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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큐티(Q.T)

(민 33:50~34:29) 마음의 '헤렘'(매일성경큐티, 민수기 33:50~34:29)

by 무지개소년 2023. 5. 23.

 

마음의 '헤렘'

매일성경큐티 230523 화
찬양: 마음이 상한 자를
성경: 민수기 33:50~34:29
50 여리고 맞은편 요단 강 가 모압 평지에서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51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여 그들에게 이르라 너희가 요단 강을 건너 가나안 땅에 들어가거든
52 그 땅의 원주민을 너희 앞에서 다 몰아내고 그 새긴 석상과 부어 만든 우상을 다 깨뜨리며 산당을 다 헐고
53 그 땅을 점령하여 거기 거주하라 내가 그 땅을 너희 소유로 너희에게 주었음이라
54 너희의 종족을 따라 그 땅을 제비 뽑아 나눌 것이니 수가 많으면 많은 기업을 주고 적으면 적은 기업을 주되 각기 제비 뽑은 대로 그 소유가 될 것인즉 너희 조상의 지파를 따라 기업을 받을 것이니라
55 너희가 만일 그 땅의 원주민을 너희 앞에서 몰아내지 아니하면 너희가 남겨둔 자들이 너희의 눈에 가시와 너희의 옆구리에 찌르는 것이 되어 너희가 거주하는 땅에서 너희를 괴롭게 할 것이요
56 나는 그들에게 행하기로 생각한 것을 너희에게 행하리라
34:1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2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명령하여 그들에게 이르라 너희가 가나안 땅에 들어가는 때에 그 땅은 너희의 기업이 되리니 곧 가나안 사방 지경이라
3 너희 남쪽은 에돔 곁에 접근한 신 광야니 너희의 남쪽 경계는 동쪽으로 염해 끝에서 시작하여
4 돌아서 아그랍빔 언덕 남쪽에 이르고 신을 지나 가데스바네아 남쪽에 이르고 또 하살아달을 지나 아스몬에 이르고
5 아스몬에서 돌아서 애굽 시내를 지나 바다까지 이르느니라
6 서쪽 경계는 대해가 경계가 되나니 이는 너희의 서쪽 경계니라
7 북쪽 경계는 이러하니 대해에서부터 호르 산까지 그어라
8 호르 산에서 그어 하맛 어귀에 이르러 스닷에 이르고
9 그 경계가 또 시브론을 지나 하살에난에 이르나니 이는 너희의 북쪽 경계니라
10 너희의 동쪽 경계는 하살에난에서 그어 스밤에 이르고
11 그 경계가 또 스밤에서 리블라로 내려가서 아인 동쪽에 이르고 또 내려가서 긴네렛 동쪽 해변에 이르고
12 그 경계가 또 요단으로 내려가서 염해에 이르나니 너희 땅의 사방 경계가 이러하니라
13 모세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명령하여 이르되 이는 너희가 제비 뽑아 받을 땅이라 여호와께서 이것을 아홉 지파 반쪽에게 주라고 명령하셨나니
14 이는 르우벤 자손의 지파와 갓 자손의 지파가 함께 그들의 조상의 가문에 따라 그들의 기업을 받을 것이며 므낫세의 반쪽도 기업을 받았음이니라
15 이 두 지파와 그 반 지파는 여리고 맞은편 요단 건너편 곧 해 돋는 쪽에서 그들의 기업을 받으리라
16 여호와께서 또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17 너희에게 땅을 기업으로 나눌 자의 이름은 이러하니 제사장 엘르아살과 눈의 아들 여호수아니라
18 너희는 또 기업의 땅을 나누기 위하여 각 지파에 한 지휘관씩 택하라
19 그 사람들의 이름은 이러하니 유다 지파에서는 여분네의 아들 갈렙이요
20 시므온 지파에서는 암미훗의 아들 스므엘이요
21 베냐민 지파에서는 기슬론의 아들 엘리닷이요
22 단 자손 지파에서는 지휘관 요글리의 아들 북기요
23 요셉 자손 중 므낫세 자손 지파에서는 지휘관 에봇의 아들 한니엘이요
24 에브라임 자손 지파에서는 지휘관 십단의 아들 그므엘이요
25 스불론 자손 지파에서는 지휘관 바르낙의 아들 엘리사반이요
26 잇사갈 자손 지파에서는 지휘관 앗산의 아들 발디엘이요
27 아셀 자손 지파에서는 지휘관 슬로미의 아들 아히훗이요
28 납달리 자손 지파에서는 지휘관 암미훗의 아들 브다헬이니라 하셨느니라
29 이들이 여호와께서 명령하사 가나안 땅에서 이스라엘 자손에게 기업을 받게 하신 자들이니라

