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케되리 with JESUS (매일성경큐티 230306)
찬양: 예수 나의 좋은 치료자 / 성경: 마태복음 17:14-27
쉬운성경 version. 14 예수님과 제자들이 사람들에게 갔을 때, 어떤 사람이 예수님께 와서 무릎을 꿇고 절을 하며 말했습니다. 15 "주님, 제 아들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이 아이가 간질에 걸려서 너무나 고생하고 있습니다. 이 아이는 가끔 불에도 뛰어들고, 물에도 뛰어듭니다. 16 제가 이 아이를 제자들에게 데리고 왔었는데, 고칠 수 없었습니다." 17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아! 믿음이 없고, 뒤틀어진 세대여! 도대체 언제까지 내가 너희와 함께 있어야 하겠느냐? 언제까지 내가 너희를 참아야 하겠느냐? 그 아이를 내게 데리고 오너라." 18 예수님께서 귀신을 꾸짖으셨습니다. 그러자 귀신이 아이에게서 나가고, 그 아이는 즉시 나았습니다. 19 제자들이 예수님께 따로 와서 물었습니다. "어째서 우리는 귀신을 쫓아낼 수 없었습니까?" 20 예수님께서 대답해 주셨습니다. "너희 믿음이 적어서이다. 내가 너희에게 진정으로 말한다. 너희에게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이 있으면, 이 산을 향하여 '여기서 저기로 움직여라' 말할 것이다. 그러면 산이 움직일 것이다. 너희가 못할 일이 아무것도 없을 것이다." 21 (없음) 22 제자들이 갈릴리에 모여 있었을 때,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인자가 사람들의 손에 넘겨질 것이고, 23 사람들은 그를 죽일 것이다. 그러나 삼 일째 되는 날에 다시 살아날 것이다." 그러자 제자들은 몹시 슬퍼하였습니다. 24 예수님과 제자들이 가버나움에 이르렀을 때, 성전세를 걷는 사람들이 베드로에게 와서 물었습니다. "당신네 선생님은 성전세를 내지 않습니까?" 25 베드로가 대답했습니다. "내십니다." 베드로가 집에 들어가자, 예수님께서 먼저 말씀을 꺼내셨습니다. "어떻게 생각하느냐? 시몬아, 이 세상의 왕들은 관세와 세금을 누구에게서 받느냐? 왕의 자녀들한테서냐? 아니면 다른 사람들한테서냐?" 26 베드로가 대답했습니다. "다른 사람들에게서입니다."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왕의 자녀들은 세금을 낼 필요가 없다. 27 그러나 성전세 걷는 사람들을 자극해서는 안 되겠다. 그러니 호수에 가서 낚시를 던져라. 그리고 첫 번째 낚은 물고기의 입을 벌려 보아라. 은돈 한 개가 있을 것이다. 그것을 가져다가 성전세 걷는 사람에게 나와 네 몫으로 주어라." |
1. 곁가지 속에서 진실을 마주하다.
오늘 큐티를 보면서 가장 먼저 나의 머리를 때린 구절은 다음과 같다. 15절이다.
“주님, 제 아들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이 아이가 간질에 걸려서 너무나 고생하고 있습니다. 이 아이는 가끔 불에도 뛰어들고, 물에도 뛰어듭니다.”
앗, 나도 간질에 걸렸구나. 그래서 불에도 뛰어들고, 물에도 뛰어드는 것이구나. 간질이 무엇일까? 간질은 질병이다. 그것도 어찌할 수 없는 질병.
내가 그렇게 하지 말아야지 어찌한다고 해서, 부모가 어찌한다고 해서 멈춰지는 것도 아닌 질병. 저명한 의사를 찾아간다고 해서 단시간에 고쳐질 수 있는 질병도 아니다. 단지 약을 처방받으면 그 약을 먹을 때, 간질 증세를 잠시 진정시킬 뿐인 병이다. 또 시간이 되면, 환경적 요인이 맞춰지면 재발하고 마는 질병.
그래서 나는 오늘도 이 세상의 것을 향해서 그토록 무모하게 뛰어들고 있었구나. 이 간질이 무엇인가? 죄의 쓴뿌리다. 단지 억누르고, 억눌렀던 죄악의 뿌리. 교회에 와서 찬양으로 억누르고, 한 번의 말씀으로 억눌렀던 죄의 쓴 뿌리, 주님 앞에 꺼내지 않았다. 주님 앞에서 없어지길 원치 않았다. 단지 약만 처방받았다. 죄는 있으니 그 죄에 대한 가책을 주님 앞에 없애달라고 했던 것이었다.
왜 그랬을까? 그 죄가 달콤했기 때문이다. 이 죄가 나를 옭아매고, 나의 마음에 괴로움을 주는 것을 알면서도, 끊어낼 수가 없었다. 왜냐하면 그 순간 나를 너무 즐겁게 하고, 그것을 즐기는 동안 나는 나를 둘러싼 스트레스와 아픔, 상처들이 잊힌다고 생각되었기 때문이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해, 생각나지 않게 만드는 또 하나의 대체품이었다.
