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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큐티(Q.T)

(민 16:1~15) 탐욕이 아닌 예수를 좇아(매일성경큐티, 민수기 16:1~15)

by 무지개소년 2023. 4. 20.

탐욕이 아닌 예수를 좇아 (매일성경큐티 230420)

 

찬양: 오직 예수 뿐이네
성경: 민수기 16:1~15

 

1 레위의 증손 고핫의 손자 이스할의 아들 고라와 르우벤 자손 엘리압의 아들 다단과 아비람과 벨렛의 아들 온이 당을 짓고
2 이스라엘 자손 총회에서 택함을 받은 자 곧 회중 가운데에서 이름 있는 지휘관 이백오십 명과 함께 일어나서 모세를 거스르니라
3 그들이 모여서 모세와 아론을 거슬러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분수에 지나도다 회중이 다 각각 거룩하고 여호와께서도 그들 중에 계시거늘 너희가 어찌하여 여호와의 총회 위에 스스로 높이느냐
4 모세가 듣고 엎드렸다가
5 고라와 그의 모든 무리에게 말하여 이르되 아침에 여호와께서 자기에게 속한 자가 누구인지, 거룩한 자가 누구인지 보이시고 그 사람을 자기에게 가까이 나아오게 하시되 곧 그가 택하신 자를 자기에게 가까이 나아오게 하시리니
6 이렇게 하라 너 고라와 네 모든 무리는 향로를 가져다가
7 내일 여호와 앞에서 그 향로에 불을 담고 그 위에 향을 두라 그 때에 여호와께서 택하신 자는 거룩하게 되리라 레위 자손들아 너희가 너무 분수에 지나치느니라
8 모세가 또 고라에게 이르되 너희 레위 자손들아 들으라
9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이스라엘 회중에서 너희를 구별하여 자기에게 가까이 하게 하사 여호와의 성막에서 봉사하게 하시며 회중 앞에 서서 그들을 대신하여 섬기게 하심이 너희에게 작은 일이겠느냐
10 하나님이 너와 네 모든 형제 레위 자손으로 너와 함께 가까이 오게 하셨거늘 너희가 오히려 제사장의 직분을 구하느냐
11 이를 위하여 너와 너의 무리가 다 모여서 여호와를 거스르는도다 아론이 어떠한 사람이기에 너희가 그를 원망하느냐
12 모세가 엘리압의 아들 다단과 아비람을 부르러 사람을 보냈더니 그들이 이르되 우리는 올라가지 않겠노라
13 네가 우리를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서 이끌어 내어 광야에서 죽이려 함이 어찌 작은 일이기에 오히려 스스로 우리 위에 왕이 되려 하느냐
14 이뿐 아니라 네가 우리를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지도 아니하고 밭도 포도원도 우리에게 기업으로 주지 아니하니 네가 이 사람들의 눈을 빼려느냐 우리는 올라가지 아니하겠노라
15 모세가 심히 노하여 여호와께 여짜오되 주는 그들의 헌물을 돌아보지 마옵소서 나는 그들의 나귀 한 마리도 빼앗지 아니하였고 그들 중의 한 사람도 해하지 아니하였나이다 하고

 

기도

 

모세가 듣고 엎드렸다가

탐욕: 지나치게 탐하는 욕심.

욕망: 부족을 느껴 무엇을 가지거나 누리고자 탐함. 그런 마음.

 

탐욕과 욕망이 참 무섭다. 너무 무섭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을까?

 

인천 전세사기 피해자 중 세 사람이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는 뉴스를 봤다. 가히 충격적이었다.

 

사람이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

 

'인지상정'이란 말이 있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갖고 있는 보편적 감정이다. 슬프고, 아프고, 안타깝고, 즐겁고, 기쁘고.

 

그런데 그들(가해자들)을 보면 탐욕 앞에서 '인지상정'은 단지 그들의 탐욕을 채우기 위한 수단에 불과했음을 깨닫게 된다. 다른 사람의 기쁨(안락한 거처 마련)을 이용해서 불법을 저지르고, 나의 탐욕을 채운다.

 

결국 결과만을 놓고 봤을 때, 다른 사람의 죽음조차도 그의 탐욕 앞에서는 아무것도 아니리라.

 

탐욕이 사람을 괴물로 만들었다. 아니 더 정확히 그가 가진 지나친 탐욕이 그를 엄청난 괴물로 탈바꿈시켰다.

 

가나안땅은 한 때,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약속의 땅이었다. 거룩함의 상징이었고, 하나님의 은혜의 땅이었다. 

 

그러나 이제 가나안은 애증의 대상이다. 탐욕의 끝판왕이 되어 버렸다. 그곳에 들어갈 수 없게 되자, 그들의 눈은 괴물의 시선이 되었고, 그들의 마음은 탐욕 괴물의 울부짖음이 되어 있을 뿐이었다.

