 그들이 시기와 고발과 온갖 불법으로 지켜낸 권력과 힘과 인기는 이후 금세 허물어졌다. 영원한 것은 절대 없는 것처럼.

 

그러나 그렇다고 우리가 오늘 GD가 말한 것처럼 "삐딱하게" 살 필요는 없다. 왜냐하면 영원한 것을 유일하게 보여주신 분이 계시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분이 걸어가신 그 걸음을 따라 살아갈 때, 우리는 비로소 "영원한 건 절대 있어"를 외칠 것을 확신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는 '바르게' 살아야 한다. '의롭게' 살아야 한다. 잠시 받는 눈빛과 조롱 때문에, 오늘 내가 얻을 인기와 명예, 권력 때문에, 오늘 내가 잠시 누릴 돈과 물질, 대우 때문에 '정의'를 왜곡하거나 '예수님'을 부정하는 삶을 살아서는 결코 안된다.

 

역시 난 GD의 '비딱하게' 보다는 '마음이 상한 자를'이란 찬양이 훨씬 더 좋더라. 오늘도 삶의 현장에서 의로운 십자가의 길을 걷는 모든 형제자매들에게 응원과 축복을.... 힘내세요! 갓블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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