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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큐티(Q.T)

(욥기 34:31~35:16)분별하는 그리스도인(매일성경큐티 욥 34장)

by 무지개소년 2023. 12. 12.

분별하는 그리스도인

매일성경큐티 231212 화
찬양: 나 주님의 기쁨 되기 원하네(유튜브 찬양링크)
성경: 욥 34:31-35:16
31 그대가 하나님께 아뢰기를 내가 죄를 지었사오니 다시는 범죄 하지 아니하겠나이다
32 내가 깨닫지 못하는 것을 내게 가르치소서 내가 악을 행하였으나 다시는 아니하겠나이다 하였는가
33 하나님께서 그대가 거절한다고 하여 그대의 뜻대로 속전을 치르시겠느냐 그러면 그대가 스스로 택할 것이요 내가 할 것이 아니니 그대는 아는 대로 말하라
34 슬기로운 자와 내 말을 듣는 지혜 있는 사람은 반드시 내게 말하기를
35 욥이 무식하게 말하니 그의 말이 지혜롭지 못하도다 하리라
36 나는 욥이 끝까지 시험 받기를 원하노니 이는 그 대답이 악인과 같음이라
37 그가 그의 죄에 반역을 더하며 우리와 어울려 손뼉을 치며 하나님을 거역하는 말을 많이 하는구나

욥기 35장
1 엘리후가 말을 이어 이르되
2 그대는 이것을 합당하게 여기느냐 그대는 그대의 의가 하나님께로부터 왔다는 말이냐
3 그대는 그것이 내게 무슨 소용이 있으며 범죄 하지 않는 것이 내게 무슨 유익이 있겠느냐고 묻지마는
4 내가 그대와 및 그대와 함께 있는 그대의 친구들에게 대답하리라
5 그대는 하늘을 우러러보라 그대보다 높이 뜬 구름을 바라보라
6 그대가 범죄한들 하나님께 무슨 영향이 있겠으며 그대의 악행이 가득한들 하나님께 무슨 상관이 있겠으며
7 그대가 의로운들 하나님께 무엇을 드리겠으며 그가 그대의 손에서 무엇을 받으시겠느냐
8 그대의 악은 그대와 같은 사람에게나 있는 것이요 그대의 공의는 어떤 인생에게도 있느니라
9 사람은 학대가 많으므로 부르짖으며 군주들의 힘에 눌려 소리치나
10 나를 지으신 하나님은 어디 계시냐고 하며 밤에 노래를 주시는 자가 어디 계시냐고 말하는 자가 없구나
11 땅의 짐승들보다도 우리를 더욱 가르치시고 하늘의 새들보다도 우리를 더욱 지혜롭게 하시는 이가 어디 계시냐고 말하는 이도 없구나
12 그들이 악인의 교만으로 말미암아 거기에서 부르짖으나 대답하는 자가 없음은
13 헛된 것은 하나님이 결코 듣지 아니하시며 전능자가 돌아보지 아니하심이라
14 하물며 말하기를 하나님은 뵈올 수 없고 일의 판단하심은 그 앞에 있으니 나는 그를 기다릴 뿐이라 말하는 그대일까 보냐
15 그러나 지금은 그가 진노하심으로 벌을 주지 아니하셨고 악행을 끝까지 살피지 아니하셨으므로
16 욥이 헛되이 입을 열어 지식 없는 말을 많이 하는구나

 

 

분별력

 

35 욥이 무식하게 말하니 그의 말이 지혜롭지 못하도다 하리라
36 나는 욥이 끝까지 시험받기를 원하노니 이는 그 대답이 악인과 같음이라

 

엘리후의 등장! 그리고 그가 하는 말들! 어떻게 보는 것이 좋을까?

 

과연 세 친구의 재탕 수준인가? 아니면 새로운 형태의 비난자일까?

 

엘리후의 역할을 놓고 갑론을박이 많다. 그도 그럴 것이 사실 욥의 세 친구가 그 정도 비난했으면 될 것을 왜 엘리후까지 등장하여 욥을 괴롭게 하느냐이다. 더불어 분량이 늘어난 것도 지루해 보이고.....

 

정말 엘리후는 그런 존재일까?

 

엘리후는 분명 부정적인 부분에서 더 많은 역할을 한다. 오늘 본문만 해도 그렇지 아니한가? 그는 충분한 분노유발자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욥기 전체적으로 볼 때에 엘리후가 꼭 부정적인 역할만 감당하는 것은 아니다. 그는 생각보다 유익한 역할도 많이 한다.

 

세 가지 그 증거가 있는데, 하나는 그가 세 친구와는 다르게 자신이 성령의 직접적인 인도하심을 받아서 나왔다고 주장한 점과 이후에 하나님께서 심판하실 때 오직 엘리후 한 사람에 대해서만 심판을 유보하신 점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세 친구나 욥이 엘리후의 말을 듣고 어떤 반박이나 주장도 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런 점에서 볼 때에, 분명 엘리후의 역할은 세 친구나 욥의 대화와는 질적으로 다른 무엇인가 존재한다. 그것이 무엇일까? 중간자라고 생각된다.

 

세 친구의 말과 욥의 말의 중간자 적인 정리가 필요하지 않았을까? 

 

욥의 말이 절대적 공의와 정의를 말하고 있을까? 하나님의 초월성을 드러내는 말이었을까? 세 친구의 말이 정말 정통적인 교리일까? 하나님을 아는 온전한 지식일까? 그렇지 않다.

 

사실 욥이 약자가 되어서 그렇지 욥도 교만하고, 세 친구도 하나님 앞에서 수위가 넘은 것은 사실이다. 그런 그들의 말이 정리될 필요성이 있었다. 엘리후가 바로 그러한 역할일 것이다.

