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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큐티(Q.T)

(민 14:26~45) 지금 이 순간, 주님과 함께(매일성경큐티, 민수기 14:26~45)

by 무지개소년 2023. 4. 17.

지금 이 순간, 주님과 함께 (매일성경큐티 230417)


찬양: 내 영혼이 은총 입어 / 주님 말씀하시면
성경: 민수기 14:26~45

 

26 여호와께서 모세와 아론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27 나를 원망하는 이 악한 회중에게 내가 어느 때까지 참으랴 이스라엘 자손이 나를 향하여 원망하는 바 그 원망하는 말을 내가 들었노라
28 그들에게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에 내 삶을 두고 맹세하노라 너희 말이 내 귀에 들린 대로 내가 너희에게 행하리니
29 너희 시체가 이 광야에 엎드러질 것이라 너희 중에서 이십 세 이상으로서 계수된 자 곧 나를 원망한 자 전부가
30 여분네의 아들 갈렙과 눈의 아들 여호수아 외에는 내가 맹세하여 너희에게 살게 하리라 한 땅에 결단코 들어가지 못하리라
31 너희가 사로잡히겠다고 말하던 너희의 유아들은 내가 인도하여 들이리니 그들은 너희가 싫어하던 땅을 보려니와
32 너희의 시체는 이 광야에 엎드러질 것이요
33 너희의 자녀들은 너희 반역한 죄를 지고 너희의 시체가 광야에서 소멸되기까지 사십 년을 광야에서 방황하는 자가 되리라
34 너희는 그 땅을 정탐한 날 수인 사십 일의 하루를 일 년으로 쳐서 그 사십 년간 너희의 죄악을 담당할지니 너희는 그제서야 내가 싫어하면 어떻게 되는지를 알리라 하셨다 하라
35 나 여호와가 말하였거니와 모여 나를 거역하는 이 악한 온 회중에게 내가 반드시 이같이 행하리니 그들이 이 광야에서 소멸되어 거기서 죽으리라
36 모세의 보냄을 받고 땅을 정탐하고 돌아와서 그 땅을 악평하여 온 회중이 모세를 원망하게 한 사람
37 곧 그 땅에 대하여 악평한 자들은 여호와 앞에서 재앙으로 죽었고
38 그 땅을 정탐하러 갔던 사람들 중에서 오직 눈의 아들 여호수아와 여분네의 아들 갈렙은 생존하니라
39 모세가 이 말로 이스라엘 모든 자손에게 알리매 백성이 크게 슬퍼하여
40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산 꼭대기로 올라가며 이르되 보소서 우리가 여기 있나이다 우리가 여호와께서 허락하신 곳으로 올라가리니 우리가 범죄하였음이니이다
41 모세가 이르되 너희가 어찌하여 이제 여호와의 명령을 범하느냐 이 일이 형통하지 못하리라
42 여호와께서 너희 중에 계시지 아니하니 올라가지 말라 너희의 대적 앞에서 패할까 하노라
43 아말렉인과 가나안인이 너희 앞에 있으니 너희가 그 칼에 망하리라 너희가 여호와를 배반하였으니 여호와께서 너희와 함께 하지 아니하시리라 하나
44 그들이 그래도 산 꼭대기로 올라갔고 여호와의 언약궤와 모세는 진영을 떠나지 아니하였더라
45 아말렉인과 산간지대에 거주하는 가나안인이 내려와 그들을 무찌르고 호르마까지 이르렀더라

 

함께

 

공의와 사랑

'공의'와 '사랑'에 대해 깊이 묵상해 보는 아침이다. 원망과 불평, 감사와 찬양.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을 살기 위해 우리가 해야 할 것이 무엇인가? 

 

생각보다 이것에 대해서 암묵적 회피가 있다. 왜냐하면 내 삶의 모습을 내가 잘 알기 때문이다. 세상을 산다는 변명으로 우리는 감사와 찬양보다 원망과 불평을 입에 달고 살 때가 많다.

 

직면해 보자. 결코 나의 모습을 주님이 기뻐하시지 않는다.

 

결국 그들(악평했던 자들)은 기다릴 필요도 없이 그 자리에서 죽는다. 또한 밤새 통곡하며 하나님을 믿지 못했던 무리 또한 40년 광야행을 선고받는다.

 

히브리서 9:27

한 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우리도 결국 공의의 하나님으로 인한 심판을 언젠가 받게 된다. 그러나 그때와 시기, 심판의 내용과 결과를 아는 사람이 없을 뿐이다.

 

어떻게 해야 할까?

 

28 "너희 말이 내 귀에 들린 대로 내가 너희에게 행하리니"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을 살아야 한다. 그렇다면 어떻게?

 

결국 삶의 매일매일, 순간순간, 예수님과 동행하는 방법밖에는 없다. 그래야 우리의 입에서 쉬지 않고 나오는 불평과 원망을 제어할 수 있다. 그래야 우리의 어리석은 마음을 지킬 수 있고, 나의 입과 몸으로 주님을 찬양하는 말과 행동을 할 수 있다.

 

오늘도 나의 주인이 누구신지, 기억하자. 오늘도 나의 구원자가 무엇을 원하는지 의식하자. 그리고 그분과 함께 매 순간 살아가는 연습을 하자. 

 

함께하지 아니하시리라.

