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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큐티(Q.T)

(롬 10:14~21)복음에 대한 책임(매일성경큐티, 로마서 10:14~21)

by 무지개소년 2023. 6. 17.

 

복음에 대한 책임

매일성경큐티 230617 토
찬양: 복음들고 산을 
성경: 로마서 10:14~21
14 그런즉 그들이 믿지 아니하는 이를 어찌 부르리요 듣지도 못한 이를 어찌 믿으리요 전파하는 자가 없이 어찌 들으리요
15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으면 어찌 전파하리요 기록된 바 아름답도다 좋은 소식을 전하는 자들의 발이여 함과 같으니라
16 그러나 그들이 다 복음을 순종하지 아니하였도다 이사야가 이르되 주여 우리가 전한 것을 누가 믿었나이까 하였으니
17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
18 그러나 내가 말하노니 그들이 듣지 아니하였느냐 그렇지 아니하니 그 소리가 온 땅에 퍼졌고 그 말씀이 땅 끝까지 이르렀도다 하였느니라
19 그러나 내가 말하노니 이스라엘이 알지 못하였느냐 먼저 모세가 이르되 내가 백성 아닌 자로써 너희를 시기하게 하며 미련한 백성으로써 너희를 노엽게 하리라 하였고
20 이사야는 매우 담대하여 내가 나를 찾지 아니한 자들에게 찾은 바 되고 내게 묻지 아니한 자들에게 나타났노라 말하였고
21 이스라엘에 대하여 이르되 순종하지 아니하고 거슬러 말하는 백성에게 내가 종일 내 손을 벌렸노라 하였느니라

 

전도

 

선교적 열정이 낙심될 때마다 떠올리는 곳이 있다. '양화진 선교사 묘역'이다.

 

100년 전, 이 땅을 찾아왔던 선교사님들의 마음을 깊이 떠올리며 묵상한다. 사랑하는 가족을 떠나 낯선 타국, 그것도 환영받지 못하는 땅에 와서 풍토병과 싸우고, 정부와 싸우고, 심지어는 그들이 복음을 전해야 할 지역 주민들의 경계하는 눈빛과도 싸워야 했을 것이다. 그것뿐이었겠는가?

 

그럼에도 다른 것은 다 이겨낼 수 있었으리라 생각하다가, 태어난 지 몇 개월이 채 되지 않은 선교사 자녀들의 묘를 떠올릴 때면 어떤 식으로도 이해가 되지 않는다.

 

'그들의 자녀가 죽어갈 때 그들은 과연 하나님께 뭐라고 기도했을까?', '그때, 그들의 심정은 어떠했을까?', '여전히 하나님 앞에서 감사하며, 사명의 자리에 설 수 있었던 심지는 무엇이었을까?'

 

14~15 그런즉 그들이 믿지 아니하는 이를 어찌 부르리요 듣지도 못한 이를 어찌 믿으리요 전파하는 자가 없이 어찌 들으리요/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으면 어찌 전파하리요 기록된 바 아름답도다 좋은 소식을 전하는 자들의 발이여 함과 같으니라

 

그들이 과연 어떤 마음으로 그들의 아픔과 슬픔을 이겨냈는지 정확히 알 수는 없으나, 결국 그들이 당한 고통과 아픔을 이겨내고, '복음'을 전해주었기 때문에 오늘 나와 믿음의 형제들이 이 땅에 존재하게 되었다.

 

13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 

 

그렇다.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면 구원을 받을 수 있다. 하지만 어떻게 주의 이름을 부르게 하겠는가?

 

주의 이름을 부르기 위해서는 수많은 사람들의 믿음과 헌신이 필요한 것이다. 누군가는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사건을 들을 때에 그 복음의 진리가 믿어져야 한다.

 

또 누군가는 그 복음의 진리를 들을 때에 마음에 한없는 기쁨이 생겨, 그 기쁨을 전하지 않고서는 견딜 수 없는 벅찬 은혜가 있어야 한다.

 

그리고 또 누군가는 그가 전해준 기쁜 소식을 들었을 때, 그 복음이 자신의 살아온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놓는 기적의 말씀으로 들려야 한다.

 

16 그러나 그들이 다 복음을 순종하지 아니하였도다 이사야가 이르되 주여 우리가 전한 것을 누가 믿었나이까 하였으니

 

그러나 예나 지금이나 그 기쁨의 좋은 소식, 복음을 듣고도 거부하는 이들이 있었다. 누구였을까?

 

유대인들이다. 그런데 오늘 본문을 자세히 읽어보면 두려운 표현들이 나온다. 

 

16 그들이 다 복음을 순종하지 아니하였도다

18 그들이 듣지 아니하였느냐

19 이스라엘이 알지 못하였느냐

21 이스라엘에 대하여 이르되 순종하지 아니하고 거슬러 말하는 백성에게 내가 종일 내 손을 벌렸노라 하였느니라

 

그들은 복음을 제대로 알지 못해서 거부한 것이 아니었다. 그들은 복음을 제대로 듣지 못해서 거부한 것이 아니란 것이다. 왜 그들이 복음을 거부했는가?

