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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큐티(Q.T)

(민 11:1~15) 믿음이 성숙한 한 사람 (매일성경큐티, 민수기 11:1~15)

by 무지개소년 2023. 4. 10.

믿음이 성숙한 한 사람 (매일성경큐티 230410)


찬양: 은혜 / 말씀 앞에서
성경: 민수기 11:1~15

 

1 여호와께서 들으시기에 백성이 악한 말로 원망하매 여호와께서 들으시고 진노하사 여호와의 불을 그들 중에 붙여서 진영 끝을 사르게 하시매
2 백성이 모세에게 부르짖으므로 모세가 여호와께 기도하니 불이 꺼졌더라
3 그 곳 이름을 다베라라 불렀으니 이는 여호와의 불이 그들 중에 붙은 까닭이었더라
4 그들 중에 섞여 사는 다른 인종들이 탐욕을 품으매 이스라엘 자손도 다시 울며 이르되 누가 우리에게 고기를 주어 먹게 하랴
5 우리가 애굽에 있을 때에는 값없이 생선과 오이와 참외와 부추와 파와 마늘들을 먹은 것이 생각나거늘
6 이제는 우리의 기력이 다하여 이 만나 외에는 보이는 것이 아무 것도 없도다 하니
7 만나는 깟씨와 같고 모양은 진주와 같은 것이라
8 백성이 두루 다니며 그것을 거두어 맷돌에 갈기도 하며 절구에 찧기도 하고 가마에 삶기도 하여 과자를 만들었으니 그 맛이 기름 섞은 과자 맛 같았더라
9 밤에 이슬이 진영에 내릴 때에 만나도 함께 내렸더라
10 백성의 온 종족들이 각기 자기 장막 문에서 우는 것을 모세가 들으니라 이러므로 여호와의 진노가 심히 크고 모세도 기뻐하지 아니하여
11 모세가 여호와께 여짜오되 어찌하여 주께서 종을 괴롭게 하시나이까 어찌하여 내게 주의 목전에서 은혜를 입게 아니하시고 이 모든 백성을 내게 맡기사 내가 그 짐을 지게 하시나이까
12 이 모든 백성을 내가 배었나이까 내가 그들을 낳았나이까 어찌 주께서 내게 양육하는 아버지가 젖 먹는 아이를 품듯 그들을 품에 품고 주께서 그들의 열조에게 맹세하신 땅으로 가라 하시나이까
13 이 모든 백성에게 줄 고기를 내가 어디서 얻으리이까 그들이 나를 향하여 울며 이르되 우리에게 고기를 주어 먹게 하라 하온즉
14 책임이 심히 중하여 나 혼자는 이 모든 백성을 감당할 수 없나이다
15 주께서 내게 이같이 행하실진대 구하옵나니 내게 은혜를 베푸사 즉시 나를 죽여 내가 고난 당함을 내가 보지 않게 하옵소서

 

광야

 

 

* 부활절 이후 매일성경큐티 본문은 1월 18일에 이어 다시 민수기로 되돌아갑니다.

 

1. 민수기: 하나님의 은혜.

민수기가 우리에게 던지는 메시지는 명확하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였음을 잊지 말라는 것이다.

 

민수기서는 영어로 'Numbers', 즉 '숫자들'이란 뜻이다. 왜 '숫자들'이란 책이름이 붙었을까?

 

모세는 광야의 처음과 끝에서 두 번의 인구조사를 시행한다. 즉, 백성의 수를 계수했다는 뜻이다. 그 결과가 어떠했는가?

 

거의 동일했다. 허 이거 참! 이것이 무슨 의미인 줄 아는가?

 

광야를 이해한다면, 결코 그러한 반응을 보여서는 안 된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오늘 본문에서도 불평하고, 원망하고 있지 않던가? 광야는 그러한 곳이다.

 

먹을 것도 없고, 마실 것도 없고, 입을 것도 없고, 잘 곳도 없고, 온통 없는 것투성이다. 그러나 그들을 해칠만한 것이나, 그들을 상하게 할 것은 지천에 깔려있는 곳이 광야이다.

 

그런 광야에서 40년을 지냈는데, 그 수에 변함이 없다? 이것이 '하나님의 은혜'다.

 

왜 민수기가 'Numbers', '숫자들'이라고 이름 붙었는가? 하나님은 대충 느낌으로 믿는 분이 아니다. 하나님이 성경을 우리에게 주신 이유는 명확하다.

 

하나님은 철저하게 '언약'에 따른 '성취'를 이루시는 분이시고, 그 '증거'를 우리에게 정확히 보이시며, 우리가 온전히 그 '증거'인 말씀을 따라, 주님을 믿기를 원하시는 분이시다.