 

헤렘

 

주님께 무릎을 꿇었다. "주님, 어떻게 하면, 언제쯤이면 이곳으로 보낸 주님의 뜻을 제가 명확히 알 수 있을까요?"

 

제주로 내려오기 전, 사람들은 수없이 내게 묻고 말했다. "가서 뭐 하려고? 생각은 하고 가는 거야? 그래도 가서 할 것은 정하고 가야 할 것 아냐? 처자식은 먹여 살려야지"

 

솔직히 그들의 말이 옳은 듯했고, 나는 아무것도 몰랐다. 하나님이 가라고 하니 가지만, 제주에서 얼마나 있을지, 또 제주에선 어떤 일을 어떻게 해야하는지, 또 그 이후 나는 또 어디로 보내질지 전혀 알 수 없었다.

 

여전히 아무 것도 알길 없는 죄인이 주님 앞에 무릎을 꿇자, 주님이 하신 말씀은 단 한마디였다.

 

"가서 앉아라!", 그러면서 주신 말씀은 아브라함에게 주셨던 본토 아비집을 떠나라는 그 말씀이었다. 하나님은 당장의 장소를 정해주셨지만, 더 이상의 어떤 명령도 내게 내려주시지 않았다.

 

다만, 조바심을 내던 나에게 하나님께서는 할 말이 있을 터이니 제주로 가서 앉아보라는 말만 계속 되풀이하실 뿐이셨다.

 

오직 믿음만으로 결단한 순종이었다. 물론 주님께서 이곳, 제주 성산읍 수산리에 언제까지일지 모르는 '진'을 쳐주시고, 만나와 메추라기를 내려주셨다. 하지만, 아직 분명하게 말씀하시지 않은 사명 앞에 답답함은 여전히 있었다.

 

그런 내게 오늘 말씀은 엄청난 부러움이었다. 얼마나 기뻤을까? 

 

무려 40년이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하자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한 아브라함이 본토 아비집을 떠난 때부터 어림잡아도 600~700년이다. 이제야 하나님이 약속했던 그 땅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정말 얼마나 기쁘고 감격스러웠을까? 그런데 오늘 말씀을 읽던 중 너무 깜짝 놀랐다. 마냥 기쁘지만은 않을 수도 있던 가나안땅의 상황이 그러했다.

 

그리고 지금 내가 선 이곳의 상황과 너무 닮았다. 

 

51~53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여 그들에게 이르라 너희가 요단 강을 건너 가나안 땅에 들어가거든/ 그 땅의 원주민을 너희 앞에서 다 몰아내고 그 새긴 석상과 부어 만든 우상을 다 깨뜨리며 산당을 다 헐고/ 그 땅을 점령하여 거기 거주하라 내가 그 땅을 너희 소유로 너희에게 주었음이라

 

우상우상우상
우상우상

 

이곳은 두 달에 한번 꼴로 '제' 또는 '굿'을 한다. 우리 집 앞 전봇대에도 얼마 전(비바람에 현수막이 찢기기 전)까지 '굿도 보고, 떡도 먹고'라는 마을의 홍보 현수막이 붙어있었다. 그만큼 우상문화가 만연한 마을이고, 온 마을 주민이 이것에 진심이다.

