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오늘 큐티(Q.T)

(마태복음 23:13~28) 이제와서? 아니 이제라도! (매일성경큐티, 마23)

by 무지개소년 2023. 3. 23.

이제 와서? 아니 이제라도! (매일성경큐티 230323)


찬양: 부서져야 하리
성경: 마 23:13~28
 

13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는 천국 문을 사람들 앞에서 닫고 너희도 들어가지 않고 들어가려 하는 자도 들어가지 못하게 하는도다
14(없음)
15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는 교인 한 사람을 얻기 위하여 바다와 육지를 두루 다니다가 생기면 너희보다 배나 더 지옥 자식이 되게 하는도다
16 화 있을진저 눈 먼 인도자여 너희가 말하되 누구든지 성전으로 맹세하면 아무 일 없거니와 성전의 금으로 맹세하면 지킬지라 하는도다
17 어리석은 맹인들이여 어느 것이 크냐 그 금이냐 그 금을 거룩하게 하는 성전이냐
18 너희가 또 이르되 누구든지 제단으로 맹세하면 아무 일 없거니와 그 위에 있는 예물로 맹세하면 지킬지라 하는도다
19 맹인들이여 어느 것이 크냐 그 예물이냐 그 예물을 거룩하게 하는 제단이냐
20 그러므로 제단으로 맹세하는 자는 제단과 그 위에 있는 모든 것으로 맹세함이요
21 또 성전으로 맹세하는 자는 성전과 그 안에 계신 이로 맹세함이요
22 또 하늘로 맹세하는 자는 하나님의 보좌와 그 위에 앉으신 이로 맹세함이니라
23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가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는 드리되 율법의 더 중한 바 정의와 긍휼과 믿음은 버렸도다 그러나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할지니라
24 맹인 된 인도자여 하루살이는 걸러 내고 낙타는 삼키는도다
25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잔과 대접의 겉은 깨끗이 하되 그 안에는 탐욕과 방탕으로 가득하게 하는도다
26 눈 먼 바리새인이여 너는 먼저 안을 깨끗이 하라 그리하면 겉도 깨끗하리라
27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회칠한 무덤 같으니 겉으로는 아름답게 보이나 그 안에는 죽은 사람의 뼈와 모든 더러운 것이 가득하도다
28 이와 같이 너희도 겉으로는 사람에게 옳게 보이되 안으로는 외식과 불법이 가득하도다

 

민들레

 

화 있을진저!

무섭다! 아니 무서워야만 한다. 더 이상 머뭇거려서도 안된다. 무조건 바뀌어야 한다. 오늘은 말씀의 대상이 너무나 분명하다. 누구인가?
 
이 시대 종교지도자들과 중직자들, 소위 교회 리더들이다.
 
오늘 말씀에 '화 있을진저'라는 말이 총 6번이나 나온다. 예수님은 누구에게 그렇게 화가 나셨는가?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다. 
 
그들에게 왜 화가 나셨는가? 외식하고, 거짓으로 가르치고, 제대로 아는 것을 막아버리고, 돈으로 맹세해야만 받아주고, 깨끗한 척은 다하면서 뒷돈과 뒷거래하고.....
 
그래서 예수님은 아예 그들에게 뭐라고 하시는가? 맹인들이라고 한다. 이미 눈과 귀가 막혀있다는 것이다. 영적인 권위 갖다 버린 지 오래다. 그런데 대중들은 모른다. 왜? 그들의 눈과 귀를 그놈들이 막고 있으니까.
 
화가 머리끝까지 나신 거다. 이것이 바로 거룩한 분노이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화가 나는 것이 거룩한 분노이지, 아무 곳에나 거룩한 분노를 갖다 붙이면 안 된다. 그러면 '화 있을진저'.
 
오늘 그들이 한 모든 짓을 28절은 이렇게 정리한다.
 
"이와 같이 너희도 겉으로는 사람에게 옳게 보이되 안으로는 외식과 불법이 가득하도다"
 
무슨 말이 더 필요하리오. 썩었다. 그리고 곪았다. 그리고 문드러지다 못해 이제 형체도 얼마 안 남았다. 
 
이 시대 한국교회를 바라보며 더 이상 무슨 자정능력이 남았겠는가 싶다. 교회 세습, 세습법으로 막히자 담임자 돌리기, 은퇴전별금 그 교회 대신 주고 담임되기, 보증금과 권리금 주고 교회 매매. 사람 인당 계산해서 교회 담임되기. 이것까지는 나도 어떻게든 이해하려고 무진장 애를 썼다.
 
그들의 주장이 그렇지 아니한가? 그렇게 한 다음, 깨끗하게 개혁을 일으키겠다고. 믿어주려고 무진장 지금도 애쓰고 있다.
 
그런데 목사가 설교를 하고 돈을 받는다. 교통비? 식사비? 그 정도는 이해해주고 싶다. 왜냐하면 그분들도 힘들지 않은가? 먹고, 오고 가고 돈이 들 것 아니한가?
 
그런데 규모가 지나친 뭉칫돈들이 오고 간다. 부흥회 사례비가 왜 오고 가야 하는가? 도대체 설교가 무엇인가? 복음을 전할 기회가 있다면 그것으로 오히려 감사헌금을 해야 하는 것 아닌가? 그분들은 이미 올 때부터 대형세단을 끌고 오고, 기사며 수행원들까지 달고 오지 않던가?
 