오늘 말씀 43절을 보면, "아말렉인과 가나안인이 너희 앞에 있으니 너희가 그 칼에 망하리라 너희가 여호와를 배반하였으니 여호와께서 너희와 함께 하지 아니하시리라 하나"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하지 아니하신다고 말씀하셨다.

 

시편 73:28

하나님께 가까이 함이 내게 복이라

 

성경은 우리가 어디에 있는지, 어떤 상황과 형편에 처했는지를 '형통'의 기준으로 삼고 있지 않다.

 

성경이 말하는, 아니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형통'의 유일한 기준은 '하나님과 함께'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겐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하신다는 언약궤가 무엇보다 중요했다. 언제나 언약궤가 앞서갔고, 언약궤를 중심으로 그들의 삶이 시작됐다.

 

언약궤를 잃었다 찾았을 때에 다윗의 모습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그는 왕의 옷이 다 벗겨지는 것도 모른 채 기쁨으로 춤을 췄다.

 

44 그들이 그래도 산 꼭대기로 올라갔고 여호와의 언약궤와 모세는 진영을 떠나지 아니하였더라

 

오늘 말씀을 보니, 언약궤가 진영을 떠나지 않았다. 그들의 생각, 그들의 의지, 그들의 고집과 하나님의 뜻은 철저하게 다르다는 것이다.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하지 않으신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그들은 끝내 하나님과의 결별을 선택했다.

 

그들이 원하는 가나안으로 가려고 애쓴다. 그 결과가 너무나 참혹했다. 철저한 패배, 아니 멸망의 구렁텅이로 스스로 들어간 꼴이 되고 만 것이다.

 

'주님 말씀하시면'이란 찬양의 가사가 너무나 분명히 와닿는다. '주님 뜻이 아니면, 내가 멈춰 서리다', '나의 가고 서는 것, 주님 뜻에 있으니, 오 주님 날 이끄소서'.

 

그런데 하나님은 왜 이스라엘 백성들을 그들이 그토록 싫어하는 광야로 다시 내모신 것일까? 정말 화가 나서 그들에게 끔찍한 형벌을 지우신 것일까?

 

이것을 일부러 여러 가지로 해석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분명 심판이 맞다. 그러나 우리가 반드시 기억해야 할 것은 하나님은 '공의'의 하나님이시기도 하지만, '사랑'의 하나님이시기도 하다.

 

그 자리에서 악평한 지휘관들을 죽이는 것으로 심판을 멈추실 수도 있었다. 백성의 일부를 역병으로 표본 삼으시고, 가나안에 들어가게 하실 수도 있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렇게 하지 않으셨다. 감히 상상해 보건대, 이유는 단 하나다. 

 

그들은 지금 당장 가나안에 들어가 산다고 해도, 형통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꽃길 걸을 준비가 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이전에 가나안 정복전쟁에서 승리할, '형통'의 길로 나아가기 위한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전적으로 부족했다는 것이다.

 

오늘날,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을 원망하며 말한다. "왜 나의 기도는 응답되지 않는가?", "왜 나의 봉사와 헌신, 나의 수고를 하나님은 갚아주시지 않는가?", "오늘도 왜 난 이 광야를 살아야 하는가?"

 

대놓고 얘기하지 않더라고, 속으로 응답을 고대하는 것이 맞지 않던가?

 

하나님은 오늘 본문을 통해서 말씀해 주신다. 응답이 더디오는 것은, 지금 당장 나에게 주어진 그 길이 광야인 것은 하나님이 나를 미워하시거나, 진짜 어떤 형벌을 주시기 위함이 아니라, 나를 정말 '사랑'하시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때가 있다. 하나님의 계획이 있다. 또한 하나님의 방법이 있다. 그것을 신뢰해야 한다. 

 

지금 당장 눈에 보이지 않는다 할지라도 하나님을 끝까지 신뢰할 때, 비로소 하늘문이 열린다. 

 

지금 당장 내게 주어진 상황과 형편을 보며, 어리석게 내 고집부리면 안 된다. 주를 떠나는 시도와 행위를 해서는 안된다. 하나님께 가까이 함이 내게 복이 된다.

 

창세기 39:2~3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므로 그가 형통한 자가 되어 그의 주인 애굽 사람의 집에 있으니 그의 주인이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하심을 보며 또 여호와께서 그의 범사에 형통하게 하심을 보았더라

 

창세기 39:23

간수장은 그의 손에 맡긴 것을 무엇이든지 살펴보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요셉 함께 하심이라 여호와께서 그를 범사에 형통하게 하셨더라

 

감옥에 있어도, 장군의 집의 노예로 있다 할지라도 하나님이 함께하시면 그곳이 곧 '하나님의 나라', '형통'의 복이 있는 곳이 될 수 있다.

 

하나님의 뜻과 계획을 끝까지 신뢰해 보자. 지금은 내가 광야에 있을 시간인 것이다.

 

내가 어디있는지, 내게 주어진 것은 무엇인지 따지는 하루가 아니라, 지금 이 순간, 주님과 함께하는 오늘을 살아내 보자. 

 

그러면 주 예수와 동행하니 그 어디나 하늘나라~ 가 되는 형통의 복이, 그 은혜가 지금 내 삶에도 요셉과 같이 주어지지 않겠는가? 기억하자. 살아내자.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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