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오늘 큐티(Q.T)

(민 35:1~21) 나의 피난처 예수(매일성경큐티, 민수기 35:1~21)

by 무지개소년 2023. 5. 24.

 

나의 피난처 예수

매일성경큐티 230524 수
찬양: 나의 피난처 예수
성경: 민수기 35:1~21
1 여호와께서 여리고 맞은편 요단 강 가 모압 평지에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2 이스라엘 자손에게 명령하여 그들이 받은 기업에서 레위인에게 거주할 성읍들을 주게 하고 너희는 또 그 성읍들을 두르고 있는 초장을 레위인에게 주어서
3 성읍은 그들의 거처가 되게 하고 초장은 그들의 재산인 가축과 짐승들을 둘 곳이 되게 할 것이라
4 너희가 레위인에게 줄 성읍들의 들은 성벽에서부터 밖으로 사방 천 규빗이라
5 성을 중앙에 두고 성 밖 동쪽으로 이천 규빗, 남쪽으로 이천 규빗, 서쪽으로 이천 규빗, 북쪽으로 이천 규빗을 측량할지니 이는 그들의 성읍의 들이며
6 너희가 레위인에게 줄 성읍은 살인자들이 피하게 할 도피성으로 여섯 성읍이요 그 외에 사십이 성읍이라
7 너희가 레위인에게 모두 사십팔 성읍을 주고 그 초장도 함께 주되
8 너희가 이스라엘 자손의 소유에서 레위인에게 너희가 성읍을 줄 때에 많이 받은 자에게서는 많이 떼어서 주고 적게 받은 자에게서는 적게 떼어 줄 것이라 각기 받은 기업을 따라서 그 성읍들을 레위인에게 줄지니라
9 여호와께서 또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10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여 그들에게 이르라 너희가 요단 강을 건너 가나안 땅에 들어가거든
11 너희를 위하여 성읍을 도피성으로 정하여 부지중에 살인한 자가 그리로 피하게 하라
12 이는 너희가 복수할 자에게서 도피하는 성을 삼아 살인자가 회중 앞에 서서 판결을 받기까지 죽지 않게 하기 위함이니라
13 너희가 줄 성읍 중에 여섯을 도피성이 되게 하되
14 세 성읍은 요단 이쪽에 두고 세 성읍은 가나안 땅에 두어 도피성이 되게 하라
15 이 여섯 성읍은 이스라엘 자손과 타국인과 이스라엘 중에 거류하는 자의 도피성이 되리니 부지중에 살인한 모든 자가 그리로 도피할 수 있으리라
16 만일 철 연장으로 사람을 쳐죽이면 그는 살인자니 그 살인자를 반드시 죽일 것이요
17 만일 사람을 죽일 만한 돌을 손에 들고 사람을 쳐죽이면 이는 살인한 자니 그 살인자는 반드시 죽일 것이요
18 만일 사람을 죽일 만한 나무 연장을 손에 들고 사람을 쳐죽이면 그는 살인한 자니 그 살인자는 반드시 죽일 것이니라
19 피를 보복하는 자는 그 살인한 자를 자신이 죽일 것이니 그를 만나면 죽일 것이요
20 만일 미워하는 까닭에 밀쳐 죽이거나 기회를 엿보아 무엇을 던져 죽이거나
21 악의를 가지고 손으로 쳐죽이면 그 친 자는 반드시 죽일 것이니 이는 살인하였음이라 피를 보복하는 자는 살인자를 만나면 죽일 것이니라

 

도피성

 

참 아이러니하게도 교회에서 사역할 때보다 제주에 와서 상담을 훨씬 더 많이 한다. 왜 그럴까? 

 

그만큼 교회에서 상담하기 어려운 고민과 문제가 많다는 것이다. 그리고 내가 무소속이기에 이 눈치 저 눈치 보지 않고 편하게 얘기할 수 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런데 여러차례 상담하다 깨달은 사실이 하나 있다. 그것은 사람들이 목사에게 고민을 들고 찾아올 때는 이미 볼장 다 본 상태라는 것이다(아닐 수도 있다. 내게 올 때만 그럴 수 있다).

 

무슨 말인가? 고민과 문제가 생겼을때, 이리저리 고민하고, 이 견적도 내보고, 저 견적도 내봤지만 도무지 해결 불가능할 때 그제야 목사에게 고민을 가져온다는 것이다. 가장 마지막 순서로.

 

나는 이것을 결코 부정적으로 바라보지 않는다. 정말 매우 순수하게 긍정적으로 바라본다.

