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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큐티(Q.T)

(마태복음 19:1~12) 말씀앞에서 경외함으로 (매일성경큐티, 마19)

by 무지개소년 2023. 3. 10.

말씀 앞에서 경외함으로 (매일성경큐티 230310)

 
찬양: 말씀 앞에서 경외함으로
성경: 마 19:1~12
 

쉬운성경 version.

1 이 말씀을 다 마치시고, 예수님은 갈릴리를 떠나 요단 강 건너편에 있는 유대 지방으로 가셨습니다.
2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따라오자, 예수님께서는 그 곳에서 그들을 치료해 주셨습니다.
3 몇몇 바리새파 사람이 와서 예수님을 시험하려고 물었습니다. "무엇이든 이유만 있으면, 자기 아내와 이혼하는 것이 괜찮습니까?"
4 예수님께서 대답하셨습니다. "너희가 이 말씀을 읽지 못했느냐? '맨 처음 사람을 만드신 분이 남자와 여자로 지으셨다.'
5 그리고 이렇게 말씀하셨다. '그러므로 남자는 부모를 떠나 아내와 합할 것이다. 두 사람이 한 몸이 될 것이다.'
6 이처럼 두 사람은 이제 둘이 아니라 한 몸이다. 하나님께서 묶으신 것을 사람이 나누지 마라."
7 바리새파 사람들이 물었습니다. "그러면 왜 모세는 이혼 증서를 주고, 아내와 헤어지라고 명령하였습니까?"
8 예수님께서 대답하셨습니다. "모세가 아내와의 이혼을 허락한 것은, 너희 마음이 악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원래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다.
9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부정을 저지르지 않았는데도 아내와 이혼하고, 다른 여자와 결혼하는 것은 간음죄를 짓는 것이다."
10 제자들이 예수님께 말했습니다. "만일 남편과 아내와의 관계가 이와 같다면, 차라리 결혼하지 않는 것이 낫겠습니다."
11 예수님께서 대답하셨습니다. "모든 사람이 이 말을 받아들일 수는 없다. 오직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사람들만이 그렇게 할 수 있다.
12 어머니 배에서 나올 때부터 고자로 태어난 사람이 있고, 다른 사람에 의하여 고자가 된 사람도 있고, 하늘 나라를 위해 스스로 고자가 된 사람도 있다. 이 말을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은 받으라."

말씀

 

1. 시험하여 이르되.

오늘 말씀을 읽으며 처음 눈에 들어온 구절은 3절의 "시험하려고 물었습니다.", 개역개정 성경으로는 "그를 시험하여 이르되"이다. 그러니까 애초에 오늘 질문은 불순하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그런데, 내가 이 구절을 주목한 것은 우리의 믿음 안에서의 하루하루가 그렇지 아니한가? 말씀을 듣고, 말씀을 믿고, 말씀을 행하고 싶은 욕망은 있지만, 쉽사리 그 말씀이 내 삶에 이뤄질 것이 믿어지지 않는다. 그래서 의심하고, 또 의심한다. 
 
그래서 주님을 알게 모르게 시험하려고 애쓴다. 주님, 오늘도 이렇게 살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감사로 주님을 시험한다. 감사로 제사드리는 자를 주님께서 그의 행위를 영화롭게 해 주신다 하는 것을 시험하기 위함이다.
 
아무 목적과 이유 없으면서도 밥을 먹으며 기도를 한다. 깨어나서 기도, 잠들 때 기도. 의무감에서 오는 성경 읽기와 종교생활. 어찌 보면 이 모든 것의 의도는 믿음의 성취가 내 삶에 이뤄짐을 시험하여 확인하고 싶어서이다.
 
물론 오늘 바리새인들의 질문 의도와는 전혀 다른 이야기일 수 있다. 하지만, 이미 우리의 신앙을 대하는 기본 마인드가 잘못되었음을 깨닫는다. 그래서 주님은 제자들에게 경고하신 것이다. 그리고 우리에게도 경고하신 것이다.
 
마 18:3절. "너희가 돌이켜 어린아이처럼 되지 않으면, 하늘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
마 17:20절. "너희에게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이 있으면, 이 산을 향하여 '여기서 저기로 움직여라' 말할 것이다. 그러면 산이 움직일 것이다. 너희가 못할 일이 아무것도 없을 것이다."
 
의도가 있는 질문은 항상 잘못된 선택을 결정짓는 기초가 된다. "주님이 이렇게 하라면 들어주신다고 했잖아요! 나는 정말 최선을 다했습니다. 저는 주님이 하라는 대로 정말 열심히, 나의 시간과 모든 열정을 드렸습니다. 그런데 내 모습이 이게 뭡니까? ".
 
돌이켜보면 주님이 우리에게 네가 그렇게 해줬으면 좋겠다고 하신 적은 없다. 우리가 앞선 것이다. 왜? 의심이 되어서. 믿음이 부족하여서.
 
