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전해야 한다 (매일성경큐티 230406)
찬양: 천국은 마치 / 먼저 그 나라와
성경: 마 27:27~44
27 이에 총독의 군병들이 예수를 데리고 관정 안으로 들어가서 온 군대를 그에게로 모으고 28 그의 옷을 벗기고 홍포를 입히며 29 가시관을 엮어 그 머리에 씌우고 갈대를 그 오른손에 들리고 그 앞에서 무릎을 꿇고 희롱하여 이르되 유대인의 왕이여 평안할지어다 하며 30 그에게 침 뱉고 갈대를 빼앗아 그의 머리를 치더라 31 희롱을 다 한 후 홍포를 벗기고 도로 그의 옷을 입혀 십자가에 못 박으려고 끌고 나가니라 32 나가다가 시몬이란 구레네 사람을 만나매 그에게 예수의 십자가를 억지로 지워 가게 하였더라 33 골고다 즉 해골의 곳이라는 곳에 이르러 34 쓸개 탄 포도주를 예수께 주어 마시게 하려 하였더니 예수께서 맛보시고 마시고자 하지 아니하시더라 35 그들이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은 후에 그 옷을 제비 뽑아 나누고 36 거기 앉아 지키더라 37 그 머리 위에 이는 유대인의 왕 예수라 쓴 죄패를 붙였더라 38 이 때에 예수와 함께 강도 둘이 십자가에 못 박히니 하나는 우편에, 하나는 좌편에 있더라 39 지나가는 자들은 자기 머리를 흔들며 예수를 모욕하여 40 이르되 성전을 헐고 사흘에 짓는 자여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자기를 구원하고 십자가에서 내려오라 하며 41 그와 같이 대제사장들도 서기관들과 장로들과 함께 희롱하여 이르되 42 그가 남은 구원하였으되 자기는 구원할 수 없도다 그가 이스라엘의 왕이로다 지금 십자가에서 내려올지어다 그리하면 우리가 믿겠노라 43 그가 하나님을 신뢰하니 하나님이 원하시면 이제 그를 구원하실지라 그의 말이 나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하였도다 하며 44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강도들도 이와 같이 욕하더라 |
1. 믿지 않는 자의 입장.
오늘 말씀을 읽고 나서 들었던 첫 번째 마음은 믿지 않는 자들의 입장이었다.
쉽게 조롱하고, 비웃고, 욕하고, 아무렇지도 않았겠지? 양심의 가책? 반인륜적인 정서?
오히려 사회 혼란을 조장하는 극악무도한 이단에 대한 정의로운 심판쯤으로 여길지도 모르는 일이다.
십자가 처형이 끝난 늦은 저녁, 어디 술집에 모여 무용담처럼 또 예수님을 안주거리 삼을 것이다. 내가 이렇게 하니, 그가 이런 표정을 지었노라고 자랑스럽게 너도 나도 이야기하겠지.
그들에게는 그것이 당연한 일일 것이다. 왜냐하면 믿지 않으니까. 예수님의 말은 새빨간 거짓말이고, 과격한 선동에 지나지 않을 테니까. 그리고 그들이 보기에 정말 그대로 모든 것이 끝났으니까.
그래서 침을 뱉고, 옷을 벗겨버리고, 가시관을 찌르면서도, 채찍을 휘두르고, 십자가를 지고 끌게하여도 전혀 마음에 두려움이나 아픔이 느껴지지 않는다.
만약 일반적인 죄수라면 그렇게까지 했을까? 아니 예수님처럼 그렇게 잔인하고, 추악하게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믿음의 대상이 다르다는 것이 이토록 무섭다. 사람의 추악함을 끝까지 끌어낸다.
로마의 군병들은 무엇을 믿었을까? 황제와 총독을 믿었을까? 아니면 식민지들을 바라보면서 자신의 민족의 우월성을 믿었을까? 아니면 노예들과 식민지를 바라보며 결국 돈과 권력, 군사력을 믿었을까?
그런 그들에게 예수님의 말씀은 아무짝에도 쓸데없는 스팸 문구와 다를바가 없었을 것이다.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 그리고 장로들은 또 무엇을 믿었을까? 그들이 믿던 것은 오로지 하나였다. 권력.
산헤드린 공의회를 장악하고, 성전을 장악하고, 백성을 장악했다. 율법이란 도구를 활용하여 그들은 감히 누구도 넘보지 못할 권력을 손에 쥐고 있었다.
그들은 누구보다 권력의 힘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로마가 그들의 주인이 되든, 하나님이 그들의 주인이 되든 상관하지 않았다. 그들이 그토록 의지하고 믿는 권력만 유지될 수 있다면 그들은 예수님을 백번도 못 박았으리라.