그래서 잘못된 줄 알면서도, 내게서 이것을 빼앗기기를 원치 않았다. 그래서 죄의 쓴 뿌리를 뽑지 않고, 주님 앞에서는 단순한 죄만을 나열하며 버텼다. 그런데 그 죄의 쓴 뿌리가 나의 유희와 쾌락을 위한 도구로 사용될 뿐만 아니라, 오늘 나의 삶을 불나방처럼, 물귀신처럼 세상으로 끌고 들어가, 돈에 미치고, 사람에 미치고, 쾌락해 미치게 하는지도 모르고 살았다.
마치, 간질에 걸린 아이가 좌우분간을 할 수 없어서, 자신이 무슨 일을 저지르고 있는지도 모른 채, 불에도, 물에도 달려갔던 것처럼.
나는 해결하려고 노력하는 척했다. 기도시간에 울부짖으며, 나의 죄를 고백하고, 은혜에 취한 척을 했다. 그러나 주님 앞에서 나는 나의 고상한 죄만 부르짖었을 뿐. 원초적인 나의 죄의 뿌리를 또다시 감췄다. 이쯤 되면 되리라. 그리고 다시 나의 죄를 반복했다.
그러다 다시 간질에 걸려 괴로움이 재발하면, 여러 핑계를 대보았다. 예수님, 제가 기도해 봤어요.. 예수님, 제가 말씀도 읽어봤어요. 예수님, 제가 봉사도 해봤어요. 그런데 예수님 왜 저의 길이 열리지 않나요? 예수님, 왜 저의 기도가 응답되지 않나요? 예수님, 왜 저를 이토록 불로, 물로 뛰어들어가 죽게 만드시나요?
마치 오늘 능력 없는 제자들에게 달려간 이 아버지처럼, 우린 그동안 곁가지 죄들만 꺼낼 뿐 가장 깊숙이 나의 내면에 있는 그 죄를 주님께 포기하겠노라고 토해내지 않았다. 어떻게든 해결하려고 했다면, 단순히 그런 죄의 고백만 해서는 안되었으리라.
윤리적이고, 도덕적인 죄, 나의 지난주의 행동과 고상하지 못했음을 주님 앞에 고백하는 행위가 아니라, 정말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내가 아는 나의 가장 반복되는 간질과 같은 그 죄악을 진정한 치료자이신 예수님께 아룄어야 했다는 것이다.
2. 번지수를 찾은 간질.
드디어 아버지가 제대로 된 치료자를 찾았다. 그 이름 예수그리스도.
이 시대 청년들과 어른들, 아니 더 어린 초중고 학생들의 모습이 떠올랐다. 스트레스를 풀려고 하다, 다시 그것을 하지 못해 스트레스가 찾아오는 이 시대의 사람들의 모습이 머릿속에 그려졌다. 회사에서, 학교에서, 가정에서, 혼자 있는 시간에 스트레스를 받아 그들은 친구와 함께 쾌락의 세계를 헤맨다. 여행을 탐닉한다. 카페를 전전긍긍한다. 게임과 도박, 흡연과 음주가무에 빠진다. 오타쿠가 되어서 나에게 의미를 부여한다.
그러다 너무 바쁘고, 돈이 떨어질 때면, 잠시 그들에게 위안을 주었던 그 쾌락을 그리워하는 스트레스를 가진다. 이 일이 어서 빨리 끝나야 또 갈 텐데, 돈을 벌어야 하고, 시간은 없고, 친구들은 바쁘고, 여건은 안되고, 나의 스트레스를 풀어줄 그것을 할 수 없으니, 그것이 또다시 스트레스가 되고, 아픔이 된다. 괴로움이 되고, 큰 스트레스로 되돌아온다. 화가 난다.
그들만 그러할까? 나도 그러하리라. 나도 똑같다. 내게도 쾌락과 같은 존재, 여행과 같은 존재, 카페와 같은 존재가 있다. 무엇일까?
그러다 예배를 바라봤다. 그러다 말씀을 들어보려고 했다. 찬양을 부르면 씻은 듯이 낫는 것 같았다. 잘못된 대상을 찾은 것이다. 예수님을 찾지 않으면 의미가 없는데, 잠깐 찬양의 분위기에 도취되어 보니, 세상에서 스트레스를 풀던 것과는 다른 또 다른 대안이 되는 것 같았다. 그러나 여전히 세상에 나가보면, 나의 간질은 사라져 있지 않았다. 불속으로 뛰어가고 있다.
이제는 올바른 치료자를 찾아야 한다. 그리고 다 사실대로 이야기해야 한다. 주님, 저에겐 이런 간질이 있었습니다. 주님, 저에게는 끝까지 해결되지 않는 이런 문제와 아픔이 있습니다.
