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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큐티(Q.T)

(렘 6:1~15)분명한 노선정리(매일성경큐티, 예레미야 6:1-15)

by 무지개소년 2023. 7. 17.

분명한 노선정리

매일성경큐티 230718 화
찬양: 충만
성경: 예레미야 6:1~15
1 베냐민 자손들아 예루살렘 가운데로부터 피난하라 드고아에서 나팔을 불고 벧학게렘에서 깃발을 들라 재앙과 큰 파멸이 북방에서 엿보아 옴이니라
2 아름답고 우아한 시온의 딸을 내가 멸절하리니
3 목자들이 그 양 떼를 몰고 와서 주위에 자기 장막을 치고 각기 그 처소에서 먹이리로다
4 너희는 그를 칠 준비를 하라 일어나라 우리가 정오에 올라가자 아하 아깝다 날이 기울어 저녁 그늘이 길었구나
5 일어나라 우리가 밤에 올라가서 그 요새들을 헐자 하도다
6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하노라 너희는 나무를 베어서 예루살렘을 향하여 목책을 만들라 이는 벌 받을 성이라 그중에는 오직 포학한 것뿐이니라
7 샘이 그 물을 솟구쳐냄 같이 그가 그 악을 드러내니 폭력과 탈취가 거기에서 들리며 질병과 살상이 내 앞에 계속하느니라
8 예루살렘아 너는 훈계를 받으라 그리하지 아니하면 내 마음이 너를 싫어하고 너를 황폐하게 하여 주민이 없는 땅으로 만들리라
9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포도를 따듯이 그들이 이스라엘의 남은 자를 말갛게 주우리라 너는 포도 따는 자처럼 네 손을 광주리에 자주자주 놀리라 하시나니
10 내가 누구에게 말하며 누구에게 경책 하여 듣게 할꼬 보라 그 귀가 할례를 받지 못하였으므로 듣지 못하는도다 보라 여호와의 말씀을 그들이 자신들에게 욕으로 여기고 이를 즐겨하지 아니하니
11 그러므로 여호와의 분노가 내게 가득하여 참기 어렵도다 그것을 거리에 있는 아이들과 모인 청년들에게 부으리니 남편과 아내와 나이 든 사람과 늙은이가 다 잡히리로다
12 내가 그 땅 주민에게 내 손을 펼 것인즉 그들의 집과 밭과 아내가 타인의 소유로 이전되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13 이는 그들이 가장 작은 자로부터 큰 자까지 다 탐욕을 부리며 선지자로부터 제사장까지 다 거짓을 행함이라
14 그들이 내 백성의 상처를 가볍게 여기면서 말하기를 평강 하다 평강 하다 하나 평강이 없도다
15 그들이 가증한 일을 행할 때에 부끄러워하였느냐 아니라 조금도 부끄러워하지 않을 뿐 아니라 얼굴도 붉어지지 않았느니라 그러므로 그들이 엎드러지는 자와 함께 엎드러질 것이라 내가 그들을 벌하리니 그때에 그들이 거꾸러지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노선정리

 

7 샘이 그 물을 솟구쳐냄 같이 그가 그 악을 드러내니 폭력과 탈취가 거기에서 들리며 질병과 살상이 내 앞에 계속하느니라

13 이는 그들이 가장 작은 자로부터 큰 자까지 다 탐욕을 부리며 선지자로부터 제사장까지 다 거짓을 행함이라

15 그들이 가증한 일을 행할 때에 부끄러워하였느냐 아니라 조금도 부끄러워 하지 않을 뿐 아니라 얼굴도 붉어지지 않았느니라

 

예루살렘은 이제 악하다고 부르기도 민망한 악의 축, 그 자체였다. 하나님 앞에서 질병과 살상은 계속되고 있었고, 작은 자부터 큰 자까지 썩지 아니한 사람은 없었다. 그 가운데 선지자와 제사장이 포함되어 있음은 물론이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이 이제 그들에게는 조금의 부끄러움도 없었다는 사실이었다.

 

이스라엘은 이제 무지를 넘어 교만과 거만이 최고조에 달해있었다. 어떻게 될까?

