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오늘 큐티(Q.T)

(롬 7:1~13)오직 은혜 아래 서서(매일성경큐티, 로마서 7:1~13)

by 무지개소년 2023. 6. 7.

오직 은혜 아래 서서

매일성경큐티 230608 목
찬양: 예수 피를 힘입어
성경: 로마서 7:1~13
1 형제들아 내가 법 아는 자들에게 말하노니 너희는 그 법이 사람이 살 동안만 그를 주관하는 줄 알지 못하느냐
2 남편 있는 여인이 그 남편 생전에는 법으로 그에게 매인 바 되나 만일 그 남편이 죽으면 남편의 법에서 벗어나느니라
3 그러므로 만일 그 남편 생전에 다른 남자에게 가면 음녀라 그러나 만일 남편이 죽으면 그 법에서 자유롭게 되나니 다른 남자에게 갈지라도 음녀가 되지 아니하느니라
4 그러므로 내 형제들아 너희도 그리스도의 몸으로 말미암아 율법에 대하여 죽임을 당하였으니 이는 다른 이 곧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신 이에게 가서 우리가 하나님을 위하여 열매를 맺게 하려 함이라
5 우리가 육신에 있을 때에는 율법으로 말미암는 죄의 정욕이 우리 지체 중에 역사하여 우리로 사망을 위하여 열매를 맺게 하였더니
6 이제는 우리가 얽매였던 것에 대하여 죽었으므로 율법에서 벗어났으니 이러므로 우리가 영의 새로운 것으로 섬길 것이요 율법 조문의 묵은 것으로 아니할지니라
7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을 하리요 율법이 죄냐 그럴 수 없느니라 율법으로 말미암지 않고는 내가 죄를 알지 못하였으니 곧 율법이 탐내지 말라 하지 아니하였더라면 내가 탐심을 알지 못하였으리라
8 그러나 죄가 기회를 타서 계명으로 말미암아 내 속에서 온갖 탐심을 이루었나니 이는 율법이 없으면 죄가 죽은 것임이라
9 전에 율법을 깨닫지 못했을 때에는 내가 살았더니 계명이 이르매 죄는 살아나고 나는 죽었도다
10 생명에 이르게 할 그 계명이 내게 대하여 도리어 사망에 이르게 하는 것이 되었도다
11 죄가 기회를 타서 계명으로 말미암아 나를 속이고 그것으로 나를 죽였는지라
12 이로 보건대 율법은 거룩하고 계명도 거룩하고 의로우며 선하도다
13 그런즉 선한 것이 내게 사망이 되었느냐 그럴 수 없느니라 오직 죄가 죄로 드러나기 위하여 선한 그것으로 말미암아 나를 죽게 만들었으니 이는 계명으로 말미암아 죄로 심히 죄 되게 하려 함이라

 

 

주만높이리
이미지출처_은혜의그림묵상

 

 

6 이제는 우리가 얽매였던 것에 대하여 죽었으므로 율법에서 벗어났으니 이러므로 우리가 영의 새로운 것으로 섬길 것이요 율법 조문의 묵은 것으로 아니할지니라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시기 전까지 '율법'은 절대적인 것이었다. 무엇 때문에 절대적이었을까?

 

율법이 의와 구원에 이르는 유일한 방편으로 여겨졌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심으로 모든 사람은 '율법 아래'에 있지않고, '은혜 아래' 있는 새로운 인생이 되었다(거듭남과 구원).

 

즉 예수님의 이름을 우리가 믿고 고백할 때에(복음), 우리는 더 이상 율법에 얽매여 하나님과의 관계에 대한 두려움을 가지지 않게 되었다.

 

그런데 여기서 절대 오해하지 말아야 할 것은 그렇다고 율법이 더 이상 사람들에게 필요하지 않다는 것은 결코 아니다(율법 폐기론).

 

율법이 무엇이던가? 율법은 엄연히 하나님이 주신 거룩한 '법'이다.

 

오늘 본문이 말하는 내용도 그것이다.

 

오늘 본문 1~6절의 내용을 보면, 우리는 예수그리스도의 몸으로 인하여(4절) 예수그리스도와 연합한 자가 되었고, 그분의 거룩한 신부가 되었다.

 

고로 예수님과의 결혼생활을 유지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 무엇일까?

 

결혼생활을 유지하고 지속하기 위한 '법', 상대방을 배려하고, 함께하기 위한 '법', 배우자를 기쁘게 하고, 친밀감을 유지하기 위한 '법'이 필요한 것이다.

