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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큐티(Q.T)

(민 35:22~34) 진정한 보복과 진실한 기도(매일성경큐티, 민수기 35:22~34)

by 무지개소년 2023. 5. 25.

 

진정한 보복과 진실한 기도

매일성경큐티 230525 목
찬양: 이 땅의 황무함을 보소서
성경: 민수기 35:22~34
22 악의가 없이 우연히 사람을 밀치거나 기회를 엿봄이 없이 무엇을 던지거나
23 보지 못하고 사람을 죽일 만한 돌을 던져서 죽였을 때에 이는 악의도 없고 해하려 한 것도 아닌즉
24 회중이 친 자와 피를 보복하는 자 간에 이 규례대로 판결하여
25 피를 보복하는 자의 손에서 살인자를 건져내어 그가 피하였던 도피성으로 돌려보낼 것이요 그는 거룩한 기름 부음을 받은 대제사장이 죽기까지 거기 거주할 것이니라
26 그러나 살인자가 어느 때든지 그 피하였던 도피성 지경 밖에 나가면
27 피를 보복하는 자가 도피성 지경 밖에서 그 살인자를 만나 죽일지라도 피 흘린 죄가 없나니
28 이는 살인자가 대제사장이 죽기까지 그 도피성에 머물러야 할 것임이라 대제사장이 죽은 후에는 그 살인자가 자기 소유의 땅으로 돌아갈 수 있느니라
29 이는 너희의 대대로 거주하는 곳에서 판결하는 규례라
30 사람을 죽인 모든 자 곧 살인한 자는 증인들의 말을 따라서 죽일 것이나 한 증인의 증거만 따라서 죽이지 말 것이요
31 고의로 살인죄를 범한 살인자는 생명의 속전을 받지 말고 반드시 죽일 것이며
32 또 도피성에 피한 자는 대제사장이 죽기 전에는 속전을 받고 그의 땅으로 돌아가 거주하게 하지 말 것이니라
33 너희는 너희가 거주하는 땅을 더럽히지 말라 피는 땅을 더럽히나니 피 흘림을 받은 땅은 그 피를 흘리게 한 자의 피가 아니면 속함을 받을 수 없느니라
34 너희는 너희가 거주하는 땅 곧 내가 거주하는 땅을 더럽히지 말라 나 여호와는 이스라엘 자손 중에 있음이니라

 

기도
그림출처_네이버블로그_'지음'

 

 

오늘 말씀은 두 가지를 말한다.

 

하나는 도피성으로 피한 살인자(고의성이 전혀 없는 부지 중에 살인한 자)는 현 대제사장이 죽기까지 도피성 밖으로 나올 수 없다. 아니 나올 수는 있지만, 그때는 보복을 당해도 할말이 없다. 다만 대제사장이 죽으면 부지 중 살인한 자는 자신의 고향으로 되돌아가 자유롭게 살 수 있다.

 

또 하나는 거주하는 땅에서 더 이상 '피흘림'이 없어야 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그 땅을 더럽히는 것이기 때문이다. '피흘림'이 발생할 경우 속함을 얻으려면 오로지 '피흘림'을 일으킨 장본인의 '피흘림'이 수반되어야 한다.

 

말씀을 다 읽고나서 들었던 가장 첫 의문은 부지 중 살인에 대한 관용이었다. 살인을 더 크게 봐야 할까? 아니면 부지중이라는 억울함을 더 크게 봐야 할까? 그래도 살인은 살인이지 않을까? 어찌 되었든 생명을 빼앗은 일이 아니겠는가!

 

그런데 하나님은 이것에 대해 오히려 '부지중'의 손을 들어주신다.

 

왜 그러셨을까? 가장 중요한 것은 그 사람의 외모(살인의 모습)가 아니라 그 사람의 중심(의도, 마음)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죄'는 미워하되, '사람'을 미워해서는 안된다. 즉 그 사람의 의도를 정확히 판단할 수 없는한, 함부로 다른 사람을 '정죄'해서는 안된다는 뜻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아시겠지만, 과연 사람이 '부지중' 살인과 '고의적' 살인을 구별할 수 있을까?

