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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큐티(Q.T)

(민 18:21~32) 하나님의 법을 따라(매일성경큐티, 민수기 18:21~32)

by 무지개소년 2023. 4. 26.

하나님의 법을 따라 (매일성경큐티 230426)

 

찬양: 달고 오묘한 그 말씀
성경: 민수기 18:21~32

 

21 내가 이스라엘의 십일조를 레위 자손에게 기업으로 다 주어서 그들이 하는 일 곧 회막에서 하는 일을 갚나니
22 이 후로는 이스라엘 자손이 회막에 가까이 하지 말 것이라 죄값으로 죽을까 하노라
23 그러나 레위인은 회막에서 봉사하며 자기들의 죄를 담당할 것이요 이스라엘 자손 중에는 기업이 없을 것이니 이는 너희 대대에 영원한 율례라
24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 거제로 드리는 십일조를 레위인에게 기업으로 주었으므로 내가 그들에 대하여 말하기를 이스라엘 자손 중에 기업이 없을 것이라 하였노라
25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26 너는 레위인에게 말하여 그에게 이르라 내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받아 너희에게 기업으로 준 십일조를 너희가 그들에게서 받을 때에 그 십일조의 십일조를 거제로 여호와께 드릴 것이라
27 내가 너희의 거제물을 타작 마당에서 드리는 곡물과 포도즙 틀에서 드리는 즙 같이 여기리니
28 너희는 이스라엘 자손에게서 받는 모든 것의 십일조 중에서 여호와께 거제로 드리고 여호와께 드린 그 거제물은 제사장 아론에게로 돌리되
29 너희가 받은 모든 헌물 중에서 너희는 그 아름다운 것 곧 거룩하게 한 부분을 가져다가 여호와께 거제로 드릴지니라
30 이러므로 너는 그들에게 이르라 너희가 그 중에서 아름다운 것을 가져다가 드리고 남은 것은 너희 레위인에게는 타작 마당의 소출과 포도즙 틀의 소출 같이 되리니
31 너희와 너희의 권속이 어디서든지 이것을 먹을 수 있음은 이는 회막에서 일한 너희의 보수임이니라
32 너희가 그 중 아름다운 것을 받들어 드린즉 이로 말미암아 죄를 담당하지 아니할 것이라 너희는 이스라엘 자손의 성물을 더럽히지 말라 그리하여야 죽지 아니하리라

 

하나님의법

 

레위인의 몫으로 보는 하나님의 법

 

융통성: 그때그때의 사정과 형편을 보아 일을 처리하는 재주. 또는 일의 형편에 따라 적절하게 처리하는 재주(네이버 국어사전 참고).

 

흔히 융통성이 뛰어난 사람을 '사리분별이 밝은 사람' 혹은 '지혜 있는 사람'으로 착각한다. 왜냐하면 그의 말본새나 일처리 방식이 답답하지 않고, 꽤나 그럴듯해(합리적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융통성이 재주라고 하지 않던가?

 

하지만 성경은 융통성이 있는 사람을 사리분별이 밝은 사람, 지혜있는 사람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성경이 말하는 지혜로운 사람은 누구인가?

 

시편 111:10 여호와를 경외함이 지혜의 근본이라 그의 계명을 지키는 자는 다 훌륭한 지각을 가진 자이니

잠언 9:10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요 거룩하신 자를 아는 것이 명철이니라

 

성경은 무엇이 지혜로운 것인지 매우 명확하게 정의한다. 바로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 하나님의 법(계명)을 온전히 지키는 자를 '지혜로운 사람'이라고 말한다.

 

며칠 전, 고 전도환 대통령의 손자인 전우원씨의 발언이 매스컴에 화제가 되었다.

 

"교회에 십일조를 꼭 안내도 된다.", "교회에 돈을 내는 행위가 중요한 게 아니라 모든 이웃을 사랑하는 마음에서 헌금하거나 봉사하는 행동이 더 중요하다."

 

상당히 융통성이 있는 것처럼 비춰졌을 것이다. 그리고 생각하기에 따라 정말 그렇게 하는 것이 더 합리적이고, 옳은 것처럼 보인다.

 

사실 이 문제가 비단 이번만 논쟁거리가 된 것은 아니다. 수많은 목회자와 교인들이 이 문제를 가지고 논쟁 아닌 논쟁을 펼치던 것을 여러 번 목격했다.

 

결국 하나님의 법을 지키는 사람이 고지식하고, '무조건 믿으라'고 우격다짐하는 사람으로 몰리며 결론이 난다. 

 

정말 그러할까? 시대가 바뀌고, 교회의 모습이 다르기 때문에, 십일조나 헌금도 융통성 있게 해도 되는 것일까?

 

아니다. 사람의 생각으로는 옳고 지혜로우나, 하나님의 뜻은 전혀 다르다는 것이 오늘 말씀을 통해 드러난다.

 

오늘 말씀은 간단하다. 어제 말씀이 제사장의 몫에 관한 말씀이었다면, 오늘은 제사장을 돕는 레위인의 몫, 그들이 얻게 될 기업에 대한 말씀이다.

 

레위인은 매일 주의 성막을 지키고, 섬기는 일에 최선을 다하여야 하기에 일반 백성들처럼 땅을 기업으로 받지 못한다. 하지만 백성들이 농사지어 드린 것의 십일조를 그들의 몫(기업)으로 받게 된다. 