 

민수기는 '증거'다. 어떠한 척박한 환경과 상황과 형편을 만난다 할지라도, 주의 약속을 믿고, 그 주님을 신뢰하며 끝까지 따라가면...... 항상 주께서 입히시고, 먹이시고, 돌보시고, 지켜주신다. 아니 그 이상으로 우리를 이끌어주시는 주님임을 그 '숫자들'을 봐서라도 믿으라는 것이다. 

 

그러니 오늘도 염려하지 말고, 세상살이에 지치지 말고, 주님을 믿고 따라가라는 것이다. 주의 약속의 말씀을 읽고, 믿고, 순종하라는 것이다.

 

오늘부터 다시 민수기를 시작하는 우리들에게 그러한 믿음과 은혜가 있기를 소망한다.

 

 

2. 하나님의 은혜를 잊으면 발생되는 일

6학년이 된 나의 아들, 다니엘은 갖고 싶은 것, 하고 싶은 것이 진짜 많다. 왜 그럴까?

 

좋은 것만 보이기 때문이다. 그 이면을 볼 수 있는 눈은 아직 없다. 그래, 거기까진 좋다. 그런데 문제는 그것을 부러워하는 마음에서 끝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 마음을 입밖으로 꺼낸다. '불평'과 '불만', 그리고 어떨 때에는 내게 '원망'섞인 말을 한다.

 

가끔은 그런 다니엘이 귀엽고 깜찍해서, 조용하게 차근차근 잘 설명하여 그 마음을 풀어주곤 한다.

 

그런데 때때로 다니엘의 그런 불평과 원망을 나도 소화해내지 못할 때가 있다. 그럴 땐 화가 난다. 이 상황과 형편이 싫다. 그래서 나도 하나님께 원망을 쏟아낸다.

 

왜 그럴까? 나중에 후회하며 생각해 보니, 결국은 '자격지심' 때문이다.

 

아이는 나에게 '그것이 갖고 싶다. 그렇게 살고 싶다.'라며 고작 불평한 것인데, 나는 그 말이 '아빠는 왜 그렇게 못해줘?', '아빤 여태까지 뭐 했어?'라는 말로 들린 것이다. 그리고 지금 내 모습이 초라해 보였던 것이다.

 

오늘 본문의 모세가 그렇게 생각했던 것 같다. 이제껏 하나님이 모든 것을 해주신 것인데, 순간 백성들의 울음소리에 사단에게 마음이 뺏겼다.

 

그래서 착각을 한다. 그것도 아주 큰 착각을 했다. 

 

백성들에게 때에 따른 '하나님의 은혜'를 상기시켜 주고, 함께 기도하면 좋았을 것을 덩달아 하나님께 화를 내고, 원망한다.

 

혹자는 오늘 본문을 보면서, 이 불평과 원망이 어디서 어떻게 시작했고, 어떻게 이렇게 크게 바뀌었을지에 대해서 분석할지도 모른다. 그런데 그것이 오늘 말씀에서 그렇게 중요한 것은 아닌것 같다.

 

결국 미성숙한 어린아이는 좋은 것만 바라볼 뿐, 하고 싶은 것과 갖고 싶은 것만 생각할 뿐, 그것을 갖는 과정이나 그 이면의 나쁜 것을 볼 수는 없는 것이다.

 

그렇기에 오늘 말씀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누군가 그 상황 가운데 '믿음으로 성숙한 한 사람'이 되었다면 어떠했을까? 그리고 그것이 나라면? 이것을 고민해봐야 한다.

 

도대체 왜 '자격지심'이 드는 것일까? 누구도 그렇게 얘기한 적이 없는데, 왜 나는 부족하다고 느끼고, 나는 못났다고 여기게 된 것일까? 

 

결국 '하나님의 은혜'를 잊기 때문이다. 내가 한 것은 없다. 민수기도 사실 그것을 하나님은 우리에게 보여주시고 싶으셨던 것이다. 

 

성경의 모든 인물들을 보면, 답은 명확하다. 하나님에게 사로잡혀 살면 된다. 하나님의 은혜를 잊지 않으면, 항상 감사할 수 있고, 항상 순종할 수 있고, 그러면 또 다시 은혜로운 삶을 살 수 있다. 

 

그런데 그 은혜를 잊어버리는 순간, 모든 것이 엉망이 된다. 내가 한 것 같아 보인다. 내가 못하는 것 같다. 내가 어떻게든 해내야 할 것 같다. 

 

하나님이 아니고, 내 삶의 주인이 내가 된다. 