 

너무 와닿았다. 아마 그들이 들어갈 가나안이 그러했던 것 같다. 아니 더 심했던 것 같다. 무엇을 해야 할까? 공존할 수 있을까? 

 

위에서 세 번째 사진을 보면, 돌담에 알록달록 옷들을 걸쳐놨다. 저것이 무엇일까? 신들의 옷이라고 한다. 사실 이 마을만 유독 우상문화가 심한 것만은 아니다. 제주도에는 '신구간'이라는 미신문화도 있다.

 

사실 육지도 매한가지다. 이곳은 눈에 보이는 우상문화가 있는 것이고, 저곳은 교묘하게 감춰진 우상문화가 있는 것이다.

 

결코 공존할 수 없다. 그래서 주님은 '헤렘'을 명령하신다. 모두를 죽여야 한다. 모두를 몰아내야 한다. 모든 것을 부서야 한다. 그래야 하나님이 정하신 거룩한 새 땅에서, 거룩한 새 출발을 시작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단순히 성경을 보면서 '헤렘'하고 거룩한 새 땅에 들어가면 되는 줄 알았는데, 지금 이곳의 상황을 보니 그럴 수는 없는 노릇이라는 것이 깨달아진다.

 

그들(사회, 문화, 삶의 방식 그 무엇과도)과 공존할 수는 없되, 공존해야만 하는 상황.

 

우리는 과연 어떻게 해야 할까? 

 

그런데 하나님이 '가나안에 들어가거든', 그곳에서 원하셨던 '헤렘'은 사실 다른 것이 아니었다. 하나님이 원하셨던 진정한 '헤렘'이란 겉으로 보이는 것의 완성이 아니라, 그들 심령의 온전한 변화를 의미하는 것이었다.

 

요엘 2:13

너희는 옷을 찢지 말고 마음을 찢고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로 돌아올지어다

 

오늘 우리가 이 땅에서 가장 먼저 해야 할 것은 정해져 있다. 우리가 사명을 이뤄갈 기업을 먼저 분배해야 할까? 아니다. 약속의 땅에 들어가기 전에 우리가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마음의 '헤렘'이다.

 

이것이 주님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 전 그들에게 명령한 첫 번째 사명이다.

 

그런 다음 우리는 오늘 말씀에 그들이 그러했던 것처럼 그 땅을 '기업'으로 받게 될 것이다.

 

'기업'이 무엇일까? 우리의 '선교지'이자 우리의 '순교지'이다. 또한 우리가 함께 누릴 이 땅에서의 '하나님의 나라'이다.

 

'무엇을, 어떻게, 언제 해야 하고, 할 수 있을까?' 고민할 필요가 없었다. 주님께서 나에게 이곳에 와서 앉으라는 것.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세상에서 발걸음을 시작해 보라고 하는 것.

 

그때, '앉는 것', '발걸음을 세상으로 떼어보는 것'의 가장 첫출발은 여전히 마음의 '헤렘'이었음을 깨닫는 하루이다. 

 

마음의 '헤렘'을 이뤄내지 못하면 결국 우리에게 '기업'도, '가나안 땅'도, '하나님의 나라'도 큰 의미는 없다. 오로지 실패한 것처럼 보이는 '사사기'만 있을 뿐이다.

 

무릎은 말로 꿇는 것이 아니다. 무릎은 생각으로 꿇는 것도 아니다. 무릎은 행동으로 꿇는 것이다. 이 땅에서 무엇을, 어떻게, 언제까지 해야 할까 고민하기보다 오늘 하루도 주님 앞에 거룩하게 무릎 꿇는 습관, 기도의 용사로 세워지는 은혜가 먼저 있기를 소망한다.

 

그러면 우리에게 주어진 그 땅, 그 기업이 정말 우리의 사명지가 되어 거룩한 하나님 나라로의 새 출발을 기쁘게 시작하게 될 것이다.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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