심지어 얼마나 그 당시 골고다의 분위기가 우습던지 강도들조차 예수님을 비웃고 욕한다.
그들은 십자가에서 무엇을 믿었을까? 아마도 그들에게는 당장 법이 최고의 가치로 여겨졌을 것이다. 그동안은 법을 경시했는데, 십자가에 달려보니 법보다 무서운 것은 없었으리라. 이제 곧 법의 심판으로 자신들은 죽으리라.
결국 그들의 눈에 법의 가치보다 중요한 것은 없었다. 그 법의 심판 아래 예수님이 달리셨으니, 예수님은 그저 그들이 믿는 법에 따르면 똑같이 불법을 행한 죄인 한 사람에 불과했다는 것이다.
2. 어떻게 되었을까?
모든 것을 다 추측하거나 증명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다만, 예수님의 부활이 그들의 결말을 대리 증언해 줄 뿐이다. 후회했을 것이다. 아니, 통곡했을 것이다. 아니, 어떻게든 그 순간으로 돌아가고 싶었을 것이다.
아니 어쩌면 죽음 그 문턱에 서서 비로소 깨달았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그들은 끝내 영원한 생명을 얻지 못했다는 것이다.
식당에서 기도하고 눈을 뜨니, 믿지 않는 자들의 따가운 시선이 느껴진다. 그들이 믿는 것과 내가 믿는 것이 다르기 때문이다.
종교의 자유가 있기 때문에, 이 정도에서 멈췄을 것이다. 예수님 당시의 '신성 모독죄' 적용이나, 이슬람 국가의 법이 적용되었더라면, 나는 식당에서 쫓겨났을 뿐만 아니라, 옷이 찢기고 돌을 맞아 그 자리에서 죽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그들은 알까? 진짜 진리가 무엇인지? 누가 이 세상의 창조자시며, 구원자이신지? 그것을 모르기 때문에 비웃고, 조롱하고, 그들이 가진 힘으로 심판한다.
그러나 결국 그들 또한 깨닫게 되면 얼마나 자신들이 믿는 것이 허망한 것인지, 잘못된 것인지 알게 된다. 마치 이후에 십자가의 한 강도가 진리를 깨달아, 예수님에게 회개하고 구원받은 것처럼.
죄의 삯은 사망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알지 못하고, 깨닫지 못하면 결국 죽음뿐이다. 그것도 영원한 죽음.
3. 그래서 전해야 한다.
결국 우리의 사명은 정해져 있다. 진리를 알지 못하고, 보지 못하고, 깨닫지 못하는 그들이 더 이상 멸망당하지 않게, 죽음으로 달음질하지 않도록 복음을 전해야 한다.
알아들을 수 있을까? 전할 수 있을까? 이 시대를 보고, 믿는 사람들을 보니 더 용기가 나지 않는다.
그런데 그 순간 구레네 시몬이 보인다. 사실 이전에는 구레네 시몬이 그리 크게 와닿지 않았다. 그런데 오늘은 왜 이리도 크게 다가오는지....
억지로라도 져야 한다는 것처럼 보였다. 가끔은 복음 전하는 것이 너무 어려워 지치고, 낙심이 되고, 그래서 귀찮아지고, 용기가 나지 않을 때에도 예수님을 대신해 억지로라도 전하라는 말로 들린다.
왜냐하면, 그렇지 않으면 믿지 않는 나의 사랑하는 이들이 영원한 죽음으로 가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왕이면 예수님처럼 자발적으로 십자가를 져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이 열매 맺는 인생, 복 있는 인생, 이 땅에서 이미 온 하나님의 나라를 경험하는 길이기 때문이다.
갑자기 교회학교 전도사 때 유행했던 찬양이 귀에 맴돈다. '천국은 마치 밭에 감추인 보화, 땅속에 묻힌 아무도 모르는 보석. 천국은 마치 밭에 감추인 보화, 땅 속에 묻힌 아무도 모르는 보석이라네. 그 보석 발견한 사람은 기뻐 뛰며 집에 돌아가 집 팔고, 땅 팔고, 냉장고 팔아 기어이 그 밭을 사고 말 거야'
'오늘도 깨닫지 못한 자처럼 살지 말고, 깨달은 자처럼 살기를 소망한다.' 곱씹으면 뼈 때리는 말이다. 정말 나부터 그렇게 오늘을 복음전도자로 자청하며 살기를 기도한다. 매 순간순간, 모든 상황, 모든 관계 속에서.
이왕이면 억지로 말고, 자발적으로. '먼저 그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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