 

더욱이 젖과 꿀이 흐르는 땅 가나안을 눈앞에 두고, 저 황폐한 광야로 되돌아가려니 기가 막힐 노릇이었다. 결국 인간의 역사가 늘 반복되어 왔듯이 희생양을 찾는다.. 그 이름 모세! 그 이름 아론!

 

너무 아이러니하지 않은가? 자신들의 믿음 없음이고, 자신들의 잘못으로 가나안을 스스로 포기했거늘. 누구를 탓한단 말인가!

 

13~14 "네가 우리를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서 이끌어 내어 광야에서 죽이려 함이 어찌 작은 일이기에 오히려 스스로 우리 위에 왕이 되려 하느냐/ 이뿐 아니라 네가 우리를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지도 아니하고 밭도 포도원도 우리에게 기업으로 주지 아니하니 네가 이 사람들의 눈을 빼려느냐 우리는 올라가지 아니하겠노라"

 

 

설마 설마 했는데, 확실하게 발톱을 드러낸다. 이제 그들이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하게 된 이유는 하나님이 아니었다. 눈앞에 보이는 모세였고, 아론 때문이다.

 

모세와 아론은 그들의 왕이 되려 한 적이 없지만, 그들 눈에는 그들을 광야로 억지로 끌고 가서 왕노릇을 하려는 모습으로 비친다는 것이다. 지나친 탐욕이 불러온 망상이다.

 

결국 자신들의 믿음의 연약함이 아니라, 모세와 아론 때문에 가나안에 못 갔다는 엄청난 프레임 덧씌우기를 시전 한다.

 

온갖 모함을 하고, 선동을 한다. 마치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던 그때처럼 그들이 하나님이 되고, 그들이 심판자가 되어 버린다.

 

아무 죄 없는 모세와 아론은 그야말로 난감하고, 억울하고, 분통이 터질 뿐이다.

 

그럼에도 모세의 행동이 오늘 수많은 어떤 단어보다 눈에 크게 보인다.

 

4 "모세가 듣고 엎드렸다가"

 

모세는 또 어떻게 이럴 수 있는가? 정말 그의 믿음과 온유함은 하나님이 칭찬할만하다.

 

탐욕쫓는 사람과 예수좇는 사람의 차이는 간단하다.

 

탐욕을 쫓는 사람은 자신이 주인 되어, 다른 사람의 죽음이나 아픔 따위는 전혀 상관이 없다. 오히려 내가 아닌 다른 대상을 찾아 헐뜯고 깍아내리고, 죽음까지 몰아내야 나의 탐욕이 어느 정도 이뤄져 간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예수를 좇는 사람은 다른 사람을 살리기 위해 하나님께 무릎 꿇는 사람이다.

 

오직 이 땅의 주인이 하나님 되심을 고백하며, 그 하나님께 탐욕에 빠진 사람들, 헛된 욕망에 허덕이는 사람들, 잘못된 죽음의 길로 가는 사람들을 살리기 위해 자신의 생명조차도 아끼지 않는 사람이 된다.

 

그러나 결국 탐욕을 쫓는 사람이나 예수를 좇는 사람이나 최종적인 심판은 하나님이 내리신다는 것에는 불변의 진리이다.

 

7 "내일 여호와 앞에서 그 향로에 불을 담고 그 위에 향을 두라 그때에 여호와께서 택하신 자는 거룩하게 되리라"

 

오늘 모세와 아론에게 대항하기 위해 모인 고라와 르우벤 지파의 다단과 아비람이나, 감당 못할 억울함을 가지고 15절에 주 앞에 무릎 꿇은 모세나 '내일'이면 결판이 난다.

 

어떻게 되겠는가? 

 

우리에게도 '내일'이 온다. 

 

바로 오늘 우리의 삶을 사는 순간순간, 탐욕에 빠져 무엇이 똥인지, 된장인지 구분 못하고, 내 것을 가지고, 채우고, 그 과정 중에 다른 사람의 안위 따위는 신경도 쓰지 않고, 내 배만 불리고 살다가는 결국 '내일'이 오면 죽는다. 

 

하지만 오늘 비록 힘들고, 억울하고, 세상과 사람으로 인하여 분노가 치밀어 오름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예수를 좇아 주 앞에 그들을 용서해 달라고, 그들에게도 주의 복음을 전하게 해달라고, 그들의 영혼을 주께 맡기며 중보하고, 기도함으로 나아갈 때...

 

누구보다 선한 영향력(관용과 배려)으로 살아갈 때에.

 

우리의 '내일'은 주가 책임지시는 인생으로 비록 광야지만 여전히 주와 함께 '하나님의 나라'로 살아갈 것이다.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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