 

다만 엘리후도 사람이고, 세 친구와 욥의 매우 지루하고 속터지는 공방전을 옆에서 지켜봤으니, 얼마나 답답했겠는가??

 

그러니 그도 분통이 터졌을 것이다. 그래서 지금 정신 못 차리고 일단은 쏟아내는 중이라는 생각이 든다. 분명 무엇인가 말하고 싶은데, 감정의 절제가 온전히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다.

 

오늘 본문만 봐도 그렇다. 

 

35 욥이 무식하게 말하니 그의 말이 지혜롭지 못하도다 하리라
36 나는 욥이 끝까지 시험받기를 원하노니 이는 그 대답이 악인과 같음이라

 

이게 할 말인가? 더 심한 말도 있다.

 

6 그대가 범죄 한들 하나님께 무슨 영향이 있겠으며 그대의 악행이 가득한들 하나님께 무슨 상관이 있겠으며
7 그대가 의로운 들 하나님께 무엇을 드리겠으며 그가 그대의 손에서 무엇을 받으시겠느냐
8 그대의 악은 그대와 같은 사람에게나 있는 것이요 그대의 공의는 어떤 인생에게도 있느니라

 

말인가? 방귀인가? 정말 지각이 있다면 이렇게 말하지 못한다.

 

이것은 엘리후가 아무리 성령에 이끌렸다 하여도, 감정을 지닌 인간의 한계를 드러내는 부분이라고 생각된다.

 

물론 이 모든 것은 욥기 전체에 있어 엘리후를 대하는 내 개인적인 판단이지, 절대 신학적인 판단은 아니니, 각자가 엘리후에 대한 판단을 면밀하게 분석해 보길 권한다.

 

다시 돌아와서 엘리후가 지금 당장은 엄청 어리석은 말들을 쏟아내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무슨 영향이 있겠느냐니? 하나님은 우리의 죄에 슬퍼하신다. 하나님은 우리의 선행에 기뻐하신다. 하나님은 우리와 함께 웃고, 하나님은 우리와 함께 우시는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은 인격적인 존재지? 저 멀리 계신 지배자가 아니시다. 

 

13 헛된 것은 하나님이 결코 듣지 아니하시며 전능자가 돌아보지 아니하심이라
14 하물며 말하기를 하나님은 뵈올 수 없고 일의 판단하심은 그 앞에 있으니 나는 그를 기다릴 뿐이라 말하는 그대일까 보냐
15 그러나 지금은 그가 진노하심으로 벌을 주지 아니하셨고 악행을 끝까지 살피지 아니하셨으므로
16 욥이 헛되이 입을 열어 지식 없는 말을 많이 하는구나

 

하나님은 우리의 머리카락까지 세시는 분이시며, 은밀한 것 하나까지 다 아시는 분이시다.

 

헛된 것을 들으시며, 우리를 향해 돌아보시는 하나님이시다.

 

그러므로 엘리후가 어떤 역할을 맡았던 건간에 오늘 발언은 굉장히 큰 실수를 한 것이다.

 

감정을 주체하지 못한, 어리석은 발언이었고, 하나님 앞에서 매우 불경한 발언임에 틀림없다.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고린도전서 10:12 그런즉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

 

한국의 기라성 같은 목사님들과 교회들이 하나 둘 무너져간다. 인간의 판단으로 어찌 그것을 정죄하고, 비난하랴마는 드러난 모습이 실망스러우니 비난을 감추기는 어렵다.

 

참 합리적인 발언이고, 옳은 말 같지 않은가?

 

그렇지 않다. 아마 이것이 엘리후와 같은 모습이 아닐까 생각이 든다. 

 

과연 내 발언이 적절했는가? 시간이 지나 보면 나의 발언이나 생각이 너무 지나쳤음을 발견하게 된다. 

 

누구도 적절한 언행심사를 지니기는 어렵고, 하나님 앞에서 경건하며, 정의와 공의 말하기가 어렵다.

 

그러므로 우리는 남에 대해서 말하고, 옳지 않은 일, 정결치 못한 언행심사를 지적할 때 깊은 기도 후에 말하는 습관을 가져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감정에 휩싸이고, 분위기에 휩싸이고, 시대상에 매몰되어 나도 모르는 새에 나 또한 악마가 될 뿐이다.

 

엘리후는 분명 성령에 이끌려 나온 하나님의 사람이 분명했다. 우리도 이 시대 성령에 이끌리어 사는 그리스도인이라고 주장하고 있지 않나?

 

그렇다면 정말 분별하며 말하고, 분별하여 지키고, 분별하여 행하는 사람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오늘 우리의 모든 언행심사가 그리스도인다운, 아니 그리스도를 닮은 자의 모습으로 새롭게 살아가길 간절히 소망하고, 기도한다. 샬롬!

 

▶ 지난 욥기 말씀 모음

(욥기 16:18~17:16)참된 위로와 회복

(욥기 18:1~21)참된 뉘우침과 용서

(욥기 19:1~29)고난 중에 하나님을 바라보라

(욥기 21:17~34)내게 보이는 것이 전부는 아니다

(욥기 22:1~30)그의 하나님 되어!

(욥기 23:1~17)그분이라면

(욥기 24:1~25)사방을 둘러볼 필요가 있다

(욥기 25:1~26:14)정말 아는가?

(욥기 29:1~25)그리스도인의 사회윤리

(욥기 30:1~15)하나님의 얼굴을 구하는 삶

(욥기 30:16~31)부활의 영광에 참예하라!

(욥기 31:1~23)두려움이 됩니까?

(욥기 31:24~40)저게 맞는 것이다

(욥기 34:1~30)하나님은 사랑이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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