 

잠언 16:18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한 마음넘어짐의 앞잡이니라

 

결국 그들에게 남은 것은 분명한 하나님의 심판과 멸망뿐이었다.

 

4 너희는 그를 칠 준비를 하라 일어나라 우리가 정오에 올라가자 아하 아깝다 날이 기울어 저녁 그늘이 길었구나

6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하노라 너희는 나무를 베어서 예루살렘을 향하여 목책을 만들라 이는 벌 받을 성이라 그중에는 오직 포학한 것뿐이니라

 

그런데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심판은 충분히 이해되나, 하나님의 심판하시는 방식과 모습이 이상해 보인다.

 

자신의 자녀 편에 서시는 것이 아니라, 상대편 적의 편에 서서 그들을 부추기고, 오히려 어떻게 하면 자신의 자녀들을 효율적으로 공격할 수 있을지, 전술을 제공하고 공격을 독려하시기까지 하신다.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하나님의 공의가 그러하다는 것이다.

 

그런데 생각해 보니 하나님의 사랑도 그렇지 아니하던가?

 

요한일서 4:9~10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난 바 되었으니 하나님이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심은 그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려 하심이라/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속하기 위하여 화목제물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라

 

하나님의 사랑은 정말 끝이 없다. 심지어 그 아들, 독생자 예수까지 내어주신 분이 바로 우리 하나님 아니시던가?

 

그럼에도 굳이 납득할만한 이유를 찾아보면, 왜 공의의 심판은 이토록 무섭고, 분명할까?

 

악의 씨앗은 불확실성에서 더 크게 자라나기 때문이다. 반대도 마찬가지다. 왜 예수님께서 굳이 십자가를 지셨을까?

 

고민할 필요도 없는 문제다. 대속의 은혜도, 하나님의 심판도 분명하지 않으면, 은혜도 죄도 제대로 우리에게 효력을 발휘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요한계시록에 보면 라오디게아 교회를 향하여 주님께서 뭐라고 말씀하시던가?

 

요한계시록 3:15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차지도 아니하고 뜨겁지도 아니하도다 네가 차든지 뜨겁든지 하기를 원하노라

 

물론 라오디게아 교회를 향한 주님의 말씀은 여러 해석상의 난제들이 있다. 그 당시 라오디게아 지역에 대한 문화적 선이해도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결론적으로 놓고 보면, 이 구절이 주는 의미는 명확하다.

 

주님 앞에서 불확실한 신앙은 안된다는 것이다.

 

그들은 부(富)와 카리안 신(치유) 등의 이유로 주님을 제대로 믿지 않았다. 그래서 어떤 열매도 없는 신앙생활을 반복할 뿐이었다.

 

그러자 주님은 갈증을 해결할 수 있는 차가운 물이 되든지, 병을 치료할 만큼 제대로 뜨거운 온천수가 되던지, 그 당시 라오디게아 지역을 빗대어 물이 미지근하면 어떤 효력도 유익도 없다고 말씀하신 것이다.

 

제대로 된 신앙이 아니고서는 하나님의 나라를 살 수도 없고, 또한 하나님의 나라를 세울 수도 없다. 아니 그전에 삶의 자리에서 복음을 전하고, 선한 영향력을 미치는 자로 살 수 없다는 것이다.

 

그저 흐지부지한, 믿는 것도 아니고, 안 믿는 것도 아닌 선데이 크리스천이 될 뿐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의 사랑도, 하나님의 공의도 분명하다는 것이다.  

 

오늘 우리도 마찬가지다.

 

주님께서 오늘 나의 영적인 상태를 진단하신다면 우리는 과연 어떤 평가를 받게 될까?

 

나는 과연 어떤 신앙인으로 교회 생활을 하고, 세상을 살고 있는가? 

 

분명한 것은 하나님을 향한 노선정리가 확실해야만 한다는 것이다. 오늘 말씀을 대하고, 기도하고, 삶을 사는 가운데 이 부분에 대한 깊은 묵상과 실천이 있는 하루가 되기를 소망한다.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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