 

혹자는 그래도 고민이나 문제가 생겼을때, 가장 먼저 하나님 앞에서 해결하려는 시도를 하는 것이 옳지 않은가 말하기도 하겠지만, 사실 그게 가장 좋은 것은 말할 것도 없겠지만.

 

그래도 이제라도 나의 피난처는 오직 주님밖에 없다는 것을 마침내 깨닫고, 말씀을 기억함으로 다른 방법이 아니라 신앙 안에서, 예수님 안에서 이 문제와 고민 풀기를 소망하는 그 마음이 참 귀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사실 이 시대 목사가 어디 고민이나 문제를 들어줄 만큼, 신앙적 조언을 해줄 만큼 존경과 신뢰의 대상인가? 귀 있는 자는 다 알아들을 것이다.

 

그래서 목사를 그나마 신뢰하여 상담을 요청하고 찾아오는 성도들이 너무 감사하고, 그래도 신앙 안에서 함께 고민하며 예수님 안에서 해결 받으려고 하는 그 모습이 참 귀하고, 아름답게 느껴진다.

 

그런데 사실 그것을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결국 인생에 찾아온 위기나 문제, 그것이 아주 사소한 고민이라 할지라도 그 모든 해답이 결국 예수님에게 있다는 것을 사람들도 잘 알고 있다는 것이다.

 

오늘 도피성이 그러한 것이 아닐까? 

 

도피성! 말 그대로 어렵고 힘들때, 뜻하지 않은 문제가 생겼을 때 도망쳐 피하는 곳이다. 다만 그 당시 그 문제라는 것은 재판에 회부될 정도의 살인죄(15절 참고)였다는 것이 가장 큰 차이점이다. 아니 어쩌면 우리의 문제와 다르다고 해석될 수도 있다.

 

하지만 오늘 우리가 가장 중요하게 봐야 할 점은 그 문제의 정도차이가 아니다. 도피성이 어디에 있으며, 도피성이 과연 누구에게 소속되어 있었는지를 눈여겨봐야 한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가나안에 들어가거든 기업을 분배하라고 말씀하셨다. 그 기업이 결국은 그들이 살 곳이 아닌가?

 

그렇다면 일반적인 지파들이 정당하게 분배받는 그 많고 많은 기업들 가운데 도피성을 세워도 문제 될 것이 없었다. 아니 그것이 어쩌면 더 합리적이지 않은가 생각이 된다.

 

그런데 오늘 하나님은 그 도피성을 오히려 기업을 분배받지 못한채, 어쩌면 구차하게 레위인들에게 주어진, 그 작고 작은 규모의 성읍들 가운데서 세울 것을 명령하신다.

 

하나님은 왜 세상의 수많은 성읍이 아닌, 레위인들이 받은 적은 성읍에서 다시 도피성을 구별하게 하신 것일까?

 

결국 하나님만이 유일한 피난처가 되시기 때문이다. 그 무엇으로도 하나님을 대신할 수 없기 때문이다.

 

세상의 그 어떤 훌륭한 방법과 그 어떤 고귀한 지식이라 할지라도, 그 어떤 가공할만한 생각과 기술이라 할지라도 그들에게 당면한 중대한 문제를 해결 받을 수 없음을 주님은 말씀해 주시는 것이다.

 

그러므로 오늘 말씀을 보면서 두 가지 결단을 하기를 소망한다. 

 

1. 우리의 유일한 피난처는 오직 예수님 한 분이시다. 돌아가지 말자. 언제든지, 항상 고민과 문제가 생겼을 때, 가장 먼저 주님 앞에 나의 고민과 문제를 가지고 나와 주님 안에서 해결함 받는 은혜가 있기를 소망한다.

 

2. 세상에서 아직도 갈길 몰라 점집과 무당을 의지하는 사람들이 있다. 잘못된 신앙과 방법을 찾는 사람들이 있다.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리고 가장 안타까운 신앙의 길에서 낙망하여 주님을 떠난 이들도 있다. 그들을 이 시대의 도피성인 예수님에게로 인도할 수 있는 용기와 선교적 열정이 있기를 소망한다.

 

사실 오늘 말씀은 묵상하면 할수록 깊은 진리가 보배처럼 숨겨져 있는 본문이다. 다만 오늘날 이 말씀을 적용함에 있어서 그 어떤 진리보다 중요한 것은 단 하나, 오직 예수님만이 우리의, 나의 피난처 되심을 잊지 않는 것에 있다.

 

언제 우리 삶에 위기가 찾아올지 아무도 모른다. 사소한 고민이 자라나 나의 인생을 송두리째 흔드는 문제가 될 수도 있다. 그때를 위해 이 말씀을 나의 마음에 새기고, 묵상하는 하루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샬롬!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