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얼굴을 바라보라 (매일성경큐티 230414)
찬양: 주만 의지해
성경: 민수기 13:21~33
21 이에 그들이 올라가서 땅을 정탐하되 신 광야에서부터 하맛 어귀 르홉에 이르렀고 22 또 네겝으로 올라가서 헤브론에 이르렀으니 헤브론은 애굽 소안보다 칠 년 전에 세운 곳이라 그 곳에 아낙 자손 아히만과 세새와 달매가 있었더라 23 또 에스골 골짜기에 이르러 거기서 포도송이가 달린 가지를 베어 둘이 막대기에 꿰어 메고 또 석류와 무화과를 따니라 24 이스라엘 자손이 거기서 포도를 베었으므로 그 곳을 에스골 골짜기라 불렀더라 25 사십 일 동안 땅을 정탐하기를 마치고 돌아와 26 바란 광야 가데스에 이르러 모세와 아론과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에게 나아와 그들에게 보고하고 그 땅의 과일을 보이고 27 모세에게 말하여 이르되 당신이 우리를 보낸 땅에 간즉 과연 그 땅에 젖과 꿀이 흐르는데 이것은 그 땅의 과일이니이다 28 그러나 그 땅 거주민은 강하고 성읍은 견고하고 심히 클 뿐 아니라 거기서 아낙 자손을 보았으며 29 아말렉인은 남방 땅에 거주하고 헷인과 여부스인과 아모리인은 산지에 거주하고 가나안인은 해변과 요단 가에 거주하더이다 30 갈렙이 모세 앞에서 백성을 조용하게 하고 이르되 우리가 곧 올라가서 그 땅을 취하자 능히 이기리라 하나 31 그와 함께 올라갔던 사람들은 이르되 우리는 능히 올라가서 그 백성을 치지 못하리라 그들은 우리보다 강하니라 하고 32 이스라엘 자손 앞에서 그 정탐한 땅을 악평하여 이르되 우리가 두루 다니며 정탐한 땅은 그 거주민을 삼키는 땅이요 거기서 본 모든 백성은 신장이 장대한 자들이며 33 거기서 네피림 후손인 아낙 자손의 거인들을 보았나니 우리는 스스로 보기에도 메뚜기 같으니 그들이 보기에도 그와 같았을 것이니라 |
1. 스스로 메뚜기라 여기다
'이마고데이'(Imago Dei), 사실 기독교 세계관에서 가장 중요한 개념이 아닐까 생각된다.
나는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어졌다. 그래서 우리가 이 땅을 살아갈 때에 가장 마음에 새겨야 할 성경 구절, 창세기 1:26~28절 말씀.
26 하나님이 이르시되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들로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가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 27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28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하나님이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우리는 이 세상을 정복하고, 다스리게 지어졌다. 그것도, 하나님의 형상으로.
그렇기 때문에 세상에 끌려가는 존재, 얽매이는 존재, 돈으로 인하여 스트레스받고, 권력과 명예로 인하여 굴욕 당하는 존재가 아니라, 이 세상 가운데 빛의 자녀로 당당히 살아가야함을 끊임없이 되뇌어야 하는 존재이다.
그런데 항상 문제는 '보이는 상황'과 '처한 형편'이다. 우리는 볼 때에 마음을 뺏긴다. 처한 상황과 형편을 느낄 때에 마음을 뺏긴다.
그래서 솔로몬은 잠언에서 "모든 지킬 만한 것 중에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라고 말한다.
결국 우리가 지음받은 그대로, '하나님의 형상'으로 이 땅을 살아가기 위해서는 '마음'을 지켜야 한다.
오늘 그들은 다른 것을 뺏긴 것이 아니다. 그들의 '마음'을 뺏겼다.
그리고 단순히 '마음'을 뺏긴 것이 아니라, 그들의 '하나님의 형상'됨을 뺏긴 것이다. 어디에? 가나안에. 어디에? 세상에. 또 어디에? 공중의 권세 잡은 자에게.
스스로 자신들은 '메뚜기'와 같다고 한다.
오늘 나도 그러할 때가 있다.