 

그들의 마음이 완고했기 때문이다.

 

오히려 19절과 같이 애초에 율법의 '율'자도 모르고, '제사'나 '성막', 그 어떤 것도 모르던 이방인들은 제대로 듣지도, 알지도 못했지만, 그들은 그들이 전혀 받아들이지 못할 것 같았던 이상한 이야기(복음)를 들었을 때, 그 복음을 그들의 전부로 믿으며 순종했다. 더 나아가 주님의 전도자들이 되었다.

 

결국 유대인들은 복음을 듣지 못한 것이 아니라, 알지 못했던 것이 아니라 '순종'하지 못했던 것이다. 

 

'내가 종일 내 손을 벌렸노라'

 

오늘 우리에게 주어진 사명이 있다. 바로 그 복음을 듣지 못하고, 알지 못하고, 깨닫지 못하는 그들에게 복음의 진리를 전해야 하는 사명이다.

 

누군가는 말할 것이다. 내가 전하여도 그들이 듣지 않는다. 내가 전하여도 그들이 깨닫지 못한다. 오히려 나를 욕하고, 이상한 취급 한다.

 

그런데 오늘 말씀은 '복음'은 듣지 않는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순종하지 않았다'라고 말씀한다.

 

즉, 우리는 전하는 것에 최선을 다 할 뿐, 그 복음을 듣고도 거부하는 것에 대해선 그들에게 '죄'가 있다는 것이다. 그들에게 전적인 책임이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반대로 내가 좋은 소식 '복음'을 듣고도, 그것을 전하지 않아, 그들이 이 '복음'을 듣지 못한다면, 그것에 관한 모든 책임은 누구에게 있는 것인가? 나에게 있는 것이다.

 

그렇다. 우리는 모두 '복음'에 대한 책임이 있다.

 

에스겔 33:3~6

그 사람이 그 땅에 칼이 임함을 보고 나팔을 불어 백성에게 경고하되/ 그들이 나팔 소리를 듣고도 정신차리지 아니하므로 그 임하는 칼에 제거함을 당하면 그 피가 자기의 머리로 돌아갈 것이라/ 그가 경고를 받았던들 자기 생명을 보전하였을 것이나 나팔 소리를 듣고도 경고를 받지 아니하였으니 그 피가 자기에게로 돌아가리라/ 그러나 칼이 임함을 파수꾼이 보고도 나팔을 불지 아니하여 백성에게 경고하지 아니하므로 그 중의 한 사람이 그 임하는 칼에 제거 당하면 그는 자기 죄악으로 말미암아 제거되려니와 그 죄는 내가 파수꾼의 손에서 찾으리라

 

나의 목회적 관점을 송두리째 바꿔놨던 성경구절이다. 

 

'나팔을 불어야 한다', 그런데 그 나팔을 '제대로 불어야 한다', '들리게 불어야 한다'.

 

돌아보니 어느 순간 내가 강단에서 그 나팔을 제대로 불고 있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새벽예배, 수요예배, 금요예배 매번 같은 사람들과 씨름을 했다. 그중에 한 명이 더 나오느냐, 안 나오냐를 가지고, 사무실 사람들은 전화를 하고, 심방을 하고.

 

그러다 교회 길 건너편을 보게 되었다. 아무렇지 않게 지나가는 그 수없이 많은 사람들.

 

계속 나는 이곳에 남아 나팔을 부는 것이 맞을까? 그 나팔을 부는데 성도들이 그것을 듣고 함께 나팔을 불어야 하는 게 맞을 텐데, 우리는 여전히 그대로라면 결국 내가 부르는 나팔이 잘못된 것이 아닐까?

 

그래서 광야로 나가기로 했다. 길거리로 나오기를 결심했다. 

 

나팔을 점검하고, 나팔을 초강력으로 탈바꿈시키기 위해 하나님이 아니고서는 살아갈 수 없는 환경을 스스로 자처했다.

 

매번 만나는 구원받은 사람들이 아니라, 복음을 거부하여 매번 스쳐 들었던 이들에게 다가가기로 했다. 그들에게 복음을 이제는 삶에서 제대로 전하고 싶었다. 제대로 듣게 하고 싶었다.

 

사람을 모으는 것에, 교회를 부흥시키는 것에 목매지 않기로 했다. 대신 한 영혼이라도 사랑하는 것에 목매기로 했다. 

 

우리는 오늘 '복음'에 관한 책임을 각자의 자리에서 잘 지고 있는가?

 

언젠가는 이 '복음'에 관한 책임을 우리는 주 앞에서 정산해야 할 것이다. 

 

'순종'이었는지, '불순종'이었는지!

 

오늘도 우리의 자리에서 부끄럽지만, 용기가 나지 않지만, 이 땅에서도 삶을 살아야 하지만, 그럼에도 시간을 내고, 물질을 드리고, 마음을 드려서 다시 한번 담대하게 '복음'의 책임을 질 수 있는 오늘 하루가 되기를 간절히 기도하고, 소망한다.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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