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오늘 큐티(Q.T)

(욥기 42:1-17)하나님이 바라보시는 나(매일성경큐티 욥 42장)

by 무지개소년 2023. 12. 20.

하나님이 바라보시는 나

매일성경큐티 231220 수
찬양: 나의 안에 거하라 (
유튜브 찬양 링크)
성경: 욥 42:1-17
1 욥이 여호와께 대답하여 이르되
2 주께서는 못 하실 일이 없사오며 무슨 계획이든지 못 이루실 것이 없는 줄 아오니
3 무지한 말로 이치를 가리는 자가 누구니이까 나는 깨닫지도 못한 일을 말하였고 스스로 알 수도 없고 헤아리기도 어려운 일을 말하였나이다
4 내가 말하겠사오니 주는 들으시고 내가 주께 묻겠사오니 주여 내게 알게 하옵소서
5 내가 주께 대하여 귀로 듣기만 하였사오나 이제는 눈으로 주를 뵈옵나이다
6 그러므로 내가 스스로 거두어들이고 티끌과 재 가운데에서 회개하나이다
7 여호와께서 욥에게 이 말씀을 하신 후에 여호와께서 데만 사람 엘리바스에게 이르시되 내가 너와 네 두 친구에게 노하나니 이는 너희가 나를 가리켜 말한 것이 내 종 욥의 말 같이 옳지 못함이니라
8 그런즉 너희는 수소 일곱과 숫양 일곱을 가지고 내 종 욥에게 가서 너희를 위하여 번제를 드리라 내 종 욥이 너희를 위하여 기도할 것인즉 내가 그를 기쁘게 받으리니 너희가 우매한 만큼 너희에게 갚지 아니하리라 이는 너희가 나를 가리켜 말한 것이 내 종 욥의 말 같이 옳지 못함이라
9 이에 데만 사람 엘리바스와 수아 사람 빌닷과 나아마 사람 소발이 가서 여호와께서 자기들에게 명령하신 대로 행하니라 여호와께서 욥을 기쁘게 받으셨더라
10 욥이 그의 친구들을 위하여 기도할 때 여호와께서 욥의 곤경을 돌이키시고 여호와께서 욥에게 이전 모든 소유보다 갑절이나 주신지라
11 이에 그의 모든 형제와 자매와 이전에 알던 이들이 다 와서 그의 집에서 그와 함께 음식을 먹고 여호와께서 그에게 내리신 모든 재앙에 관하여 그를 위하여 슬퍼하며 위로하고 각각 케쉬타 하나씩과 금 고리 하나씩을 주었더라
12 여호와께서 욥의 말년에 욥에게 처음보다 더 복을 주시니 그가 양 만 사천과 낙타 육천과 소 천 겨리와 암나귀 천을 두었고
13 또 아들 일곱과 딸 셋을 두었으며
14 그가 첫째 딸은 여미마라 이름하였고 둘째 딸은 긋시아라 이름하였고 셋째 딸은 게렌합북이라 이름하였으니
15 모든 땅에서 욥의 딸들처럼 아리따운 여자가 없었더라 그들의 아버지가 그들에게 그들의 오라비들처럼 기업을 주었더라
16 그 후에 욥이 백사십 년을 살며 아들과 손자 사 대를 보았고
17 욥이 늙어 나이가 차서 죽었더라

 

 

하나님의시선

 

17 욥이 늙어 나이가 차서 죽었더라

 
목회자로 강단에 서서 설교를 할 땐,  욥기에서 가장 중요한 말씀이 42:5절이라고 생각했다.
 

5 내가 주께 대하여 귀로 듣기만 하였사오나 이제는 눈으로 주를 뵈옵나이다

 
물론 욥기에 있어서 이보다 중요한 구절이 또 어디 있을까! 하지만 자비량 선교사로, 교회의 평신도로 살아보니 17절의 말씀이 더 크게 다가왔다.
 
욥기는 어떤 책일까?
 
결국 하나님의 지혜를 사람이 다 알 수 없으며, 그렇기에 하나님의 주권 아래 나의 삶을 맡겨야 한다는 것이다. 
 
고로 나의 시선에서 바라보는 하나님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시선에서 나는 어떤 사람인가가 훨씬 더 중요하다.
 
5절은 어디까지나 나의 시선이다. 내가 본 하나님, 내가 경험한 하나님, 내가 느끼고, 알게 된 하나님. 
 
중요할 것이다. 나의 하나님을 언제 어떻게 경험했느냐에 따라 내 삶의 방향이 바뀔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온전해질 수 있을까? 깨끗해질 수 있을까? 정말 바뀔 수 있을까?
 
결국 욥기를 42:5절에 맞추다보니, 보이는 것이 온통 12절 이후에 나타난 이전보다 더한 '대박의 꿈' 뿐이란 것을 깨달았다.
 
조금 나아진듯 했으나, 여전히 내 시선을 벗어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욥기에서 17절을 주목하기로 생각을 바꿨다.
 
결국 죽는다. 잘 살든, 못 살든, 부귀영화를 누렸든, 지지리 궁상의 삶을 살았든. 결과적으로 죽는 것은 매한가지고, 평가는 하나님이 내리시는 것이다.
 
그러므로 '나의 하나님'보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이 바라보시는 나'이다.
 
그리고 이 사고의 전환 없이는 나의 삶을 다 주님 앞에 맡겨드릴 수 없음을 깨닫게 되었다.
 
'나의 하나님'은 여전히 내 중심적 삶의 지경을 헤매지만, '하나님이 바라보시는 나'는 언제나 하나님 시선에서 벗어나지 않는 삶의 지경을 살게 된다.
 
그렇기에 오늘의 작은 일, 작은 기쁨, 작은 고난으로 인하여 일희일비하지 않는다. 어차피 하나님의 계획, 하나님의 인도하심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예수님이 말씀하신 진리로 인한 자유일까?
 
오늘 욥기를 마치는 날, 욥의 세 친구를 향한 하나님의 심판도 중요하고, 욥의 고백도 중요하고, 하나님이 욥에게 내리신 보상도 중요하겠지만, 그 무엇보다 '하나님이 바라보시는 나'에 집중할 수 있는 우리가 되기를 소망한다.
 
결국 돌아갈 곳은 하나님의 나라, 이 땅에서 살 곳도 하나님의 나라다. 오늘의 삶이 내가 생각하는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는 삶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 안에서, 하나님이 바라보시는 나로 살 수 있는 오늘이 되길..... 그러면 결국 42:5절도 진정한 나의 고백이 될 것이라 믿는다. 샬롬!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