 

아마 죽었다 깨나도 없을 것이다. 오직 진실은 그 사람만이 알겠지.... 그래서 계속해서 어떤 면에서는 '의심'도 들고, 사실 아무리 부지중 살인이라고는 하지만, 살인당한 사람의 주변인들(가족, 친구, 부모)의 마음이 '부지중'이라고 해서 이해가 되고, 마음이 편하게 살 수 있겠는가?

 

결코 없을 것이다. 결국 하나님이 보시는 '중심'을 우리는 볼 수 없기 때문에, 하나님은 장치를 두실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그것이 무엇인가?

 

현 대제사장이 죽을 때까지 '도피성'에서 참회케 하신 것이다. 그런데 다시 의문이 든다. 

 

그냥 그 살인자가 죽을 때까지 '도피성'에 살게하면 깔끔할 터인데, 왜 '대제사장'이 죽으면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만든 것일까?

 

이것은 '예수님'에게서 그 이유를 찾을 수 있다. '예수님'은 우리의 대제사장이 되신다고 성경은 말한다(히브리서). 그분의 죽으심으로 인하여 우리는 무엇을 얻게 되었는가? 대속함을 얻게 되었다. 즉 구원을 얻게 되었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되었다.

 

오늘 본문에서 말하는 바도 이와 같다. 그의 죄, 부지중 살인자의 죄가 대제사장의 죽음을 통해 대속함을 얻어 자유함을 누리게 된다는 것이다.

 

그때가 되면 살인자에게 보복하고 싶었던 주변사람들도 어떻게 해야할까? 그동안 그의 고생의 수고를 보고, 그의 죄 사함을 이제는 받아들일 수 있는 은혜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무엇을 깨달아야 할까? '살인자'가 아니라 하여도 '죄인'에 대한 우리의 태도를 점검해야 한다. 작은 일에도 '정죄'를 한다. '부지중'이든, '고의적'이든 우리는 그 '실수'와 '죄'에만 관심 기울일 뿐, 그 사람의 마음과 인격에는 관심이 없다. 

 

오늘 말씀은 분명하다. 결국 '죄'의 문제는 하나님 안에서 그가 짊어질 몫이지, 우리가 '정죄'할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우리가 할 일은 그를 더 이상 비난하거나 정죄하는 것이 아니라, 그가 예수님 앞에서 참회하고, 예수님의 이름 안에서 구원함을 받는 새로운 인생으로 살도록 돕고 권면하는 일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가 전에는 죄로 인하여 죽은 자로 살았으나, 예수님으로 인하여 사는 새사람으로 거듭난 자가 되었다면, 우리는 진심으로 도피성을 떠나 우리의 영원한 본향 천국을 향해 살아가게 될 그의 인생을 이제는 축하하고, 격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오늘 아직도 그의 죄됨을 못 까발려서 속이 타들어가고 있지는 않는가? 주님 앞에 맡기자. 그리고 그가 진심으로 주님 앞에서 회개하길, 변화되길 중보하고 기도하자.

 

그것만이 오늘 우리가 할 수 있는 나의 마음을 죽인 '살인자'에 대한 유일한 심판이자 보복이다.

 

두 번째, '피흘림'에 대한 내용은 너무나 자명한 내용이다. 어서 속히 우크라이나 전쟁이 종식되길, 북한의 인권이 유린당하지 않길, 아프리카 내전의 고통이 멈추길, 곳곳에서 군부독재와 자유를 향한 목마름의 외침이 외면당하지 않길 기도해 본다.

 

다시 한번 오늘 본문을 묵상하며 깨닫는 것은 '기도'하지 않고, 말만 하는 것이 더 큰 죄임을 깨닫게 된다. 나의 마음을 죽인 '살인자'를 주께 맡기고, 주님 안에서 새사람으로 변화되길 진심으로 기도하는 하루가 되길 소망한다.

 

진심으로 우리나라와 북한, 세계 안에서 벌어지는 있는 전쟁과 인권유린, 내전과 기아 등의 고통이 멈출 수 있기를, 영원한 종식이 선포되길 함께 기도하는 하루가 되길 간절히 바란다.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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