그때에 주님은 너무나 명료하고, 간단하게 그 간질을 해결해 주신다.. 그 누구처럼 복잡하고, 장황하게 그 간질 앞에서 동공지진을 일으키지 않는다.
18절 말씀이다. “예수님께서 귀신을 꾸짖으셨습니다. 그러자 귀신이 아이에게서 나가고, 그 아이는 즉시 나았습니다.”
예수님을 만나면, 예수님께 아뢰면 주님은 정확히 그 질병의 속성을 알고, 해결해 주신다. 우리에게 있는 간질은 그 행위에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었다. 나의 방황하는 마음에 문제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우리의 내면을 정말 지배하고, 장악했던 것은 내가 그토록 꽁꽁 싸매고, 어떤 면에서는 계속 즐기고, 갖고 싶었던 죄악의 쓴 뿌리에 문제가 있었던 것이다.
주님은 간질의 괴로움을 갖고 나온 아이의 표면적 증상을 치료하시는 것이 아니라, 그 증상의 중심을 치료하신다. 오늘 우리도 그 중심이 깨끗이 치료되기를 소망한다.
그러려면, 번지수를 제대로 찾아야 한다. 행위나 상황으로 은혜를 구하면 안 된다. 교회 오는 행위, 예배드린 행위, 기도하는 행위, 눈물 흘리며 감동하는 듯한 은혜적 상황에 속으면 안 된다.
정말 그 행위나 상황이 은혜가 되려면, 예수님 앞에 최종적으로 무릎 꿇어야 한다. 그리고 토해내야 한다. 주님, 나의 간질을 고쳐주소서. 주님, 나의 죄악을 뽑아주시옵소서.
3. 삯꾼의 반성.
제자들이 예수님께 묻는다. 19절이다. "어째서 우리는 귀신을 쫓아낼 수 없었습니까?"
예수님이 대답하신다. 20절이다. 예수님께서 대답해 주셨습니다. "너희 믿음이 적어서이다. 내가 너희에게 진정으로 말한다. 너희에게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이 있으면, 이 산을 향하여 '여기서 저기로 움직여라' 말할 것이다. 그러면 산이 움직일 것이다. 너희가 못할 일이 아무것도 없을 것이다. "
결국엔 내게 믿음이 없었다. 괴롭습니다. 아픕니다. 청년들과 수많은 어른들이 상담을 청하고, 기도부탁을 했었다. 그런데 나는 그들의 위로자, 좋은 목사, 좋은 형과 오빠가 되려고만 했다. 그들의 근원적 문제를 제대로 해결해 주는 도우미가 되어주지 못했다.
무엇 때문이었을까? 결국 목사가 당면한 최악의 욕구, 인정의 욕구였으리라 생각된다. 송곳처럼 찌르는 조언과 기도를 그들에게 해주지 못했던 것은, 너의 문제는 결국 죄악의 쓴 뿌리의 문제다 강력하게 지적하지 못했던 것은 내가 진짜 목사가 아니라, 내가 삯꾼, 교회에서 월급을 받고 일했던 월급쟁이였기 때문이다. 그것이 팩트고, 그것이 진짜다.
주님께 나도 나의 진짜 쓴 뿌리를 내어놓는다. 이제는 인정에 사로잡히지 않고, 다른 사람의 시선과 칭찬에 목말라하지 않고, 죄악의 쓴 뿌리를 가진 자들에게 죄악의 본질을 선포하고, 가르치고, 주님께로 바르게 인도하는 목회자가 되게 하소서. 저에게 믿음을 주소서. 선교지의 사람들에게 정말 진정한 말씀, 올바른 복음을 전하는 자로 나를 준비시켜 주시옵소서.
우리 모두에게 겨자씨만 한 믿음이 있기를 원한다. 그 겨자씨만 한 믿음이 무엇인가?
주님께 나의 쓴 뿌리를 갖고 나오면 주님께서 나를 새롭게 변화시킨다는. 이제는 간질에서 정말 자유케 하신다는 강력한 확신이 없는 것이다.
이것이 정말 죄인지 아닌지 분별하지 못하고, 이것이 없으면 허전할 것 같은데, 친구들과 어울리지 못할 것 같은데, 나의 삶에 재미가 없을 것 같은데, 갈팡질팡하는 우리의 마음이다. 그것이 죄라는 확신을 갖고, 주님 앞에 엎드리는 것이 믿음이다.
잘못된 것을 바로 잡으려는 마음. 그것이 믿음이다. 주님 앞에 바로 서지 못했던 나의 지난날을 고백하고, 주님 앞으로 되돌아오는 것이, 세상으로 향했던 시선을 주님께로 다시 시선을 향하게 하는 것이 바로 믿음이다.
오늘도 그런 믿음을 가지고, 주님 앞에 나의 간질, 쓴 뿌리를 내어놓고, 온전히 치료받는 기적의 하루, 자유케 되는 하루가 되기를 소망한다. 여호와 라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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