 

그리고 레위인이 받은 몫(십일조)의 십일조는 다시 제사장에게, 그리고 남은 10분의 9는 백성들과 같이 자신의 형편과 상황에 맞게 편하게 사용하도록 하나님은 말씀하신다.

 

하지만, 문제는 자신에게 주어진 몫의 십일조를 하나님께 드리지 않을 때에는 죽을죄에 해당된다는 것이다.

 

의문이 든다. 왜 하나님은 굳이 제사장의 몫, 레위인의 몫, 그리고 제사와 제물의 법도와 규례를 성경에서 상세히 밝히시고, 또한 명령 내리실까?

 

좀 더 융통성 있게 네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스스로 잘 판단하여 드리라고 하면 더 좋지 않을까?

 

아니, 그렇게 하면 아예 내지 않으려나? 그래, 제사장과 레위인의 몫이 없을 수도 있으니, 최소치만 정해주고, 걷어드린 헌금을 가지고 제사장과 레위인이 알아서 분배하라고 해도 되지 않을까?

 

어쩌면 이것이 요즘 우리의 방식이고, 보다 더 현명하고, 정말 최선을 다해, 마음을 다해 드린 헌금과 십일조처럼 보이지 않을까?

 

왜 하나님은 이리도 세세히 하나님의 법을 정해주시고, 지키게 하시는 것일까? 단순히 지켜지지 않을 때의 피해자를 위함이 아니다. 하나님이 이토록 세세하게 말씀하시는 것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다.

 

무엇일까? 솔로몬이 한 구절로 그것을 정확히 정의한다.

 

전도서 1:2~3 전도자가 이르되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해 아래에서 수고하는 모든 수고가 사람에게 무엇이 유익한가

 

사람이 자신의 지식과 방법으로, 온갖 세상의 논리와 지혜로 잘 살아보려고 애쓰나, 자신의 딴에는 정말 최선을 다했고, 마음을 다했다고 하나, 결국 돌아보니 그 모든 행위와 지식은 헛되었다는 것이다.

 

사실 우리가 그것을 직접 경험하며 살고 있지 않은가? 돌아보면 주의 은혜가 없이는 단 하루도 우리는 제대로 살 수 없다.

 

시편 112:1 할렐루야, 여호와를 경외하며 그의 계명을 크게 즐거워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잠언 22:4 겸손과 여호와를 경외함의 보상은 재물과 영광과 생명이니라

 

그래서 이 세상 최고의 복은 하나님을 경외하며 사는 것이고, 그것이 참다운 지혜이며, 그것이 이 땅에서 진정으로 재물과 영광과 생명을 얻는 길이라는 것이다.

 

예수님은 영생을 물으러 온 부자청년에게 처음부터 "네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라"(마 19:21)고 말씀하시지 않는다.

 

"네가 생명에 들어가려면 계명들을 지키라", 먼저 모든 계명을 지키기를 요청하신다. 예수님이 왜 그러셨을까?

 

하나님의 법이 결국 우리 믿음의 기초가 되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것이 하나님을 믿고 신뢰한다는 유일한 근거이기 때문이다.

 

바리새인과 서기관, 율법학자와 예수님 당시의 제사장들... 너무 부정적인 율법의 시선들을 우리가 지켜보다 보니, 알게 모르게 하나님의 법을 지키는 것에 대한 오해와 편견이 자리 잡혀 있다.

 

그러나 예수님이 이것에 대한 오해와 편견을 제대로 정리해주지 않으셨던가!

 

마태복음 5:17~19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를 폐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하게 하려 함이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 일획도 결코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계명 중의 지극히 작은 것 하나라도 버리고 또 그같이 사람을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지극히 작다 일컬음을 받을 것이요 누구든지 이를 행하며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크다 일컬음을 받으리라

 

하나님의 작은 법이라 할지라도 우리 맘대로 해석하고, 융통성 있게 바꾸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아니 매우 잘못된 일이고, 하나님을 반역하고 거스리는 죽을죄를 범하는 것이다.

 

물론 예수님이 오신 이후, 구약의 모든 율법이 우리에게 그대로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적어도 하나님을 예배하고, 헌금하고, 삶에서 순종을 실천하며 살아가는 것에 있어 하나님의 법을 지키는 것은 무엇보다 중요한 것임을 우리는 깨달아야 한다.

 

오늘 하나님은 하나님의 일의 최전방에 서있는 레위자손이라 할지라도, 하나님의 법(십일조)을 마음대로 사용하면 죽을 죄를 짓는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하나님의 나라에는 하나님의 법이 존재하며, 그 법을 우리가 지켜 행하는 것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것이 오늘을 지혜롭게 사는 유일한 방법이고,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는 통로이다.

 

귀찮다. 고지식해 보인다. 합리적이지 않은 것 같다. 그러나, 내게 주어진 하나님의 법을 따르며 사는 것이 가장 지혜롭고, 이 땅에서 복된 걸음이라고 성경은 분명히 말씀한다.

 

오늘도 하나님의 법을 따라 하나님의 나라를 사는 은혜가 우리 모두에게 있기를 소망한다.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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