아! 예외가 있다. 선교사님들은 사실 더 줘야 한다. 그분들은 그거 자신한테 쓰시지도 않는다. 그런데 선교사님들이 설교할 때에는 교회들이 참 인색하다. 아프다.
 
예전에 라면 먹다 굶어 죽은 비전교회 목회자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오래된 이야기도 아니다. 화 있을진저!!! 주님에게로 바통 터치한다. 더 이상 하면 인간의 분노가 되리라.
 
결국 오늘 말씀은 목회자가 주님 앞에서 제대로 서 있어야 한다는 말씀이다. 오늘 말씀의 시작부터 그렇지 아니한가?
 
"너희는 천국 문을 사람들 앞에서 닫고 너희도 들어가지 않고 들어가려 하는 자도 들어가지 못하게 하는도다"
 
얼마나 슬픈 일인가? 막았다! 참 슬프다! 통탄하다. 
 
그렇다면 나는 그렇지 않은가? 나도 목회자다. 자유로울 수 없다. 힘들다고 말씀을 전심으로 준비하지 않은 날도 있었다. 아이들 간식이라도 사주고 싶어서, 아내에게 떳떳한 남편이고 싶어서 돈을 더 받고 싶었던 적도 있었다. 
 
너무 내 자신이 불쌍했던 적도 많았다. 그래서 돈을 많이 벌고 싶었고, 좋은 양복을 입고, 강단에서 폼나게 설교하고 싶기도 했다. 그런데 그것이 너무 부질없음을 이제 와서 깨닫게 된다.
 
아니 이제라도! 깨달았으니 다행이다. 하나님의 부르심을 기억해야 한다. 우리 모두는 결코 소명과 사명을 잊어서는 안 된다. 
 
배부를 수 있다. 돈이 많을 수도 있다. 좋은 음식점? 좋은 카페? 다 가도 된다. 그러나 목회자로 양심은 지키고, 탐욕은 언제나 버려야 한다.
 
말씀에 생명을 걸자고 하지 않았던가! 아골골짝 빈들에도 가자고 하지 않았던가! 가난하고, 억눌리고, 불쌍한 자들에게 가자고 하지 않았던가! 나누고, 베풀고, 돕자고 하지 않았던가! 
 
실패한 목회자로 나를 바라보는 이들이 많다. 나는 그냥 양심과 목회자로 떳떳하고 싶었던 것뿐인데, 부목사로 한 번의 뒷작업 권고사직, 두 번의 대 놓고 나가라는 권고사직을 당했다. 그리고 네 번째는 내가 더 이상 안될 것 같아 내 발로 걸어 나왔다. 오해는 말자. 더 이상 교회 전통과 시스템에 고여있다가는 썩어버릴 것 같아서 나왔다(혼자 의로운 척이라고 하자!).
 
실패했다고 해도 좋다. 그나마 이제 숨통이 트인다. 그러나 아직 가야 할 길이 너무 멀고, 크게 느껴진다.
 
아무것도 없는 자리에서 어떻게 다시 일어서지? 우리 가족끼리 뭘 어째야 하는 거지? 이렇게 하는 것이 맞나? 솔직히 애를 먹을 때도 있다. 왜 없겠는가? 나도 사람인데...
 
그런데 저 애즈베리에서 놀라운 소식이 들려온다. 너무 흥분하지 말자. 다짐했지만, 이내 흥분한다. 설렌다. 이 시대 사람은 썩고 문드러졌으나, 주님은 기다리고, 기도하고, 기대했던 한 사람을 통하여 다시 정화하고 계시고, 다시 세우시고 계시고, 다시 부흥케 하고 계신다.
 
이제 와서? 아니 이제라도! 부서져야 한다. 깨끗해져야 한다. 전통적인 교회를 과감히 개혁해야 한다. 썩어 문드러진 예배를 새롭게 리뉴얼해야 한다. 각 교회의 형편과 상황에 맞게 예배와 프로그램, 그리고 시스템을 개혁해야 한다.
 
중요한 것은 그 모든 것이 무엇을 위해서 해야 하는가이다? 부흥을 위해서? 아니다. 그것도 중요하지만, 그것이 정답이 아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교회와 지역이 '하나님의 나라 공동체'로 발전해 나가기 위해서다. 
 
무엇보다 삶이 중요한 것이다. 예수님의 빛이 비추이는 삶을 살게 하는 것이 교회가 진정으로 해야 할 사명이다. 그래서 빛 된 주님의 자녀들이 이 땅에서 복음의 빛, 구제의 빛, 나눔의 빛, 사랑의 빛을 열심히 주님의 이름으로 비추며 각자가 선 곳을 오늘도 밝게 바꿀 수 있도록 교회가 바로 서야 한다.
 
그것이 오늘 바리새인들을 향하여, 서기관들을 향하여, 그 당시 종교 리더들을 향하여 '화 있을진저' 소리친 주님의 뜻이 아니겠는가? 
 
이제 와서? 늦었다고 생각하지 말자! 부족하지만, 나 한 사람이라도. 이! 제! 라! 도! 말씀 앞에 바로 서고, 주님의 선한 양심으로 살아가자.
 
이 시대 밑바닥에서 싸우는 크리스천들! 그들의 천로역정을 함께 응원한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