하루를 시작하며 주님께 기도를 해야 한다. 일과의 중간에 주님께 잠시라도 기도해야 한다. "주님 제가 어떻게 하여야 좋을지 알게 도와주세요".
 
좋지 않은 뉴스를 보면서, 그들을 위해 진심으로 중보기도 할 수 있어야 한다. 일과를 시작하며, 일과를 마치며 주님께 영광 돌리는 예배를 드려야 한다. 잠을 청하며 주님과 평안한 하루에 대해 감사해야 한다.
 
주님은 우리에게 그 이상의 헌신과 결단을 요청한 적이 없다. 모든 헌신과 선교는 오직 주님을 향한 나의 감사의 표현일 뿐이다. 그러니 더 이상 의심과 아리송함을 해소하기 위한 나의 믿음의 도전은 그만두는 것이 어떨까 생각한다.
 
* 기드온의 시험은 우리의 시험과 완전히 다른 문제임을 깨닫는 은혜가 있기를 바란다.
 

2. 말씀에 목숨을 거는 자.

결국 지혜가 부족함의 문제이다. 그런데 그 지혜는 어디에서 오는가? 너무나 잘 아는 잠언 9:10절의 말씀이다. 
 
"여호와를 경외함이 지혜의 근본이요, 거룩한 분을 아는 것이 명철의 시작이다."
 
여호와를 경외함이 지혜의 시작이라고 성경은 분명하게 말한다. 중요한 것은 이 말씀을 저기 예수님을 시험하고 있는 바리새인들도 알고, 우리도 알고, 나도 분명히 안다는 것이다.
 
예수님은 하나님이시다. 즉, 예수님을 하나님으로 인정하지 않는 것이 지혜롭지 못함의 시작이 된다는 것이다. 오늘 본문에 나타난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을 알았지만, 끝끝내 하나님으로 인정하고, 믿지는 못하였다. 그래서 결국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았다. 이 얼마나 우매하고, 어리석은가?
 
우리는 예수님을 참 하나님으로 인정하고 있는가? 사실 1번에서 다뤘던 우리의 믿음 부족의 문제도 같은 맥락이 아닌가?
 
예수님을 나의 구주, 나의 주인으로 인정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요, 그 예수그리스도를 잘 아는 것이 우리 명철, 총명하고 세상의 이치를 아는 지름길이라는 것이다.
 
결국 성경은 또다시 하나의 말씀으로 귀결되는 놀라움을 보여준다. 시편 119편 105절이다.
 
"주의 말씀은 내 발의 불이며, 내 길의 입니다."  
 
이것을 우리 삶의 진정한 지표로 삼으면 모든 게 다 해결된다. 단순히 암기하는 구절이 아니라, 단순히 성경의 좋은 구절이 아니라, 정말 이 구절이 우리 삶의 방향이자, 방법이자, 해결책이자, 지혜가 되어야만 한다.
 
말씀을 우리 삶의 등불로, 우리 길의 빛으로 삼겠다는 것이 무슨 뜻인가? 그 말씀이 하라는 대로만 내가 살겠다는 것이다. 그 말씀에 내 앞으로의 생명을 걸겠다는 것이다. 그 말씀에 나의 운명을 전부 맡기겠다는 것이다.
 
맞다. 그 말씀이 곧 예수그리스도, 우리의 주이시다.
 
요즘 다니엘이 매일밤 예배가 마치고 하는 다짐이 있다. 그리고 나름 그 다짐이 비장하다. "예수님을 알려면 성경을 잘 읽어야겠네요. 내일도 꼭 성경을 읽을게요."
 
그렇다 예수님을 알기 위해 읽기 시작한 성경에서, 우리는 참 진리이신 예수님을 발견하고, 그 예수님의 말씀이 우리를 살게 함을 믿게 될 것이다. 그러면 더 이상 예수님을 우리의 삶에서 믿지 못해 시험하는 우는 범하지 않으리라.
 
말씀을 읽는가? 말씀에 나의 생명을 거는가? 말씀에 우리의 운명을 맡겼는가? 그 말씀이 오늘 예수그리스도의 실체가 되어 우리 삶을 풍성하게 이끄는 확실한 인도자가 될 것이다. 바로 우리의 삶에, 바로 나의 삶에. 

 
말씀 앞에서 경외함으로
주께 홀로 섭니다
생명의 말씀 읽고 순종해
주를 예배합니다

기록된 말씀 힘이 있어서
진리로 우릴 거룩케 하며
거룩한 말씀 세세 영원히
복음이 되어 말씀하시네

하나님 말씀에 두려워 떠는 자
그 말씀에 생명을 거는 자
한 사람 찾으시는
주님의 약속을 믿어

하나님 말씀에 운명을 거는 자
순종하며 주 따라가는 자
영원한 하나님 나라
이뤄갈 주의 교회여
일어나라

주 말씀은 우리를
구원에 이르는 지혜이니
목숨과 네 뜻 다해
주 말씀에 복종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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