돈 많은 이들을 보면서, 잘 사는 사람들을 보면서, 힘 있는 사람들을 보면서, 아니 겉모습만 보아도 마음이 빼앗길 때가 있다. 사실 별것 아닌데, '자격지심'이 생긴다.
내 자신이 초라해보인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것처럼 여겨진다. 나는 이제까지 무엇을 해왔는가? 잊어버린다.
더 이상의 소망이 없어 보인다. 나는 그들과 다르지 않을 때가 너무나 많다.
2. 하나님의 얼굴을 바라보는 삶.
그래서 우리가 항상 해야 할 것이 있다.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는 삶이다. 정확히 나는 이것을 '하나님의 얼굴을 바라보는 삶'이라고 말하고 싶다.
시편 105:4
여호와와 그의 능력을 구할지어다 그의 얼굴을 항상 구할지어다
위 시편의 저자는 다윗이다. 왜 다윗은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라고 했을까? 다윗이 말한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는 삶은 무엇일까?
여호와를 앙망하는 삶을 살라는 것이다. 즉, 하나님만이 나의 전부임을 고백하는 삶을 살라는 것이다.
다윗의 유명한 고백이 있지 않던가?
시편 23:1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시편 18:1~2 "나의 힘이신 여호와여 내가 주를 사랑하나이다/ 여호와는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요새시요 나를 건지시는 이시요 나의 하나님이시요 내가 그 안에 피할 나의 바위시요 나의 방패시요 나의 구원의 뿔이시요 나의 산성이시로다"
여호와의 얼굴을 구하는 삶, 하나님의 얼굴에 시선을 고정하며 그의 얼굴을 바라보는 삶을 사는 자는 낙망하지 않는다. 실망하거나 좌절하지도 않는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나의 능력이 되시며, 나의 피할 바위가 되시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나의 구원이 되시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보이는 상황에, 주어진 형편에 주저앉지 않는다. 더욱 열심히 기도하며, 주께서 우리를 도우실 것을 믿으며 말씀을 가지고 한걸음, 한걸음 전진하는 삶을 산다는 것이다.
결국 이것이 예수님이 말씀하신 '하나님의 나라'를 이 땅에 이루는 삶이다.
오늘 말씀의 갈렙이 그러했다. 그들도 다른 정탐꾼들과 똑같이 40일이란 시간 동안 그 땅을 둘러봤다.
30 "갈렙이 모세 앞에서 백성을 조용하게 하고 이르되 우리가 곧 올라가서 그 땅을 취하자 능히 이기리라 하나"
모두가 그 땅의 거민들과 문화에 마음이 녹는 동안, 그들은 그들의 마음을 지켰다. 그들은 어떻게 그들의 마음을 지켰을까?
하나님의 얼굴을 바라봤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능력과 하나님의 권세에 비해 그 땅의 것들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으며, 어제 말씀과 같이, 이 땅은 이미 그들에게 준 하나님의 땅임을 목적으로 삼았기 때문이다.
오늘 우리는 무엇을 보고 살아가는가? 에베소서의 말씀처럼 공중의 권세 잡은 자는 계속해서 '세상의 풍조'를 따라가게 우리를 만든다. '트렌드'에 떨어지는 것이 마치 인생이 뒤떨어지는 것처럼 여겨지게 만든다.
계속해서 '음란'과 '탐욕'에 길들여지게 만든다. 결국 '돈'을 숭배하게 하여 그 '돈'을 버는 기계로 사람을 노예 삼아버려서, 세상에 지배당하고, 정복당하고, 다스림 당하는 '하나님의 형상'을 완전히 잃은 자로 살아가게 만든다.
무엇을 바라봐야 할까? '하나님의 얼굴'을 바라봐야 한다. 더욱더 하나님을 사모하고, 하나님을 갈망하고, 하나님만 의지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모든 문제 앞에서 무릎 꿇는 하나님의 용사가 되어야 한다. '마음'을 거룩하게 지켜내야 한다. 그래야 산다.
가나안의 거민에게 굴복당한 자가 되지 말고, 하나님의 사람으로 가나안을 정복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오늘도 그러한 빛의 자녀가 되기를 간절히 중보 하며 기도한다. 여호와 닛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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