 

그것이 무엇일까? 그것이 바로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법', '율법'인 것이다.

 

7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을 하리요 율법이 죄냐 그럴 수 없느니라 율법으로 말미암지 않고는 내가 죄를 알지 못하였으니 곧 율법이 탐내지 말라 하지 아니하였더라면 내가 탐심을 알지 못하였으리라

 

지금 바울이 편지를 쓰고 있는 로마교회의 문제와 갈등은 어디에서 비롯되었을까? 바로 '율법'에 대한 서로 다른 이해에서 모든 문제와 갈등이 시작되었다.

 

물론 그들(유대인들)이 알고 지키려던 '율법'이 오늘 말씀처럼 죄나 잘못된 것은 아니었다. 그들이 주장하는 '하나님의 법'에는 아무런 잘못도 없었다. 다만 율법의 '사용 용도'와 '사용 방법'에 문제가 있었던 것이었다.

 

즉 율법의 주된 목적은 '죄'를 분별하는 것에 있지, 그들이 하던 것처럼 율법으로 의인을 구분 짓고, 비난과 정죄를 하는 것은 율법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사용하지 못하는 것이었다.

 

9~10 전에 율법을 깨닫지 못했을 때에는 내가 살았더니 계명이 이르매 죄는 살아나고 나는 죽었도다/ 생명에 이르게 할 그 계명이 내게 대하여 도리어 사망에 이르게 하는 것이 되었도다

 

사실은 바울 자신도 과거에 그랬었음을 고백한다. 바울은 다메섹도상에서 주님을 만나기 전까지 지금의 유대인들처럼 율법을 잘못 이해하고 사용했다. 그래서 그는 수없이 많은 죄없는 그리스도인들을 '율법'에 근거하여 잡아서 죽이는 일에 앞장섰다.

 

이제 바울은 그들이 자신과 같은 오류에 빠지지 않기를 소망하며 율법을 이제라도 제대로 이해하고, 사용하기를 소망하는 마음으로 이 편지를 쓰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바울이 밝힌 율법의 주된 목적과 용도는 무엇일까?

 

율법은 죄가 무엇인지 우리에게 알려준다(7절). 또한 율법은 이미 나의 삶의 현장에, 나의 생각과 마음 안에 어떤 죄가 소리소문 없이 자리 잡고 있는지, 그동안 분별해내지 못했던 죄의 모습들을 밝히 보여준다는 것이다(8절).

 

결국 율법은 '나'를 그리스도와 연합한 자로 살게 하기 위한 도구인 것이지, '남'을 비난하거나 정죄하는 용도로 하나님이 제정하신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래서 오늘 본문을 읽을 때에 계속 마음에 남은 구절이 있다.

 

11 죄가 기회를 타서 계명으로 말미암아 나를 속이고

 

율법이 왜 잘못된 목적으로 사용될까?

 

우리가 그리스도의 '은혜 아래'에 있지 않을 때, 우리는 여전히 '율법'만이 우리를 구원할 유일한 것으로 속게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여전히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바울이 아닌 사울로 살게 된다.

 

내가 십일조를 한다고, 다른 사람도 마땅히 십일조를 해야 거룩한 성도라는 것은 옳지 않다. 그가 거룩한 성도가 되는 것은 하나님과 그 사람 간의 문제일 뿐, 내가 결코 율법을 가지고 심판자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즉 때에 따라 말씀을 읽고 깨닫는 것은 모두다르며, 어떤 이에게는 십일조가 하나님의 '법'으로 인식되기까지 상당한 시간과 믿음의 분량이 필요하다는 것을 우리는 인정해야 한다.

 

내가 주일을 성수하고, 내가 새벽기도를 하고, 내가 금요기도회를 나가고, 내가 교사를 하고, 내가 찬양대를 하고, 내가 이런 봉사를 하고, 내가 이런 헌신을 하고, 이것은 어디까지나 그리스도를 향한 나의 마음일 뿐이지, 구원의 수단이 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왜 우리는 끊임없이 교회에서 혹은 세상에서 율법으로 심판자가 되려고 노력할까?

 

결국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 아래' 서지 못하기 때문이다.

 

오늘도 로마서에 나타난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묵상할 때에, 오직 그리스도의 '은혜 아래' 서서 그 말씀이 나의 삶을 변화시키는 도구로 온전히 사용되는 하루가 되기를 간절히 소망하고, 기도한다. 샬롬!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