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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큐티(Q.T)

(롬 10:5~13)당당한 그리스도인(매일성경큐티, 로마서 10:5~13)

by 무지개소년 2023. 6. 16.

 

당당한 그리스도인

매일성경큐티 230616 금
찬양: 나는 주만 높이리
성경: 로마서 10:5~13
5 모세가 기록하되 율법으로 말미암는 의를 행하는 사람은 그 의로 살리라 하였거니와
6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는 이같이 말하되 네 마음에 누가 하늘에 올라가겠느냐 하지 말라 하니 올라가겠느냐 함은 그리스도를 모셔 내리려는 것이요
7 혹은 누가 무저갱에 내려가겠느냐 하지 말라 하니 내려가겠느냐 함은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모셔 올리려는 것이라
8 그러면 무엇을 말하느냐 말씀이 네게 가까워 네 입에 있으며 네 마음에 있다 하였으니 곧 우리가 전파하는 믿음의 말씀이라
9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받으리라
10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11 성경에 이르되 누구든지 그를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아니하리라 하니
12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차별이 없음이라 한 분이신 주께서 모든 사람의 주가 되사 그를 부르는 모든 사람에게 부요하시도다
13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

 

당당한그리스도인

 

5 모세가 기록하되 율법으로 말미암는 의를 행하는 사람은 그 의로 살리라 하였거니와

 

유대인들은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6절)가 아닌 '율법으로 말미암는 의'(5절)로 구원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렇다면 그들이 믿었던 '율법으로 말미암는 의'란 무엇일까?

 

사실 오늘 본문 5절은 레위기 18:5절을 인용한 말씀으로 유대인들은 이 구절을 이렇게 해석했다고 한다(Lab주석).

 

'율법을 준수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이로 말미암아 영원히 살게 될 것이다.'

 

그러니까 유대인들이 생각할 때 하나님 안에서 구원받는 방법은 오직 율법을 완벽무결하게 지키는 것에 있었다. 

 

그러나 이것은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율법을 주신 이유와 결코 맞지 않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율법을 왜 주셨을까?

 

율법은 본래 롬7:7장과 같이 죄를 깨닫게 하기 위한 것(특히 자신의 죄)이었다.

 

즉 죽을 수 밖에 없는 죄인이 주의 은혜가 아니고서는 살 수 없음을 깨닫고, 우리를 구원할 이는 오직 우리 주 예수그리스도 밖에 없음을 시인하고 고백하기 위함(9~10절)이라는 것이다.

 

4 그리스도는 모든 믿는 자에게 의를 이루기 위하여 율법의 마침이 되시니라

 

그래서 어제 4절도 같은 맥락에서 율법을 온전히 이해하게 되면, 결국 예수그리스도가 율법의 마침이 되셨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고 바울은 말했던 것이다.

 

그럼에도 그들은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로 생각을 전환하려고 하지 않았다. 그래서 바울은 신명기 30:12~14절 말씀을 인용하면서(6~7절) '율법으로 말미암는 의'는 결코 이룰 수 없는 것임을 강조한다.

 

결국 참된 의, 구원은 무엇으로 얻을 수 있을까?

 

8~10 그러면 무엇을 말하느냐 말씀이 네게 가까워 네 입에 있으며 네 마음에 있다 하였으니 곧 우리가 전파하는 믿음의 말씀이라/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받으리라/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예수님을 주로 시인해야 한다. 아니 예수님을 '나의 그리스도', '나의 주님'으로 고백하고 시인해야 한다는 것이다. 나를 구원할 유일한 나의 주인으로 고백해야 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주님'으로 번역된 헬라어 '퀴리오스'는 구약에 나오는 야훼의 헬라어 번역 '퀴리오스'와 일치하기도 한다. 즉 예수를 주로 시인한다는 것은 예수님이 '나의 하나님', 이 세상을 지으시고, 통치하시고 다스리시는 주님으로 고백하는 것과 같다는 것이다.

 

그러면 비로소 그 믿음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구원을 얻게 된다는 것이다.

 

12~13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차별이 없음이라 한 분이신 주께서 모든 사람의 주가 되사 그를 부르는 모든 사람에게 부요하시도다/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

 

그런데 이 구원에 이르는 길은 결코 차별이 없다. 유대인, 헬라인, 모든 열방의 사람들에게까지 열려 있다는 것이다. 오직 주의 이름, 우리 주 예수를 나의 주로 부르는 자라면 그 누구라도.

 

오늘 나에게 예수님은 어떤 분이신가? 정말 나를 대신하여 그분이 죽으시고 부활하셨음을 마음으로 믿는가?

 

그렇다면 정말 그 믿음을 시인하고, 고백할 수 있는가? 그리고 다른 사람 앞에서 자신 있게 그 주님을 고백하고, 전하며 살 수 있는가?

 

11 성경에 이르되 누구든지 그를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아니하리라 하니

 

사실 나도 그렇고, 많은 믿음의 사람들이 마음으로는 예수님을 나의 주로 쉽게 고백하면서도, 삶에서 예수님을 드러내는 것에는, 내가 믿음 있는 사람임을 드러내는 것에는 굉장히 소극적인 모습일 때가 많다.

 

왜 그럴까? 가장 먼저는 부끄럽기 때문이고, 그 다음은 그로 인한 말과 행동의 제약 때문에 그럴 것이다. 더 나아가 공동체에서 손해와 불이익을 당할 것을 염려하기 때문일 것이다.

 

정말 그럴까? 당장은 그럴 수도 있다. 하지만 예수님을 정말 믿는다면, 오늘 본문의 11절 말씀도 꼭 기억했으면 좋겠다.

 

우리가 주님을 나의 주로 시인할때, 주님께서 우리를 부끄러움 당하게 하지 않으신다고 말씀하신다. 아니 약속하신다. 

 

오늘 삶을 사는 가운데 조금만 더 당당하게 살아보자. 예수님을 믿는 나의 모습을, 예수님을 고백하고, 전하는 나의 모습을 조금은 더 삶으로 나타낼 수 있는 하루가 되기를 간절히 소망하고, 기도해 본다.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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