 

오늘 말씀 1~3절이 그것을 보여주고 있지 않던가? 

 

모세는 강건한 사람이었다. 그는 백성의 지도자로 손색이 없었다. 하나님을 의지했고, 하나님의 뜻에 따라 순종하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백성들이 불만을 해도, 그 백성들을 위해 중보기도 할 수 있는 위인이었다.

 

그런데, 그는 이번엔 달랐다. 10절과 같이 백성의 일부가 아니라, 온 종족들의 울음소리를 듣자, 그는 '하나님의 은혜'를 순간 잊는다. 보이는 상황에 매여버린다. 

 

하나님의 은혜가 있었다면, 얼마든지 관용과 긍휼로 덮을 수 있는 문제를 그들보다 하나님 앞에서 더 크게 포장하고, 확장하기 시작한다.

 

그의 말을 보자.

 

"이 모든 백성을 내가 배었나이까 내가 그들을 낳았나이까 어찌 주께서 내게 양육하는 아버지가 젖 먹는 아이를 품듯 그들을 품에 품고 주께서 그들의 열조에게 맹세하신 땅으로 가라 하시나이까/ 이 모든 백성에게 줄 고기를 내가 어디서 얻으리이까 그들이 나를 향하여 울며 이르되 우리에게 고기를 주어 먹게 하라 하온즉/ 책임이 심히 중하여 나 혼자는 이 모든 백성을 감당할 수 없나이다"

 

'감당'이란 단어에서 그의 마음을 충분히 엿볼 수 있다. 어느새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자신의 일'이 되어 있다. 그래서 그의 마음은 지금 '자격지심'이 되어 있고, 심한 '스트레스'와 '압박'의 상태가 되어 있는 것이다. 

 

절대 상황을 제대로 판단할 수 있는 눈을 가질 수 없다. 결국 모세는 지금 한낱 불평이나 늘어놓았던 다른 인종, '어린아이 다니엘'과 다를 바가 없게 된 것이다.

 

 

3. 믿음이 성숙한 한 사람이 되어보자.

어떻게 하면, 흔들리지 않을 수 있을까? 어떻게하면, 자격지심에 빠지지 않을 수 있을까?

 

또 어떻게 하면 늘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는 자로 살아갈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불평과 원망에도 차근차근 설명할 수 있는 인내와 온유함을 가질 수 있을까?

 

주야로 말씀을 묵상해야 한다. 그 길 밖에는 없다.

 

시편 1:2.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도다"

 

여호수아 1:8.

"이 율법책을 네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며 주야로 그것을 묵상하여 그 안에 기록된 대로 다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네 길이 평탄하게 될 것이며 네가 형통하리라"

 

시편 119:105.

"주의 말씀은 내 발에 이요 내 길에 이니이다"

 

복 있는 사람이 되려면, 주야로 말씀을 묵상해야 한다.

 

두렵지 않으려면, 무섭지 않으려면 주야로 하나님의 묵상할 뿐만 아니라, 입에서 떠나서는 안 되는 것이다.

 

즉, 불이 없으면, 등이 없으면 한 발짝도 걸을 수 없는 것이다. 어두운 세상, 연약한 인생. 나는 결코 한 발짝도 갈 수가 없다. 주의 인도하심이 이제까지 없었다면 갈 수 없었다. 

 

이것을 기억하지 않고, '하나님의 은혜'를 잊으면, 처음으로 불만을 말했던 '다른 인종'이나 마지막에 하나님께 원망을 쏟아냈던 '모세'나 다 하나님 앞에서 '어린아이'고, 다를 바가 없다.

 

'은혜'를 잊지 않으면, '불평'보다는 '감사'를 하게 된다. '은혜'를 잊지 않으면, 주님께 '원망'하는 것이 아니라, 때에 따라 필요한 것을 '간구'하는 지혜로운 사람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오늘 모세는 '하나님의 은혜'를 백성에게 잘 설명해주고, 백성들과 함께 그들의 필요를 함께 '기도'할 수 있는 가장, 지도자가 되면 좋지 않았을까? 

 

교회 안에 내가 '믿음이 성숙한 한 사람'이 되어보자. 가장 안에 내가 '믿음이 성숙한 한 사람'이 되어보자.

 

그러면 더 이상 우리의 가정, 교회, 직장, 사회 공동체는 불협화음이 나는 '오합지졸'이 아니라, '일당백'의 용사로 '가나안'을 향해 제대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오늘 그러한 믿음으로 성숙한 한 사람이 되기를.... 주님의 말씀을 우리의 입에서 주야로 묵상하고, 떼지 않는 하루가 되기를.... 간절히 기도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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